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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 document_id A22062320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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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데 리마(ʁoˈnawðu ˈlwiʒ nɐˈzaɾju dʒ ˈɫĩmɐ, 1976년 9월 18일, 히우 지 자네이루 ~)는 흔히 호나우두(Ronaldo)로 알려진 은퇴한 브라질의 프로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공격수로 활약했다. 현재 레알 바야돌리드의 구단주이다. 흔히 '"경이로운 자"' (O Fenômeno) 라는 별칭으로 수식되는 그는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90년대, 그의 기량이 물에 올랐을 적에는 빠른 속도로 공을 몰 수 있었고, 기교와 깔끔한 마무리에 능했다. 호나우두는 신체적으로 물이 올랐던 1990년대에 크루제이루, PSV, 바르셀로나,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 등의 1류 구단들을 거쳤다. 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오고가며 디에고 마라도나가 세운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21살이 되기 전에 두 번 깼다. 23세가 되었을 때, 그는 구단과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활약하며 200번 넘게 골망을 갈랐다. 무릎 중상과 재활로 거의 3년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호나우두는 2002년에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했고, 이후 밀란과 코린치앙스에 잠시 머물렀다. 호나우두는 1996년, 1997년, 2002년에 세 차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1997년과 2002년에 발롱도르도 두 차례 받았으며, 1998년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그는 1997년에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에 라 리가에서 34골을 기록해 유러피언 골든슈를 받았고, 1998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2004년, 그는 펠레의 선정에 따라 세계 최고 축구인의 목록인 FIFA 100에 이름이 올랐고, 브라질 축구 박물관 명예의 전당과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남겼다. 호나우두는 브라질 국가대표로 98경기에 출전해 62골을 넣어 펠레에 이어 자국 대표팀 최다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호나우두는 17세의 나이에 199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을 거둔 선수단의 최연소 선수였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전 대패 몇 시간 전에 발작으로 앓았지만 브라질을 결승전까지 올린 공로로 골든 볼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2002년 대회에 또다시 FIFA 월드컵 정상에 올랐는데, 그는 호나우지뉴와 히바우두와 함께 최전방의 3인방으로 나란히 섰다. 호나우두는 결승전에서 2골을 기록해 대회 득점왕으로 골든 슈를 받았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15번째 FIFA 월드컵 골을 기록해 당시 통산 최다 FIFA 월드컵 골 기록을 세웠다. 또 다시 몇 차례 부상을 당한 호나우두는 2011년에 프로 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그는 2000년에 임명되었던 지위인 유엔 개발 계획 친선 홍보대사로 계속 근무했다. 그는 2014년 FIFA 월드컵 홍보 대사로도 역임했다. 클럽 경력 >> 1993–1994: 크루제이루 호나우두는 크루제이루에서 47경기에서 활약하며 44골을 넣었고, 1993년에 사상 첫 코파 두 브라지우 우승과 1994년 미나스 제라이스 주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크루제이루에 합류하기 전, 그는 유년 시절에 추종하던 플라멩구로부터 입단을 거절당했지만,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전설 자이르지뉴가 호나우두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가 크루제이루로 둥지를 옮길 수 있게 도왔다. 1994–1996: PSV 호나우두는 1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에 들었으나 출전하지 않은 1994년 FIFA 월드컵 이후 PSV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호나우두가 PSV에서 유럽 무대를 시작할 것을 권유한 사람은 호마리우였다. 호마리우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이 구단의 공격수로 활약했다. 호나우두는 네덜란드에서 치른 첫 시즌에 리그 30골을 올렸다. 