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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통불교’ 인식과 그 문제점 - ‘통불교’ 담론의 전개양상을 중심으로 - document_id A220623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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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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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은 역사와 현재 사이에서 결코 적지 않은 괴리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괴리감은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서 정체성 혼란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노출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의 하나로 종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조계종 정체성 논란은 곧 한국불교의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계종과 한국불교는 과연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최남선은 원효의 불교를 크게 중시하면서 1930년 이른바 ‘통불교론’을 주창하였다. 이후 한동안 통불교는 호국불교와 함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인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심재룡과 일부 서구학자들에 의해 최남선의 통불교론은 크게 비판을 받았으며, ‘통불교’는 근대기 일본인들이 처음 사용했던 용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통불교’ 담론은 ‘한국불교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담론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 담론에 가담한 국내 불교학자들의 관점은 주로 ‘통불교는 한국불교의 특성’이라는 최남선의 견해를 확대,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계종은 1424년 종명을 상실한 이후 1941년에 이르러 조선불교조계종으로 재탄생되었다. 비록 500년 이상의 단절기를 거쳐야 했지만, 당시 ‘조선불교조계종’을 탄생시켰던 구성원들은 역사 속의 조계종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뚜렷하게 밝혀 놓았다. 이후 1962년의 ‘대한불교조계종’ 성립에 이르기까지, 20세기에 진행되었던 일련의 조계종 역사는 분명 ‘계승’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조계종은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성립-선종과 조계종으로의 존속기-선종으로의 통폐합과 무종단시대-조선불교조계종과 대한불교조계종 성립’으로 계승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계종의 특성과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관통하는 사상과 신앙, 그리고 수행전통 속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아직도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는 ‘통불교’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사실 이외에도,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도 대단히 부적합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앞서 살펴보았던 ‘통불교’ 관련 학술 담론은 결국 한국불교 성격론이나 한국불교 특성론으로 귀결되는 의미를 지닌다. 한국불교에는 고유의 특성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등의 문제이다. 심재룡 이후 최남선의 통불교론을 비판했던 국내외 연구자 대부분은 이미 이러한 질문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경계한 바 있다. 한국불교라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려는 인식 태도는 자칫 불교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1,700여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국불교 특성을 규명해 보기 위한 시도는 나름대로 소중한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불교사, 한국불교학 등의 학문분야 연구 수준은 한층 더 발전될 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이들 담론이 더욱 의미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가기 위해서는 연구자들 스스로가 민족, 국가 등의 강박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불교는 회통불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마치 명제처럼 인식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논설을 펴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겠다. 제 Ⅳ장의 주제인 조계종과 통불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승, 재가를 포함한 조계종단 구성원들의 종사 인식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조계종사와 한국불교사의 범주를 혼동하고 있는 문제라든가, 조계종 역사와 현재 사이에 놓여 있는 괴리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등의 문제이다. 조계종이 현재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라고 해서 조계종의 역사가 곧 한국불교사 전체일 수는 없다. 신라의 원효나 고려시대의 의천 같은 고승은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조계종사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조계종의 역사를 단절이 아닌 계승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조계종사는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서술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후술하겠지만 1941년의 조선불교조계종과 1962년의 대한불교조계종을 탄생시킨 주역들은 분명 조계종사를 ‘계승’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계종과 회통불교의 상관성 역시 고려시대 조계종이 실재했던 기간 동안 과연 그러한 경향이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일부터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고려시대 조계종 구성원들 사이에서 통불교, 또는 회통불교를 명목화하고 이를 지향했던 사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나말여초 시기에 형성된 선문을 기반으로 탄생한 조계종은 장구한 세월만큼이나 굴곡진 역사를 겪어야 했다. 