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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자동차 document_id A2206232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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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자동차 주식회사(도요타 지도샤 가부시키가이샤, Toyota Motor Corporation), 줄여서 '도요타' 혹은 '토요타'는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본사를 둔 일본 굴지의 자동차 제조 회사이다. 또한 이익순으로는 세계 제8위의 기업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자동차그룹과 사업이 비슷하다. 개요 일본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톱, 세계에서도 생산과 판매대수는 2012, 2013, 2014년 3년 연속 세계 1위인 자동차 메이커다. 2007년 1/4분기에는 제너럴 모터스의 총 판매대수를 앞질러, 사실상 톱의 자리를 매듭지었다. 경차를 생산하는 다이하츠공업, 트럭 및 상용차를 생산하는 히노자동차의 모기업이며, 스바루로 유명한 후지 중공업의 대주주이기도 하다(14년 12월 기준 보유지분 16%). 노조의 영향력이 강해, 노사화합과 정책수립 시 노조의 동의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통칭토요타(일본의 방송국에서는, 2005년 7월부터 토요타자동차의 호칭으로 사용), 영문표기는 TOYOTA이며, 사장은 도요다 아키오이다. 주력 최초공장은 아이치현 토요타시 모토마치공장과 쓰쓰미공장이며 1970년 160만대, 1980년 330만대 규모 능력을 갖추었다. 대규모 수출위한 다하라(전원)임해공장이 1979년 준공되었다. 큐슈공장등 일본내에 30여개 공장이 있다. 차부품 주력사로 도요타직기(Toyota industries), 덴소:일본 최대 차부품 다국적기업 12만명고용, 아이신 세이키(아이신 AW와 AI사), 칸토 자동차(센추리를 수공으로 생산하는 동후지 공장), 도요타 보쇼쿠, 이이치제강, 상사로 도요타쯔쇼 등이 있다. 또한 자동차 업계에서도 시가총액이 테슬라에 이어서 2위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도요타가 맞지만, 한국 법인의 상호를 한국토요타자동차로 등록하고 스스로 토요타라고 부르고 있다. 회사명은 고유명사이므로 외래어 표기법을 단순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토요타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한국법인은 '한국토요타자동차'라고 해야 하고 일본 본사는 '도요타 자동차 주식회사'라고 해야 한다. 아래에 언급된 내용은 본사인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 관한 정보이기 때문에 '도요타'라고 표기해야 한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 업체로는 최초로 V형 12기통 가솔린 엔진을 자체 개발했으며, 이 엔진은 렉서스가 아닌 센추리에만 장착되어 나온다. 배기량은 5리터다. 하지만 센추리가 3세대로 풀 모델 체인지하면서 LS600hL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교체하여 V12 엔진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역사 >> 기원 도요다 사키치(1867년 ~ 1930년)가 창업한 '토요타 자동 방직기 제작소'에, 1933년 9월에 설립한 자동차 부서가 기원이다. 부서 설립의 중심이 된 것은 사키치의 아들인 도요다 기이치로(1894년-1952년)이지만,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사키치의 사위인 도요다 리자부로였다. 방직기 제작에 있어서의 주조·기계 가공 기술등의 노하우를 살려, 연구 기간을 거쳐 1935년에 자동차 제조를 개시했다. 1937년에 독립한 신 회사 토요타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태평양 전쟁 때 육군용 트럭을 생산하였으나, 당시의 물자 부족으로 인해 간소화된 것이었다. 아이치현의 공장이 미군에 의해 폭격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그 전에 원자 폭탄 투하로 종전되었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글로벌 산업 항모로 변신 되었다. 그리고 토요타 자동차 노조는 일본이 보수화되면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을 탄압한 55년 체제 로 큰 타격을 받아, 결국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는 민주노조가 아닌, 자본가에 협력하는 어용노조가 되고 말았다. 현재 일본의 대다수 노조들은 제2의 노무관리부서라는 말을 들을만큼 어용노조들이며,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차별, 고용불안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2003년 이후 2003년 3월 말 집계에 따르면 종업원수 65,551명, 그룹합계 264,096명으로 일본 최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기업규모이다. 