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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미군정기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까지 좌우익 여성단체의 정치적 활동, 공창제 폐지 운동, 선거 계몽 및 여성의 정치권 진출 과정 doc_id CNTS-00049145606_2

주제 (main_topic)
해방 직후 미군정기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까지 좌우익 여성단체의 정치적 활동, 공창제 폐지 운동, 선거 계몽 및 여성의 정치권 진출 과정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좌 우익 양진영 여성단체의 활동내용을 보면, 모두 활발한 정치활동과 더불어 계몽운동, 공 사창폐지 운동이라는 유사한 활동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성 해방 이념과 정치노선의 차이로 정치활동, 계몽운동 등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사실상 많은 차이점이 있었고 연대활동을 전개할 형편도 아니었지만 공창제폐지 운동에 있어서만은 좌우익 단체가 힘을 모아 공동으로 활동을 펴나갔다. 특히 1946년 ‘부녀자의 인신매매 및 매매계약 금지’ 법령 공포 이후에 결성된 ‘폐업공창구제연맹’에는 부총을 비롯하여 대한여자국민당, 독립촉성애국부인회, 애국부인동맹, 천도교부인회, YMCA, 여자국민회, 한민당 부인회, 여자청년당, 천주교여자청년회, 성병예방협회 등 14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그러나 좌 우익 여성단체의 결말은 매우 상반된 것이었다. 부총(남조선여맹)을 중심으로 한 좌익 여성단체는 결국 소멸된 반면, 후에 대한 부인회로 통합된 독립 촉성애국부인회와 같은 우익 여성단체는 그 활동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이후 우리 나라의 여성단체는 자발적인 결사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등록하고 활동하는 행태 역시 이미 이 시기, 미군정시기에 시작되었던 전통 가운데 하나이다. 신탁통치 반대운동으로 시작되었던 우익여성운동은 독립촉성애국부인회로 통합 되어 조직을 정비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반탁노선을 견지해갔다. 1947년 1월 16일 민주 의원을 비롯한 35개의 우익진영 정당, 사회단체가 반탁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35개 단체 안에는 대한여자국민당, 여성단체 총연맹, 독립촉성애국부인회, 애국 부녀동맹 등 우익여성단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탁운동은 각 정치단체의 가두시위로 발전하여 갔고 과도입법위원 내 41명의 위원들이 반탁을 결의하는 등 자못 격렬해져갔다. 입법의원으로 활동하던 박승호, 박현숙, 황신덕 등여자의원들도 반탁을 결의하였음은 물론이다. 대체로 이승만과 김구 노선을 추종하던 우익여성단체들은 이들이 주도하던 정치단체에 여성대표로 참가하는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해 나갔다. 우익진영의 연합체이며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서 46년 2월 초 구성했던 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에는 대한여자국민당의 부위원장인 김선과 부총무인 황현숙이 참여했다. 임영신은 민주의원 의장인 이승만의 의장비서로 임명되었다. 1948년 5 10선거에 대한 계몽활동 방법은 여성지도자들의 강연과 선거영화 상영 등이었다. 총선거 계몽강사는 김말봉, 황신덕, 고황경 등 당시 여성계의 유명인사들이었다. 영화는 주로 미국대통령 선거실시 상황, ‘위대한 여성 유관순’에 관한 것 등으로 무료 상영되었다. 즉, 이러한 영화를 통해 선거실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친근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유관순의 독립운동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에 대한 자긍심을 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배우고자 하는 여성들의 향학열과 맞 물려 여성의 문맹퇴치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70-80%를 차지하는 여성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일은 일제시기부터 진행된 활동이었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이번 선거에서 여성이 승리할 수 있는 열쇠는 여성들에 대한 문맹퇴치사업 실시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1947년 2월 10일 부총은 제2회 전국대회에서 보다 대중적 조직으로의 확대를 꾀하면서 조직개편을 하였고, ‘남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개칭하였다. 한편 부총 결성 전인 1945년 11월 18일 평양에서는 평양부녀해방동맹 등 여러 단체가 통합하여 ‘북조선민주여성동맹’(이하 ‘북조선여맹’)이 결성되었다. 부총이 1947년 2월 남조선 여맹으로 개칭한 것은, 북조선에서 북조선여맹이 활동을 보장받으면서 여성들의 권익보장조직․교양조직․정치조직으로 조직력을 증강시켜 갈 수 있었던 반면, 부총은 좌익운동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으로 활동이 축소되고 조직력이 약화되어 전국적 지도조직에서 남조선의 여성운동 통일체로서 축소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후, 남조선여맹은 북조선여맹의 지도를 받다가 1948년 단정수립 이후에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대한여자국민당의 박현숙은 당추천으로 과도입법의원이 되었으며 남조선과도입 법의원이 여성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유일한 사례로서 공창제도폐지령(1947.8.8제정, 1947.11.14인준)을 들 수 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처리한 법률 총 33건 중 통과된 18건 중의 하나이다. 