특히 1424년 ‘선종’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된 이후 조계종은 무려 500여 년 이상 그 종명을 상실하게 되며, 조선중기 이후에는 선종 교종 두 개의 종파마저 공식적 지위를 잃어버리는 ‘무종단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조계종의 역사는 심하게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9세기부터 형성되어 15세기 초반까지 뚜렷하게 존속했던 한국불교 선문의 역사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또한 임진란 이후 휴정의 문도들은 석옥 청공-태고 보우-청허 휴정으로 이어지는 전혀 새로운 틀의 한국 선불교 법통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극심한 변화를 겪어야했던 조계종에 과연 통사적 특성은 실재할 수 있을까? 만약 실재하였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앞에서 살펴보았던‘한국불교 특성’ 담론, 특히 이른바 통불교 담론의 전개과정 속에서 이 같은 의문과 관계된 내용은 이미 상당 부분 논의되었다. 하지만 결코 적지않은 반론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통불교’, 또는 ‘회통불교’는 조계종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만한 학문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다만 여기서는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두 가지 문제와 관계된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간략하게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통불교와 회통불교의 개념과 관계된 문제이다. 통불교는 최남선이 일본 불교계에서 새롭게 통용되던 용어를 가져다쓴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인식하던 통불교의 개념과 최남선의 그것은 많은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남선은 특히 원효의 불교를 예찬하면서 한국불교는 통불교의 훌륭한 전통을 오랫동안 간직해오고 있다고 하였다. 조은수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최남선의 통불교와 원효의 회통불교는 다른 맥락에서 쓰였을 것이며, 따라서 '통불교'라는 말의 연원을 다시 뒤져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필자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통불교’는 원효나 조계종, 더 나아가 한국불교 전체의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매우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통불교’와 ‘회통불교’를 마치 동의어처럼 인식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상당히 경계할 필요가 있는 인식 오류에 속한다. 회통의 개념에 대해서는 종범 스님의 다음과 같은 정리가 돋보인다. 한국불교는 불교가 전래되기 시작한 삼국시대부터 대승불교권에서 유통된 많은 불전이 지속적으로 수용되었다. 한국불교 교단에는 법화경 의범을 위시해서 여러 불전의 의범이 다양하게 통용되었다. 그러나 전래 초기부터 보편화된 화엄신앙이 점진적으로 중요한 법풍을 형성하면서 화엄신앙으로의 통합을 이루었다. 화엄신앙에 의한 통합은 ‘회통통합’ ‘원융통합’이다. 회통, 원융통합은 다양한 의범이 모두 화엄 법풍을 표현하는 의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불교 교단은 화엄신앙의 교단이다. 회통, 원융통합의 화엄신앙법풍은 한국불교의 전통이며 정체성이다. 화엄교법에서는 육상원융설에서 볼 수 있듯이 총별, 체용이 상즉적 통합을 구현한다. 이것은 각자의 전문성이 원융성으로 총체적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원융성의 조화는 오늘의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구받고 있다. 이 점은 또한 화엄신앙의 교단이 현대사회에 공헌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한국불교 교단에서는 향후에도 화엄신앙의 법풍을 계승해가야 할 것이다. 종범 스님의 한국불교의 주요불전과 교단형성 이라는 논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스님은 이 글에서 한국불교의 특성과 관련한 견해를 다양하게 밝히고 있다.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통용된 주요 불전, 가람구성, 신앙체계, 수행도법 등의 측면에서 특수성을 찾아보고자 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불교 교단의 총체적 현상을 ‘통불교’ ‘종합불교’로 표현하는 견해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통불교, 종합불교라는 의미는 ‘교단의 정체성이 없이 여러 불전의 의범이 집합한 모습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서 보이는 것처럼, 종범 스님은 한국불교가 화엄신앙으로의 통합을 이루었고, 화엄신앙에 의한 통합이 곧 ‘회통통합’ ‘원융통합’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회통, 원융통합의 화엄신앙 법풍은 한국불교의 전통이며 정체성이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특히의 내용에서 보다 적확한 ‘회통’과 ‘원융’의 의미를 살필 수 있었다. ‘각자의 전문성이 원융성으로 총체적 조화를 이루는 일’, 이것이야말로 회통불교의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현재의 조계종이 ‘회통불교’를 특성으로 하고 있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먼저 ‘각자의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부터 판단해야 할 것이다. 회통은 그러한 전문성이 원융통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조계종 역사의 연속성과 관계된 문제이다. 동아시아 불교는 학파시대에서 종파시대로 전환되는 공통의 역사를 지닌다. 종파불교는 학파불교의 단계보다 더욱 집단화되고, 전문화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종파간의 경쟁과 대립은 종파불교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종파불교시대를 살다간 고승들은 대부분 이러한 경쟁과 대립을 지적하였으며, 그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려 중기는 한국불교사에서 종파불교가 가장 성행하던 시기였으며, ‘종파불교의 전형기’라고 칭해도 좋을 만큼의 뚜렷한 종파불교 양상들을 살필 수 있다. 조계종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뚜렷하게 존속되고 있었던 3대종파, 또는 4대종파 가운데 하나였다. 적어도 종명을 상실하게 되는 1424년까지 조계종은 한국 선불교 역사를 대표하는 종단이었다. 