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청원루는 1618년경에 김상헌이 지은 것으로 건립 시기와 건립 주체가 거의 분명하고, 건립 주체가 조선 후기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청서파의 영수라는 점, 안동김씨 중에서 장동김씨라고 불리는 재지사족이라는 점으로 보아 청원루의 인문적 가치 및 역사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청원루는 김상헌이 은거하면서 쉬고자 누형식으로 지은 별서 개념의 살림집이다. 이와 같은 청원루는 평면구성과 규모, 세부 기법이 다른 예보다 많이 뛰어나 보존할 만한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안동지역 반가의 안채는 대부분 ‘ㅁ’자형이 일반적이다. 청원루의 ‘ㄷ’형은 일부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안동지역 살림집의 안채의 간살이와 규모와 다른 독특한 구성을 잘 드러난다. 특히 청원루는 대청 좌우의 온돌방 전면으로 누마루를 달아내어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ㄷ’자 평면의 별서 건물도 드물지만 누정건축으로도 귀하며, 또한 17세기 재지사족의 생활행태가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청원루는 재지사족의 건축형태를 엿볼 수 있는 시대성과 계층성이 반영되어 있어 학술 가치가 높은 건물로 판단된다.
청원루는 김상헌의 증조부 안동김씨 12세손 김번(金璠, 1479∼1544)에 의해 1520년 경살림집으로 창건되었다가 1618년(광해군 10)경 김상헌에 의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중창된 것이다. 청에 저항했던 김상헌의 행적에 비춰 청원루라는 당호를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청원’이란 말은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에서 취했다고 한다. 주돈이는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였는데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집하면서 꼿꼿한 선비상을 지켜왔기에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이라는 구절에서 누의 명칭을 청원으로 호칭하였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김상헌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의 실질적인 시발점에 해당하는 인물로 그의 후손들은 삼수육창으로 대변될 정도로 유명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하기를 반대한 대표적인 공신으로 82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굵직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한양에서 생활하지만 자신의 고향에 뿌리를 두기 위해 고향에 집을 짓고 생활하였던 당대 재지사족의 살림집으로 일종의 별서건축이다.
청원루는 원래 김상헌의 증조부인 안동 김씨 12세손 김번에 의해 1520년 경 살림집으로 창건되었다가 1618년 김상헌에 의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중창된 것이다.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 소산마을 내 위치한 청원루는 ㄷ자형 평면으로 좌우대칭적인 모습으로 전면에 누마루를 배치한 누 형식의 살림집이다. 김상헌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의 실질적인 시발점에 해당하는 인물로 그의 후손들은 삼수육창으로 대변될 정도로 유명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하기를 반대한 대표적인 공신으로 82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굵직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청원루는 재지사족의 별서건축 역할을 한 살림집으로서 강직함으로 대변되는 김상헌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직선적이며 간살이가 넓은 조형성을 갖춘 당당한 건축이다. 한양에서 생활하지만 자신의 고향에 뿌리를 두기 위해 고향에 집을 짓고 생활하였던 당대 재지사족의 살림집으로 일종의 별서건축에 해당한다.
청원루의 평면구성은 중앙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누마루 형식의 날개를 펼친 ㄷ자형의 평면으로 전체 16칸이다. 중앙 에 육간대청을 두고 좌우 온돌방이 각각 2칸씩 4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날개 모양으로 정면 1칸반 측면 2칸의 누마루를 달아낸 형식이다. 마당은 2단으로 구성하여 공간을 구획하고 있으며 상단의 마당은 외벌대만 1단 쌓은 높이로 올렸고, 좌우 대칭형태의 좌우 누마루 하부에는 낮은 기단을 두었다. 중앙 대청은 동일한 형식으로 자연석 바른층쌓기 방식의 높은 기단을 더 올려 전체적으로 마당에서 우러러 보는 방식을 취했으며 중앙 대청의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중앙 대청과 누마루를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는데 대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육간대청이지만 좌우에 연접한 누마루는 기존 방보다 반퇴씩 가운데 마당으로 나와 각각 정면 1칸반 측면 2칸의 3칸 규모로 대청과 같은 높이로 연결되어있다. 특이한 것은 마당에서 출입하는 대청 전면 우물마루의 첫 열은 관아 내아의 대청과 유사하게 한 단 낮은 높이로 구성하였다. 마루의 하부는 대청 아래는 고막이를 설치하였고 좌우 누마루의 하부는 대문간 쪽 각 1칸반을 창고로 구성하였으며 나머지 칸반은 비워 연접한 온돌방에 불을 피울 수 있도록 함실아궁이를 설치하였다.
