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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document_id A22062320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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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曺秀美, 1962년 11월 22일~)는 대한민국의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성악가이다. 음반에 선정됐다.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2011년 기준으로 25년차 성악가로 1년에 300일 이상 세계 각지에 공연을 다니고 있다. 2019년5월6일에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기사급 친선 훈장인 '오르디네 델라 스텔라 디 이탈리아'를 받으며 세계적인 성악가로서 한국과 이탈리아 간 예술적 교류에 이바지 한 공을 크게 인정받았다. 2021년 국제무대 데뷔 35주년을 맞은 조수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시아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학창 시절 조수미는 금성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4학년 때 KBS에서 주최한 전국 어린이 노래자랑에 나가게 된다. 주(週)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승승장구 연말결선까지 진출했으나 6학년 여학생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으나, 거기서 인생을 변화시킨 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선화예중의 교사였던 유병무였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조수미와 어머니는 전공을 성악이냐 피아노냐를 두고 고민끝에 피아노로 결정했다. 성악은 변성기를 거쳐야 하고 변성기 후에도 목소리가 아름다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혹 도움이 될까싶어 찾아뵌 유병무가 조수미의 목소리는 굉장히 독특하고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목소리라고 성악을 적극적으로 권하여, 성악으로 결정하였다. 성악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이후 변성기에도 목소리를 잘 관리해준 선생님의 지도 덕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조수미는 회고하고 있다. 조수미는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비지스를 즐겨 듣는 등 팝이나 알앤비를 좋아했다. 그러던중 여고시절 당시 한국의 가장 유명한 소프라노이자 교수인 서울대 이경숙 선생님께 레슨을 받게 되었고, 첫 만남에서 조수미의 노래를 들은 이경숙 선생님은 조수미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틀림없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거야" 1주일에 한 번씩 레슨을 받으며 조수미는 자신의 음을 발견하고 가사의 이해와 전달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곧 나이트클럽 등을 다니면서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대학에 들어가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다른 길로 빠졌다. 당시 조수미에겐 사랑이 중요한 문제였다. K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학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조수미는 먼저 다가가 사귀어 보고 싶다고 하자 여자친구가 있다는 답변이 들어왔고 조수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구애를 해 사귀는 데 성공했다. 조수미는 학업을 전부 제쳐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는 데 온 시간을 쏟았고 어머니는 이런 조수미를 크게 걱정했다. 결국 학교에서 낙제점수를 받고 쫓겨났다. 부모는 조수미를 불러놓고 "여기서 끝내기엔 아깝지 않느냐"며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조수미는 "K군과 결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유학시절에 조수미가 가장 고생한 것은 집문제였다. 마당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게 소원이었다. 노래소리를 이해해주는 집주인도 관건이겠거니와, 이웃들이 성악 유학생의 계속되는 노래연습에 불만을 제기하여 정작 어렵게 집을 구하고도 또 피아노까지 끌고 1년에 몇 차례는 이사를 다니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소리를 질러 목소리를 키워야 할 성악가가 소리를 죽여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사한지 몇 달도 안 돼 짐을 꾸리며 노래할 공간 하나 없는 신세가 서러워 울기도 했다. 집문제 다음으로 고생한게 교통이었는데, 학교까지 버스로 1시간쯤은 걸리는데, 이탈리아의 들쭉날쭉한 버스시간과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교통에 한 번 나갔다오면 파김치가 되어 30분은 드러누워 있어야 정신이 들곤 했다. 중고차 한 대 갖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지만 차마 집에 차 사달라는 얘기를 하지 못하다가, 스페인에서 열린 비냐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그 상금으로 가장 먼저 차부터 구입하였다. 조수미의 첫 독창앨범은 Carnaval(카르나발) 로 '조안 서덜랜드'의 남편이자 세계적 지휘자인 '리처드 보닝'의 지휘로 1994년 데카레이블로 나왔는데, 보닝이 선곡한 프랑스 오페라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고음의 프랑스 아리아 13곡인데, 워낙 고난이도의 기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레코딩 과정에서 인공적(기계적) 조작이 있었을 것이라 오해하였다고 한다. 이후 활발한 녹음활동으로 국제무대 데뷔 20년차인 2006년 기준 솔로앨범 10개를 포함 48개의 앨범을 출반하였다. 조수미는 또 불인별곡(不忍別曲) - 드라마 허준, 나 가거든 - 드라마 명성왕후, 사랑의 기억 - 드라마 주몽 등과, 로만 폴린스키 감독의 영화 The Ninth Gate(1999)의 OST, 미국드라마 OST에 참여하는등 다양한 영역에서 녹음활동을 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응원가 조수미의 "Champions"는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수미의 아버지는 한명밖에 없는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집안이 힘들었던 시절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2006년 파리에서 중요한 독창회가 있던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짐을 싸서 바로 귀국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게 너의 본분이고 노래를 해서 그 음악회를 아버지께 바치는게 너의 본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렵게 파리 공연을 마치고 나니 눈물이 흘러내렸고 앵콜곡으로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h Mio Babbino Caro)>와 한국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른 후, 관객들의 박수가 그치지 않자 "고국에서 아버지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노래를 바친다"며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슬픔을 삼키며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사람들이 조수미를 보며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눈빛으로 생소하게 보았다. 