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그러나 정치가 문학을 압도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문학이 정치 상황 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 당대의 정치 상황이 모순될 때 문학은 오직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판의 강도가 강할 때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시대에는 문 학이 정치의 몫을 감당하기도 한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 프로문학이 그러하다. 수없이 삭제된 문장들과 복자들, 1931년 동북사변 이후 치안유지법 의 강화와 함께 일어난 신간회의 해체와 프로문학에 대한 2차례에 걸친 검거선풍 등이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일제의 탄압과 엄격한 검열체제 아래 작가의 상상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저항의 강도는 엄청난 것 이었다. 그러므로 해방 이전의 상황을 범박하게 ‘나라 찾기’에 초점을 둔다면, 민족주의 문학 계열과 계급주의 문학 계열은 모두 넓은 의미의 ‘저항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한국문학은 ‘국가 상실’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었다. 이 시기 한국문학은 크게 민족주의 문학과 계급주의 문학, 그리고 동반자문 학 계열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계열에서나 의식적이든 심정적이든간 에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라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특히 계급문학운동을 표방하던 카프가 과격한 운동 논리에 빠져든 것도 나라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결과였다. 계급주의 문학이 식민지 국가와 피식민지 국가간의 모순을 민족간의 모순에서 나아가 계급간의 모순으로 파악한 것은, 그 당시 한국 사회를 형성한 주요 담당층인 농민, 노동자, 지식인, 학생 등을 염두에 둘 때 결코 근거 없는 바는 아니었다. 민족주의 문학 또한 심정적인 측면 에서 볼 때 나라를 회복해야 한다는 당위적 과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동북사변(1931) 이후 일본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다. 그에 따라 카프 (KAPF)는 제1차 검거사건(1931)을 비롯, 신건설사 사건(1934)으로 1935년 마침내 해산하게 된다. 이 당시 (구)소련은 이미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창작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었고, 이것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갈수록 강화되는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일본의 나프(NAPF)는 1934년 해산하게 된다. 박영희가 전향선언문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사회사적 및 문학사적 고찰」(「동아일보」 , 1934.1.2.~1.11.)을 발표하고, 또 여러 논자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활발하게 논의를 펼쳤던 것도 모두 일본의 영향이 컸다. 특히 일본에서 발표된 공동전향선언문 공동 피고 동지에 고하는 글 (「개조」 , 1933.5.)은 박영희의 전향선언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제 일본과 조선 모두 군국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문학사에서 전향은 무엇보다 소재가 아니다. 작품에 전향지식인이 나 온다고 해서 전향문학은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전향은 ‘사상적 회심 현상 일반’이 아니다. 전향을 사상적 회심 현상 일반으로 볼 경우 소재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연구는 모두 전향을 소재 차원에서 접근하여 한국문학사에서 전향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 게 규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1930년대 후반 구카프작가들이 맞이한 전향은 우선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사상을 버리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에게 과연 ‘전향’이란 용어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를 근본적으로 질문할 수 있다. 사실 1930년대 후반 임화·안함광의 비평과 김남천·한설야의 소설은 오히려 전향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향은 무엇보다 일제가 좌익지식인을 포섭하기 위한 ‘제도’로서 강요된 것이었다. 바로 여기서 전향에 저항하는 비전향의 계기가 발생한다. 따라서 전향문학 연구는 전향과 거기에 저항하는 지점을 동시에 읽어내야 한다. 친일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신체제시기 문학은 사실상 친일과 거기에 저항하는 계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충돌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친일과 거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저항의 지점을 징후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앞서 제기한 바, ‘전향은 비전향의 본질적인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 다면 ‘전향=친일’의 단순 도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전향’ 과 ‘친일’(천황제로의 귀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여러 층위들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친일’과 거기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러 ‘저항’의 지점들을 동시에 확인하는 것이다. 친일문학 연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보다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전향문학 연구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 대한 인식을 겨냥하고 있다. ‘전향’을 단순히 외적 강제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수입 사상이 일본화 되는 과정에서 생긴 알력”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그 하나의 예다. 