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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구 document_id A2206232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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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_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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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진해구(鎭海區)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의 동남부에 있는 구이다. 동쪽은 부산광역시 강서구와 북쪽은 성산구 · 김해시와 접하고, 서쪽은 마산만을 사이에 두고 마산합포구와 마주하며, 남쪽은 진해만을 사이에 두고 거제시와 마주한다. 한국 전쟁 당시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기지로 자리잡았다. 진해항은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母港)이고, 해군사관학교와 여러 사령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군항도시와 벚꽃축제로 유명하다. 해군에 입대한 지원병들이 훈련을 받는 해군교육사령부도 진해에 있다. 진해에서는 도심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생활권이 같은 창원시와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으며, 2010년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따라 같은 해 7월 1일에 창원시·마산시와 통합하여 창원시 진해구로 개편되었다. 진해구는 옛 진해시청 청사를 그대로 구청으로 쓰고 있다. 2014년 10월 30일 진해구 중앙동 군항마을이 국가기록원의 7번째 기록사랑마을으로 지정되었다. <heading>지리 </heading> 경상남도의 동부 해안 남단에 위치하며, 진해 도심의 남쪽에는 진해만이 있다. 육지의 3면(동·서·북)은 장복산(長福山, 582m), 불모산(佛母山, 801m) 등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의 남쪽에 면한 바다는 남쪽으로 거제도, 동쪽으로 가덕도, 서쪽으로 구산면과 고성반도에 의해 외해(外海)와 차단된 만(灣)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灣)의 안쪽은 넓고 수심이 깊지만 풍파가 잔잔해 양항만(良港灣)을 이루어서 대한민국 해군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해 있다. <heading>역사 >> 진해의 명칭 유래 </heading> 진해(鎭海)란 이름은 삼진(三鎭) 지역에 있었던 진해군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의 진해는 본래 웅천군이었는데, 이 지역은 1912년에 웅중면 전부와 웅서면의 일부가 합쳐져 진해면(鎭海面)으로 개편되면서부터 진해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은 한국을 병탄한 직후 이 지역에 해군 군항을 만들고 '바다를 제압한다'는 의미로 '진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본래의 진해군 지역(진동면·진북면·진전면)은 해군항이 있는 진해와 구분하기 위하여 편의상 '삼진(三鎭) 지역'으로 불리고 있다. <heading>행정 구역 </heading> 진해구의 행정구역은 13동 285통 2,079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해구의 면적은 123.67 km²이며, 인구는 2020년 12월 31일 주민등록 기준으로 19만2755 명, 8만1838 가구이다. <heading>관광 </heading>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는 1910년에 군항시설공사를 시작한 이래 해군의 본거지가 되었고, 각종 시설은 관광대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어, 특히 4월에 열리는 군항제는 훌륭한 관광행사가 되고 있다. 시가 중심부에는 제황산공원 등이 있으며, 앞바다의 가덕도에는 대한민국 굴지의 등대가 있다. 주로 봄 · 가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며 등대에서는 일본의 쓰시마섬이 보인다. 충무동 일대에는 진해루와 해안도로(진회로)가 있어 바다 풍경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명동에 진해해양공원이 있고, 여기에 창원솔라타워라는 탑이 있다. 또 장복산계곡에는 양어장이 있고 그 밖에 충무공 동상 · 천자봉 · 성흥사 대웅전 · 웅천현성 · 구산성지 · 안골포굴강 · 도요지 ·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 및 정자 등이 유명하다. 이 행사 기간에는 진해구 시가지에 차량이 혼잡하고 진해구 방향으로 가는 버스승객이 매우 혼잡해 지고 관광버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안민드림로드 같은 도로는 통제된다. <heading>교통 </heading> 간선도로는 인근의 부산 · 진주 · 대구 방면으로 뻗어 있으며 김해국제공항과도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다만, 예전엔 고속버스터미널이 없어서 고속버스를 이용하려면 의창구에 위치한 창원종합버스터미널이나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마산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하여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때문에 2009년 3월 25일부터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도 서울남부버스터미널을 오가는 고속버스가 정차한다. 하지만 2015년 4월에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오가는 노선이 인원 감소로 폐지되었다. 2015년 10월 30일부터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김해여객터미널을 오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신설되었다. 진해시외버스터미널에도 이제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다. [https://web.archive.org/web/20200510230143/https://kobus.co.kr/]:코버스 사이트 진해->동대구·서대구, 동서울 까지도 선산휴게소도 경유함. 철도는 창원을 잇는 진해선이 도심 북부를 통과하나, 여객 취급을 하지 않는다. 군항제 기간에만 진해역에서 여객을 취급하며, 진해구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의창구의 창원중앙역이다. 2006년 11월에 대구와 진해를 오가는 KTX 환승 목적의 새마을호 열차가 신설되었으나 2012년 11월 1일 폐지되었고, 이후 마산-진해 무궁화호가 신설되었으나 이마저도 수요 감소로 2015년 2월 1일 폐지되었다. <heading>철도 >> 버스 >> 고속/시외버스 >> 시내버스 >> 공영버스 </heading> 공영버스는 진해구에서만 운행하며 교통이 불편한 웅천동, 웅동 일대를 운행한다. 350번은 웅천동 일대를 운행하고 351, 352번은 웅동 일대를 운행한다. 351번의 지선인 351-1번은 웅동중학교를 경유하여 운행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진해구가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기지로 자리 잡게 된 지리적 요인과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진해구가 해군 중심기지가 된 이유를 지리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으로 나누어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지리적 요인으로 만(灣)의 특성을, 역사적 요인으로 한국 전쟁 당시의 사용 이력을 추출한다.

    • 만(灣)의 안쪽은 넓고 수심이 깊지만 풍파가 잔잔해 양항만(良港灣)을 이루어서 대한민국 해군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 한국 전쟁 당시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기지로 자리잡았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지리적 근거인 양항만의 특성과 역사적 근거인 한국 전쟁 시기 기지 사용 내용을 선별한다.

    • 만(灣)의 안쪽은 넓고 수심이 깊지만 풍파가 잔잔해 양항만(良港灣)을 이루어서
    • 한국 전쟁 당시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지리적 이점(양항만)이 해군 근거지로서의 조건을 갖추게 했고, 한국 전쟁을 거치며 실제 중심기지로 기능하게 되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지리적으로는 풍파가 잔잔하고 수심이 깊은 양항만이라는 점, 역사적으로는 한국 전쟁 당시 해군기지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결론으로 도출한다.

    • 만(灣)의 안쪽은 넓고 수심이 깊지만 풍파가 잔잔해 양항만(良港灣)을 이루어서 대한민국 해군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 한국 전쟁 당시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기지로 자리잡았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요구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만(灣)의 안쪽은 넓고 수심이 깊지만 풍파가 잔잔해 양항만(良港灣)을 이루어서
    • 한국 전쟁 당시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최종 답변 (final_answer)
지리적으로는 만(灣)의 안쪽이 넓고 수심이 깊으면서도 풍파가 잔잔한 양항만(良港灣)을 이루고 있다는 점과, 역사적으로는 한국 전쟁 당시인 1950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진해구는 지리적으로 풍파가 잔잔한 양항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한국 전쟁 당시 1950 년부터 한국군과 UN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되면서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기지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