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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document_id A220623205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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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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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창경궁(昌慶宮)은 서울특별시에 있는 궁궐로 조선 성종(1483년) 때에 건축하였다. 창경궁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고려의 국새를 넘겨받은 수창궁(壽昌宮)의 청심정(淸心亭)과 동일한 이름의 정자를 가까이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고 하였는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창궁(壽昌宮)과 매우 유사한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창경궁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장희빈을 처형한 일과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일, 정조가 승하한 일 등 크고 작은 궁중 비극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성종 14년(1483년)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확장하여 세운 별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1909년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로 강제로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많은 전각들을 훼손하고 궁 안에 일본식 건물을 세우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라 불렀으며,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과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없어졌던 명정전에서 명정문 사이 좌우 회랑과 문정전을 옛 모습대로 회복하여 1986년 8월 23일 일반에 공개하였다. 건축 창경궁이 위치한 곳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였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왕궁 가운데 유일하게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죽은 곳은 선인문 쪽이라 한다. 원래 12칸이었으나 복원 때 9칸으로 복원하였다. 동궐도에서 보면 문정전 주변에 회랑이 쳐져있다. 숭문당 숭문당(崇文堂)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왕이 태학생들을 접견하여 주연을 베풀었던 곳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용마루가 없다. 집복헌 집복헌(集福軒)은 창경궁에 있었던 후궁들의 거처이다. 원래의 모습은 <동궐도(東闕圖)>(1824~1830)를 통해서 볼 수 있는데, 이때의 모습은 영춘헌의 북서쪽에 있으며 가운데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심 건물 뒤쪽으로 행각이 둘러싸 폐쇄적인 마당을 갖춘 형태이다. 그런데 1830년(순조 30년) 8월 1일 화재로 소실된 영춘헌을 1834년(순조 34년)에 다시 지으면서 이전과 달리 영춘헌과 집복헌이 이어져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으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부속 건물이 된, 현재와 같은 건축 형태가 완성되었다. 기타 동물들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지고, 궁 안에 있던 벚나무는 모두 뽑아 없앴다. 이제 창경궁에서 벚꽃을 찾기 어렵다. 대신 잘 가꿔진 소나무가 볼만하다. 특히 춘당지 뒤쪽의 <한국자생식물화단>은 한국식물로서 월동이 가능한 중부지방 자생식물을 모아놓은 화단으로 세계적 희귀식물인 미선나무를 비롯해 400여 종 600여 포기가 심어져 있어 도시 어린이들이 자연생태를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건축 당시에는 170여 평(약 570여m^{2})으로 동양 최대 규모의 목조 식물원이었으며, 각종 희귀 식물을 전시하였다. 1969년에 양옆에 돔 모양의 온실이 설치되어 있으나 창경궁 복원공사 중 철거되었다.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관덕정 관덕정(觀德亭)은 1642년에 지었으며 활을 쏘던 정자였다.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 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쓰였다고 전한다. 정자 뒤로는 단풍 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한다. 관천대 보물 제 851호. 숙종 14년(1688년)에 세워진 천문 관측대. 첨성대(瞻星臺)라고도 한다. 높이는 2.2m이고,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대 위에는 99cm의 받침대가 놓여 천문 관측기구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창덕궁 금호문 밖에 세워졌으나, 일제 강점기에 이전되었다가 현재의 자리에 옮겨졌다. 관천대 위에는 별을 관측하는 기구인 소간의(小簡儀)가 놓였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집춘문 집춘문(集春門)은 관덕정 북쪽, 성균관과 창경궁 사이의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文廟, 또는 성균관)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역대 임금들이 이 문을 거쳐 성균관으로 행차하였다. 일제시대때 성균관을 잇는 길을 없애버려 쓸모가 없어졌으나 2008년 성균관을 잇는 길을 종로구에서 복원하였다. 과학의 문 창경궁과 국립어린이과학관 사이에 놓여 있는 문이다. 1973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령으로 지어졌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걸려있다. 잠시 동안 폐쇄되었으나 최근에 개방되었다. 월근문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자리)에 편하게 가기위해 세운 문이다. 선인문 이 문 부근에서 장조(사도세자)가 뒤주속에서 운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풍기대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는 풍기를 세웠던 창경궁에 있는 석대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동궐도(東闕圖)〉에 화강석 풍기대 그림이 있다. 사라진 전각 >> 자경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었던 전각이다. 자경전에서는 경모궁이 한눈에 보였다고 한다. 고종때 경복궁 중건시 철거하여 경복궁의 자미당을 짓는데 활용했다. 일제때 장서각이 세워진 곳이다.장서각은 1992년에 철거되었다. 저승전 숙종의 모후이자 현종의 정비인 명성왕후 김씨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경종이 왕세자 시절 거처하였기에 경종의 사후 경종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도 이곳에서 살았다. 이후 사도세자의 동궁전이 되었다가 화재로 전소되었다. 통화전 임금의 편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순조 33년 화재때 불탄 이후 아직도 중건되지 않았다. 낙선당 >> 시민당 창경궁의 동궁전으로서 왕세자나 왕세제가 대리청정을 하거나 정무를 보던 곳으로 쓰였다. 여기서 시민이라는 뜻은 백성이 이익되게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영조가 왕세제 시절 여기서 거처하였다. 요화당 >> 취선당 숙종 때 희빈 장씨가 거처했던 전각. 한중록 기록에 의하면 저승전 건너에 위치하였고, 영조시대에 저승전의 소주방으로 개조되었다. 영조 시대에 저승전과 함께 화재로 전소되었다. 환취정 >> 궐내각사 일제가 식물원과 동물원을 세우기 전만 해도 존재했었으나 1900년 초반에 동물원을 세우면서 다 헐어버렸다. 창경궁관리소 >> 사건 사고 >> 창경궁 방화 사건 2006년 4월 26일 방화범 채종기가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러 400여 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났지만 다행히 문짝만 타는데 그쳤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창경궁의 명칭과 건축 목적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창경궁의 명칭 변화 과정과 각 명칭이 부여된 목적을 시간 순서대로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초기 명칭인 수강궁과 그 목적, 이후 성종 때의 명칭 변경 및 목적을 추출한다.

    •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창궁(壽昌宮)과 매우 유사한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수강궁(태종을 모시기 위함)과 창경궁(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함)에 대한 근거를 선별한다.

    •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세종 시기의 수강궁에서 성종 시기의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명칭 및 목적의 변화를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수강궁은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으며, 성종 때 대비 세 분을 모시기 위해 중건되면서 창경궁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정리한다.

    •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맞춰 명칭과 목적을 포함한 완성된 문장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후 성종 14년(1483년)에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새로 중건하면서 명칭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강궁이며,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