즉 ‘전향’을 좌익 지식인이 한때 그들이 무시했던 근대 일본의 열악한 봉건성의 제약에 스스로 굴복하거나 그 봉건성 자체를 동경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 좌익 지식인의 전향에는 그들 이론의 관념성도 작용하였겠지만 국민 대중의 전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 된다. 이것은 따라서 ‘전향’을 단순히 국가 권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하거나 계급적 배반으로 이해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여기서 ‘전향’은 일본의 사상사 전반과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박영희를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그의 전향선언문에 의하면, 그는 1929년 신간회 해소때 카프(KAPF)에 회의하기 시작 했다. 그 뒤 1931년 2월 제1차 카프검거사건때 불기소되었고, 1932년 카프 간부를 사임, 1933년 10월 7일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하였다. 이어 전향선언문을 썼다. 제2차 카프검거사건(신건설사 전주사건) 때는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1934.12), 전주형무소로 갔고(1935.1.), 그곳에서 약 1년 동안 복역하고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그 뒤 사상범보호관찰법에 따라 1938년 6월 동경에서 개최된 전향자대회에 참가하였다. 1939년 4월에는 북지종군에 다녀와 기행문을 썼고, 1939년 10월에는 <조선문인협회> 간사가 되고 창씨개명 하는 등 신체제문학에 협력한다. 1942년 11월에는 이광수 유진오와 함께 동경에서 개최된 제1차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친일 행적 때문에 광복 후 반민족자 명단에 올랐고, 1950년 7월 북한군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프 해산 이후 구카프작가들이 맞이한 전향 상황은 무엇보다 그와 같은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예전과는 다르게 사고할 것을 요구했다. 임화가 ‘정치’ (사상)를 실천이라는 계기를 통해 ‘생활’(사실 또는 일상성) 속에서 주체화하려 했다면, 안함광 또한 동아신체제 같은 왜곡된 ‘정치’에 대응하기 위해 ‘문화’그리고 그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 개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영희는 ‘정치’와는 전혀 무관하게 ‘예술’(문학)의 독자성을 내세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곧바로 전향과 연결지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당시 그의 소설 명암과 수기 독방이 잘 증명해준다. 앞서 우리의 전향문학 연구에서 비평과 작품의 낙차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박영희의 문학론은 아주 원론적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백철의 ‘인간묘사론’에 대한 그의 비판을 살펴보자. 그는 백철의 ‘인간묘사론’이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망각하였다고 비판한다. 물론 박영희는 ‘전형론’(형상론)에 가까운 발언을 한다. 즉 “허다한 과거의 문인들이 인간을 묘사함에서 그 시대와 사회를 표시하였으며, 그 사회를 묘사한 그 중에서 생생한 개별적 인간이 묘출”되었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박영희가 1933년 10월 7일에 카프(KAPF)에 제출한 탈퇴원의 구체적인 사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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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질문은 박영희가 1933년 10월 7일에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했을 때, 그 문서에 명시된 구체적인 탈퇴 사유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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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박영희의 행적과 관련된 연도별 사건들을 추출한다.
- 그 뒤 1931년 2월 제1차 카프검거사건때 불기소되었고
- 1932년 카프 간부를 사임
- 1933년 10월 7일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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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박영희가 탈퇴원을 제출했다는 사실은 명시되어 있으나, 탈퇴원의 내용이나 사유에 대한 정보는 누락되어 있다.
- 1933년 10월 7일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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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문맥을 통해 박영희가 카프 간부를 사임하고 탈퇴원을 제출했다는 시계열적 흐름은 파악할 수 있지만, 탈퇴를 결심하게 된 내부적인 이유나 탈퇴원 자체에 적힌 사유는 결합하여 도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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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이 요구하는 '탈퇴원의 구체적 사유'는 문맥에 언급되지 않은 정보이므로 답을 확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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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음을 최종 답변으로 결정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주어진 문맥만으로는 답을 확인할 수 없다.
분석 (analysis)
문맥에는 박영희가 1933년 10월 7일에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했다는 사실만 명시되어 있을 뿐, 탈퇴원의 구체적인 사유나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식이나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