군정법률 제7호인 공창제도 폐지령은 ‘일정(日政)이래 의 악습을 배제하고 인도를 창명하기 위하여 남녀평등의 민주주의적 견지에서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매춘행위를 금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조선총독부 경무총독부령 제4호(1916.3)를 폐지하여 동령에 의하여 취득한 윤락업창기가업의 허가 및 동 영법조합 설치의 인가는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공창제도 폐지령은 제126차 회의(1947.8.8)에서 제1, 2독회와 독회와의 간격도 생략하고 전례없이 당일로 통과 시킨 유일의 법률이다.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던 후보들은 무소속 후보자들까지 포함하여 총 948명의 후보자가 나와 평균 4.8대 1의 경쟁율을 보였는데 이중 19(2.0%)명이 여성 후보자였다.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방식은 소선거구제 최다득표제 방식으로 당시에 출마하였던 여성들 중 정당소속으로 나온 사람은 여자국민당의 황현숙과 김선, 한국민주당의 김선 이외 독립촉성애국부인회와 여성단체를 배경으로 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는데 이들 중 19명의 여성후보 중 서대문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활란은 차점으로 떨어진 바 있으며, 여성은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였다. 그 후 재선거와 보궐선거에 3명의 여성후보가 나와 여성으로는 임영신이 1949년 안동 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어 전체의 0.5%를 차지하게 되었다. 임영신은 이를 발판으로 제2대 총선에서 재선되었다. 전국구를 통한 여성의 진출이 맨 처음 있었던 것은 6대 국회에서 민주공화당의 박현숙의원이 유일하면서도 처음이었다. 이어서 7대에는 민주공화당이 이매리를, 야당인 신민당은 박순천을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시켰다. 8대 국회때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4명의 여성을 전국구 의원으로 등원시켰고,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김윤덕을 진출시켜 여성의원 수가 최초로 5명에 도달하였다. 여성의원 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소위 유신정권을 수립하면서 국회의원 선거법을 새로 만들고, 이 법에 의거해서 유신정우회가 생기면서부터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전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 선거인단인 통일주체 국민회의가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때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에서는 10명의 여성을 의원으로 진출시켰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48년 5·10 선거를 앞두고 여성단체들이 실시한 계몽활동의 구체적인 방법과 그 목적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48년 5·10 선거 당시 여성단체가 수행한 계몽활동의 방법과 그 활동이 지향했던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1948년 5·10 선거 계몽활동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1948년 5 10선거에 대한 계몽활동 방법은 여성지도자들의 강연과 선거영화 상영 등이었다.
    • 영화는 주로 미국대통령 선거실시 상황, ‘위대한 여성 유관순’에 관한 것 등으로 무료 상영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활동 방법(강연, 영화 상영)과 각 방법의 목적(두려움 해소, 권리 행사 유도, 자긍심 고취)을 나타내는 문구를 선택한다.

    • 여성지도자들의 강연과 선거영화 상영
    • 선거실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친근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 유관순의 독립운동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에 대한 자긍심을 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방법과 목적을 연결한다. 강연과 영화 상영이 방법이며, 이를 통해 선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권리 행사를 유도하며 여성의 자긍심을 높이려 했다는 점을 정리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구성한다. 방법은 강연과 영화 상영이며, 목적은 선거에 대한 두려움 제거, 권리 행사 분위기 조성, 여성의 자긍심 고취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계몽활동 방법은 여성지도자들의 강연과 선거영화 상영이었다. 그 목적은 영화를 통해 선거실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친근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유도하며, 유관순의 독립운동 영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48년 5·10 선거를 앞두고 여성단체들은 여성지도자들의 강연과 선거영화 상영을 통해 선거 참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권리 행사의 친근감을 유도하며, 여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몽활동을 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