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통영시(統營市)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남해안에 있는 시이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선조 37년(1604년) 두룡포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긴 것에서 유래한다.
고성반도(固城半島)의 남부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총 길이는 617km다. 570개의 섬(그 중 44개는 유인도, 526개는 무인도)이 있으며,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청은 무전동에 있고, 1읍 6면 8동으로 행정구역이 구성된다.
역사
한반도에 바다가 전혀 없었던 시대인 구석기 시대에 통영 지역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삼한 시대 이전에는 진국에, 삼한 시대에는 현재의 고성에 위치하였고 변한에 속한 ‘고자미동국’이었고, 그 후 가야시대에는 육가야 중 소가야에 속하였다가 신라로 흡수되었다.
남북국 시대 경덕왕 때 고자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되었다. 신라 경덕왕 757년에는 강주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 9년에는 거제현으로 속하였다가 고려 말기인 충렬왕 때 남해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다시 복귀하였다.
조선 선조 37년 1604년 삼도수군통제영을 거제현 두룡포로 옮겨와 설치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이 고장으로 옮겨온 이후 군사도시로서 발전하게 되었는데, 삼남의 세곡을 나르던 조운선과 화물선의 출입이 빈번하여 남해안 해운의 중심지가 되었다. 숙종 3년 1677년 두룡포가 고성현에 이속되어 춘원면으로 개칭되었다. 1895년 고종 32년에는 통제영이 폐지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군하여 통영군을 설치하였다. 춘원면이 통영면으로 개칭되었다.
한국 전쟁 때는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었다. 1955년 9월 1일 통영읍을 충무시(忠武市)로 이름을 바꾸어 승격하였다. (7면) 40년 후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2002년부터 1995년 11월 3일 타계한 음악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통영에서 매년 통영 국제 음악제가 개최되면서 통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2005년 12월 14일에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개통함에 따라, 서울에서 4시간 정도면 통영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4월 18일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통영 케이블카 준공식과 개통식을 진행하였다. 2010년 12월 13일 거가대교 개통으로 부산 인근 지역과 연결되면서, 2011년 6월 9일에 하루 입장객수 10,209명을 최초로 돌파하면서 지역경제의 도움을 주었다.
2015년 12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에 선정되어 지역브랜드를 한 층 더 발전시켰다.
지리
경상남도 남단의 고성 반도 남부와 남해의 한산도(이순신으로 유명함)·욕지도 등 대소의 많은 섬(192개)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41개가 유인도이다. 반도에는 벽방산을 주봉으로 하여 사방으로 구릉이 기복하고 있다. 동쪽은 거제시, 서쪽은 남해군, 북쪽은 고성군과 접하며, 남쪽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같은 위도상에 있는 세계의 중 도시는 일본의 오사카, 중국의 카이펑,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등이다.
미륵산
미륵산은 미륵도 중앙에 해발 458.4m로 우뚝 솟은 위풍 당당한 산이며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미륵산을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대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미륵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수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굴이 있으며 고찰과 약수,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빼어나 명산으로서의 덕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산정에 오르면 한려해상의 다도해 조망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 미륵산 자락에는 고찰 용화사와 산내암자 관음암, 도솔암이 있고 효봉문중(曉峰門中)의 발상지 미래사(彌來寺)가 있다. 남쪽 기슭에 있는 미래사는 석두·효봉 두 큰 스님의 안거를 위해 지은 것이고, 북쪽 기슭에 있는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조선 영조 때 벽담선사가 재건하였다.
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통영관광공사의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 카를 타고 누구나 쉽게 조망할 수 있다.
해상국립공원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핵심이 되는 지역으로 바다를 횡단하는 통영대교의 야경이 아름답다. 이순신 동상이 서있는 남망산에서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해군 총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사 본영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임진왜란 관련 유적이 많다.
