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조성민(趙成珉, 1973년 4월 5일 ~ 2013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야구 코치, 방송인이다.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고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였다. 5살 연상의 탤런트 겸 영화배우 최진실과 결혼했고 아들 1명과 딸 1명을 낳았으며 최진실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부원이 된 후 신일고등학교 야구부원으로 출전하여 1991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어 스타로 관심을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에도 야구선수, 국가대표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1995년부터 2002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으나 1998년, 1999년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002년 자진 은퇴하였다. 이후 이혼 사건에 휘말리면서 국내 야구계에서 외면 당하다 2005년 한화 이글스에 복귀했으며 2007년 방출 당했다. 한때 방송 야구 프로그램의 해설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고, 2008년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실패하였다. 2013년 1월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오피스텔(원룸)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
<heading>생애 >> 프로 입단 전 </heading>
조성민은 1973년 4월 5일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마동(현 광진구 중곡동)에서 은행원으로 한일은행 인천지점장 등을 역임한 조주형과 유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주형은 은행가로 활동하기 전, 한때 정구 국가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서울 용마초등학교에 입학,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부원으로 활동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강동구 둔촌동으로 이사하여 둔촌초등학교로 전학, 계속 야구부 부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신일 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그는 야구부원으로 활약하였다.
신일중학교를 거쳐 신일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991년 8월 야구 청소년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1992년 4월부터 1995년 8월까지는 프로야구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이때 그는 한·미·일 국제 청소년 야구(1991년)와 하계 유니버시아드(1993년), 아시안 게임(1994년)에 출전하였다. 1991년 9월에는 황금사자기 고등학교 야구대회에 신일고등학교 선발 투수 로 출전하여 광주일고를 누르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91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그는 봉황기 우수투수상과 홈런상 등을 동시 수상하였다. 1993년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 대학 재학 중에도 대학 야구부원으로 활약했다. 1993년 5월 20일부터 5월 29일에는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주전으로 경향신문 주최 제 42회 백호기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 우완으로 출전하였다.
<heading>프로 입단 후 >> 일본 프로 야구 시절(1996년~2002년) </heading>
1995년 5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일본의 야구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고, 같은 5월 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선택하였다.
고려대 경영학과(1992학번)를 졸업하고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계약 기간은 7년이었다. 1997년 한때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 후보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승 2패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2.89를 기록, 가능성을 보였다. 1998년 선발 투수로서 전반기에 7승을 거두어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선발되었지만, 이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8년 7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2번의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였다. 1999년 2월 다시 오른쪽 팔꿈치를 부상 당했다. 그는 쉽게 부상에서 회복되었으나 재기에 실패하고, 부상 이후 실적이 부진하였다. 2000년 12월 최진실과 결혼했다. 조성민과 최진실이 살던 서울 서초구 잠원동 G주택 주민 17명이 허위 분양광고와 시공상 하자로 인한 추가 보수 비용 발생을 문제 삼아 2002년 9월부터 M건설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였다. 2004년 초 공백 기간을 갖다가 그해 4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신인 1차 드래프트를 신청한 뒤 지명하는 구단이 없자 2차 지명을 아예 포기했던 조성민이 1년 후 다시 그라운드에 서기 위해 1년 반만에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조성민은 2004년 4월 초부터 서울 강남 도곡동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루 3시간의 강도높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하였다. 그는 김인식 감독의 주선과 부름을 받고 다시 복귀하였다. 당시 한화 관계자는 "김인식 감독의 요청에 따라 조성민 영입을 검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화에서 그는 컨트롤 위주의 투구를 하였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한화 구단으로부터 방출된 뒤 은퇴하였다.