그의 2년차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하는 것에 그쳤지만, 리그에서 1경기당 거의 1골에 육박하는 기록을 냈는데, 13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다. PSV 소속으로 호나우두는 1995-96 시즌 KNVB컵을 차지했고, 1994-95 시즌 에레디비시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2년을 보내며 58경기에서 54골을 넣었다. 1996–1997: 바르셀로나 PSV에서 활약하던 호나우두는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바르셀로나 두 구단의 주목을 한 번에 받았다. 결국 바르셀로나가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19.5M에 그를 영입하기로 합의하며 유치전의 승자가 되었다. 호나우두는 바르셀로나 시절에 기량이 정점에 올랐고, 그가 기록한 47골 중 대부분은 공을 차넣어 골망을 흔들기 전에 골키퍼 주변을 뺑 돌았다. 호나우두는 라치오와의 1998 UEFA컵 결승전에서 전매특허의 골을 넣었다. 수비 사이를 질주한 그는 라치오 수문장 루카 마르케잔니와 1대1로 마주쳤고, 호나우두는 기교로 우측으로 들어가려다 왼쪽으로 공에 발을 대지 않고 바꾸어 마르케잔니를 뒤에 둔 뒤, 다시 오른쪽으로 이동에 골망을 갈랐다. 1998년 FIFA 월드컵 후, 호나우두는 지네딘 지단에 이어 FIFA 올해의 선수 2위를 차지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널리 평을 들었다. 1998-99 시즌 말,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두 시즌을 보낸 후, 밀란 수비수 파올로 말디니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처음 두 시즌의 호나우두는 경이로웠습니다."라며, 호나우두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자신이 상대한 최강의 상대 두 명으로 보았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호나우두와 이탈리아의 두 거물 로베르토 바조와 크리스티안 비에리를 공격진으로 꾸려 기대 높게 시즌을 준비했다. 그러나, 1999년 11월 21일, 레체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호나우두는 무릎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어 경기장 밖으로 절룩거리며 나가야 했다. 2000년 4월 12일, 라치오와의 코파 이탈리아 결승 1차전에서 첫 복귀전을 치렀는데, 7분만에 또다시 무릎 부상을 당했다. 호나우두는 부상 재발로 2000-01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은 외에도 그 바로 다음 시즌도 부상으로 많이 날려버렸다. 호나우두의 부재중에 하비에르 사네티가 주장직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결국 주장 완장은 2001년 말에 공식적으로 사네티의 것이 되었다. 두 차례의 수술과 수 달 간의 재활 후, 호나우두는 2002년 FIFA 월드컵에 복귀해 자국의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을 견인했다. 2002년 말, 그는 개인 통산 3번째로 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는 2002년 10월까지 부상으로 빠졌지만,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를 신고식을 치른 경기에 두 골을 기록했다. 그는 그 경기에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시즌 최종전에도 호나우두는 리그 23호골로 2002-03 시즌 라 리가 우승을 확정짓고 같은 대접를 받았다. 호나우두는 80분에 경기장을 나가면서 양측 지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UEFA 챔피언스리그는 8강에서 떨어졌고, 리그에서는 우승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었다. 호나우두는 구단 역사상 최단시간 골을 기록했는데, 그는 2003년 12월 3일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안방 경기에서 15초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마드리드는 발렌시아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었으나, 그는 25골로 라 리가 득점왕에 올라 개인 통산 2번째 피치치를 획득했다. 2013년 4월, '마르카'지는 호나우두를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11인"에 그를 포함했다. 2007–2008: 밀란 2007년 1월 18일, 호나우두는 €8.05M에 밀란으로 이적하는데 합의를 본 것으로 확인되었다.호나우두는 레알 마드리드의 기존 계약 잔여 기간에 위약금을 물기로 했는데, 이는 마드리드 측이 이적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밀란은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여지가 없었다. 1월 25일, 호나우두는 마드리드에서 밀라노로 날아가 밀란이 로마와 컵대회를 치르는 것을 관전했다. 구단 성명문에 따르면 호나우두가 밀라넬로 훈련 단지에서 구단 의료진들의 감수 하에 받은 의료 검진을 통과하고 1월 30일에 이적을 마무리짓고 등번호 99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7년 2월 11일, 그는 2-1로 이긴 리보르노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해 첫 경기를 치렀다. 호나우두는 이어지는 시에나와의 다음 경기에서 밀란 이적 후 첫 선발 출전을 해 2골을 집어넣고 3번째 골을 도왔고, 4-3 승리를 견인했다. 호나우두는 1년차에 14경기에 출전해 7골을 기록했다. 