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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과 대원군의 정치-『경복궁영건일기』를 중심으로- document_id A22062320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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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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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와세다대 도서관이 소장한 9권짜리 경복궁영건일기는 경복궁 중건에 관한 모든 것들의 연대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글은 이 새로운 자료에 기대어 경복궁 중건에 투영된 대원군의 정서를 읽어보려 한 것이다. 1865년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가 경복궁 중건에 관한 의지를 드러내며 신하들의 생각을 물은 뒤, 경복궁 중건 역사 일체를 대원군에게 위임한다고 공표했다. 영건일기에 실려 있는 정원용과 조두순의 최초 발언을 읽어보면, 그들이 권력 심층부의 의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사실상 대원군 혈족 및 복심들과 신정왕후 조씨 친정 조카들 간의 연합이었다. 대원군과 영건도감은 이 대형 토목공사를 ‘천명’으로 합리화하려 했다. 대원군은 도참비기의 출현을 토대로 천명을 받았음을, 백성의 자발적 공사 참여를 근거로 민심을 얻었음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중건경복궁에 창건경복궁의 이미지를 중첩시킴으로써 천명과 민심을 얻어 세웠다는 새 왕조를 자기의 시대로 불러들이려 했다. 대원군이 천명과 인심, 그리고 창건경복궁의 이미지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은 그가 조선후기적인 정치운영의 논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의도는 중건경복궁의 주변공간에 투영되었다. 경복궁 담장에 인접해 있는 민가가 철거되었으며, 도시기반시설 가운데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들도 철거되었다. 궁궐 중에는 경희궁이, 잠저나 사묘 중에는 창의궁이, 관청건물 중에는 균역청 청사가 몸살을 앓았다. 영건도감이 위 보상금 기준가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인 민가들도 적지 않았다. 대원군은 중건경복궁을 삼면으로 둘러싼 이 공간에 각사와 각사 소속 시설, 군영 관련시설 등을 경복궁 주변에 조성하려 했다. 중건경복궁을 새로운 정치운영의 중심, 새로운 행정 및 군사 시스템의 중심,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사회질서의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건일기 번역 작업이 한참이던 2018년 가을, 영건일기를 근거로 하여 경복궁내 주요 현판의 색깔 등을 고증한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다. 문화재청은 최근 광화문 현판을 검은 바탕에 동판 위 금박 글씨로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그만큼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여럿 남아 있다. 영건일기를 대원군집권기라는 역사적인 맥락 위에서, 경복궁 안팎이라는 장소적 조건들 위에서 독해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 글은 대원군 집권기 경복궁 중건의 정치사를 재구성한다는 차원에서 영건일기를 읽었다. 본문에서 검토한 바에 따르면, 대원군 집권기 권력의 심층에 18학사라는 막료 그룹이 있었으며, 경복궁 중건공사는 ‘천명’에 비유될 정도였다. 영건도감은 경복궁 주변의 대 저택들을 고가에 매입 혹은 원납 받은 뒤, 그 집터 혹은 남은 가옥을 각 관청의 부속 시설로 활용했다. 중건경복궁은 도성 안에 산재해 있던 정치, 행정, 군사기구를 연결하는 공간적인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중건경복궁과 주변의 그런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대원군의 정치적 의도가 공간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대원군은 천명과 인심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중건경복궁으로 소수 유력가문 중심의 정치사회질서를 넘어서 보려 했던 것이다. 영건일기는 이제 번역본의 형태로 더 많은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로운 상상을 즐기는 독자라면 영건일기를 읽다가 이런 가정을 될지도 모른다. 이 공사일지에 〈경복궁영건가〉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백성들의 자발성이 전혀 없었다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대원군의 노력으로 우리가 오늘날 국가적 상징물을 가지게 된 것이니 경복궁 중건 프로젝트를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대원군은 집권기간 동안 개혁적인 대내정책과 반침략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음미해 볼 만한 질문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글은 경복궁중건 프로젝트의 공과를 평가하거나, 대원군이 후세에 남긴 자산의 크기를 가늠하는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중건경복궁과 그 주변에 투영된 대원군의 정치적 의도와 논리를 읽어내는 데 집중하려 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천명과 민심을 내세운 대원군의 논리가 당대 기층사회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는 점만은 지적해두고 싶다. 영건일기에 실려 있는 영건도감의 관문 하나를 보자. 근래 지방 고을을 보니 소위 원납하는 자가 갈수록 더 없어져서 도무지 모양새가 갖춰지지 않으니 이 무엇 때문인가. 듣자니 사대부집안에서는 수치라고 일컫고 부유한 백성들은 다만 인색한 것만 알아 의로움을 향해 힘을 쓰는 자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이 법을 시행한다면 그 따르지 않은 자들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제로 문책하고 징벌을 실시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사족과 백성들의 마음은 대원군에서 멀어져만 갔다. 대원군은 왕조개창기의 이미지를 불러들여와 중건사업이 천명과 민심을 얻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바닥 민심은 대원군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뒷날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대원군 집권기의 시대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나라 안이 온통 공포에 싸였다. 백성들은 혀를 깨물고 서로 경계하며 감히 조정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항시 귀신이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여겼다.” ‘원납’과 ‘자원’의 이름으로 동원된 백성들의 시야에서 보면, 중건사업 거기 어디에도 대원군이 주장한 천명이나 민심은 없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이 천명과 민심을 얻었다고 주장했으나, 이 글의 저자가 지적하는 실제 당대 기층사회의 민심과 대원군의 논리 사이의 괴리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대원군의 주장(천명과 민심)과 저자가 분석한 실제 기층사회의 민심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 대원군은 도참비기의 출현을 토대로 천명을 받았음을, 백성의 자발적 공사 참여를 근거로 민심을 얻었음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대원군이 내세운 논리와 실제 민심의 상태를 각각 추출한다.

    • 대원군은 천명과 인심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 사족과 백성들의 마음은 대원군에서 멀어져만 갔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민심이 대원군의 주장과 달랐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근거를 선별한다.

    • 정작 바닥 민심은 대원군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 백성들은 혀를 깨물고 서로 경계하며 감히 조정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항시 귀신이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여겼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대원군은 자발적 참여와 천명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강제성과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이었음을 연결한다.

    • ‘원납’과 ‘자원’의 이름으로 동원된 백성들의 시야에서 보면, 중건사업 거기 어디에도 대원군이 주장한 천명이나 민심은 없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대원군의 논리는 당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으며, 실제 민심은 대원군으로부터 멀어져 공포에 싸여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다만 한 가지, 천명과 민심을 내세운 대원군의 논리가 당대 기층사회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는 점만은 지적해두고 싶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대원군의 주장과 실제 민심의 괴리를 명확히 기술한다.

    • 정작 바닥 민심은 대원군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대원군은 도참비기와 백성의 자발적 참여를 근거로 경복궁 중건이 천명과 민심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실제 기층사회의 민심은 대원군의 주장과 달리 그로부터 멀어져 있었으며, 백성들은 조정의 일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공포에 싸여 있었다. 즉, 대원군이 내세운 천명과 민심의 논리는 당대 기층사회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이 천명과 민심을 얻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당대 기층사회의 민심은 그와 달리 공포와 괴리에 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