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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의 '가족 로망스' 개념을 통해 프랑스 혁명과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가부장적 권위의 해체와 사회적 무의식의 변화를 비교 분석한다. doc_id CNTS-00049145042_5

주제 (main_topic)
헌트의 '가족 로망스' 개념을 통해 프랑스 혁명과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가부장적 권위의 해체와 사회적 무의식의 변화를 비교 분석한다.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헌트의 『가족 로망스』는 역사서술장르상 분명 역사의 거대담론을 부정하는 신문화사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로버트 엘리아스의 문명 화 과정처럼 근대사회로의 이행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감수성과 같은 사회적 무의식의 변화를 일정하게 방향 지우는 하나의 거대담론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근대화 과정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단단한’(hard) 근대화와 대비해서 ‘부드러운’(soft) 근대화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헌트는 ‘가족 로망스’라는 개념을 빌어 프랑스의 ‘부드러운’ 근대화 과정을 해명하고자 했다. 헌트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인들이 가졌던 ‘가족 로망스’가 가부장적 아버지의 권위를 해체시켰고, 그 후 전개되는 가족 정치학의 구조를 결정하였다. 이러한 가족 정치학을 가장 적나라하게 구현했던 것이 사드 후작의『규방의 철학』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전성기는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이다.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은 무엇보다도 반체제 운동의 차원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함께 정치비판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또한 역설적 으로 혁명의 진행과정 속에서 포르노그라피는 탈정치화 되었다. 헌트의 이 책 덕택에 우리는 왜 프랑스인들이 절대주의 시대까지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던 국왕을 처형했으며, 그 이후 그들은 어떻게 그들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이드의 개념인 ‘가족 로망스’의 원래 의미는 “이제 자신이 낮게 평가하는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대체로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부모로 대체하고자 하는” 신경증이다. 헌트는 이러한 심리학적 개념을 신문화사적으로 응용하여 “혁명기 정치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가족적 질서에 대한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인 상”을 지칭하는 의미로 전화시켰다. 그녀에 의하면, 당시의 프랑스인들이 가부장적인 권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정체를 만들려는 정치적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희생물로 삼아 공화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나쁜 부모로서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대신에 좋은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화국을 꿈꾸었다. 프랑스 혁명은 샤르티에의 주장처럼 전통의 굴레로부터 인간 의식을 해방시키는 계몽사상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윤리 도덕에 의해 억압당했던 사회의 집단적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부모와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로 형성되며, 이러한 가족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아버지의 법률은 근친상간을 금지하였다. 그런데 아버지를 살해했던 형제들은 아버지의 법률을 무너뜨림으로써 근친상간의 타부를 깼다. 아버지의 법률이 억압했던 그들의 성적 상상력이 해방되었을 때,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동성간의 성관계는 성별의 경계를 소멸시킨다. 이에 따라 아버지의 법률을 근간으로 해서 유지되었던 가족은 더 이상 사회의 최소단위가 아니게 된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는 곧 사회의 위기를 초래한다. 가족의 해체 이후 사회적인 것의 최소 단위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계없이 갖는 성관계를 근간으로 해서만이 성립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도래한다. 이 단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자연적인 성(sex)은 아니며 오직 권력이 성별(gender)을 구분한다. 따라서 이것을 통찰했던 사드가 소설을 통해서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성적 계약이 사회계약의 기초이며 성적 계약은 권력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처럼 우리는 아버지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도 ‘가족 로망스’는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른바 386세대는 그들이 대학생이었던 시절 운동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고 온 몸을 내던졌던 세대이다. 그들은 바로 공지영이『고등어』에서 썼듯이 책꽂이 전체를 한 가지 이데올로기를 내용으로 하는 책들로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던 그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적 아버지를 타파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기성 세대의 진리를 부정하고 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처럼 아버지를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새로운 정체를 세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상징적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사회의 차원에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이른바 ‘X세대’ 라는 또 다른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386세대는 어느새 아버지가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투쟁 대신에 문화적 갈등이 날로 심각해졌다. 