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오페스(Opeth)는 1989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결성된 메탈 밴드이다. 밴드는 몇 차례의 구성원 변화를 겪었지만 리드 보컬/기타리스트/송라이터인 미카엘 오케르펠트는 꾸준히 오페스의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 오페스는 작곡에 초기에 데스 메탈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이, 계속해서 프로그레시브, 포크, 블루스, 클래식, 재즈의 요소들을 차용한다. 대부분의 곡이 그로울링과 클린 보컬 뿐만아니라 어쿠스틱 기타 연주을 포함한다. 또한 그들의 곡은 대부분 곡조의 변화가 역동적이다. 오페스는 멜로트론을 활용하여 곡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페스는 그들의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오페스는 현재까지 12개의 스튜디오 음반, 3개의 라이브 DVD, 3개의 라이브 음반 (이 중 2개는 DVD와 동봉되어 있다.), 2개의 박스셋을 발매했다. 밴드는 1995년의 데뷔 음반 'Orchid'를 발매했다. 비록 그들의 8번째 스튜디오 음반 'Ghost Reveries'가 미국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지만, 오페스는 2008년에 9번째 스튜디오 음반 'Watershed'를 내기 전까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Watershed'는 빌보드 200에서 23위에 등극했고 발매 첫 주에 핀란드 차트에서 최상위권에 안착한다. 오페스는 전세계적으로 음반과 DVD의 판매량이 약 150만장 이상 정도 되는데 이 판매량은 미국에서 판매된 그들의 음반 'Blackwater Park', 'Damnation', 'Deliverance'의 한정판 닐슨 사운드스캔본 30만장을 포함하는 수량이다.
<heading>역사 >> 결성 (1983-1993) </heading>
오페스는 1989년 스톡홀름에서 리드 보컬리스트 다비드 이스베리가 데스 메탈 밴드로 창단하였다. 이스베리는 전 이럽션 구성원이자 당시 16살이었던 미카엘 오케르펠트에게 오페스에 베이시스트로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가입 후, 오케르펠트가 첫 연습을 하러 갔을 때 알고 보니 이스베리가 밴드의 베이시스트를 포함한 다른 밴드 구성원들에게 오케르펠트가 가입한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은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강한 반발과 함께 이스베리와 오케르펠트를 제외한 나머지 밴드 구성원들은 새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게 된다. 소설 내 'Opet'란 이름은 남아프리카에 있는 가상의 페니키아 도시의 이름이며 "달의 도시"라고 번역된다.
이스베리와 오케르펠트는 드러머 안데르스 노르딘, 베이시스트 닉 되링, 기타리스트 안드레아스 디메오를 영입했다. 오페스의 느린 진전 속도에 불만을 가진 되링과 디메오는 밴드의 첫 공연 이후 탈퇴하였고 이후 기타리스트 킴 페터슨과 베이시스트 요한 드 파팔라가 가입했다. 다음 공연 이후, 드 파팔라는 독일에 있는 그의 여자친구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오페스를 탈퇴하였다. 베이시스트 자리는 마티아스 앤더가 차지했는데 이후에는 오케르펠트의 친구 페테르 린드그렌이 베이시스트가 차기 베이시스트가 된다. 다음 공연 이후에 리듬 기타리스트 킴 페터슨이 밴드를 탈퇴하였고 린드그렌이 기타 자리를 맡고 새 베이시스트 스테판 구트클린트가 밴드에 가입하였다. 다음 해에 다비드 이스베리가 밴드 구성원과의 의견 차이로 밴드를 탈퇴하였다. 음반 'Orchid'는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클린 보컬을 차용하면서 기존 데스 메탈의 통념에 도전했다.
영국에서 몇 차례의 공연을 진행한 이후, 오페스는 1996년 3월에 프로듀서 단 스바뇌와 함께 두 번째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한다. 음반의 제목은 'Morningrise'였고 1996년 6월 24일에 유럽에 발매되었다. 5개의 수록곡 뿐이지만 총 재생 시간은 66분이었으며, 오페스의 곡 중 가장 긴 러닝 타임인 약 20분 정도의 곡 "Black Rose Immortal"을 수록하였다. 오페스는 'Morningrise'의 발매와 함께 영국 지역으로 투어를 다녔고 이후 크래들 오브 필스와 26일 간 스칸디나비아로 투어를 떠난다. 투어 중간에 오페스는 센추리 미디어 레코드와 계약하여 1997년에 미국에 그들의 두 음반을 발매한다.