주요 섬들 >> 기후
연중 동한난류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이다. 세계 최대의 난류 중의 하나인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가 통영해역을 지나 동해로 북상하는데, 이 난류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 기온이 14°C 내외이다. 1월의 평균기온은 3.1°C이고, 가장 더운 8월의 평균기온은 26.1°C로,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 역시 매우 적은 곳이다. 기록된 최고기온은 38.2°C (1940년 8월), 최저기온은 -12.2°C (1923년 1월)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450.8mm이며, 또한 위치상 태풍 피해가 가장 잦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행정 구역
통영의 행정구역은 1읍 6면 8동이다. 그 아래 17법정동, 50법정리, 167통이 있다. 2013년 4월말 기준 인구는 57,688세대, 139,306명이다. 면적은 239.22 km^{2}이다.
경제
농수산업이 주업이며 전국 유수의 수산군(水産郡)이다. 좋은 어장도 있고 기후가 온난하여 연중 어로 작업이 가능하므로 어획고가 많고 김·굴의 양식과 통조림·우무 등의 제조도 성하다. 특히 군내 해역은 수하식 굴 양식장으로 덮여 있고, 전국 제일의 굴 생산지가 되고 있다. 공업으로는 수산물 가공업과 소규모 조선 공업이 행해지며, 기타 조선·피혁·전분 등 공업도 성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전칠기(자개)는 특산물이다. 다이아스포어(diaspore)의 매장이 많고 품질이 좋아 알루미늄·도자기 기타 내화물(耐火物) 제조에 유망하다.
통영시는 평야가 없고, 해안선을 따라 반농반어의 촌락이 형성되었는데, 그나마 비탈진 언덕에 밭농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에 수온이 적당하고 동해 난류가 흘러 수산업의 보고라고 할 수 있어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하였다.
농업
경지 면적이 협소하며 밭이 훨씬 많고, 주요 농산물은 주곡 외에 따뜻한 기후로 인해 감귤류·바나나·파인애플 등을 비닐하우스 재배한다.
수산업
넓은 대륙붕이 발달하여 각종 난류성 어족이 많고, 연안에는 조개류·굴·진주·해조류의 양식에 적합, 이 방면에 주력하고 있다. 인평·평림·미수·도남·정량·북신동 등 여러 해안에서는 진주조개·홍합·굴·고막 등 패류의 양식이 성하다. 양식 방법도 자연 채취에서 투석식·송지식으로 발전했는데, 최근에는 다시 수하식으로 개량하여 송지식에 비해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이 패류는 주요 수출품으로 각광을 받아 증가하고 있다. 연안 어업은 물론 원양 어업의 기지로 발달하여 멸치·고등어·전갱이·갈치·가자미·참조기·복어·전어·도미·숭어 등의 어획이 많다.
광공업
지하 자원으로는 고령토 생산이 있고 제조업으로는 농수산 가공업이 성하다. 특히 통조림·소건품(素乾品)·자건품(煮乾品)·염신품(鹽辛品)·냉동품·해초 제품 기타 식용품·비식용품 등 수산 제조업이 자못 성하다. 또한 어망·어선 건조·양조·전분 등 공업과 특히 나전칠기는 명산물이고 어망 공업은 전국에서 가장 성하며 그 제품은 국내 수요를 채우고 수출도 한다. 성동조선해양, 신아에스비, SPP조선, 삼호조선, 21세기조선 등 중소형조선회사의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다.
서비스업
금호마리나리조트, 충무관광호텔, 라베르관광호텔, 통영 호텔 갤러리, 통영베이(Bay) [이상, 도남동 소재], 한산콘도호텔[항남동], 이에스(ES)리조트[산양읍]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문화
통영시는 많은 문화인들을 배출 하였다. 특히 2002년부터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매년 통영 국제 음악제를 개최되고 있다.
미술
전혁림(1916년 1월 21일 ~ 2010년 5월 25일)은 유치진,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와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해 문예 활동을 했고 "가장 통영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개념을 작품에 투영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통영의 문화와 예술을 실천해왔다. 전혁림미술관은 전혁림 화백의 개인 미술관이다. 그의 작품을 도자기 타일에 옮겨 외벽을 장식한 미술관 1층은 그의 작업 현장이자 신작 전시실이며 2층은 1950~70년대 작품, 3층은 근현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시인 김춘수, 백석, 유치환, 작가 박경리 등등 당대 최고의 문화인들의 고장이었던 통영.