비록 이전에도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호나우두는 현역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비록 밀란이 2006-07 시즌에 대회를 우승했지만, 호나우두는 마드리드에 대회 귀속이 되어 출전 자격이 없었다. 그가 이 대회 우승에 가장 접근했을 때는 2002-03 시즌으로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준결승행에 일조했으나, 유벤투스에 패해 떨어졌다. 2008년 2월 13일, 호나우두는 1-1로 비긴 리보르노 전에서 뛰어올라 공을 받으려다 시즌 말까지 출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릎 중상을 당했고, 들것에 실려나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구단은 경기 후 호나우두가 왼쪽 무릎의 슬개골 인대가 파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이 부상을 현역에만 세 번 당했는데, 그는 1999년과 2000년에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었다. 그는 계약이 만료되면서 재계약을 하지 않아 시즌 종료 후 밀란에서 방출되었다. 그가 플라멩구를 거르고 코린치앙스 입단을 선택한 일은 브라질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호나우두가 공개적으로 플라멩구 지지자임을 선언하고 구단 편에 서기로 약속했었던 데에 있었다. 2009년 3월 4일, 호나우두는 주셀리누 쿠비체크에서 열린 이툼비아라와의 코파 두 브라지우 경기에서 첫 경치를 치렀는데, 그는 조르지 엔히키와 교체되어 경기에 들어갔다. 2009년 3월 8일, 호나우두는 파우메이라스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경기에서 코린치앙스 1호골을 기록했다. 그는 14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어 코린치앙스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호나우두는 인테르나시오나우를 4-2로 이기고 코린치앙스가 코파 두 브라지우 통산 3회 우승 (개인 통산 2회) 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에 따라 소속 구단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010 진출권을 얻었다. 9월 20일, 그는 고이아스전에 복귀했다. 2009년 9월 27일, 그는 1-1로 비긴 상파울루전에서 코린치앙스의 골을 기록했다. 그는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이 A 2009에서 20경기에 나가 12골을 넣었다. 2010년 2월, 호나우두는 코린치앙스와 연장 계약을 체결해 2011년 말까지 구단의 소속으로 남게 되었고, 후에 이 곳에서 은퇴했다. 국가대표팀 경력 호나우두는 1994년에 헤시피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의 브라질 대표팀 일원으로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17세의 나이로 미국에 열린 199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출전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호나우지뉴 (포르투갈어로 "소 호나우두") 라는 별칭으로 수식되었는데, 그보다 연장자인 호나우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호나우두 호드리게스 지 제수스가 대회에 참여한 데에 있었고, 훗날 그는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와 구분하기 위해 호나우당 ("대 호나우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다른 브라질 선수 호나우두 지 아시스 모헤이라는 호나우지뉴로 알려진 선수로, 1999년에 브라질 성인 국가대표팀에 합류할 당시 호나우지뉴 가우슈로 수식되었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 호나우두는 '호나우지뉴'라는 명칭으로 참가했는데, 그보다 2살 위의 중앙 수비수 호나우두 구이아루가 당시 선수단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을 대표로 참가했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7년과 1999년에 같은 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9년 대회는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1997년 대회를 득점 2위로 마무리했고,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1997년에 치른 투르누아 드 프랑스에 참가해 골도 기록했는데, 브라질은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호나우두는 호마리우와 나란히 출전해, '호-호' 공격진을 이루었고,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4골로 득점 3위를 기록해 브라질이 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게 도왔고,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결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98년 FIFA 월드컵 호나우두는 언론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수식되어 주목의 대상이 된 가운데 199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처음에 호나우두는 경기 시작 72분을 앞두고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선수단 서류 (당시 경기 서류에는 에드문두가 대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가 FIFA 대표에 그대로 제출되었었다. 