1997년, 투어가 끝난 뒤 오케르펠트와 린드그렌은 노르딘의 동의 의사를 묻지 않고 드 파팔라를 몇 가지 개인적인 사유로 해고한다. 브라질에 있었던 노르딘에게 오케르펠트가 이 소식을 전하자 노르딘은 밴드를 탈퇴하고 몇 가지 개인 사유로 브라질에 남는다. 밴드 이터널의 전 구성원인 드러머 마르틴 로페즈 (전 아몬 아마스 구성원)와 베이시스트 마르틴 멘데스는 오페스의 팬이었다. 어느 날 그들은 오케르펠트가 음반 매장에 붙여놓은 광고지를 보게 된다. 로페즈와 멘데스 형제는 다른 음악가들이 광고를 보지 못하도록 광고지를 없애버린다. 오케르펠트와 린드그렌은 처음엔 마르틴 형제가 이미 서로 친한 사이여서 밴드 내에서 두 집단으로 나뉘어질까봐 그들을 원치 않았으나 결국에는 둘을 받아들인다. 로페즈는 오페스와 함께 아이언 메이든의 곡 "Remember Tomorrow"의 커버곡을 연주하며 데뷔를 시작하는 데, 훗날 이곡은 음반 'A Call to Irons: A Tribute to Iron Maiden'에 실리게 된다.
센추리 미디어 레코드로부터의 더 많은 예산과 함께 오페스는 유명 스웨덴 프로듀서 프레드리크 노르드스트룀과 함께 1997년 8월에 프레드먼 스튜디오에서 세 번째 음반 녹음을 시작한다. 비록 멘데스가 밴드에 있었으나 여러 시간적 충돌로 인해 오케르펠트가 베이스 녹음을 해야 했다. 음반 'My Arms, Your Hearse'는 1998년 8월 18일에 발매되어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올뮤직은 이 음반에 대해, "아름다운 멜로디와 함께 가공할 정도로 잘 이어져 있으면서 변칙적이고 거친 기타 리프"라고 평했다. 오케르펠트는 음반 'Still Life'가 콘셉트 음반이라고 설명했다. "음반의 주인공은 고향으로부터 쫓겨난 상태인데 왜냐하면 그는 그의 고향 사람들과 같은 신앙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음반은 그 이후로 몇 년뒤에 그가 그의 오랜 애인과 만나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고향의 빅 보스들이 그가 돌아온 것을 알게 되고...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윌슨은 또한 새로운 음향과 프로듀싱 기술들을 추가하여 밴드의 음악을 좀 더 발전시키고자 했다. 오케르펠트는, "스티브는 우리에게 생전 처음 듣는 "괴상한" 기타 소리와 노래의 영역에 발을 딛게 해주었다."라고 말했다. 음반 발매 이후, 오페스는 첫 월드 투어를 떠나게 되고 유럽 공연에서 첫 헤드라이너를 장식한다. 또한 독일에서 열린 2001년 Wacken Open Air에서 6만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하였다.
<heading>'Deliverance', 'Damnation' (2002-2004) </heading>
오페스는 'Blackwater Park' 음반의 투어를 마친 뒤 스웨덴으로 돌아와 다음 음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오케르펠트는 새 곡을 쓰는데 몇 가지 문제를 겪었다. "난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헤비하게 쓰고 싶지만 곡의 감미로운 부분들 또한 너무나 멋지기에 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케르펠트의 오랜 친구인 카타토니아의 요나스 렝크세는 그에게 하나는 헤비하게, 다른 하나는 부드럽게 음반을 두 개로 나눠서 작곡하는 것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트랙을 녹음한 뒤에 밴드는 먼저 영국으로 가서 프로듀서 앤디 스닙과 함께 백스테이지 스튜디오에서 헤비한 음반인 'Deliverance'를 녹음하였다. 오케르펠트는, "'Deliverance'의 녹음 작업을 무사히 끝마치긴 했지만 별로 녹음이 잘된 편은 아니다."라고 했으며 대부분의 녹음자료들을 되찾아준 스닙을 '구세주'라고 표했다. 올뮤직은, "'Deliverance'는 청취자들을 순전히 양과 복잡성으로 압도하기보다는, 잊을 수 없는 뉘앙스와 능수능란한 역동성으로 접근하며 이전 음반들과는 약간의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라고 평했다.
