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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가장 늦게 대면하는 신·구 권력…역대 사례는 document_id A22062322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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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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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context)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이 대선을 치른 지 19일 만에 이뤄지게 됐다. \n \n 역대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 사이의 회동 가운데 가장 늦은 만남이며, 신구 권력의 첫 회동이 열흘을 넘기지 않았던 이제까지의 관례도 지키지 못했다. \n \n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7일 오전 각각 브리핑을 하고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28일에 만찬을 겸한 회동을 한다고 발표했다. \n \n 만남이 이처럼 늦어지게 된 것은 주요 의제를 두고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공전했기 때문이다. \n \n 실제로 양측은 지난 16일로 한 차례 회동 일정을 잡기도 했지만, 회동 의제로 인사권 문제 등이 불거지며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n \n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들의 첫 회동 사례와 비교하더라도 이번 만남이 얼마나 늦어진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n \n 이제까지 '최장기록'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의 회동이다. \n \n 두 회동 모두 대선 뒤 9일만에 이뤄졌다. \n \n 이와 비교하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역대 최장기록'의 두 배를 넘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첫 대면을 하는 셈이다. \n \n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간 첫 회동은 2007년 12월 28일에 있었다. \n \n 정권교체로 인한 인수인계 과정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등을 두고 마찰을 빚기는 했지만 회동이 대선 후 열흘을 넘기진 않았다. \n \n 대신 양측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듬해 2월 8일 한 차례 더 회동했다. \n \n 다만 두 차례 회동에도 양측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n \n 이 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신·구 권력이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신경전을 계속했고, 더 나아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n \n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간 첫 회동은 2012년 12월 28일에 있었다. \n \n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이 재창출된 사례임에도 과거 대통령-당선인들과는 달리 거의 열흘에 근접할 때까지 회동이 지연된 셈이다. \n 이처럼 회동이 늦어졌던 이유는 당시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n \n 두 사람은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던 2013년 2월 12일, 두 번째 회동에서는 북핵 문제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마주 앉기도 했다. \n \n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에는 크게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n \n 그 중에서도 '정권교체'가 아닌 '정권재창출'을 이룬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과 당선인 간 화기애애한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n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이 치러진 지 사흘 만인 그해 12월 19일 청와대를 찾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다. \n \n 당선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약 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권력 이양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 이어 1988년 1월 5일에 신년 인사차 한 차례 더 만나 정권 인수인계를 협의했다. \n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이 치러진 지 사흘 만인 12월 21일에 만났다. \n \n 두 사람은 오찬을 겸한 회동에서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구체적인 정권 인수인계 절차를 협의하고, 정부이양 과정에 최대한 협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듬해 1월 5일에 새해 인사를 겸해 한 차례 더 회동했다. \n \n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나흘 만인 2002년 12월 23일에 이어 2003년 1월 3일에는 부부동반 만찬을 함께했다. \n 당시에는 최대 국정현안이었던 북핵 문제 대응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n \n '정권교체'가 이뤄졌어도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을 통해 정권 이양을 위한 협력이 활발했던 사례도 있었다. \n \n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이 치러진 지 이틀 만인 12월 20일에 만나 국정협력과 관련한 6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n \n 합의문에는 국제통화기금(IMF) 합의사항 이행을 비롯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복권에 의견을 같이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n 두 사람은 9일 뒤인 12월 29일에도 만나 부부간 만찬을 함께하며 경제난 극복 대책 등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 \n \n 이날 회동에서 매주 화요일에 정례적으로 회동하기로 한 바에 따라 1993년 설 연휴에 껴 있던 1월 27일을 빼고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전까지 총 6번을 더 만났다. 대통령과 당선인 간 총 8차례 회동이 이뤄진 것이다. \n \n 민주화 동지에서 적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손을 잡은 '양김'(金)은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가장 모범적인 협치 모델 중 하나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
지시문 (instruction)
주어진 원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원문에 근거해 질문에 답하라.
질문 (question)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회동이 지연된 이후, 신·구 권력 간의 관계와 그 결과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노무현-이명박 사례에서 회동 지연 이후 발생한 권력 간의 갈등 양상과 최종적인 결과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간의 관계 변화와 관련된 사건들을 추출한다.

    • 이 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신·구 권력이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신경전을 계속했고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갈등의 구체적 내용(국가기록물 유출 논란)과 최종적 결과(검찰 수사 및 서거)를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신·구 권력이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신경전을 계속했고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회동 이후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신경전과 수사로 이어져 비극적 결말로 연결되었음을 통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갈등의 지속과 그로 인한 비극적 종결을 결론으로 도출한다.

    • 양측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갈등의 양상과 결과를 포함하여 서술형으로 작성한다.

    •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신경전을 계속했고
    •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후에도 신·구 권력이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신경전을 지속하였으며,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간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이후 신·구 권력 간의 신경전과 검찰 수사로 이어져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