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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구조적 특성 분석과 사회적 계몽 및 기념 방식에 대한 고찰 doc_id CNTS-00049145042_6

주제 (main_topic)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구조적 특성 분석과 사회적 계몽 및 기념 방식에 대한 고찰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루카치는 자본주의에 사는 소설가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뇌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은 뒤집기 수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기를 흙탕물 속으로 던져서 사회를 불편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그 사회 스스로가 자기 반성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고자 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변태적 성행위를 통해서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고 더 이상 호기심과 쾌락을 충족시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면,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불쾌감까지 느끼게 된다.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장면의 연속은 관객들에게 관음증의 쾌락을 주지 못하고, 그것이 거짓의 세계이며 그 행위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각성함으로써 마침내 그로부터 낯설어지는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 관객은 배우에게 감정 이입할 수 없고, 거리를 두게 됨으로써 브레히트가 말하는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가 나타난다. 결국 이 때에 이르러 관객은 비판의 능력을 갖고, 그 영화가 설정하는 스토리 구성을 해체해서 스스로가 영화라는 기표의 기의를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관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영화를 하나의 감정 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앞으로의 만화는 만드는 자와 소비하는 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과 함께 ‘producer’라는 말과 ‘consumer’라는 말의 합성어로 ‘prosumer’라는 새로운 조어가 생겨났다. 디지털화 되는 미래에서 영화에서도 제작자와 관객의 구분은 점점 사라져서 관객은 스스로가 영화를 만들면서 보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를 위해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이버 공간에서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는 관객의 감정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반복적인 변태적 성행위가 쾌락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 시대의 허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존재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관객이 깨닫는 순간 그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계몽’의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요컨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과 관계하는 ‘부드러운’ 근대화를 위한 계몽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칸트의 정의대로 “그 자신이 책임이 있는 (감정의)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계몽의 감정 교육이 정보의 침투를 막는 담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정보화 사회에서 심각하게 요청된다. 광주는 지역 교육의 중심지로서 교육인구에 대한 구심력이 큰 도시이다.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의 수가 52개에 이르고 고등학생 이상의 학생수도 전체도시 인구의 7분의 1이 넘는 11만 여명에 이르고 있어 조직적 밀도가 높아 동원의 하부구조가 잘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밀도에 관한 연구 이외에도 동원된 저항집단들의 교차 결속성의 수준에 대한 연구도 의미 있으리라 여겨진다. 즉, 한 집단이 사회로부터 고립될수록 결속성이 높아지므로 집합행동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고립될수록 조직에 대한 성원들의 충성심이 높아지며 정치적 경제적 보복에 의한 효과가 적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집중은 동질적인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밀집함(예: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노동자들의 집중)으로써 집합행동의 개연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에 대한 분석의 적합성은 보다 많은 자료를 검토한 후에 판단될 문제로 보인다. 광주지역의 근대사를 돌이켜 볼 때 역사적인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연구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한 사회집단 혹은 지역에서 저항적 집합의식이 형성되면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집합행동이 활발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연구들이 있다. 월튼(1992:326)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웬 밸리 지역의 연구를 통해 이전의 투쟁의 경험이 전설과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 그 자체로서 “참여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고 주장한다. 19세기말부터 동학농민전쟁을 비롯한 여러 농민운동 및 1929년의 광주학생의거 등의 풍부한 집합행동의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광주에서 1980년의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사실은 단지 우연이라기보다 역사적 기억에 의한 불의에 저항하는 집합의식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착안한 연구가 가치 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1980년도의 전반적인 사회운동의 상황과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에서 또 다른 기념비적인 사건인 6월항쟁과를 비교하는 것도 광주항쟁 자체 뿐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두 사건을 비교하는데 있어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는 왜 1980년의 저항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1987년의 항쟁은 정치제도의 민주화를 달성하는 길을 열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은 정철희(1995,1996)의 연구를 참고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항쟁의 결정적 차이는 1980년에 미약했던 운동조직의 밀도와 전국적 연결망의 부재로 인해 저항을 민주화로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비해 7년 뒤에는 여러 운동단체의 증가와 전국 규모의 운동조직간의 연결망의 형성과 운동의 목표에 대한 합의로 인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80년의 경험을 거치면서 공개적, 비공개적 운동집단이 형성되었으며 민청련, 민통련, 국민운동본부와 같은 연합단체에 의해 재야, 학생, 종교계의 운동집단들이 연대를 달성하여 결집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차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광주항쟁과 천안문 사태 모두 권위주의 체제의 해체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며, 대학생들의 시위가 발단이 되었다는 점, 무력진압에 의한 대량의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많으므로 비교연구가 의미 있을 것이다. 천안문 사태에 관해서는 칼훈(Calhoun,1995)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칼훈의 분석을 보면 문화적 전통과 억압적 상황까지 유사한 두 항쟁의 비교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칼훈은 유동적이고 무정형한 조직이 북경의 학생운동을 모양 지우고 힘을 가지게 했다고 분석한다. 광주의 경우도 공식성을 갖춘 잘 조직된 조직이 아닌 느슨한 학생조직이 운동의 기반이었다는 면에서 두 항쟁은 유사한 운동의 조직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된다. 한편 칼훈은 운동이 이러한 조직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무질서, 사소한 권력의 남용까지 발생한 것을 천안문 사태의 실패 요인으로 꼽고 있다. 광주의 경우도 항쟁의 규모가 급속히 확장되었지만 이를 담당하는 지도부와 하위 연결망간의 유기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해 행동통일의 여러 가지 장애와 명확한 항쟁의 목표와 초점 잡힌 이슈를 제기하지 못한 점이 하나의 실패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는 면에서 중국과의 비교는 광주항쟁을 진단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 코뮌과 광주 두 사건 다 하나의 도시에서 발생한 무력 투쟁이었으며 많은 희생을 치르고 무력으로 진압되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두 가지 사건을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파리 코뮌에 대한 선행연구가 광주를 연구하는데 기초적인 길잡이가 된다는 면에서 긴요할 것으로 본다. 기존의 파리 코뮌 연구는 이 사건에 프롤레타리아가 주축이 된 전형적인 사회주의 운동인 것으로 보거나 수공업 조합이 동원의 조직적 기반인 것으로 주장해 왔다. 최근의 연구는 도시반란(insurrection)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도시반란의 경우는 수공업 조합이 동원되는 산업투쟁과는 달리 이웃 연결망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는 광주의 경우에도 큰 시사성이 있을 것이다. 광주에서 급속도로 시위의 규모가 커졌던 이유는 개인적이 아닌 일종의 블록충원(block recruitment)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하며 그러한 집단적 충원의 근간이 이웃 연결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이란 왜 있을까? 우리가 도덕을 지켜야 하는 것은 그것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안녕이 유지되고 사회가 보다 나은 상태로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도덕 자체를 위해 도덕을 지키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도덕적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폭격을 하는 것이다. 마치 교회를 가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이비 신도들일수록 일요일에 교회 나오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율법주의자, 형식주의자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도덕적인 행동인지 알 수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부도덕하다고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거나, 보는 시각을 바꾸면 그 사건은 얼마든지 미화될 수 있다. 친척의 취직 부탁을 한 행위가 보기에 따라서 파렴치한 행위가 되기도 하고 매우 당연한 행위가 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어느 유명 인사가 여대생을 추행했다고 비난하는 신문의 또 다른 한편에 어느 물리학자가 말년에 어느 여대생을 죽어라 따라다닌 이야기를 아주 귀엽다는 듯이 그리고 있는 것이 도덕 기준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도덕의 기준이 다를까? 이 점이 핵심이다. 어디서부터 도덕적이고 어디서부터 도덕적이 아닌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두 번째는 동조성의 문제였다. 동조성의 핵심내용은 어떻게 전 국민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로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광주시민의 실천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5․18은 199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기념식을 치르게 되었지만, 광주에서의 참여의 열기는 과거 비공식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들어가고, 공식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식’은 광주와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혀 치뤄지지 않았다는 데서 그 한계를 노출시켰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표는 전국 각 자치단체가 4․19나 다른 국가기념일처럼 자체적으로 국가가 공식화한 5․18 기념식을 가짐으로써 5․18 정신을 기리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보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자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상징적 의미를 갖는 기념식의 경우는 1차적으로 자치단체를 설득하고, 이것이 여의치 못하면 해당 지역의 시민단체가 나서서 기념식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의 차이점을 분석하여 답변을 도출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두 사건의 특징과 차이점에 관한 정보를 문맥에서 추출한다.

