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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지역의 역사적 행정 구역 변천과 고대 유적 및 고분 발굴 조사 결과 doc_id CNTS-00074217444_2

주제 (main_topic)
울진 지역의 역사적 행정 구역 변천과 고대 유적 및 고분 발굴 조사 결과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고려시대에는 성종 14년(995)에 전국을 10도(道)로 나눌 때 강원도의 대부분이 삭방도(朔方道)가 되어 울진은 삭방도에 소속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지방제도의 개폐를 거쳐서 현종 때(1009~1031)에 5도양계제(五道兩界制)로 정리되었다. 이때 지금의 강원도 지방은 대체로 태백산맥 동쪽지역은 동계(東界)로, 서쪽지역은 교주도(交州道)로 분리되었으며, 울진은 동계에 소속되어 명주의 관할을 받았다. 울진은 군에서 현으로 강등되어 현령을 두게 되었으며, 강등된 시기는 현종 9년(1018) 지방제도 개편 시로 추정된다. 정종 2년(1036)부터 동계(東界)로 불려 지며, 문종 1년(1047)에 동북면(東北面)으로 명명되었다. 명종 8년(1178)에는 강원도 지방의 대관령 동쪽은 연해명주도(沿海溟 州道)로서 서쪽은 춘주도(春州道)로 하였으며, 이후 춘주도가 동주도(東州道)로 되었다. 또 경상도 예주 영양군 소속인 수비부곡은 문종 때(1046~1086)에 잠시 울진에 이속시켰다가 다시 영양군에 복구시켰다.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 지방제의 대대적 개편 시 울진현은 강원도 삼척도호부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세종 때(1418~1450)에 양계와 각 도 연변의 군사적 요지를 상·중·하긴(下緊)으로 구분할 때 울진은 하긴(下緊)이 되었다. 또 당시까지 울진은 삼척도호부에 소속되었으나, 세조 12년(1466)에 진관체제의 확립에 따라 강릉부진관에 이관되었으며, 울진포에 수군만호가 배치되었다. 강원도는 인조 때부터 원주에 중영(中營), 철원에 좌영(左營), 삼척에 우영(右營)을 설치하였으며, 울진현의 울진 포진은 우영이 설치된 삼척부의 삼척 포진(三陟浦鎭) 관할 하에 두었다. 울진 포진은 원래 울진군 울진읍 현내동 고현포에 토성을 쌓아 설치하였는데, 1512년 근남면 수산리 비래봉에 석성을 쌓아 이축하였다.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했으며, 1627년(인조 5)에 폐지되었다. 2011년 이곳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조선시대 구 2기, 석군 5기, 집석유구 2기, 수혈유구 3기 등이 조사되었으며, 이는 해자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1403년(태종 3)부터 울릉도에 거주하는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쇄환정책(순심·쇄출정책)이 실시되었다. 이후 17세기 말에 들어와서는‘수토정책’이 시행되는데,‘수토(搜討)’는‘수색하여 토벌한다’는 뜻이다. 이는 1693년(숙종 19) 안용복의 일본 도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며, 1694년(숙종 20) 무신 장한상을 처음으로 울릉도에 보내어 수토케 하였다. 그리고 강원도의 삼척 영장과 월송 만호가 교대로 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하도록 법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고종 32년(1895) 5월 26일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칙령 제 98호로 조선8도제도(朝鮮八道制度)가 23부제(府制)로 시행되면서 강원도의 명칭은 일시 중지되고 춘천을 중심으로 한 영서지역에는 춘천부(春川府)가 설치되었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역에는 강릉부(江陵府)가 설치되어 2개의 부(府)로 분리된다. 당시 읍격을 일률적으로 모두 군으로 하였기 때문에 울진현도 울진군으로 변경되어 읍격이 높아졌다. 이때 울진군은 강릉부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고종 33년(1896)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3도제(道制)가 실시됨에 따라 강릉부와 춘천부가 합쳐져 강원도로 복칭되어 울진군은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다. 울진 지역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그 기록이 전무하여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조사 성과로 판단할 때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 초 사이에 진한이 성립한 것과 연계되어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에서도 소국이 형성된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울진현 지역에 소국이 형성되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으나, 진한 12국 중에‘우중국(優中國)’이라는 소국이 있다. 