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독일의 경우도 독일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인에 대하여 집단배상방식을 취했다. 제2차세계대전후에 대독유대인청구권회의(Conference on Jewish Material Claims against Germany)와 청구권협상에서 집단적인 배상을 채택하였다. 독일은 제2차대전중외국인의 강제노동과 관련해서, 동유럽 각국에 거주하는 나치피해자인 유대인과 관련해서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정책을 고수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단적 지원방식으로 이행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독일은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서유럽 12개국과 포괄적 보상협정 (Globalabkommen Wiedergutmachung)을 체결하여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피해를 보상하기로 하고 9억 7천 1백만 DM를 지급하였다. 1970년대에는 폴란드가 독일정부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하자 독일은 1973년에 유고, 1975년에 폴란드에 경제적 지원 방식으로 간접보상을 시행하였다. 통일이후 1990년대에 독일-폴란드 화해기금을 시작으로, 동유럽 각국과 화해재단을 출범시켰다. 여기에 지불한 액수는 18억 DM이었다. 독일정부는 강제노동 등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으로 의미를 한정하였다.
이와 같이 외국인이 개인자격으로 특정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해당국가는 정책적으로 그러한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나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나 유대인이 독일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의 개별적인 청구권을 부인하는 대신에 해당정부는 대체로 외국인의 권리를 집단적으로다루어왔다. 한 국가안에서도 인종적으로,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특정가능한 소수자들을 집단으로 묶을 수 있다. 국가권력이 특정한 민족이나 부족, 종교집단의 구성원들을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박해한 때에는 그러한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은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집단은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보유해야 집단으로서 권리(group rights)를 행사할 수 있고, 집단적 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국가폭력의 희생자 집단을 보건대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예는 거의 없다. 특히 민간인 집단살해의 피해자들 사이에는 우연한 대중(mass)에 가깝거나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거나 보도연맹원이라는 점 이외에는 집단으로서 묶어줄 고리가 없다.
좌우익논쟁 속에서 피해자들이 좌익이었다거나 정치적으로 특정견해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기준으로 집단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지의 유족회 역시 집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집단소송(class action)의 당사자의 일부이고, 이해당사자의 집합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처지 임에도 집단적 배상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학살장소에 추모비를 세우는 것 이외는 별 방법이 없을것이다. 따라서 집단배상은 한국사회에서 과거청산방식으로는 합당치 않다. 숫자가 많아서 집단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집단배상의 핵심적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집단배상이 시도된다면 전국각지의 기념공원 건설 붐이 야기될 것이다. 그 이상의 현실적인 집단배상은 어려울 것이고, 형식적인 기념사업정도라면 그것은 이미 배상의 수준이 아니라 진사방법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모든 문제를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국가범죄의 결과를 제거하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왜 사회주의적인 공짜방식을 강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범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공민권제한 등의 공법적 규제는 범죄자 개인에게 가해진다. 반면 배상책임은 형식적으로 불법행위의 귀속주체인 국가에 있고, 본질적으로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전체에게 있다. 국가의 배상책임은 국가예산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일부 공직자나 국가기구 종사자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무관한 국민들이 부담을 지게 되었다는 주장을 접하게 된다. 책임의식에서 심각한 속물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도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에 연관된 책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과오는 당연히 국가에 귀속되고, 국가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한편 그러한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는 일반국민도 역시 도덕적 책임 또는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국가의 행위는 결국 국민의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배상책임을 이행함으로써 국가범죄자는 법적 책임을, 여타 국민은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배상책임은 본격적으로 국가예산에서 추궁되어야 한다. 만약 국가재원 대신 개인이나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존해서 배상한다면 국가나 국민이 국가책임을 진지하게 인정했다고 볼 수 없다. 과거청산에서 배상은 국가와 국민이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때에만 배상적 정의의 본질적인 의미가 구현된다. 정부재정 이외에도 법적으로 도의적으로 국가범죄에 연관되어 있는 기업들이 반성적 의도에서 배상기금을 출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고 보완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강제노동에 관여한 기업들의 책임을 묻기 위한 1999년 7월 15일에 헤이든(Hayden)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법은 강제노동에 관여한 기업들에게 심각한 압박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여파로 2000년에 독일정부와 독일기업은 미국에 거주하는 유태인 생존자들과 청구권협상에 따라 설치하게 된 <기억, 책임, 미래 재단(Stiftung Erinerung, Verantwortung, Zukunft)>에 각각 50억 마르크를 출연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강제 노동을 이용하였던 일본기업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지도자들이 착복한 재산도 배상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경우처럼 외국의 비밀계좌를 찾아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국가들은 대체로 과거 독재권력이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의 결과를 말끔히 청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원을 갖지 못한다. 