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한국어 지식관계

고려시대 자기인식의 형성과 문명의식(文明意識)의 변화 document_id A220623200496

분류
인문학
라벨 상태 (label_status)
approved
문맥 (context)
본 연구는 고려왕조에서의 자기인식 내용과 고려에 대해 칭해진 동문 및 소중화에 대한 내용 분석을 통해 고려시대 문명의식의 내용과 그 변화가 갖는 의미 등을 찾고자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의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은 태조의 천명의식, 고구려계승의식, 삼한일통의식 등에서 출발한다. 고려는 이를 팔관회를 통해 상징화하는 한편 유교를 토대로 한 화풍을 반영하면서 동방의 것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후 유교 문명의 수용을 토대로 자기인식이라 할 고려중심 문명의식과 결합하였다. 유 불 도 삼교와 토속신앙, 용손의식 등이 반영되었고, 해동천자가 다스리는 천하를 노래하는 팔관회가 이를 상징하였다.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이 성립한 것이었다. 고려는 예악문물이 중화와 같은 범주 혹은 버금간다는 의미에서 동 문 소중화라 칭해졌다. 여기에는 송이 다원적 국제질서 속 고려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의도한 면이 있었다. 고려는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서 스스로 이룬 문물을 자신하였다. 팔관회의 개최는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 속에서의 해동천하라는 문명의식 형성을 뜻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원 간섭기 원 중심의 형세론적 화이의식을 수용하여 원 중심 천하동문을 받아들였다. 또 명이 들어서자 고려는 이에 대한 사대를 결정하면서 종족적 공간적 유교적 정통을 인정하고 명 중심의 화이의식 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의 해소를 뜻하는 것이었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이중적인 것으로 명과 성리학 중심의 용하변이를 추구한 것이 된다. 이는 시대 상황에 따른 고려 중심의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의 변질이라 여겨진다. 고려의 해동천하 문명의식의 상징이었던 팔관회의 혁파와 명 중심 소중화적 동인의식을 새롭게 만든 것은 이를 뜻하였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고려가 어떻게 자기인식을 하게 되었으며, 그 내용이 무엇인가와 함께 내외부의 시각이 함축된 문명의식과 그 동질감의 표현이라 할 동문 소중화의 용례 사용과 변화 등이었다. 이를 통해 고려가 가진 문명의식의 내용과 그 변화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고려 태조는 천명의식 속에서 즉위를 정당화하는 한편 연호를 ‘천수’라 개원했고, 고구려계승의식 속에서 국호를 ‘고려’라 정하였다. 통일과정을 통해서는 삼한일통의식을 확립하여 자기인식의 틀을 만들었다. 이어서는 동방과 유교에 근원한 당풍을 구분하고 다시 고려와 거란을 구분하여 그 다름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태조는 천명의식 및 고구려계승의식이나 삼한일통의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이풍역속을 위해 유교문명의 성취를 추구하였다. 태조가 정리한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은 팔관회와 훈요를 통해 상징화되었고, 이는 후대에 더욱 정비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편, 송에서는 고려에 대해 동문 소중화라 칭하였다. 그것은 고려의 예악문물이 중화에 버금간다는 상징이었다. 동문이나 소중화 등은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고려의 역사문물의 기원이라 여긴 기자 관련 표현을 넘어 고려의 문물을 높이 평가하고 고려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면이 있다. 고려는 이러한 인식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천하동문을 이루고자 하였다. 고려의 해동천자가 다스리는 천하의 문명의식은 팔관회로 상징되었다. 하지만 동문과 소중화 관련 용례 분석을 통해 볼 때 원 및 명 중심 시대에 이르면서 고려 중심의 문명의식은 원 및 명에 대한 사대로 정리되어 갔다. 고려의 자기인식이라 할 고려 중심 문명의식의 형성은 팔관회에 반영된 해동천의 화이의식으로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불교나 유교, 도교 등의 삼교와 토속신앙, 하늘과 부처의 가호를 받는 용손으로서의 왕실혈통의식, 해동천자로서의 장엄과 해동천하질서를 반영하는 의식 등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송은 해동천하의 모습을 갖춘 고려에서 동문과 소중화라는 요소를 찾아 이를 인정하고자 하였다. 고려 역시도 이 같은 이해를 토대로 고려의 해동천하라는 문명의식을 구축할 수 있었다. 대체로 이 같은 시대 배경에는 다원적 국제질서라는 틀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원과 명이 국제질서를 지배하자 고려는 이들에 대해 형세론적 화이의식을 수용하였고, 고려를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동문이나 소중화 인식도 굴절되는 면이 나타났다. 고려 중심의 문명의식 혹은 그 상징이었던 팔관회도 이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고려는 원 중심의 천하동문을 인정한 데 이어 명이 들어서자 명에 대한 사대를 결정하면서 종족적 공간적 유교적 정통을 인정하고 용하변이적 화이의식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종속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이중적이지만 명과 주자성리학 중심의 용하변이를 추구한 것이 된다. 이는 고려왕실을 중심으로 한 유 불 도 및 토속신앙, 용손혈통의식 등이 반영된 통합의례이자 고려를 상징하는 팔관회에 반영된 해동천자가 다스리는 천하동문의 문명의식즉 해동천하 문명의식이 해체된 것을 뜻하였다. 고려가 왕실 및 국가를 중심으로 만들어간 문명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변화 내용은 화이질서를 인정하면서 고려왕조가 형성해 온 정체성 보다는 기자에서 연원하는 역사정통성을 찾아냄과 함께 왕실보다는 사대부가 보편적 성리학을 내면화하여 소중화적 동인의식을 새롭게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명나라가 들어선 이후 고려가 명 중심의 화이의식을 추구하게 된 것이 고려의 기존 문명의식 측면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명 중심의 화이의식 추구가 고려의 기존 문명의식에 미친 영향과 그 의미를 파악한다.

    • 명 중심의 화이의식 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의 해소를 뜻하는 것이었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명 중심 화이의식 수용의 구체적 양상과 그에 따른 변화를 추출한다.

    • 명에 대한 사대를 결정하면서 종족적 공간적 유교적 정통을 인정하고 용하변이적 화이의식을 추구하였다.
    • 이는 시대 상황에 따른 고려 중심의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의 변질이라 여겨진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기존 문명의식(해동천하)과 변화된 문명의식(명 중심)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근거를 선별한다.

    • 고려 중심의 문명의식 혹은 그 상징이었던 팔관회도 이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 해동천자가 다스리는 천하동문의 문명의식즉 해동천하 문명의식이 해체된 것을 뜻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명 중심의 화이의식 추구가 기존의 고려 중심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종속적인 성격으로 변화시켰음을 연결한다.

    • 그것은 종속적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 해동천하 문명의식이 해체된 것을 뜻하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명 중심의 화이의식 추구는 고려 중심의 해동천하 문명의식의 해체와 변질을 의미함을 도출한다.

    •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의 해소를 뜻하는 것이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문맥에 근거하여 명확하게 답변을 작성한다.

    •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의 해소
    • 해동천하 문명의식이 해체
    • 시대 상황에 따른 고려 중심의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의 변질
최종 답변 (final_answer)
명 중심의 화이의식을 추구하게 된 것은 기존의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이 해소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고려 중심의 해동천하 문명의식이 해체되고 시대 상황에 따라 고려 중심의 자기인식과 문명의식이 변질된 것을 뜻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명 중심의 화이의식 추구는 기존의 고려 중심 화이질서와 문명의식을 해소하고 해동천하 문명의식을 해체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