아쉽게도 통영에는 유일한 지역 서점인 통영 강남서점 (1985년 영업개시)만이 그 작가들의 명맥을 이어가고있다. 이문당 서점이 있었으나 문을 닫고 유일하게 통영을 지키고 있다.
관광
통영은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이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해변, 섬과 다양한 역사적인 유적지가 있다.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등이 통영 출신이며, 이들과 관련된 문화 컨텐츠도 다양하다.
2014년 535만명, 2017년 735만명, 2018년에는 628만명이 통영을 방문했다.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내권 >> 동피랑 마을 >> 남망산공원
경남 통영시 동호동에 있는 공원으로 충무공원이라고도 불리는데, 편안한 쉼터와 아름다운 자연, 통영의 명물인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숨쉬고 있다.
통영시민의 쉼터이자 문화공간인 남망산 공원은 해발 72m에 불과한 작은 동산이지만 문화 체육 휴게시설을 갖추어 놓은 통영시민이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공원이다. 이 공원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쉼터 열무정과 수향정(2층8각정자)이 있으며 이충무공동상, 이충무공의 한산대첩비가 광장에 있다. 또한 통영 시민문화회관과 오광대 놀이마당, 청마 유치환 시비, 초청 김사옥 시비가 있어 쉼터 뿐 아니라 문화까지 즐길수 있는 공간이다. 그중 남망산 조각공원은 1997년 10월에 개장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10개국 15명의 현대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많은 현대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 벚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높이 80 m의 남망산을 중심으로 전개된 공원으로 남동쪽으로 거북등대와 한산도(閑山島) ·해갑도(解甲島) ·죽도(竹島) 등의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순신공원 >> 중앙시장 >> 세병관 >> 충렬사 >> 해저터널
해저터널(Undersea Tunnel)은 통영반도의 미수2동 과 미륵도의 당동을 잇는 해저 터널이자 동양 최초의 해저 터널이다. 통영 운하 바닥 밑을 가로지르는 터널이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만든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너비 5m, 높이 3.5m이다. 양쪽 바다를 막아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터널 입구에 쓰여 있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 이란 뜻이다. 사람과 차량이 통행할 수 있어 한동안 충무, 통영 지방의 명물로 여겨졌으나 오래된 데다가 낡은 공법으로 만들어 최근에는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의 이유로 차량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축제
:통영 국제음악제는 매년 3월에 개최되며,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국제 음악제 중 하나이다. 1999년에 ‘윤이상 음악의 밤’과 2000년, 2001년 통영현대음악제로 출발한 음악회는 작곡가와 학자들로 구성된 젊은 지식인들과 통영시의 노력으로 2002년 제1회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며 대규모 음악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통영시, 창원MBC, 월간 객석 등이 주최하고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주관한다.
교육
도서지역이 많아 분교가 많았지만, 1991년 이후 학생 수의 감소로 인해 꾸준히 폐교가 이루어져, 2010년 한산초등학교 하소분교장까지 총 20개의 분교가 폐교되어 대부나 야영장, 수련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통영시의 명칭이 충무시에서 현재의 통영시로 바뀌게 된 과정과 시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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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충무시가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이 변경된 역사적 과정과 구체적인 시점을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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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충무시의 승격 시점과 통영시로의 재통합 시점을 추출한다.
- 1955년 9월 1일 통영읍을 충무시(忠武市)로 이름을 바꾸어 승격하였다.
-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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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명칭 변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재통합 사건과 날짜를 선별한다.
-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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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1955년 충무시 승격 이후,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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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1995년 1월 1일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면서 현재의 통영시가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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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요구된 과정과 시점을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을 바꾸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55년 9월 1일에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었으나, 이후 1995년 1월 1일에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면서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55년 9월 1일에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었으나, 이후 1995년 1월 1일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면서 현재의 통영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