오페라 배역에서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이 있었다. 금발머리의 유럽형 외모가 필요한데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캐스팅이 제외된 경우가 있었다. 1986년 공연을 하면서 느낀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한국을 몰라 이것을 설명하느라 비행기가 제때 못뜨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이에 조수미는 "한국이 빨리 커야되겠다. 한국에 좋은 일이 있도록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실제 그녀는 2006년 국내 성악가 최초로 시도 되는 바로크음반 Journey To Baroque를 출반하고, 2010년엔 독일가곡 앨범 Ich Liebe Dich를 출반, 그리고 스웨덴 민요 Bred Dina Vida Vingar'(2008), 스페인의 민요 Hijo De La Luna(달의 아들)(2011)를 출반하는등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조수미는 국내 클래식 연주자들중 단연 독보적인 앨범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누적 앨범 판매량 100만장 이상 클래식 아티스트는 조수미와, 팝페라테너 임형주 단 2사람뿐이다. 조수미는 2000년 발매한 첫 크로스오버 앨범 Only Love가 100만장 판매를 돌파한 클래식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 94년 발매한 한국가곡집 '새야새야'가 40만장이상 판매되는등 수많은 앨범을 메가히트시킨 연주자이다. 조수미는 오페라에서 배역을 맡기보다는, 독창회나 콘서트와 같이 관중과 일대일로 만나면서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데뷔 25년차가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는 오페라의 출연보다는, 음반작업과 더불어 주로 독창회나 콘서트를 통한 전세계 연주여행을 다니고 있다. 평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소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는 최고음으로 2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이어서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악보의 일부를 수정했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으로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 리옹에서 일본계 미국지휘자 켄트 나가노와 녹음하여 출반 했는데, 조수미는 이 녹음이 젖먹던 힘까지 다 써버릴 정도로 가장 힘든 녹음이었다고 저서에서 적고 있다. 또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고,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93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격년제)을 수상했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다. 프랑스 르 몽드지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 2008년엔 르네 플레밍, 안젤라 게오르기우와 함께 세계3대 소프라노로 선정되어 베이징 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 기타 조수미는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많이 놀고 독서하고 자연과 함께 지내면서 아름답고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놀지 못했던 조수미는 아직도 곰인형 같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성격이 형성되는데, 자연스럽고 깨끗하게 커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은 아름다운 혼이나 생각이 음악을 통해 나타나 사람들의 귀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수미는 평소에 외모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화장기 없이 편하게 다닌다. 그래서 옆집사람이 조수미인줄도 모르고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음반소리가 크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조수미는 수많은 공연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떨린다고 말한다. 조수미는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빨래를 한다고 말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 조수미는 음악인으로써, 한국인으로써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며 그런 기회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가로써 깨끗한 사람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선하지 않고 지저분한 사람의 노래는 아무리 잘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순수하게 살고 싶고 그런 마음이 노래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한국의 노래를 앙코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조수미는 "예술가는 결국 영감의 원천을 준 고국의 폼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한다. 성악가로 성공한 조수미는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여자로서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조수미의 개명 전 이름은 ‘조수경’이다. 영어 표기와 외국인의 보편적인 발음상 "경"은 발음이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이름을 조수경에서 조수미로 바꾸게 되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 직후 당시 주불 한국대사는 프랑스 대기업 총수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 했지만 쉽지가 않자 로마의 조수미에게 협조를 요청했는데,평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초대를 거절하던 대기업 회장들이 조수미의 독창회가 곁들어진 저녁 식사엔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고, 또 그녀의 열렬한 팬인 영국 에드워드왕자 부부의 포르투갈 공식방문에 특별 초청되어 포르투갈 대통령과 주요각료, 영국 왕실 가족등이 참석한 독창회에서 양국 민요와 한국가곡을 부른 적도 있을 정도로, 유럽내 조수미의 인기가 대단했다. 포르투갈에서는 그녀의 앨범 'Only Love'가 히트하며 2000년 포르투갈 최고 인기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 있다. 조수미는 로마에 거주중이며, 유튜브 인터뷰 영상을 보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유럽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대부분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며, 러시아어까지 구사 가능하다고 한다. 