이 소국을 학계에서는 울진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이‘우중국’은『한원』에서는‘우유국(優由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삼국유사』에서 울진 지역을‘울진국(蔚珍國)’ 또는‘울진대국(蔚珍大國)’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서도 울진 지역에‘국(國)’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원삼국시대 울진 지역은 우중국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경주 사로국 중심의 진한연맹체에 편입되어 있다가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에 경주의 사로국(신라)에 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Ⅰ구역 1지점 추가부지 1호 토광묘는 북서-남동으로 뻗은 Ⅰ구역 1지점 주능선 말단부 해발고도 약 13.2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북쪽 약 6m 거리에 Ⅰ구역 1지점 추가부지 2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묘광은 사암인 풍화암반층을 장방형의 형태로 굴착하였다. 장축방향은 N-21°-E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축조하였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215㎝, 너비 86㎝, 깊이 75㎝이며, 평면비는 약 2.5:1이다. 묘광 내부에서 목관이 조사되었으며, 목관 주변으로는 두께 15㎝ 정도의 회곽이 확인되었다. 목관의 규모는 길이 176㎝, 너비 30㎝, 두께 4㎝, 회곽의 높이로 추정한 목관의 높이는 약 53㎝이다. 목관 상부에는 두께 2.5㎝ 정도의 횡대 2매가 확인되었다. 목관의 천판을 제거하자 인골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잔존한 인골로 추정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65㎝이다. 내부 퇴적토는 명갈색사질점토 단일층으로서 점성이 약하고 세사립 및 석립이 혼입되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4호 목곽묘는 Ⅱ구역 4지점 조사구역 동쪽 경계부분에 위치하며, 북에서 남으로 뻗은 완만한 구릉사면사면 해발고도 14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남쪽으로 약 3m 거리에 5호 목곽묘가, 동쪽으로 4m 떨어진 범위 내에 49·50·51호 묘가 분포하고 있었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서 장축방향은 N-82°-E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330㎝, 너비 150㎝, 깊이 50㎝이다. 충전토의 범위로 추정되는 목곽의 규모는 길이 225㎝, 너비 86㎝, 잔존 높이 24㎝이며, 목곽의 평면비는 약 2.6:1이다. 목곽은 완전은 부식되었으나 점토 바닥에 부식흔이 잔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물은 양단부장 되었으며, 서단벽 앞에서 고배와 호류가 부장되고, 동단벽 앞에서 파수부대부완, 대부장경호, 컵형토기가 부장되었다. 3호 목곽묘는 Ⅱ구역 4지점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오는 중앙부 해발고도 13m에 조성되었다. 유구의 남쪽으로 3m 떨어져 66호 묘, 7m 떨어져 64호 묘가 위치하고 있었으며, 동일 주구의 범위 내에 속해 있다. 주구는 주구중복군 3과 연결되어 유구의 주위를 원형으로 감싸며, 위치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서 장축방향은 N-60°-E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335㎝, 너비 115㎝, 깊이 30㎝이다. 충전토의 범위로 추정되는 목곽의 규모는 길이 275㎝, 너비 75㎝이다. 양단벽 앞쪽에 지름 30~50㎝의 원형의 홈을 파고 장방형 할석을 매납하였는데 이는 목곽을 고정하였던 용도로 판단된다. 유물은 양단벽 충전토 안쪽으로 양단 부장하였으며, 북동단벽 일원에서 파수부대부완, 장경호, 대부장경호, 컵형토기, 방추차, 남서단벽에서 고배 4점, 대부장경호, 발형기대, 파수부호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중앙에서는 목곽 또는 목관 상부에 부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배 1점이 출토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조선시대 울진 포진에 주둔했던 인원의 구성은 어떠하였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울진 포진에 주둔했던 인원의 구체적인 구성(직책 및 인원수)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울진 포진의 주둔 인원과 관련된 정보를 문맥에서 추출한다.

    •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했으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주둔 인원의 구성을 명시한 문구를 근거로 선택한다.

    •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했으며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했음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울진 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조선시대 울진 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이 주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