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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파 document_id A220623206002

분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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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갑산파(甲山派)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던 정치 파벌이다. 갑산파의 명칭은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천보 전투가 일어났던 함경남도 갑산군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갑산군의 국경지대는 1942년에 혜산군으로 분군되었고, 갑산파가 주로 활동한 곳은 만주 장백현 및 갑산군의 혜산, 운흥, 보천 지역으로 1942년에 혜산군으로 분군된 곳에서 활동이 많았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활동해왔기에 자연스레 갑산파라는 명칭이 붙었다. 현재 량강도에 속해 있다. 개요 이들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 세력으로서 광복 이후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등 다른 계파를 차례로 몰아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했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의 권력 투쟁을 논할 때는 빨치산파, '김일성파'와 같은 개념으로 쓰인다. 그러나, 김일성에게서 김정일로 권력이 이양되기 전 후계 구도 확립 문제 및 경제 정책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인해 1967년 기존 권력층의 일부가 숙청되는데, 이때 실각한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만을 따로 묶어 '갑산파'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1930년대 조국광복회 사건, 일명 '혜산 사건' 때 국내에서 거점으로 활동한 항일무장조직 출신으로서 김일성과 손을 잡아 집권했으나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가 이 무렵 숙청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빨치산파', '김일성파', '만주파', '88여단파' 등 김일성의 친위그룹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김일성 유일사상이 만연하기 전에 실학과 같은 민족전통의 혁명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967년 노동당 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당간부들에게 목민심서를 읽게하고 실학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고 비난을 받고 숙청당했다. 갑산파를 숙청한 김일성은 이듬해인 1968년 자기의 생일을 국가 명절로 지정하는 등 개인 우상화에 박차를 가했고, 황장엽 등을 동원해 김일성 유일사상인 주체사상을 체계화하여 '1당 독재 제체'를 '1인 세습 독재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인 독재'나 '개인 우상화'을 공식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고, 김정일 후계체제가 강화되었다. 북한에서는 갑산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박금철 등 숙청당한 인물들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부르고 있으며, 조국광복회 조직과 혜산 사건을 서술할 때도 당시 체포되어 사형당한 리제순(이효순의 동생)이나 옥중 고문으로 건강을 잃은 박달 등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1967년 권력 투쟁 과정에서 숙청된 인물들을 지칭하는 '갑산파'의 구체적인 정의와 그들이 비난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67년 숙청된 인물들을 가리키는 '갑산파'의 정의와 숙청 사유를 묻는 질문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갑산파로 불리는 인물들과 그들의 배경, 그리고 숙청 원인이 되는 사상적 특징을 추출한다.

    • 실각한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만을 따로 묶어 '갑산파'로 부르기도 한다.
    • 1930년대 조국광복회 사건, 일명 '혜산 사건' 때 국내에서 거점으로 활동한 항일무장조직 출신으로서 김일성과 손을 잡아 집권했으나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가 이 무렵 숙청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 실학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고 비난을 받고 숙청당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정의에 해당하는 인물 구성과 숙청 사유인 사상적 비난 내용을 선별한다.

    •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만을 따로 묶어 '갑산파'로 부르기도 한다.
    •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가 이 무렵 숙청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 실학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고 비난을 받고 숙청당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갑산파는 혜산 사건 당시 항일무장조직 출신으로 김일성과 함께 집권했으나, 경제적 수정주의와 실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사상 등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숙청된 집단임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요구된 정의와 이유를 종합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만을 따로 묶어 '갑산파'로 부르기도 한다.
    •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가 이 무렵 숙청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 실학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고 비난을 받고 숙청당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완성된 문장 형태의 답변을 작성한다.

    •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만을 따로 묶어 '갑산파'로 부르기도 한다.
    •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가 이 무렵 숙청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 실학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고 비난을 받고 숙청당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갑산파는 1930년대 조국광복회 사건(혜산 사건) 당시 국내 거점 항일무장조직 출신으로 김일성과 함께 집권했으나,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다 1967년 숙청된 박금철, 리효순, 김도만, 허석선 등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들은 실학을 높게 평가하는 등 부르주아 사상, 수정주의,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으며 숙청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67년 숙청된 갑산파는 1930년대 혜산 사건 당시 항일무장조직 출신으로 집권했으나 경제적 수정주의를 내세우고 실학을 높게 평가하여 부르주아 사상과 수정주의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숙청당한 인물들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