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롤랑 제라르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 1915년 11월 12일 ~ 1980년 3월 26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이다.
생애
롤랑 바르트는 1915년 11월 12일 노르망디 셰르부르에서 태어났다. 10대 후반에 폐결핵에 걸리게 되고, 이후 일생에 걸쳐 여러번 요양원을 드나들게 된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소르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파리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했다. 이후 부카레스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대학강사를 하며 보냈고, 1952년 파리의 국립과학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의 연구원이 되었다. 1953년 근대문학의 형성을 다룬 글쓰기의 영도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가 출판됐고, 1957년 일상생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기고문을 모아 엮은 신화론Mythologies이 뒤따랐다. 1962년 고등연구실습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연구책임자로 임명됐다.
1960년대 기호학과 구조주의에 전념했지만(기호학원론 Éléments de sémiologie(1964), 유행의 체계 Système de la mode(1967)), 곧이어 구조주의를 폐기했다(S/Z(1970), 텍스트의 쾌락 Le Plaisir du texte(1973)).
다재다능하여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렸던 바르트는 오브비와 옵투스 L'Obvie et l'obtus(1982)에서 슈만과 톰블리(C.Y. Twombly)를,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 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1980)에서 사진을 다루었다.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문학기호학 교수로 초빙됐다. 바르트의 다방면의 작품들은 고유한 발전과 현실적 위치를 끊임없이 성찰한 결과들이다 (자서전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와 대담집 목소리의 입자 Le Grain de la voix. Entretiens 1962~1980(1981) 참고).특히 그가 쓴 '작가의 죽음'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후에 출판된 작은 사건들 Incidents(1987)에서 동성애를 고백했다(미셸 푸코와 연인관계였다).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 달 후인 3월 26일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상 >> 소쉬르의 구조주의와 비교한 바르트의 포스트구조주의
한 사물의 의미는 그 사물 자체가 지니는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사물의 의미는 전체의 체계와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에 체계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의미 역시 변화한다. 이러한 구조주의는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에 의해 언어학에서 발전되었다. 이는 소쉬르가 언어를 ‘관념을 표현하는 기호의 체계’라고 나타냈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사물이 표시되는 형식(기표, signifiant)과 그 사물의 의미(기의, signifié)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 사물의 의미는 전체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언어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이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주의(structuralisme)이다.
절대적 의미를 찾으려는 구조주의는 상대적이고 불안정함을 지적하며 구조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은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1960년대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e)가 발생하였다. 포스트구조주의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하나의 의미만을 찾으려는 구조주의와 달리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였다. 롤랑 바르트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한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 주자이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와 달리 기표와 결합하는 기의가 단일한 존재임을 부정하였다. 즉, 하나의 기표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저서 [텍스트의 즐거움], [저자의 죽음]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게 진정한 기의의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은 전제된 언어를 버리는 것이다. 전제된 언어를 버리고 나면, 자신이 텍스트에 투영하는 의미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해석이 무한하게 가능한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바르트는 기의가 사회나 혹은 어떤 집단의 신화로서 채워진다는 것을 간파하였고, 프랑스 사회에 자리 잡은 신화들을 파악하려고 했다.
Mythologies (신화론) 1957
'이성’에 ‘자본’이라는 막강한 화력을 더함으로써 근대의 신으로 군림하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유지ㆍ강화ㆍ확대하는 담론들을 생산하여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한 담론들 중, 수 세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현대의 신화가 되었다. 바르트가 주목하고 있는 신화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의 신화인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화는 그 구조에 있어서는 이차적인 기호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의미작용에 있어서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즉 신화는 대상언어 위에 덧씌워진 메타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적인 의미만으로는 다 말하여지지 않는 의도를 그 밑에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은 현대 사회의 일상적 삶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사물들과 현상들 안에 깃들어 있는 신화들의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그 감춰진 의도를, 우리에게 발가벗겨 보여준다.
‘사랑의 단상’의 원제는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이다. 직역하면 ‘사랑 담론의 단편들’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이 책에서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나 수필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글의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영어번역 제목인 ‘연인의 담론’이 저자의 의도에 가장 가깝다는 해석도 있다. 이 글은 독자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랑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분류는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으로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키기를 거부하고, 사랑이라는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하며 고통스러운 욕망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바르트와 revues (학술지)
1952년, 롤랑 바르트는 프랑스 외교 통상부에서 일했던 파리로 돌아와서 그는 Esprit라는 학술지에 "Le monde où l’on catche"을 출간했다. 계속해서 'Combat'와 Maurice Nadeau(모리스 나도)의 Les Lettres nouvelles라는 학술지에는 "Petites mythologies du mois"를 실었다. 그의 짧은 글들은 그를 유명해지게 했고, 1957년 한 권으로 합쳐졌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수필인 글쓰기의 영도는 1953년 출판되었고 빠른 시일 내에 그것은 글의 내재적 논리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비평의 선언으로 간주되었다. 바르트는 학술지 'Communication'과 'Tel Quel'을 만드는 데에 참여했다.
1962년 바르트는 Michel Foucault, Michel Deguy와 함께 학술지 Critique의 첫 번째 편집 위원회로 들어갔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롤랑 바르트가 주장한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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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롤랑 바르트의 사상적 특징인 포스트구조주의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 롤랑 바르트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한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 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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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구조주의와 대비되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성격을 추출한다.
- 포스트구조주의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하나의 의미만을 찾으려는 구조주의와 달리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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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바르트의 구체적인 주장인 '해석의 무한성'과 기표/기의의 관계를 선별한다.
-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와 달리 기표와 결합하는 기의가 단일한 존재임을 부정하였다.
- 자신이 텍스트에 투영하는 의미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해석이 무한하게 가능한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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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단일한 의미를 찾는 구조주의와 달리, 기표와 기의의 단일성을 부정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논리적 연결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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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포스트구조주의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며, 바르트는 기표와 결합하는 기의가 단일하지 않다고 보아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한다.
-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였다.
-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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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포스트구조주의의 특징과 바르트의 구체적 주장을 결합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였다.
-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포스트구조주의는 하나의 진정한 의미만을 찾으려는 구조주의와 달리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특징이 있다. 롤랑 바르트는 기표와 결합하는 기의가 단일한 존재임을 부정함으로써, 텍스트에 투영되는 의미를 포함하여 모든 해석이 무한하게 가능하다는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롤랑 바르트가 주장한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달리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며 해석의 무한성을 특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