2007년 10월 22일 한화로부터 방출을 통보 받은 뒤 서울 집에서 지내며 지인들 외에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당시 한화의 한 관계자는 얼마전 통화를 했는데 당분간은 그냥 쉬면서 지내고 싶다고 했다 한다. 신랑 조성민은 신부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최진실은 '남편 조성민에게 보내는 편지'로 "나 최진실은 신랑 조성민을 보호하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며 아끼겠습니다. 야구선수인 남편을 위해 아낌없이 내조할 것을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야구 관계자들에게 약속합니다."라고 화답해 하객으로 참석한 야구 관계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또한, 최진실은 어머니 정옥순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에서 "어제 많이 울었다. 많이 서툴고 엄마가 보기엔 어려 보일지 모르지만 잘할 자신있다. 결혼을 맞이하고서야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가 없는 집에서 외롭게 지낼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며 동생 최진영에게는 엄마를 잘모시라고 당부하였다.
<heading>생애 후반 >> 은퇴 후 >> 이혼과 재혼 </heading>
2005년 7월, 조성민은 '불륜' 상대자로 지목 받았던 심미영과 결혼하였다. 2010년 10월,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은 조성민과 심미영에 대해 "두 사람 관계는 정리된 걸로 안다. 두 사람은 10개월째 별거 중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12월, "대법원 법인 등기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B업체 대표 이사는 심미영이고, 조성민은 2010년 10월 26일 B업체의 사내 이사로 취임했고 2010년 11월 2일 정식으로 등기부에 등재되었다"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2008년 사업에 투자 먹음직닷컴, SMC21 등을 운영하였으나 모두 사업에 실패하였다. 그해 MBC 방송 ESPN 야구해설위원으로 출연하였다.
2008년 10월, 조성민은 최진실의 두 자녀가 물려받은 유산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사회적 반발을 샀다. 그 와중에 배우 우연희가 조성민의 배우자라는 허위사실이 유통되었고, 그로 인해 우연희는 얼굴도 알지 못하는 시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또한 우울증도 앓았는데, 그 피해사실을 MBC 스페셜에 출연하여 공개하였다. 한편, 우연희의 본명은 심은우였고, 우연희의 둘째 아들 이름은 조성민이었다. 2010년부터는 XTM 야구해설자로 활약했고 폰앤컴퍼니 스포츠사업부 전문위원도 겸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두산 베어스 2군의 재활코치로 활동하였다.
<heading>사망 </heading>
2013년 1월 6일 새벽, 조성민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지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는 이 지인이 0시 5분부터 3시 34분까지 외출한 동안 발생한 것이었다. 이 지인은 조성민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이었는데, "2013년 1월 5일에 오피스텔 안에서 조성민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별을 통보했다. 1월 6일 0시 5분경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 후 용무를 마치고 귀가하여 위 상황을 확인하였다"라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그는 A 씨와 교제한 뒤 수시로 A 씨의 집을 드나들었고, 한 번 방문하면 며칠씩 머무르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조 씨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헤어지자'고 말했다"라고 진술했다. 한편, 조성미는 여성잡지 2013년 2월호를 통해 조성민이 심미영과 이혼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청 기록 열람등을 통한 실제적인 기록 조회에 의하면 조성민은 사망당시 심미영과 법적으로 혼인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heading>논란과 의혹 </heading>
조성민은 2000년 12월에 배우 최진실과 결혼식을 올렸고, 최진실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조성민은 최진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자살 시도 등의 행위를 보여 주었고, 최진실과의 이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행위를 보여 주었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가출을 하였고,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그 자리에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였다. 2004년 9월에 최진실과 '협의상 이혼'을 하였다. 이후 2005년 7월에 '술집 마담'으로 알려진 심미영과 혼인신고를 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조성민이 1996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할 당시의 계약 조건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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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조성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당시 계약금과 연봉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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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본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는 문구를 추출한다.
-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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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계약금과 연봉 수치가 명시된 구절을 최종 근거로 선택한다.
-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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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계약금과 연봉 정보를 결합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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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계약금은 1억 5천만엔, 연봉은 1,200만엔임을 도출한다.
-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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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명확한 수치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조성민은 고려대 경영학과(1992학번)를 졸업하고 19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계약금 1억 5천만엔, 연봉 1,200만엔의 조건으로 입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