    • 1980년에 미약했던 운동조직의 밀도와 전국적 연결망의 부재로 인해 저항을 민주화로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비해
    • 7년 뒤에는 여러 운동단체의 증가와 전국 규모의 운동조직간의 연결망의 형성과 운동의 목표에 대한 합의로 인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사건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는 조직적 측면과 연결망에 관한 근거를 선택한다.

    • 1980년에 미약했던 운동조직의 밀도와 전국적 연결망의 부재
    • 여러 운동단체의 증가와 전국 규모의 운동조직간의 연결망의 형성
    • 운동의 목표에 대한 합의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1980년의 실패 요인인 조직 밀도 부족 및 연결망 부재와 1987년의 성공 요인인 조직 증가, 연결망 형성, 목표 합의를 대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80년은 조직 밀도가 낮고 전국적 연결망이 없어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한 반면, 1987년은 운동단체의 증가와 전국적 연결망 형성, 목표 합의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운동조직의 밀도가 미약하고 전국적인 연결망이 부재하여 저항을 민주화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반면, 1987년 6월항쟁은 여러 운동단체의 증가, 전국 규모의 운동조직 간 연결망 형성, 그리고 운동 목표에 대한 합의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운동조직의 밀도가 미약하고 전국적인 연결망이 부재하여 실패했으나, 1987년 6월항쟁은 운동단체의 증가와 전국 규모의 연결망 형성 및 목표 합의로 민주화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