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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와 함양 광풍루의 역사적 가치, 건축적 특징 및 지역 문화적 상징성 doc_id CNTS-00118870725_40

주제 (main_topic)
강릉 경포대와 함양 광풍루의 역사적 가치, 건축적 특징 및 지역 문화적 상징성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강릉 경포대의 역사적 가치는 정면 5칸, 측면 5칸 누정 건축물로, 창건은 고려 충숙왕 13년인 1326년 강원도 안렴사 박숙정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이는 안축의「경포대중수기」의「…臺舊無亭宇有風雨則游者病焉故命邑人搆小亭…」 이라 한 내용에서 확인된다. 경포대의 관련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경포가 부 동북쪽 10리에 있으며, 옆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위에 정자가 있다」라고 되어 있어 1424년∼1432년 사이에도 현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1530년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경포호 서쪽 언덕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위에는 누대가 있으며….」라 하여 경포대의 위치를 밝히고 있어 강릉 경포대의 역사적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현재 경포대 내에 유한지의 전자「鏡浦臺」 편액과 이익회의 해서「鏡浦臺」 편액과 미불 혹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 혹은 명필 양사언의 글씨로 알려진 第一江山 글씨와 더불어 「肅宗御製詩」, 율곡선생이 열 살 때 지었다는 「鏡浦臺賦」, 명문으로 알려진 조하망의 상량문 등 20여개의 여러 시인묵객의 기문과 시문 등이 게시되어 있다. 또 김창흡의 ‘경포를 지나며’라는 시에는 그가 이곳으로 유배와 지내면서 승려들이 참선하는 것과 같이 그도 경포의 경치를 감상하며 승려들처럼 참선하는 심정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두 시문을 예로 들어 설명하지만 여타의 많은 시문에서도 경포대를 찾는 사람의 심경이 잘 기술되어 있다. 때로는 정치적 타격으로 조정에서 물러나면서 그 안타까운 심정을 추스르는 내용, 또 경포대에서 맑은 경포호수를 내려다보며 무욕의 마음을 가다듬고자하는 의미 있는 표현들이 구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인들은 경포대를 심성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곳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경포대는 관아(官衙)성격의 건물이지만, 활용에 있어서는 관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동호승람에 의하면, 강릉 지역에는 경갑계(庚甲契)가 있는데 이 계는 갑계로 마을 선비 13명이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서 어진 덕을 쌓는다.”는 뜻으로 윤달(13이 라는 숫자가 1년 12개월보다 하나가 많아 계원의 수가 13명이다.)에 경포대에 모여 계원 상호 결속을 다지며 그 사실을 계첩에다 적었다.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고주를 포함하여 32개의 원기둥으로 기둥상부가 하부에 비해 가늘은 민흘림기둥이다. 외부로부터 출입이 이루어지는 남북 각각 4칸은 기단 바닥과 동일한 강회마감이고, 나머지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로 구성하였다. 마루는 높이에 따라 3개의 층으로 구성되는데, 출입이 이루어지는 4칸의 기본 마루는 초석으로부터 약 10cm가량 떨어져 설치되어 있으며, 전면에 해당하는 경포호로 향한 동쪽의 중앙 3칸은 1단 높게 구성되었고, 좌우 끝, 즉 남북의 각 1칸은 이보다 1단이 더 높게 구성되어 있다. 동쪽의 3단은 경포호로 향해 모두 계자난간을 둘렀고, 그 옆의 각 1칸 즉 전면 남북쪽 끝의 각 1칸은 난간 없이 머름만 들렀다. 나머지 마루가 가설된 바닥의 끝에는 모두 계자난간을 둘렀고 출입을 위한 남북쪽 중앙 각 1칸은 난간이 없이 나무 계단을 가설하였다. 그리고 배면에 해당하는 서쪽 좌우 퇴칸에는 판벽이 설치되어 있다. 평면의 형식이 5칸×5칸으로 구성된 것은 1873년 강릉부사 이직현의 중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전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였다. 현재와 같이 출입을 위한 남북쪽 각 4칸을 제외하고 전부 우물마루로 바뀌고 전면에 해당하는 동쪽 중앙 3칸은 한단 높은 마루, 그리고 좌우 퇴칸 즉 남북쪽 각 1칸은 한단 더 높은 누마루로 구성한 것은 1897년 군수 정헌시의 중수 때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누마루의 이름을 남쪽 1칸은 득월헌, 북쪽 1칸은 후선함이라고 명명하고 그 뜻을 밝혔는데, 득월헌의 달은 밝음을, 후선함의 신선은 무욕을 의미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을 밝음과 욕심없음에 두었고 밝음의 근본은 무욕이니 이를 근본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리면 장차 큰일을 처리하고 큰 문제를 결단함에 아무런 의문 없이 소신껏 일을 하라는 바램이 담겨있다고 한다. 득월헌과 후선함의 기능적 목적은 보다 경관을 자세히 편하게 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개별적으로 자연경관을 자유롭게 걸터앉아 바라보기 위한 효과적인 형태가 수직적으로 레벨 차를 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광풍루는 함양군 안의면으로 들어가는 금호천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광풍루에 오르면 천변과 건너편에 노거수 갯버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선 풍광과 멀리 펼쳐진 아름다운 산세가 바라보인다. 현재 금호강은 하천 정비로 갯버들 이외는 옛 모습을 많이 잃고 민가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광풍루는 관아의 부속시설로 조정의 관리와 고을 수령의 휴식과 여가 등 유흥상경을 즐기던 곳이다. 옛 객사 터로부터 동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2014년에 도로변에 접해 있던 광풍루를 후우측으로 조금 옮기고 지금처럼 주변을 정비하였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으로 조선시대에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이라 하여 학문과 문벌의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선비들의 무릉도원으로 불리던 ‘안의 삼동(安義三洞)’이 있다.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1450∼1504),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등 큰 선비가 많았던 고장으로 주변에 함양 허삼둘가옥(咸陽 許三둘家屋), 함양 일두고택(咸陽 一蠹古宅), 함양 남계서원(咸陽 灆溪書院)24), 산청 서계서원(西溪書院)25) 등과 안의삼동의 수많은 누정 들이 이 고장의 역사문화환경을 이루고 있다. 함양 안의 광풍루는 여러 기록, 지도, 근대사진 자료 등을 통해 1683년에 중건된 건물의 골격을 기본으로 부분적인 변화가 발생되었고, 2014년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북서방향으로 23m 가량 옮겨졌으나 기존의 광풍루가 갖고 있는 가치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객사의 건립과 함께 조성된 부속건물로서 안의 지역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건물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건축적으로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이후 소실되었다가 1601년 및 1683년에 중수되어 조선 후기 강변의 평지에 건립된 누각 건축의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더불어 광풍루의 명칭을 갖게 된 것은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이 안의현감 재직 시 중건되면서 붙여진 당호로, 현재와 같은 누정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여창과 관련된 함양 일두고택(咸陽 一蠹古宅), 함양 남계서원(咸陽 灆溪書院) 등 국가지정문화재 및 세계문화유산이 광풍루와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변의 안의 시가지 중심을 돌아 흘러가는 금호강을 바라보고 동측의 넓은 들판의 풍광을 조망하는 수려한 경관 상 돋보이는 위치에 건립되어, 객사의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부속 건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적 누각으로서의 기능을 잘 나타내는 건물이다. 광풍루(光風樓)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이안의현감 재직 시 중건되면서 붙여진 당호로, 이는 현재와 같은 누정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에 정여창이라는 인물과 직접적 관계가 있어 역사적 의미가 있다. 더 나아가 정여창과 관련된 국가지정 문화재로는 생가인 함양 일두고택(咸陽 一蠹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186호)과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설립된 함양 남계서원(咸陽 灆溪書院: 사적 제499호) 등이 광풍루(光風樓) 인접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이 남계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서원 9곳 중의 한 곳으로 광풍루(光風樓) 보물승격에 따른 주변 여건은 잘 조성되어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강릉 경포대의 누마루 중 남쪽 1칸인 '득월헌'과 북쪽 1칸인 '후선함'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경포대의 특정 누마루 명칭인 득월헌과 후선함이 상징하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경포대 중수와 관련된 누마루의 명칭과 그 뜻이 기술된 부분을 추출한다.

