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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건축적 특징 및 자연경관과의 조화미 doc_id CNTS-00118870725_20

주제 (main_topic)
경포대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건축적 특징 및 자연경관과의 조화미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685년(숙종 11)에는 부사 목임유, 1700년(숙종 26) 부사 허영, 1721년(경종 1) 부사 신탁이 중수한 사실은 중수임영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동시기 여러 편의 중수기에서 공통적으로 1743년(영조 17) 부사 조하망의 중수를 언급하고 있다. 중수임영지 에 의하면, 조하망은 건물의 방위를 고치고 주춧돌을 다시 놓았다고 한다. 이때 지은 경포대는 “가운데 여섯 기둥을 세우지 않았고”, 주방을 곁에 둔 것으로 나타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문만으로는 불분명하다. 이 무렵의 경포대 모습은 김홍도, 이방운이 그린 그림이 전하고 있다. 세부는 불확실하지만 높은 언덕 위에 정면 3칸 정도의 네모반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1873년(고종 10) 부사 이직현이 공사를 벌여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지었다. 1860년(철종 11), 1866년(고종 3)에 강릉지역은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는데 경포대에도 피해가 미쳐 이때 이르러 중수 공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직현은 강릉부사로 부임하기 직전에 청풍현감으로 재직하며 한벽루, 금남루, 팔영루 등을 중수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 사방 5칸 규모로 확장한 시기도 이때로 보고 있다. 그 뒤 1897년(광무 1) 부사 정헌시가 25칸 규모를 그대로 두고 내부에 층루 한칸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남규(1855~1907)가 지은 경포대중수기에 “정사(亭榭)의 규모는 대략 몇 개의 영(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에는 모두 다락이 있었으나 다만 동쪽의 다섯 영에만 없었다. 이번에는 그 가운데의 세 칸에다 다락을 올렸는데, 전의 다락에 비하여 높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 각각 층루(層樓) 한칸씩을 만들었는데, 남쪽은 이름하여 득월헌이라 하고, 북쪽은 후선함이라고 하였다.”는 기사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포대는 1873년 현재 규모로 확장되었고 당시 기본골격을 유지하면서 1897년에 들어서 득월헌과 후선함을 부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의 변화는 일부 시설을 없애며 탁 트인 누대로 변화하며 지금에 이른다. 수차례 중수된 경포대의 중수 시기 중 특이한 때는, 첫째, 중종 3년(1508) 강릉부사한급이 이건한 것과 중종 19년(1524) 강릉부사 박광영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수한 사실이다. 1524년 경포대가 화재로 소실된 이후 1571년 중수 되었다고만 전하며, 그 중간의 사실을 확인 할 수 없다. 그러나 화재 이 후 기록 중에서 율곡 이이의 10세작(1546년 경)으로 알려진 경포대부 에 의하면, “화재 뒤의 건축이라 전날의 화려했던 건물을 잃어버림이 애석하지만 물 가운데 난장(蘭漿)·계도(桂櫂)에는 누가 옛날처럼 고운 미인을 실을 것는가”라는 구절이 있는 점으로 보아 화재 이후 재건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옛 화려함을 되찾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조 6년(1628) 강릉부사 이명준이 온돌방과 마루방을 철거한 기록이다. 부사 이명준은 사객의 숙식으로 인한 화재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당시 강릉부사는 소실된 관사의 중건에 동원되어야 할 부민들의 접빈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줌과 동시에 관사를 화재로부터 예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온돌방과 마루방을 철거하던 것으로 보인다. 경포대 관련 여러 기록을 보면 경포대의 건축형태는 시기별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규모를 늘리거나 특정 시설을 없애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 세부를 고쳐가다가 조선말기엔 지금의 모습으로 대폭 달라졌다. 기문이 여럿 전해지기는 해도 글의 특성상 건축형태나 규모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별 변화상을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1628년 중수 과정에서 온방과 양실을 철거했다고 하므로 당시 경포대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1708년 관동속록에는 “담과 벽이없이 지나가는 선비가 머물 수 없다.”고 하고 있어 누대 전체가 트인 마루였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지금 경포대 건물은 1873년 중수 공사로 지은 모습이 남아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모두 원기둥에 기둥 머리는 조선말기 시대특징을 보여주는 이익공 공포를 짜서 결구하였다. 