호나우두 없는 선발 명단이 공개되자 세계 언론이 충격에 빠졌으나, 경기 시작을 바로 앞두고, 그가 몸상태가 양호해지고 출전을 요구하자, 마리우 자갈루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은 호나우두를 다시 선발로 배치했다. 호나우두는 결승전을 회자하며: "우리는 월드컵을 놓쳤지만, 저는 또다른 컵을 땄습니다. - 제 인생입니다." 라고 회고했다. 결승전에서 몇 시간 전에 발작을 앓아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호나우두는 자국의 결승행을 견인해 대회 최우수 선수로 골든 볼을 받았고, 4골을 기록해 6골을 넣은 크로아티아의 다보르 슈케르와 5골을 넣은 아르헨티나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 이어 득점 공동 4위를 기록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서, 호나우두는 2000년 4월에 오른쪽 무릎의 십자 인대 부상을 당하고서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브라질의 예선 일정을 통째로 날려버렸고, 당시 선수단 또한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놀랍게도 현역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상으로부터 복귀한 후, 호나우두는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8골을 기록해 골든 슈를 차지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 2위로 실버 볼도 차지했다. "3R"로 수식된 공격진은, 호나우두가 선봉에 서고 히바우두와 호나우지뉴가 3각 편대를 이루었는데, 삼인방 모두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호나우두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을 제외하고 브라질이 마주친 모든 상대국으로부터 득점을 뽑아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벌어진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는 2골을 추가해 펠레가 세운 브라질의 FIFA 월드컵 통산 최다골인 12골을 기록했다. 호나우두는 FIFA 월드컵 우승 메달을 목에 걸면서 펠레의 환영을 받았다. 호나우두의 무릎 수술 집도의인 프랑스의 외과의 제라르 세양은 관중들 사이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이는 체육인이 아니여도 열심히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증명해 부상자들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도왔습니다. 이는 매우 만족스러운 일로 저는 매우 감명받았습니다"라며 표의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2004년 6월 2일, 호나우두는 숙적 아르헨티나와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페널티킥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해 브라질의 승리를 이끌었다. 호나우두는 브라질의 본선행 과정에서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최다 득점자였고, 그는 자국을 1위로 본선에 올렸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 그리고 카카와 함께 대중에 널리 알려진 "마방진"을 구축했다. 거물들이 즐비한 브라질 대표팀은 아름다운 경기의 도사들로 수식되었고, 나이키가 방영한 "아름다운 경기" 광고가 대회 전에 방송을 탔다. 비록 브라질은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리그 처음 두 경기에서 모두 이겼는데, 호나우두는 과체중이고 느리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야유를 받았지만,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은 그를 계속해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과의 3차전에서 2골을 추가한 호나우두는 세 번의 FIFA 월드컵에서 득점에 성공한 20번째 선수로 등재되었고, 14골로 게르트 뮐러의 FIFA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 기록에 동률을 이루었고, (호나우두는 1998년 프랑스 대회, 2002년 대한민국/일본 대회, 그리고 2006년 독일 대회에서 득점을 올렸다.) 이어지는 가나와의 16강전에서 뮐러의 기록을 FIFA 월드컵 통산 15호골로 깼다. 자신의 대회 3호골로, 호나우두는 위르겐 클린스만에 이어 3번의 FIFA 월드컵에서 최소 3골에 성공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티에리 앙리에게 결승골을 헌납해 0-1로 패했다. 호나우두는 FIFA 월드컵 최다 득점 3위를 기록해 브론즈 슈의 주인이 되었다. 호나우두는 3번의 FIFA 월드컵 본선에서 최소 3골을 기록해 이 부문의 기록에서 동률을 이루고 있는데, 그의 기록은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2002년과 2006년 대회에서 각각 5골씩 넣고 2010년 대회에서 4골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호나우두는 19번의 FIFA 월드컵 경기에서 15골을 넣는 것으로 마쳤는데, 이는 경기당 0.79골에 달하는 기록이다. 