데뷔 직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12개 도시 순회공연과 파리 콘서트를 앞두고, 서울을 한겨울에 찾았다가 얻은 지독한 감기로 조수미는 남아프리카 공연 2회째에 일정을 취소하고, 이후 독감에 기관지염에 사랑니통에 식중독 등이 겹치며 소리가 나오지 않아 몇 개월 정도를 노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그 때 조수미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게 그토록 끔찍한 일인지 몰랐고, 여기가 내 인생의 끝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후 조수미는 "한 달동 안 노래하지 못하는 것과 일 년 내내 노래만 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코 일 년 내내 노래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조수미는 노래부르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유튜브에도 있는 조수미가 카라얀 앞에서 노래를 하는 유명한 영상 은 '짤즈부르크의 카라얀'이란 제목으로 카라얀 사망 이후 출반된 비디오이다. 1987년에 다큐멘터리로 촬영되었으며, HVS와 LaserDisc에서 편집하였다. 영상에서 조수미와 듀엣을 부르는 여자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메조 소프라노 'Cecilia Bartoli'이며, 조수미가 밤의 여왕 'O zittre nicht"를 부를때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탈리아의 바리톤 "lucio gallo"이다. 다같이 신인급인데 카라얀은 다른 두 사람은 제쳐 두고 조수미와만 계속 대화를 하는데 카라얀이 조수미를 얼마나 총애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영상으로 조수미는 국제무대에서 인지도가 단박에 뛰게 된다. 앙드레 김과의 인연도 유명하다. 가난한 예술가인 조수미는 한 벌에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드레스 대신 시장에서 원단을 끊어 연주회용 의상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1988년 첫 귀국독창회에서, 공연장에 온 앙드레 김은 아름다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은 초라한 드레스를 입은 조수미를 보고, 조수미에게 직접 연락을 하여 앞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약속은 20년이 넘게 이어졌고 세계 무대에서 조수미는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노래했고,그간 입은 드레스가 200벌이 넘는다고 한다. 조수미의 한국 공연이 있을 날이면 무대 중앙 제일 앞자리에는 앙드레 김을 위한 자리가 항상 준비되었고, 공연이 끝나 커튼 콜을 할 때면 조수미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후원해 준 앙드레 김을 소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했다. 2010년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나자, 조수미는 앙드레 김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헌정공연을 열었고,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조수미는 해외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걸음에 한국으로 들어와 고인의 빈소를 찾았고 오랜 시간 머물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조수미는 한국 디자이너의 한국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공연하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으며, 공연이 끝나면 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저서에 적고 있다. 조수미는 2016년까지 미혼이며, 개 2마리와 함께 살고있다(요크셔 테리어&셰퍼트). 90년대에 결혼을 약속했던 프랑스 남자도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고, "내 인생에서 나의 목소리와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속해있으며, 또한 현실적으로도 늘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한 남자에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sns를 통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눈다고 한다. 그녀는 트위터에 자잘한 것들도 올린다고 한다. 조수미는 pescatarian(고기는 생선만 먹는 채식주의자)으로, 동물보호와 권리향상(특히 개)을 위해 힘을 쓰고 있으며, 관련기관에 수 차례 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동관련기관과, 그 외 여러방면에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기도 하다. 조수미는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 파스타, 쌀밥, 리소토 등이다. 축구 열혈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때 "Champions"라는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조수미는 2014년 8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시 성모대축일 미사 전 환영행사에서 넬라 판타지아 등 총 3곡을, 교황집전 미사 중 가톨릭 성가 '생명의 양식'을 부르는 영예를 안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명예홍보대사인 조수미는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가수 소향과 함께 평창 패럴림픽 주제가인 "평창, 이곳에 하나로(Here as One)"을 불렀다. 2021년에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초빙교수가 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성악가 조수미가 성대 보호와 체형 유지를 위해 피하는 음식은 각각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조수미가 성대 보호와 체형 유지를 목적으로 기피하는 음식의 종류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본문에서 조수미의 식습관 및 음식 관련 내용을 탐색한다.

    • 조수미는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성대 보호를 위한 음식과 체형 유지를 위한 음식을 각각 구분하여 추출한다.

    •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두 가지 정보를 결합하여 질문의 요구사항에 맞게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성대 보호를 위해서는 매운 음식을, 체형 유지를 위해서는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을 피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도 피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두 가지 항목을 나열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매운 음식
    •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성대 보호를 위해서는 매운 음식을 피하며,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서는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을 피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조수미는 성대 보호를 위해 매운 음식을 피하고,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체형 유지를 위해 감자튀김과 같은 음식을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