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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번 document_id A220623199282

분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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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후쿠오카 번(후쿠오카한)은 일본 에도 시대 지쿠젠국을 지배했던 번으로, 지금의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 위치했다. 지쿠젠 번(筑前藩)으로도 불리며,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黒田氏)이었기 때문에 구로다 번(黒田藩)이라는 속칭도 있다. 번청은 후쿠오카성에 두었다. <heading>번의 역사 </heading> 1600년 게이초 5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치쿠젠 일부를 영유하고 있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비젠국 오카야마번으로 전출되어 봉해졌다. 대신 부젠국 나카쓰번 번주였던 구로다 나가마사가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공에 따라 지쿠젠 국 일대 52 만 3 천여 석의 큰 봉토를 받음으로써 번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영주는 일국의 영토를 가진 다이묘 가문이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후쿠오카 번 구로다 가문을 우대했고, 2대 구로다 다다유키 이후 역대 번주에 마쓰다이라의 성과 장군 실명 한 글자를 수여했다. 마쓰다이라 지쿠젠을 유지하며 구로다 가문은 에도 막말에 이른다. <heading>지번 >> 아키즈키번 </heading> 아키즈키 번(秋月藩)은 후쿠오카 번의 지번으로 1623년 겐나 9년 구로다 나가마사의 셋째 아들 나가오키가 후쿠오카 번으로부터 5만석을 나눠받아 번을 세웠다. 번청은 아키즈키 진야(현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에 세웠다. 성이 없는 다이묘였지만, 성주의 격을 부여했다. 4대 번주 나가사다의 딸 하루히메는 다카나베 번 아키즈키씨에 시집을 갔으며, 둘째 아들은 명군으로 유명한 우에스기 요잔이었다. 간에이 연간에 후쿠오카 번과의 사이에 게자 군 일부와 호나미 군, 야스 군의 일부 영지를 교환했지만, 막부의 승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어내증체’(御内證替)라고도 불렸다. (일설에는 후쿠오카 번으로부터 아키즈키 번이 받은 중신의 영지를 그대로 안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아키즈키 진야의 눈과 코 앞에 있던 교통의 요충지인 아마기야도를 후쿠오카 번이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키즈키와 후쿠오카 두 번의 경계선은 아마기야도를 후쿠오카 번령에 포함시키는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폐번치현 이후엔 자작위를 받았다. <heading>도렌지번 </heading> 도렌지 번(東蓮寺藩) 혹은 노가타 번(直方藩)은 후쿠오카 번의 지번이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후쿠오카 번이 구로다 번이라는 속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후쿠오카 번이 '구로다 번'이라는 별칭을 갖게 된 원인과 정의를 파악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후쿠오카 번의 번주 가문과 속칭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黒田氏)이었기 때문에 구로다 번(黒田藩)이라는 속칭도 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속칭의 직접적인 근거가 되는 '번주가 구로다 가문'이라는 정보를 선택한다.

    •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黒田氏)이었기 때문에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번주 가문이 구로다 가문이라는 사실이 속칭의 이유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번주가 구로다 가문이기 때문에 구로다 번이라 불린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구로다 번(黒田藩)이라는 속칭도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한 인과관계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지쿠젠 번(筑前藩)으로도 불리며,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黒田氏)이었기 때문에 구로다 번(黒田藩)이라는 속칭도 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후쿠오카 번의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후쿠오카 번은 번주가 도자마 다이묘인 구로다 가문이었기 때문에 구로다 번이라는 속칭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