경포호를 면한 동쪽이 정면에 해당한다. 다른 삼면에 비해서 동쪽면은 바닥을 한단 높이고 다시 남쪽과 북쪽 끝의 한 칸씩은 바닥을 더 높여서 조망에 유리하도록 고안한 점이 특이하다. 특별히 이렇게 높인 부분은 당호까지 붙여 부른다. 득월헌, 후설함이 그것이다. 건물 진입은 남쪽과 북쪽을 이용하게 되어있으며, 각각 측면을 개방하여 흙바닥으로하고 계단을 두어 마루로 오르도록 하였다. 계단 양 옆은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서쪽면의 남북 각 1칸에는 판벽이 남아 있다. 현재 건물은 익공의 살미 끝이 날카롭게 곡선을 이루고 꽃잎이 화려하게 치장되어있고, 화반에도 꽃이 활짝 핀 모습을 장식적으로 처리하는 등 조선말기의 시대 특징이 드러난다. 평면 구성에 있어서도 1873년 중창한 모습을 기본으로 삼아 1897년에 내부에 다락을 부설한 모습을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19세기 후반에 다시 지은 시대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경포대와 경포호수 주변의 뛰어난 경치에 대해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 에서 강원 영동지방 팔경 중에서도 제일경(第一鏡), 즉 가장 으뜸으로 꼽았다. 이처럼 강릉 경포대를 최고의 명승지로 인식했던 이유는 경포대라는 누대 건물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본것이 아니라 경포호수 그리고 그 주변 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들과 잘 어울려진 우수한 조화미 때문일 것이다. 경포대는 호수와 동해바다를 면하고 있는 동쪽 면이 주 정면이 되도록 앉혀져 있지만, 전면의 절벽으로 인해 정면으로서의 시각적인 인식이 어렵고 또 주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남측면 합각면을 먼저 인식하기 때문에 탐방객들이 누각의 축과 향에 대해 혼란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누각의 내부에 발을 들이는 순간 호수와 바다 쪽으로 시선이 쏠리면서 외부에서 가졌던 배치에 대한 혼란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것이 경포대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의 우수한 조화미라고 판단된다. 강릉 경포대는 관동지방 최고의 도시 강릉을 대표하는 누대로써 고려 시대인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안렴사(按廉使) 박숙(朴淑)이 인월사(印月寺) 터 부근에 창건하였고, 1508년(중종 3) 부사 한급(韓汲)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와 중건을 거쳤다고 전한다. 경포호의 북쪽 언덕에 자리한 경포대는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고, 또 경포대와 어우러진 경포호는 절경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30일 명승 제108호(“경포대와 경포호”)로 지정되었다. 경포대의 내력에 대해 여러 설이 있고, 기록 또한 다양하며 기록의 근거조차 구전에 의한 바가 많아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 경포대라는 이름은 1326년부터 확인되며 늦어도 1508년 현재의 자리에 정자로서 경포대가 건립되어 수차례 중수가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구전에 근거한 것이지만 창건 이후 많은 시문에서 경포대라는 단어가 확인되고, 늦어도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지금의 자리에 어떤 모습의 정자이던지 경포대가 건립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897년 정헌시 부사 시기에 경포대에 추가된 시설의 명칭과 그 위치는 각각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897년 정헌시 부사 재임 당시 경포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시설의 이름과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897년 정헌시 부사의 활동과 관련된 기록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1897년(광무 1) 부사 정헌시가 25칸 규모를 그대로 두고 내부에 층루 한칸씩을 만들었다고 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시설의 구체적인 명칭과 위치가 명시된 이남규의 경포대중수기 내용을 선택한다.

    • 남쪽은 이름하여 득월헌이라 하고, 북쪽은 후선함이라고 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남쪽에는 득월헌이, 북쪽에는 후선함이 만들어졌음을 확인한다.

    • 남쪽은 이름하여 득월헌이라 하고, 북쪽은 후선함이라고 하였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질문에서 요구한 시설 명칭과 위치를 정리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남쪽에는 득월헌이, 북쪽에는 후선함이 만들어졌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897년 부사 정헌시 시기 경포대에는 남쪽에 득월헌, 북쪽에 후선함이라는 층루가 각각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