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한국어 지식관계

조정래 document_id A220623205693

분류
문화
라벨 상태 (label_status)
approved
문맥 (context)
조정래(趙廷來, 1943년 8월 17일 ~ )는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의 소설가이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대표작으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소설이 있다. 조정래의 작품은 좌파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실제로태백산맥의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을 때까지 11년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논쟁을 일으켰다. 현재는 모교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 오, 하느님(문학동네)을 저술하였다. 약력 >> 출생 아버지 조종현은 전라남도 순천시의 승려이자 시조 시인으로서 한용운이 총재가 되어 조직된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재무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당시 승려들의 결혼을 정책적으로 장려했던 일제의 불교황국화 정책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어, 조정래 자신도 조종현이 부주지로 있던 사찰인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4남 4녀의 넷째로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해방 뒤 조종현은 토지 분배의 문제를 놓고 주지와 대립하다 여순사건 때 주지의 모함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할 뻔 하기도 해서인지, 태백산맥에는 법일스님이 지주의 착취로 가난한 소작인들의 편을 들다가 좌익으로 몰려 고초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국민학교(현 남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인 1949년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사하였는데, 바로 이듬해에 6.25 전쟁이 일어났고, 1.4 후퇴 때의 피난지에서 처음 지주 소작제의 모순을 알게 되었다. 1953년 벌교상업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당시 삼촌들이 살고 있던 벌교로 이사하였다. 문인으로서 광주 서중학교를 거쳐, 1959년 서울로 상경하여 아버지가 전근한 서울 보성고등학교에 입학한 1년 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그는 3학년에 이르러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세우고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에서 전공과목과 함께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따서 1966년에 졸업하고 군입대, 1967년 같은 과 김초혜와 결혼하였다.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서 근무하던 1970년에 현대문학 6월호에 '누명'이 첫회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12월호에 '선생님 기행'이 추천 완료되었다. 1971년에 현대문학에 중편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신동아에 단편 '빙판'을 발표하였으며, 연좌제를 비판한 내용의 단편 '어떤 전설'(현대문학 1971년), 베트남전쟁을 비판한 중편 '청산댁'(현대문학 1972년)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1972년에 중경고등학교로 전근하였으나, 정부를 비판한 작품으로 보수주의자인 학교 교장과의 마찰을 빚게 되고 1972년 박정희대통령의 독재를 위한 악법인 유신헌법이 만들어져 민주주의가 억압받은 10월 유신 이후 교직을 그만두었다. 1973년 월간문학 편집장이 되었고(~1975년), 1974년 중편 황토를 발표하였다. 1976년 '허깨비춤', '방황하는 얼굴', '검은 뿌리', '비틀거리는 혼' 등의 단편과, 장편 '대장경'을 민족문학대계의 일환으로 완성한다. 그리고 포켓용 문예 월간지 소설문예를 인수, 10월호부터 발간(~1977.10)하게 되는데, 이때 연재를 맡은 집필진 가운데는 친일연구로 유명한 임종국도 있었다. 1977년에는 민예사 대표를 맡았으며, '어떤 솔거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그때까지의 소설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쓴 것이었지만, 1980년 5월 광주민중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운동인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광주를 방문하게 된다.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현장, 그 이후의 상황들을 직접 본후 그때까지의 원칙을 바꾸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태백산맥의 집필로 이어지게 되었다. 1983년 6월부터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의 연재를 시작하였다. 1985년에는 한국문학의 주간을 맡았으며, 태백산맥의 연재 집필을 위해 안양의 성 나자로 마을에 매달 10일씩 칩거한다. 태백산맥 고발 사건 누적 판매부수 330만 부를 돌파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태백산맥은 3부가 나온 1988년 하반기부터 조정래는 새벽마다 걸려오는 공갈협박 전화에 시달렸고(1997년까지 10여 년이나 이어졌다) 4부를 쓰던 1989년부터 모든 수사관이 내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으며 출판사 사무실로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1989년 10월에 단행본이 나오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이미 태백산맥을 쓸 때부터 다음 작품으로 아리랑을 구상하고 있던 조정래는 1990년 취재를 위해 문화부에 만주행을 신청하지만, 이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두고 안기부 내사중이었고 만주행은 거절(당시 한국과 중국은 미수교 상태)되었는데, 당시 문화부 장관(초대)이던 이어령의 장관 보증으로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리랑은 12월부터 한국일보에 연재가 시작되었다. 나아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에 의한 명예훼손 고발까지 당했다. 6월부터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조정래는 경찰에 불려가 수사를 받았지만, 경찰의 수사 태도에 대한 반발로 경찰 수사를 거부했고, 이 해에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한 태백산맥이 발표되었다. 경찰의 출두 요구를 거부한 끝에 검찰로 넘어간 태백산맥의 이적 혐의에 대한 수사는 1998년에 수사 날짜가 통보되었는데, 당초 반공단체가 제시했던 5백여 개가 넘는 혐의 사실을 120여 개로 간추리고, 그 120여 개의 혐의에 대한 '객관적 자료'(국회 증언록이나 행정관청의 발간물 등 국가기록물 및 국가가 납본필증을 내준 서적)를 조정래에게 요구하였으며 한 가지라도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유죄혐의가 될 수 있음을 통보하였다. 이에 조정래는 당시 5월 15일부터 한강을 집필하던 중이었지만 집필을 중단하고 일주일 동안 17권의 책을 찾아 제출하였고 2005년 5월에 태백산맥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소설가 조정래가 과거에 가졌던 집필 원칙은 무엇이며, 이 원칙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조정래의 과거 집필 원칙과 그 원칙이 바뀐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과거 집필 원칙과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그때까지의 소설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쓴 것이었지만
    • 1980년 5월 광주민중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민중운동인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의 광주를 방문하게 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원칙의 내용과 변화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광주 방문 및 목격 사실을 선별한다.

    •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
    •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현장, 그 이후의 상황들을 직접 본후 그때까지의 원칙을 바꾸게 되었고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직접 체험을 배제하던 원칙이 광주 현장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변화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원칙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였으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행과 살인 현장 등을 직접 목격하면서 원칙을 바꾸게 되었다.

    • 그때까지의 원칙을 바꾸게 되었고 이것은 후에 태백산맥의 집필로 이어지게 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따라 원칙과 변화 계기를 명확히 기술한다.

    •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
    •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현장, 그 이후의 상황들을 직접 본후
최종 답변 (final_answer)
조정래의 과거 집필 원칙은 '직접 체험을 소설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으나,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광주를 방문하여 계엄군들의 참혹한 폭행과 살인 현장 및 그 이후의 상황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 원칙을 바꾸게 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소설가 조정래는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졌으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광주를 방문하여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 원칙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