간간한 출장과 고별전 2011년 2월, 호나우두는 2011년 6월 7일, 상파울루에서 루마니아를 상대로 한 상파울루에서 벌어질 친선전에서 브라질 국가대표 고별전을 치를 것으로 발표했고, 이는 그가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기를 치른지 5년이 되는 때였다. 비록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선수 개인을 위한 고별전을 치르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드문 경우지만, 브라질 축구 협회 측은 호나우두의 특출한 현역 경력을 감안해 브라질에서 국가를 대표로 하여 은퇴전을 펼치는 것이 그에 걸맞은 일이라는 공식 성명문을 냈다. 호나우두는 프레드의 결승골로 브라질이 이긴 이 경기에서 15분을 출전했다. 프레드는 득점 후 동료들과 호나우두의 전매특허 '손가락 흔들기' 자축을 했다. 호나우두는 30분 후, 신예 공격수 네이마르와 공격을 맡았고, 유효슛을 세 번 쏘았으나, 루마니아의 치프리안 터터루샤누 골키퍼가 막았다. 호나우두는 브라질 국가대표로 98경기에 출전해 62골을 기록하여 펠레에 이어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했다. 2011년 12월 13일, 호나우두와 지네딘 지단은 자신의 전 현직 동료들과 독일의 함부르크와 제9회 빈곤 퇴치 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경기는 호나우두와 지단이 2003년부터 연례 행사로 주최하는 경기이다. 2012년 12월, 호나우두와 지단은 포르투갈의 포르투 알레그르에서 프랑스와 브라질의 FIFA 월드컵 우승 주역들과 빈곤 퇴치 경기를 치렀고, 1982년 FIFA 월드컵의 전설 지쿠가 호나우두 편을 이겼다. 2013년 1월, 호나우두는 브라질에서 열릴 2014년 FIFA 월드컵의 홍보대사 6명 중 한 명으로 위촉되었다. 유엔 개발 계획의 굿윌 홍보대사로, 호나우두는 2014년 3월 4일 지단과 스위스 베른에서 제11회 빈곤 퇴치 경기를 열었고, 경기 전에 하이얀 태풍 참사로 황폐화된 필리핀의 복구를 촉구하기 위한 자선활동을 벌였다. 2015년 4월 21일, 호나우두는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열린 이듬해 빈곤 퇴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완성했고, 그 전에 에볼라 창궐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한 자선 행사를 벌였다. 경력 통계 >> 클럽 기록 >> 국가대표팀 >>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 플레이스타일 호나우두는 체육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완벽한 공격수로 손꼽힌다. 그는 매우 강하고, 빠르며, 기술적인 선수이며, 차분한 해결사였다. 그는 여러 공격 임무를 수행 가능했지만, 자신은 공격수를 맡는 것을 선호했고, 천부적으로 오른발잡이이지만, 양발을 모두 쓸 줄 안다. 호나우두는 기술적 능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는 경기에서 가장 능숙한 공몰기를 구사하는 선수로도 손꼽힌다. 브라질 국가대표팀 동료 호마리우와 아프리카의 거물 조지 웨아와 더불어, 호나우두는 1990년대 신종 공격수로 평가되었는데, 이 셋은 페널티 구역 밖에서도 활동하며 공을 잡아 문전으로 전진했다: 호나우두는 개인적으로 공을 몰고 가면서 몇 명의 선수를 빠르게 제칠 수 있고, 1대1 상황에서도 공 제어 능력, 가속도, 민첩성, 균형감각, 빠른 발, 그리고 기술적 능력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전성기 시절, 호나우두는 매우 빠른 선수로 높은 가속력으로 상대 수비에 큰 위협이 되었는데, 호나우두는 역습 상황에 혼자서 공을 몰고 돌파해 들어갔다. 사생활 호나우두 넬리우 나자리우 지 리마 시니오르와 소니아 두스 산투스 바라타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호나우두는 넬리우 주니오르를 형으로 두고 있다. 1997년, 호나우두는 브라질의 모델이자 배우인 수사나 베르네르를 브라질 텔레노벨라 '말랴상' 촬영장에서 만나, 3편에 걸쳐 같이 출연했다. 비록 둘은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했으나, 오랜 기간 교재하며 1999년 초까지 밀라노에서 동거했다. 1999년 4월 호나우두는 브라질 여자 국가대표팀의 밀레니 도밍게스를 배우자로 맞이했고, 당시 밀레니가 잉태한 장남 호나우드는 2000년 4월 6일에 밀라노에서 출생했다. 둘 간의 부부관계는 4년을 지속했다. 2005년, 호나우두는 브라질의 모델이자 MTV VJ 다니엘라 시카렐리와 맞선을 보았고, 당시 임신했지만 유산했다. 둘 간의 부부관계는 샹티이 저택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린 후 3달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결혼식에 든 비용은 €896,000 (£700,000) 정도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8년 4월, 호나우두는 히우 지 자네이루의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던 여장한 3명의 매춘부와의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이들이 남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호나우두는 그에게 $600을 제의하며 함구케 했다. 그러나, 이 셋들중 하나는 $30,000을 제의받은 것이 언론에 누설되었다. 호나우두의 마리아 베아트리스 안토니와의 관계는 매춘부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가 재개되었다. 