오페스는 스톡홀름에서 단 한 번의 공연을 끝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 또 다른 음반인 'Damnation'을 스티븐 윌슨의 노 맨스 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기 시작했다. 비록 오케르펠트는 밴드가 이 두 음반 작업 모두를 끝마치지 못할거라 에상했으나, 밴드는 스튜디오에서 오직 7주만에 'Deliverance'와 'Damnation'을 녹음하는데 성공했고 이 기간은 'Blackwater Park'를 녹음할 때 걸린 기간과 같다. 2016년 1월 1일, 오페스는 'Deliverance'와 'Damnation'를 새로이 믹싱하여 CD와 DVD 모두를 한 패키지에 담아 재발매하였다.
밴드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제까지 한 것 중 가장 규모가 큰 투어를 다니면서 약 200개의 공연을 진행하였다. 요르단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오페스는 중동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에 대비하여 조정팀과 함께 가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오페스의 투어 매니저는 약 6천장 분량의 표를 준비했는데 드러머 로페즈의 공황발작으로 인해 오페스는 투어를 취소해야만 했다. 2004년 초, 로페즈는 투어 중간에 계속된 공황발작으로 인해 캐나다에서 그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페스는 남은 투어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로페즈의 드럼 테크니션에게 두 공연을 채우도록 하며 계속 진행하였다. 로페즈는 그가 가능한 빨리 투어로 돌아가겠다고 했으나 두 공연을 마친 오페스는 스트래핑 영 래드(Strapping Young Lad)의 드러머 진 호글란에게 드러머 자리를 권유했다. 로페즈는 시애틀에서 열리는 이 투어의 마지막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오페스에 돌아왔다. 퍼 윌버그 또한 오페스에 가입하여 투어에서 약 1년 이상 키보드를 담당하였다.
<heading>'Ghost Reveries' (2005-2007) </heading>
2004년, 오페스는 8번째 음반 작업을 시작했고 연말에 작업을 끝마치게 된다. 오케르펠트가 말하길, 그들이 로드러너 레코드와 계약한 가장 주된 이유는 로드러너 측이 그들의 음반 판매를 더 큰 체인의 업자들에게 맡겨서 전세계적으로 발매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밴드가 로드러너라는, 대부분 유행 중심적인 록/메탈 밴드들과 일했던 레코드사와 계약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팬들은 밴드가 상업적으로 변절했다고 비난했다. 오케르펠트는, "솔직히 말해서, 15년 동안 8개의 음반을 낸 밴드에게 그렇게 큰 모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아직까지도 이 몇 년동안 우리가 팬들의 신뢰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우리 곡은 10분 이상이 넘어가는 대곡들인데도 상업적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라고 의견을 밝혔다. 오페스는 2005년 3월 18일부터 6월 1일까지 스웨덴 외레브로에 있는 패시네이션 가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 8월 30일에 음반 'Ghost Reveries'를 발매한다. 이 음반은 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게 된다. 음반은 미국 차트 64위, 스웨덴 차트 9위에 등극하여 이전까지의 오페스의 음반 성적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Blabbermouth.net의 키스 버그먼은 사이트에서 오직 21개의 음반만 받은 점수인 10/10을 이 음반에 주었다. 데시벨 잡지의 로드 스미스는 'Ghost Reveries'를 "고통스러울 정도의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때때로 표출되는 맹렬한 잔혹성의 적절한 조화"라고 평했다. 2006년 5월 12일, 마르틴 로페즈는 건강 문제로 인해 오페스를 탈퇴한다는 소식을 알렸고 그의 자리는 이후 마르틴 악센로트가 메우게 된다. 오페스는 메가데스와 함께 2006년에 기간투어의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하였다. 