2005년에는 새로운 본사 건물이 완공되었고 그 해 10월 제너럴 모터스(GM)가 보유했던 후지중공업의 주식(약20%) 중 8.7%을 매수, 필두 주주가 되어 제휴 체결을 발표했다. 2008년 북미에서 대규모 리콜사건의 발단이 된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어 2009년 결함에 대한 은폐사실이 발각되었다. 2007년에는 나고야 역 앞의 토요타 빌딩, 마이니치 빌딩의 재건축으로 지어진 미드랜드 스퀘어에 나고야 오피스가 완성되어 본사의 일부, 도쿄 본사의 영업 부문이 이전되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에는 1960년대 한국의 신진 자동차(현 한국GM의 전신)와 합작으로, 코로나 세단의 조립 생산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나, 1970년에 반공 국가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총리 저우언라이의 4원칙이 발표된 후 중국 대륙의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철수를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철수한다. 당시 이 사건이 논란이 있었는데, 이미 신진 자동차와 합작 사업을 하기로 사업계획서까지 제출했던 일본 토요타가 외자 도입 수속만 남긴 상태에서 일방적인 철수를 선언한 것이다. 이와 함께, 토요타는 저우언라이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 신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회사, 어떤 기관과도 단교하겠다고 선언한다. 일개 회사가 국가를 상대로 단교를 선언하는 것은 토요타가 처음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대한민국의 수입선다변화 정책이 1990년대 말에 폐지되어 일본 생산 차량의 직접 공식 수입이 가능하게 되자, 토요타는 대한민국 법인인 한국토요타자동차를 설립한 후 렉서스 브랜드로 2001년에 다시 대한민국 시장에 진출한다. 윈덤을 조금 고친 중형급인 렉서스 ES로 강남 소비자 계층에 인기몰이를 하였지만, 동일 모델의 미국 시장 판매가보다 3배 이상 비싸게 파는, 한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차값 폭리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국세청과 관세청 등 세무당국은 차값 폭리로 렉서스를 판매해 온 한국토요타가 그동안 차 가격을 부풀려 막대한 폭리를 취했다는 혐의를 잡고 세무조사를 하기도 했다. 한국 토요타는 한국 시장에서 거둬들인 막대한 이익을 일본 본사에 매년 현금 배당을 통해 송금해 오고 있으며,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내 사회공헌이나 서비스 개선 등에 쓰지 않고 자국에 보내왔다는 점에서 글로벌 기업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었다. 예를 들어 법인 설립 이후 7년간 한국시장에서 벌어들인 순익은 465억원인 반면, 이 7년간 기부금액은 순이익의 단 1.7%에 그쳤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2008년 3월에 모범납세법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비판 >> 결함 은폐 사건 2009년 8월, 미국 샌디에고 부근 125번 도로에서 통제 불가능한 급가속 현상을 보이는 차량에서 911로 전화가 걸려왔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왔다. 우리는 렉서스 자동차에 타고 있어요... 125번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고 있는데 엑셀러레이터가 말을 안 들어요... 큰일 났어요... 브레이크가 안 먹어요... 교차로에 들어서고 있어요... 멈춰... 멈춰... 제발... 제발... 이 전화는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사고 차량은 교차로에서 한 SUV 차량과 충돌한 뒤 가드레일 밖으로 튀어나가 구르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이 차량에 탑승했던 4명은 모두 사망했다. 렉서스 ES350 차량에 타고 있던 일가족 4명이 급가속에 의한 사고로 모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후,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토요타 자동차의 품질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고 이전에도 토요타와 렉서스 차량의 급가속 문제가 현지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되었다. 이 사건 이전에도, 구글에서는 영어로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sudden unintended acceleration, SUA)이라고 입력하면 토요타/렉서스 모델이 추천 검색어에 뜨는등(검색 빈도가 많기 때문), 토요타 모델의 급가속 폭주 문제는, 렉서스 폭주 사고 이전에도, 인터넷에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 조안 클레이부룩 전(前) 도로교통안전청(NHTSA) 청장은 “바닥에 까는 플로어매트가 없는 토요타 차량에서도 급가속 사고가 났었다”며 “전자체계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국에서는 미국 판매 제품과 다르다는 이유로 리콜 조치는 하고 않았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PC업계의 중요한 공로자중의 