마리아 베아트리스 안토니는 장녀 마리아 소피아를 2008년 12월 24일에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 낳았다. 2009년 4월, 가족은 상파울루의 새로 지어진 펜트하우스에 입주했다. 2010년 4월 6일, 마리아 베아트리스 안토니는 차녀를 출산했다. 차녀는 마리아 알리시로 상파울루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마리아 알리시는 이복오빠 호나우드와 딱 10살 차이였다. 2010년 12월, 호나우두의 가족은 상파울루의 새 맨션에 입주했다. 또한 12월, 호나우두는 친자검사를 통해 알레샨더 (2005년 4월 출생) 가 자신의 아들임을 밝혔다. 사내는 호나우두와 미셸레 우메주와 짧은 교제로 났는데, 호나우두는 이 브라질 웨이터와 2002년에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자신의 넷째 아이를 확인한 호나우두는 2010년 12월 6일에 네 아이로는 충분해 정관 수술을 받아 "영구 피임"을 했다고 밝혔다. 호나우두는 모터스포츠 전설 이메르송 피치파우디와 브라질 A1팀 공동 소유주다. 호나우두는 스포츠 마케팅사 9INE의 공동 소유주이기도 하며, 그의 친구이자 종합격투기 선수 안데르송 시우바를 고객들 중 한 명으로 두고 있다. 포커 신봉자이기도 한 호나우두는 2013년 4월에 포커스타스 스포츠스타의 일원이 되었고, 2013년 12월에는 테니스의 거성 라파엘 나달과 자선 포커 시합을 벌였다. 2014년 12월 11일, 호나우두는 북미 사커 리그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의 소주주가 되었다. 2017년, 호나우두의 아들, 호나우드가 브라질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어 2017년 마카비아 경기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마카비아 경기 대회는 "유대인 올림픽"으로 수식된다. 호나우드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일부 참가국은 참가 자격이 덜 엄격했고, 호나우드는 유대인 구단 소속이어서 참가할 수 있었다. 그는 원조 나이키 머큐리얼 R9의 사용자로, 1998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출시한 전용 축구화를 신었다. 호나우두는 여러 차례 나이키 광고에 출연했다. 그는 1996년에 방영된 나이키 광고 "선 vs 악"에 출현했을때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결투를 벌였다. 파올로 말디니, 에리크 캉토나, 루이스 피구, 파트리크 클라위버르트, 호르헤 캄포스 등의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과 출연해 "아름다운 경기"를 수호하고 사악한 전사들을 무리를 상대로 경기에서 이겨 악을 완파하는 광고였다. 1998년, 그는 호마리우와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의 브라질 국가대표팀 거성들과 공항 형태의 촬영장에서 광고를 촬영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호나우두가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보여준 성과와 그가 팀에 기여한 핵심적인 의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2002년 FIFA 월드컵 당시 호나우두의 개인적 성과와 팀(브라질)에 미친 영향력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월드컵 관련 기록 및 팀 성적 정보를 추출한다.

    • 부상으로부터 복귀한 후, 호나우두는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8골을 기록해 골든 슈를 차지했으며, 대회 최우수 선수 2위로 실버 볼도 차지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우승 견인, 득점 기록, 개인 수상 내역을 핵심 근거로 선정한다.

    •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 8골을 기록해 골든 슈를 차지했으며
    • 대회 최우수 선수 2위로 실버 볼도 차지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개인적 기록(8골, 골든 슈, 실버 볼)이 팀의 우승(5번째 우승)과 직결되었음을 통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부상을 극복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개인적으로도 최다 득점과 주요 상을 휩쓴 점을 결론으로 도출한다.

    • 부상으로부터 복귀한 후, 호나우두는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맞춰 성과와 의의를 정리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8골을 기록해 골든 슈를 차지
    • 실버 볼도 차지
    •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최종 답변 (final_answer)
호나우두는 무릎 부상으로부터 복귀하여 브라질을 역대 최다인 5번째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8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인 골든 슈를 차지했고, 대회 최우수 선수 2위인 실버 볼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호나우두는 무릎 부상 극복 후 브라질을 2002년 FIFA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며 득점왕과 실버 볼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