'Ghost Reveries'는 딥 퍼플의 "Soldier of Fortune"의 커버곡과 5.1 서라운드 사운드의 DVD, 음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담은 채로 2006년 10월 31일에 재발매되었다. 2006년 11월 9일, 런던의 캠든 라운드하우스에서 진행된 오페스의 공연이 녹음되어 더블 라이브 음반 'The Roundhouse Tapes'가 발매되었고 핀란드 DVD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2007년 5월 17일, 16년간 활동했던 페테르 린드그렌이 오페스를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내가 한 결정 중 가장 힘들었으나 나의 삶에서 꼭 필요한 순간이라고 느꼈다. 난 우리가 즐기며 사랑한 음악이 세계적인 산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밴드에 대한 나의 열정과 영감이 없어졌다고 느낀다." 아치 에너미의 전 기타리스트 프레드리크 오케손이 린드그렌을 교체하였다. 오케르펠트는, "피터를 대신할 만한 기타리스트로 프레드릭의 이름만이 바로 생각났다. 내 생각에 그는 스웨덴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것 같다. 4년 동안 함께 지내온 사이로서 우리는 밴드에서 잘 지내고 있으며 그는 오페스의 구성원로서 우리가 이끄는 서커스와 같은 삶을 견딜만한 경험을 이미 지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완성작인 'Watershed'는 7개의 곡을 수록하였고 각각의 다른 판마다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커버곡들이 서로 달랐다. 'Watershed'는 2008년 6월 3일에 발매되었다. 오케르펠트는 이 음반의 곡들의 특징에 대하여 "좀 더 활기있는" 이라고 묘사했다. 'Watershed'의 발매와 함께 오페스는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고 UK 디펜더즈 오브 페이스 투어(UK Defenders of Faith tour)에서는 아치 에너미와 함께 헤드라이너를 장식하고, Wacken Open Air에서 공연한 뒤에는 프로그레시브 네이션 투어(Progressive Nation tour)에서 드림 시어터와 함께 헤드라이너를 장식했다. 'Watershed'는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 23위에 오르면서 오페스의 음반 성적 중 최상위를 달성하고 핀란드의 음반 차트에서는 1위를 달성한다. 오페스는 'Watershed'의 월드 투어를 떠나기 시작하여 9월부터 10월까지는 하이 온 파이어, 베로네스(Baroness), 나치미스티움(Nachtmystium)과 함께 북미 투어를 다녔다. 그들은 그 해의 나머지 기간을 시닉(Cynic)과 더 오션(The Ocean)과 함께 유럽 투어를 다녔다.
2010년, 오페스는 새 트랙인 "The Throat of Winter"를 작곡하였고 비디오 게임 갓 오브 워 III에서 디지털 EP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되었다. 오케르펠트는 이 곡을 "메탈곡스럽진 않고 좀 특이하다"라고 묘사했다. 그들의 20주년이 되어 오페스는 2010년 3월 30일부터 4월 9일 까지 월드 투어 'Evolution XX: An Opeth Anthology'를 다니며 6번의 공연을 진행하였다. 이 투어에서 음반 'Blackwater Park'의 전곡과 전에는 연주되지 않았던 곡들이 연주되었다. 2010년 4월 5일,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공연이 녹화되었고 녹화본의 DVD와 라이브 음반을 담은 패키지가 'In Live Concert at the Royal Albert Hall'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패키지는 2010년 9월 21일에 발매되었고 2-DVD와 2-DVD/3-CD 형식으로 각각 배정되어 판매되었다. DVD 녹화를 위해 공연은 두 차례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공연은 'Blackwater Park'의 음반 전곡을, 두 번째 공연은 그들의 20년이라는 역사를 대표하여 발매작의 연도 순서대로 'Blackwater Park'를 제외한 음반의 한 곡씩을 연주했다. 오케르펠트는, "믿기지가 않는다. 젠장할, 우리는 밴드의 2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난 밴드에 16살 때부터 있었는데, 참 대단한 일이다." 라고 소감을 표했다. 2010년 3월에 투어가 끝남과 함께 'Blackwater Park'의 특별판 음반이 발매되었다.