1424년 이후 조선불교는 이른바 ‘선교양종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조선의 권력자들은 그나마 남겨두었던 두 개의 종파마저 혁파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 결과 연산군∼중종대에 이르면 두 개의 종단마저 공식적 지위를 잃어버리는 ‘무종단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물론 이후 명종대 문정대비와 허응 보우의 노력에 힘입어 조선불교는 일시적으로 선교 양종이 복립된 시기도 있지만, 조선 왕실은 왕조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불교 종단의 공식적 존립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를 살다간 많은 승려들의 의식 속에는 ‘종파인식’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중기 이후의 승려 비명에서 ‘선교양종’ ‘화엄종주’라는 표현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비록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당시 승려들은 나름대로의 소속감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조계종 역사에 있어 이 같은 점들은 중요하게 인식, 평가되어야 한다. 조계종은 비록 1424년부터 1941년까지 공식적 종단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고 말았지만, 이 시대를 살다간 승려들의 의식 속에는 꾸준하게 그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권력의 강압에 의해 종명을 상실해야 했던 현실, 하지만 그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이 시기 승려들의 종파계승 의식, 이것은 단지 조계종사 뿐 아니라 한국불교사 전체에서도 크게 중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근대 이후 한국 불교계는 종파의 재건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의 종파 재건 노력을 일본불교 침투 영향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지만, 앞서 서술하였듯이 이 시기 승려들이 지니고 있던 종파계승의식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종파 재건 노력은1941년 조선불교조계종 성립으로 귀결되지만, 이에 이르기까지 불교계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 시기 불교계는 조선불교를 장악하기 위한 일제의 간섭과 통제에 맞서는 한편, 조선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종명과 종조・법통 등을 정립하기 위해 매우 의미 있는 노력들을 전개해 나갔다. 1941년 출범하였던 조선불교조계종과 1962년의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을 통해 역사 속의 조계종을 계승하는 종파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명시하였다. 이들 두 종단은 각각 보우와 도의를 종조로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던 조계종을 그 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종사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조계종사는 연속과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닌다. 조계종의 특성과 ‘회통불교’적 전통은 이러한 종단사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인식될 필요가 있다.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성립-선종과 조계종으로의 존속기-선종으로의 통폐합과 무종단시대-조선불교조계종과 대한불교조계종 성립, 조계종은 이처럼 장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조계종의 특성과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관통하는 사상과 신앙, 그리고 수행전통 속에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는 ‘통불교’는 일본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사실 이외에도,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도 대단히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저자가 '통불교'라는 용어가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저자가 '통불교' 용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근거를 파악한다.

    • ‘통불교’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사실 이외에도,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도 대단히 부적합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용어의 기원과 성격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통불교’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사실
    • 최남선의 통불교론은 크게 비판을 받았으며, ‘통불교’는 근대기 일본인들이 처음 사용했던 용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부적합성의 직접적인 이유인 용어의 기원과 조계종 역사와의 불일치를 선별한다.

    • ‘통불교’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
    • 조계종의 특성과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관통하는 사상과 신앙, 그리고 수행전통 속에서 찾아야 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용어의 외래적 기원(일본 파생)과 조계종의 정체성을 찾는 올바른 방법(역사적 사상/수행 전통) 사이의 모순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용어의 기원이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점과, 조계종의 정체성은 역사적 사상과 수행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결합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 ‘통불교’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사실 이외에도,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도 대단히 부적합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두 가지 핵심 이유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한 정체불명의 용어
    • 조계종의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는 용어로도 대단히 부적합
최종 답변 (final_answer)
저자는 '통불교'가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된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점과, 조계종의 특성과 정체성은 조계종의 역사를 관통하는 사상, 신앙, 수행 전통 속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그러한 전통과 역사를 아우르기에 부적합하다고 결론짓는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통불교'라는 용어는 일본 불교계에서 파생된 정체불명의 용어이며 조계종의 역사와 전통을 아우르는 용어로 부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