청원루는 좌익사ㆍ우익사를 중층으로 꾸미고 몸채 부분 기단을 높게 조성한 후 단층으로 앉힌 다락집 형상의 ‘ㄷ’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 청원루의 평면구성은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좌우측 전면으로 2칸 규모의 누마루를 들였다. 몸채 부분은 정면 3칸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 측면에 온돌방을 둔 전형적인 중당 협실형(夾室形)이며, 특히 대청의 바닥은 전면 부분에 60㎝ 정도 폭을 1단 낮게 하여 마루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원루는 전체 16칸 규모로 대청이 3×2칸으로 6간이며 좌우 온돌방이 각 2칸씩 4간, 좌우 누마루가 각각 2×1.5칸으로 6간이다. 누마루는 전면에서 봤을 때 2칸으로 보이지만 간살로는 온 칸과 반 칸퇴가 더해진 1.5칸이며, 툇기둥은 없지만 퇴를 통해서 대청과 연결된다. 대청과 방의 좌우 간살은 9자이며 앞뒤 간살은 7자로 차이가 있다. 누마루는 좌우 간살은 1.5칸으로 12자, 앞뒤 간살은 9자이다. 누마루를 특별히 한 칸의 간살을 크게 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간살의 설정은 일반 건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좌익사·우익사의 누마루는 내측으로 궁판에 풍혈( 穴)을 둔 난간을 세워 개방하고, 정면과 측면은 판벽(板壁)에 판장문(板牆門)을 달아 개폐하도록 했다. 좌우 익사의 마루 밑은 전면 칸에 곳간을 두었고, 뒤쪽에는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대청마루 정면 기둥은 원기둥이며, 상부에는 길고 날카로운 초익공을 끼워 주두를 물도록 했으며, 내측은 보아지가 대량을 받게 하였다. 창방과 도리받침장혀 사이는 소로를 끼워 상하부재를 결속하도록 했는데, 좌우 익사는 창방을 사용하지 않고 행공첨차를 끼워 도리받침장혀를 받도록 했다. 따라서 대청과 좌우 익사 기둥 상부는 결구방식이 다르다. 청원루 대청 상부의 가구는 오량이며, 온돌방 상부의 가구도 오량이고, 좌우 익사 누마루는 3량이다. 대들보는 곡재를 사용해 상부 하중을 받도록 했다. 누마루의 대들보는 직선재 사용해 대청의 대들보와 다른 공간감을 제공한다. 누마루 전면 부분은 가운데 기둥과 대들보 사이를 연결하는 충량을 걸었는데 충량 뒷뿌리가 대들보 위에 결구하지 않고 판대공 중앙을 관통시켜 결속시킨 것이 독특하다. 충량 위 가구가 3량이기 때문에 외기는 없고 동자루를 세워 종도리 뺄목을 받도록 했다. 처마는 한식기와를 올린 홑처마이며, 지붕 형태는 기본적으로 팔작지붕을 따르고 있다.
세부 의장은 전체적으로 장식을 억제하고 간결한 구조재로만 짜서 튼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몸채와 날개채 모두에 고주나 퇴주를 쓰지 않고 전후면에만 평주를 걸어 간략한 상부 가구 짜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몸채와 날개채에서 ㄷ자로 만나 이루어진 안쪽 ㄷ자 부분만을 정면으로 보아 이 부분에만 날카로운 쇠시리를 갖는 초익공을 두었다. 이렇게 초익공이 있는 정면부에는 기둥 머리에 창방을 끼우고, 주상에는 주두를 놓고 주간에는 소로를 두어 장혀와 도리를 받치고 있다. 그 외에 날개채의 전면부와 바깥쪽으로 둘러싸는 ㄷ자면은 모두 창방과 주두, 익공 등이 없이 간단한 민도리 집으로 꾸몄다. 처마도 집 전체에 걸쳐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마감하였다. 이처럼 청원루는 지극히 제한 적인 부분에만 장식이 가해졌을 뿐 매우 소박하고 간결한 구조체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창호와 머름 등의 수장 부분에서도 반복된다. 날개채의 전면과 바깥면 벽에는 하부에 머름을 들인 널판문이 매칸마다 하나씩 있는데, 머름의 높이가 일반적인 살림집의 머름에 비하여 높고, 구성 부재 역시 치수가 크고 장식이 없이 간결하다. 문짝도 모두 널판문으로 하였고, 다만 몸체 양단에 있는 온돌방에서만 전면(날개채의 마루로 면한 면)과 측면에 세살문을 두었고, 가운데 대청에 면하는 면에는 분합문과 세살문을 두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청원루의 당호인 '청원'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배경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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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청원루의 명칭 유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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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청원'이라는 명칭의 출처와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청원’이란 말은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에서 취했다고 한다.
- 주돈이는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였는데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집하면서 꼿꼿한 선비상을 지켜왔기에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이라는 구절에서 누의 명칭을 청원으로 호칭하였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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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명칭의 유래가 된 인물, 문헌, 구절 및 그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는 근거를 선택한다.
-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
-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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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연꽃을 군자에 비유한 점과 '향원익청'이라는 구절을 연결하여, 외부 압력에도 원리원칙을 지키는 선비의 정신이 명칭에 반영되었음을 통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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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청원이라는 명칭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외부의 압력 속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꼿꼿한 선비상을 지키는 모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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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청원이라는 명칭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유래하였다. 주돈이가 연꽃을 군자에 비유한 것에 근거하여,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꼿꼿한 선비상을 지켜내는 모습을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라는 구절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청원이라는 명칭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유래하였다. 주돈이는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였는데 어떠한 외부의 압력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원리원칙을 고집하면서 꼿꼿한 선비상을 지켜왔기에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이라는 구절에서 누의 명칭을 청원으로 호칭하였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