<heading>'Heritage' (2011-2013) </heading>
2010년 9월, 오케르펠트는 오페스의 새 음반에 수록될 곡을 쓰고 있다고 발표했다. 밴드는 공식 웹사이트에 엔지니어링을 담당할 젠스 보그렌과 공동 프로듀서를 맡은 포큐파인 트리의 스티븐 윌슨과 함께 스톡홀름에 있는 아틀란티스/메트로놈 스튜디오에서 2-11년 1월 31일에 10번째 음반의 녹음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2011년 4월, 새 음반의 믹싱 작업이 끝난 뒤, 오페스는 퍼 윌버그의 탈퇴 소식을 알렸다.. 미카엘은 언론을 통하여, "멘데스와 악세, 프레드리크와 나는 새 음반의 녹음 작업이 끝난 뒤에 퍼를 대신할 키보디스트를 찾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게 퍼가 항상 탈퇴에 대하여 고려를 했기 때문에 그의 탈퇴는 상호 간의 합의하에 결정된 일이다. 우리 사이에 악감정은 없고 그냥 오페스에서의 인연이 끝이 난 것뿐이다." 라고 해명했다. 음반은 미국에서 첫 주에만 19,000장이 팔려나갔고 빌보드 200 차트에서 19를 기록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차트 4위를 기록했다.
'Heritage'는 오페스가 전 음반들과는 달리 그로울링과 같은 언클린 보컬을 채용하지 않고 좀 더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녹음되었는데 이는 'Damnation' 음반의 특징을 이은 오페스의 두 번째 음반이자 오케르펠트가 언젠가 꼭 한 번 작업하기 위해 고수해왔던 음반이기도 하다.
오페스는 'Heritage'의 투어를 시작하여 약 200일 이상의 일정을 소화해냈다. 이 투어는 음반의 오프닝 트랙을 녹음한 새 키보디스트 요아킴 스발베리와 함께 떠나는 첫 투어였다. 오페스는 카타토니아, 페인 오브 셀베이션, 마스토돈, 고스트, 아나테마와 함께 미국, 유럽, 터키, 인도, 일본, 그리스, 이스라엘, 중남미,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 공연하며 전세계를 무대로 투어를 다녔다. 투어는 "Melloboa 2013" 페스티벌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오케르펠트는 2012년 8월부터 음반의 수록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4년 1월에 그는 "우리는 퀸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녹음했던 록필드 스튜디오에서 다음 음반을 녹음할 지 고민 중이다. 매우 가치 있는 음반이 될 것이며 우리가 전에는 하지 않았던 많은 작업들을 해야 하며 기타줄도 여러 번 갈아야 한다." 새 음반이 'Heritage'보다 더 헤비한지 아니면 더 부드러운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오케르펠트는, "데스 메탈까진 아니겠지만 하드 록이나 헤비 메탈 정도로 헤비할 것이다. 여러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들과 어쿠스틱 기타 연주들이 가미될 것이나 사악한 기타 리프 또한 더욱 추가될 것이다." 라고 답했다. 오케르펠트는 또한 스톰 코로전에서 활동할 때 관심을 보였던 여러 현악기들의 사용 또한 이 음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가디언은 'Pale Communion'에 대하여 오케르펠트의 제멋대로인 보컬 스타일에 대해서는 지적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상하면서도 복잡한 프로그레시브 메탈 음반 계의 걸작"이라고 호평했다. 음반은 미국 차트 19위,를 기록하면서 오페스 음반 역사상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오케르펠트는 공연 중에 굉장히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흘 뒤인 6월 18일, 오페스는 새 음반 'Sorceress'의 30초 분량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한 달 뒤인 6월 18일에 오페스는 음반의 아트워크와 트랙 리스트를 공개하면서 음반 발매일이 9월 30일이라고 발표했다. 오케르펠트는 이 음반에 대해, "잘 만들어진 음반이다. 현재까지 만든 음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반이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음반은 고전성과 신선성, 진보성과 보수성, 헤비함과 조용함을 동시에 가졌다.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말이다." 음반은 오페스와 뉴클리어 블래스트가 함께 만든 합작 레코드사인 모더볼라제(Moderbolaget) 레코드를 통하게 된 첫 작품이었다. 모더볼라제는 스웨덴어로 "모회사"라는 뜻이다.