캄보디아처럼 대량학살을 저지른 때에는 특히 그렇다. 석유 매각대금을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라크가 아마도 드문 사례이다. 르완다나 이디오피아와 같은 가난한 국가는 사적인 기부나 외국의 기부를 배상기금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에 설치된 유엔의 고문피해자지원기금(United Nations Voluntary Fund for Victims of Torture)도 가난한 국가의 고문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대량의 인권침해행위를 일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결국 피해자의 규모, 시간요소(시효문제) 등을 감안할 때 피해를 일일이 산정하여 완전한 배상을 제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일괄해서 배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액수는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겪은 고통이나 피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부분배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중에서 강제로 수용된 일본계 미국인 생존자에 대하여 20,000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민권법(Civil Liberties Act of 1988)을 제정하였다. 대통령의 사죄문과 해당금액이 지급되었다. 물론 너무 늦게 너무 적게 지급된 배상금이지만 수용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브라질에서는 군정통치기간에 많은 실종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행과정에서 타협적인 사면법을 제정하고 실종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를 위해 1988년에 헌법에 규정을 마련하였다. 또한 1995년 의회는 정치적 저항활동가의 가족들에게 관련자당 100,000-150,000 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인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채택한 배상 방식의 특징과 그 과정에서 시행된 구체적인 사례를 서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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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독일의 외국인 대상 배상 방식의 특징과 구체적 사례를 추출하여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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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독일이 외국인에 대해 취한 방식과 관련 협정, 지급 금액, 지원 방식을 확인한다.
- 독일의 경우도 독일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인에 대하여 집단배상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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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집단배상 방식 채택, 서유럽 12개국과의 포괄적 보상협정, 폴란드에 대한 경제적 지원, 화해기금 사례를 선택한다.
- 대독유대인청구권회의(Conference on Jewish Material Claims against Germany)와 청구권협상에서 집단적인 배상을 채택하였다. 독일은 제2차대전중외국인의 강제노동과 관련해서, 동유럽 각국에 거주하는 나치피해자인 유대인과 관련해서 배상책임을 부정하는 정책을 고수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단적 지원방식으로 이행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독일은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서유럽 12개국과 포괄적 보상협정 (Globalabkommen Wiedergutmachung)을 체결하여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피해를 보상하기로 하고 9억 7천 1백만 DM를 지급하였다. 1970년대에는 폴란드가 독일정부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하자 독일은 1973년에 유고, 1975년에 폴란드에 경제적 지원 방식으로 간접보상을 시행하였다. 통일이후 1990년대에 독일-폴란드 화해기금을 시작으로, 동유럽 각국과 화해재단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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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독일은 개별 청구권 대신 집단배상 방식을 취했으며, 이는 협정 체결, 간접 보상, 화해 기금 조성 등의 형태로 나타났음을 통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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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독일은 외국인에 대해 집단배상 방식을 취했으며, 서유럽 12개국과의 보상협정, 폴란드에 대한 경제적 간접보상, 동유럽 국가들과의 화해재단 출범 등의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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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독일의 배상 방식 특징과 사례를 정리하여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독일은 외국인에 대하여 개별적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대신 집단배상방식을 취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서유럽 12개국과 포괄적 보상협정을 체결하여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에게 9억 7천 1백만 DM를 지급하였다. 또한 1970년대에는 폴란드에 대해 경제적 지원 방식의 간접보상을 시행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독일-폴란드 화해기금을 시작으로 동유럽 각국과 화해재단을 출범시켜 18억 DM를 지불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인 피해자들에 대해 개별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집단배상방식을 채택하였으며, 서유럽 12개국과의 포괄적 보상협정 체결 및 동유럽 각국과의 화해재단 출범 등 간접적·집단적 지원을 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