아버지 세대에 대항해서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1980년대 죽였던 그들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 이 때 어느 TV 방송국 드라마가 불붙였듯이 ‘애인’ 신드롬이 일어났다. 그들은 강한 아버지이기를 거부하고, 아니 더 정확하게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성과의 연애를 통해 공허한 가슴을 채우고자 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아버지를 죽인 자들은 아버지 없는 콩가루 집안을 형제애를 통해 통합하고자 했다면, 가정 내에서의 자기 역할보다는 사회적 출세를 우선시했던 한국의 아저씨들과 그들로부터 버림받았던 아줌마들은 밖에서의 연애를 통해 ‘가족 로망스’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혁명 후 형제애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계약을 통해 공화국을 건설함으로써 여성을 정치와 사회에서 배제시켰던 것이 프랑스식의 ‘가족 로망스’이다. 이에 비해 1990년 후반의 한국인들은 이른바 하나의 ‘연애 공화국’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국의 ‘가족 로망스’는 페미니즘을 신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거대담론의 종말을 경험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전통적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이 시대의 한국인들은 허무를 쾌락으로 채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이전의 사회적 해방구 대신에 윤리적 해방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광수는 성이야말로 쾌락과 윤리 이전에 행복을 추구하는 인권에 해당한다고 선언하였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서갑숙은 대책없이 성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여성과 더 나아가 대중의 억압된 성욕 자체의 해방을 주장했다. 성을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마지막 통과의례를 졸업할 수 있다고 역설했던 이들과 같은 프리섹스주의자들은 성 욕망의 충족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포르노그라피의 일상화를 부추겼다. 그리고 결국 우리 사회는 영화 「거짓말」을 공공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을 허용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한국 사회에서 ‘부드러운’ 근대성이 그 자신의 속살을 공론의 장에 완전히 드러내는 순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와 함께 성 해방론자는 드디어 혁명에 성공한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의 엄숙주의자들로부터 반격을 당할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는가? 그러나 IMF 위기와 함께 이러한 ‘연애 공화국’도 파산을 맞이하였다. 직장에서 쫓겨난 실직 가장이 설자리는 가정에서조차 없었다.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해서 1996년에 출간된 아버지라는 소설은 출판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죽였던 세대가 IMF 위기를 맞이해서 직장, 사회 그리고 가정에서 버림받는 존재로 전락했던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다시 아버지라는 부재하는 중심을 동경하는 한국판 ‘가족 로망스’의 비극이 나타났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서 사회 병리적 현상은 극에 달했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고아가 되어버린 세대 가운데에서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던 사람들은 ‘막가파’, ‘지존파’와 같은 범죄집단을 조직하여 대체적인 가족을 이루었다. 또한 청소년들조차 이것을 본받아서 ‘일지매’와 같은 불량 써클을 조직하여 그 집단적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대체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형성했다. 그들은 사회전복을 꿈꾸지는 않지만 끔찍한 범죄행위와 일탈적 행동을 통해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반항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을 연대로 해서 그들은 하나의 가부장적 질서를 만들어 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프랑스 혁명기 당시 포르노그라피가 가졌던 정치적 성격의 변화 과정은 어떠한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프랑스 혁명 전후 포르노그라피의 발생 원인과 정치적 성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포르노그라피의 발생 배경과 혁명 시기의 특징을 추출한다.

    •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은 무엇보다도 반체제 운동의 차원에서 생겨났다.
    • 프랑스 혁명과 함께 정치비판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또한 역설적 으로 혁명의 진행과정 속에서 포르노그라피는 탈정치화 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포르노그라피가 반체제 운동에서 시작되어 정치비판의 전성기를 거쳐 탈정치화되었다는 문구를 선택한다.

    •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은 무엇보다도 반체제 운동의 차원에서 생겨났다.
    • 프랑스 혁명과 함께 정치비판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또한 역설적 으로 혁명의 진행과정 속에서 포르노그라피는 탈정치화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포르노그라피는 반체제 운동의 일환으로 탄생하였으며, 프랑스 혁명 시기에 정치비판으로서 정점에 도달했으나,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정치적 성격을 잃고 탈정치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포르노그라피는 반체제 운동 차원에서 발생하여 프랑스 혁명기에 정치비판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혁명의 진행 과정 속에서 역설적으로 탈정치화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포르노그라피는 반체제 운동의 차원에서 발명되었으며, 프랑스 혁명과 함께 정치비판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탈정치화되는 변화를 겪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포르노그라피는 반체제 운동의 차원에서 발명되어 프랑스 혁명과 함께 정치비판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탈정치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