2016년 6월 25일, 음반의 발매를 앞두고 밴드는 그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음반 제작 과정 영상을 게시했다. 투어 중간의 비하인드 영상에서 오페스가 'Pale Communion'을 녹음했던 록필드 스튜디오에서 다시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상의 끝에서 다운튜닝이 강하게 걸린 기타 소리의 20초 분량의 트랙이 재생되는데 이는 새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로 추정된다. 2016년 8월 1일, 밴드는 유튜브 채널에 타이틀 트랙 "Sorceress"의 가사 영상을 공개했다. 2016년 9월 4일에는 유튜브 채널과 공식 웹사이트에 두 번째 싱글곡 "Will O The Wisp"의 가사 영상을 공개했다. 오페스의 영상 "Era"는 2017년 프로그레시브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영상" 부문에서 노미네이트되었으며 밴드는 "올해의 세계적 밴드"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2017년 10월 2일, 오케르펠트는 12번째 음반을 좀 더 "뒤틀린" 곡들로 구성하겠다고 생각 중이며 음반은 2019년 중반에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2017년 11월 20일, 기타리스트 프레드리크 오케손은 밴드가 2018년 여름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까지는 몇 달동안 공연을 잠시 쉰다고 했다. 이 휴식기 동안 밴드는 새 음반에 수록된 곡을 쓰는 것에 전념할 것이라고도 전했다.
<heading>음악성과 영향 </heading>
오페스의 보컬/기타리스트인 미카엘 오케르펠트는 밴드 작사/작곡을 도맡아 하며 오페스의 음악의 방향성을 주도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킹 크림슨, 예스, 제네시스, 카멜 등의 19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 아이언 메이든, 슬레이어, 데스, 블랙 사바스, 딥 퍼플, 켈틱 프로스트, 킹 다이아몬드, 모비드 엔젤, 보이보드 등의 메탈 밴드들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주다스 프리스트의 영향을 제일 크게 받았다. 그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1976년 발매작 'Sad Wings of Destiny'가 최고의 메탈 음반이라고 평가하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곡만 들었던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페스의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목을 고르기 위해 주다스 프리스트의 세 번째 음반인 'Sin After Sin'의 수록곡 "Here Come the Tears"를 주로 부른다. 주다스 프리스트를 듣다가 그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포크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고 이는 훗날 밴드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오페스의 초기 음반 시절과 비교했을 때, 2001년 'Blackwater Park' 발매 이후 변화된 공연 활동 양상은 어떠한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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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오페스의 초기 음반 시절 공연 활동과 2001년 이후의 공연 활동 변화를 비교하여 설명해야 한다.
- 오페스는 그들의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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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초기 4개 음반 시절의 공연 특징과 2001년 이후의 공연 특징을 각각 추출한다.
-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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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두 시점의 공연 활동 차이를 보여주는 핵심 구절을 선별한다.
-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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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초기에는 라이브 공연이 드물었으나, 2001년 이후에는 월드 투어를 시작하며 공연 규모가 메이저급으로 확대되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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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시간 흐름에 따른 공연 활동의 변화를 정리한다.
-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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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시점별 차이를 명확히 기술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음반 'Blackwater Park'의 발매와 함께 첫 번째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래로 그들은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닌 적이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오페스는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Blackwater Park' 음반을 발매하며 첫 번째 월드 투어를 시작한 이후로는 몇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진행하는 등 공연 활동이 활발해졌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오페스는 초기 4개 음반 시절에는 라이브 공연을 잘 하지 않았으나 2001년 'Blackwater Park' 음반 발매와 함께 첫 월드 투어를 단행한 이후 여러 차례 메이저급 월드 투어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