    • 남쪽 1칸은 득월헌, 북쪽 1칸은 후선함이라고 명명하고 그 뜻을 밝혔는데
    • 득월헌의 달은 밝음을, 후선함의 신선은 무욕을 의미하여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각 명칭의 구체적인 상징적 의미를 담은 문구를 선택한다.

    • 득월헌의 달은 밝음을
    • 후선함의 신선은 무욕을 의미하여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밝음과 무욕이라는 두 키워드를 결합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과 연결된 맥락을 정리한다.

    •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을 밝음과 욕심없음에 두었고
    • 밝음의 근본은 무욕이니 이를 근본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리면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득월헌은 밝음을, 후선함은 무욕을 의미하며, 이는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을 밝음과 욕심 없음(무욕)에 두어 소신껏 일을 처리하라는 바람을 담고 있음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간결한 서술형으로 답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득월헌의 '달'은 밝음을 의미하고, 후선함의 '신선'은 무욕을 의미한다. 이는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을 밝음과 욕심 없음(무욕)에 두어, 이를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장차 큰일을 처리하거나 문제를 결단할 때 소신껏 일을 하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경포대 누마루의 득월헌과 후선함은 각각 밝음과 무욕을 의미하며, 이를 통치의 근본으로 삼아 소신껏 일하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