하나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은 프리우스 최신 모델에 탑승증 여러번 스스로 급가속하는 것을 경험했다며, 이를 NHTSA측에 보고 했는데, NHTSA측은 이에 대해서 상세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그는 토요타의 결함은 전자 계통 S/W와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우스와 렉서스 모델은 100% 일본에서 생산하며 일본 부품을 사용하고 있으므로(프리우스 일부 수량은 중국에서도 생산되지만 중국 생산 프리우스는 중국외에는 판매되고 있지 않다), 비일본 회사 부품을 사용했다고 결함이 발생했다는 토요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뚜렷한 결함 원인은 찾지 못한 상태이며 현지 미국 언론에서는 전자 계통이나 차체 설계 결함에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 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결함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자 계통의 결함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여 진정한 결함 부분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고 있지 않다. 2009년 8월, 전직 토요타 미국 법인의 변호사였던 Dimitrios P. Biller는 토요타가 수백건의 전복 사망 사고 데이터를 불법적으로 파기하고 차량의 구조적 결함을 은폐했었다는 내부 고발을 했으며, 현재 이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는,“토요타는 매우 비밀스런 기업으로 내부사정을 알만한 어떤 외부인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 1월 토요타 자동차 미국 법인의 어브 밀러 환경담당 부사장이 가츠히코 고가네이 미 영업부 커뮤니케이션 조정관에게 "더이상 은폐를 그만두고 가속페달 결함 문제를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We need to come clean)"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2010년 4월 17일, 토요타자동차가 미국 교통당국에 '차량 결함 은폐'와 관련해 요구한 1천637만5천 달러의 과징금을 지불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은폐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 당시, 토요타의 이사회에는 총 29명의 이사가 있었다. 모두 수십 년 동안 토요타 안에서 승진해 그 자리에 앉은 일본인들이었다. 외국인·여성·사외(社外) 이사는 없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2009년부터 터져 나온 가속 페달 결함 문제에 대해 토요타가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회의실에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1년 2월 8일, 급 가속 문제의 원인 조사를 하고 있던 미 교통부 · 미 교통부 고속도로 교통 안전국 (NHTSA) · NASA에 의한 최종 보고서에서 도요타 자동차에 기계적인 결함은 있었지만 전자 제어 장치에 결함이 아닌 급발진 사고의 대부분이 운전자의 실수로 발표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토요타 자동차의 기원이 된 부서의 설립 시기와 해당 부서 설립의 중심 인물은 누구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토요타 자동차의 기원이 된 부서의 설립 연도와 설립의 중심이 된 인물을 찾는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역사 및 기원 섹션에서 부서 설립 시점과 인물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33년 9월에 설립한 자동차 부서가 기원이다.
    • 부서 설립의 중심이 된 것은 사키치의 아들인 도요다 기이치로(1894년-1952년)이지만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설립 연도(1933년 9월)와 중심 인물(도요다 기이치로)을 선별한다.

    • 1933년 9월에 설립한 자동차 부서가 기원이다.
    • 부서 설립의 중심이 된 것은 사키치의 아들인 도요다 기이치로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설립 시기와 인물을 결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33년 9월에 설립되었으며, 중심 인물은 도요다 기이치로임을 도출한다.

    • 1933년 9월에 설립한 자동차 부서가 기원이다.
    • 부서 설립의 중심이 된 것은 사키치의 아들인 도요다 기이치로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맞춰 설립 시기와 인물을 명확히 기술한다.

    • 1933년 9월
    • 도요다 기이치로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33년 9월에 설립되었으며, 설립의 중심이 된 인물은 도요다 기이치로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토요타 자동차의 기원이 된 자동차 부서는 1933년 9월에 설립되었으며 도요다 기이치로가 설립의 중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