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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루와 옥천 이지당의 건축적 특징 및 구조적 가치에 대한 분석 doc_id CNTS-00118870725_44

주제 (main_topic)
광풍루와 옥천 이지당의 건축적 특징 및 구조적 가치에 대한 분석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기둥은 누 상 하주를 분리하여 모두 민흘림의 원주를 사용하였다.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누상주보다 조금 더 굵다. 이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중층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한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평주포와 귀포의 짜임새가 다르다. 평주의 외단 촛가지는 아래 위를 각각 뾰족한 익공형과 운공형으로, 내단은 연화두형으로 조식하였다. 귀포는 평주포와 동일한 좌우대와 오각형 앙취의 앙서형 촛가지 상단에 연화를 장식한 귀한대로 구성되어 있다. 촛가지 좌우로는 양단에 소로를 얹은 연화두형 행공을 짜 맞추고, 주간에는 소로 3개를 얹은 화반을 받쳤다. 익공형과 운공형으로 구성한 평주포와 귀포 좌우대의 짜임새는 대체로 17∼18세기 건물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귀한대는 18∼19세기 건물에서 나타나고 있다.27) 이는 유사시기 건물에서 나타나는 공포의 범용적 성격을 읽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광풍루는 17세기 중건 시의 모습과 그보다 늦은 시기의 공포가 혼용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광풍루 공포는 후기적 모습이 채용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익공양식의 변화과정을 잘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예 중 하나라 생각된다. 광풍루는 안의면 소재지로 들어오는 안의교 우측 모서리에 동북향으로 앉아 금호천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은 상가와 주거가 밀집한 소재지 중심부다. 도로와의 경계를 한단 석축으로 조성하고 그 안쪽 마당은 잔디를 심었다. 광풍루 좌측에는 광풍루 시비와 표석을 설치하고 그 주변은 향나무와 소나무를 식재했다. 배면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상무좌우사접장하경순포선불망비(商務左右社接長河璟詢褒善不忘碑) ’가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으로 누상 하부는 모두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누 상부로 오르는 계단은 1층 우측 끝 배면 칸에 두었다. 누상부에 오르면 마루 바닥을 깔고 사방에 계자각 헌함이 둘러져 있다. 계자각 난간청판에 거의 대부분 뚫는 풍혈이 없어 생소하다. 기단은 방형의 정평거친돌을 세벌대 바른 층 쌓기하고 강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자연석 덤벙초석으로 주좌, 고맥이형, 촉구멍 등 다양하게 가공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흔적으로 보아 누하부에 벽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한 고증자료가 없어 그 시기와 용도를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객사 누각의 하부가 개방된 점에 비추어 보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 교사로 변용하고자 벽체 등을 설치한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광풍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숙종 9년(1683)에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보수 및 이축이 있었으나 중건 당시의 모습과 조선 후기 관아 누각의 건축적 특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광풍루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하층의 기둥이 상층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고, 내진 평주가 없이 모두 통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풍루의 기단은 자연석 2단쌓기인데, 2014년 이건 당시, 기존의 기단석재가 아닌 신재로 교체되었다. 누하주 초석은 14본 모두 원래의 것이 사용되었다. 초석의 상면에는 가공 흔적이 남아 있는데 누하주를 비롯하여 귀틀, 청방 등에 인방재와 중깃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으나 기존의 용처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를 통한 분석이 필요하다. 광풍루의 기둥은 모두 원기둥이 사용되었다. 1층 누하주, 2층 누상주로 구분되는데, 내진평주가 없고 모두 외진평주로 구성되었다. 2014년 이축 과정에서 1층 누하주 3본이 신재로 교체되었고, 2층 누상주 일부는 동바리 보수되었다. 단층의 본채 양측에 이층 누가 결합된 형태의 옥천 이지당에 비견되는 사례로, 상주의 대산루(對山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가 있다. 대산루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가 1600년(선조 33) 잠시 관직에서 물러가 고향에 머무는 동안에 지은 단층의 정사에, 그의 7대손이 이층의 누각을 덧붙여 지은 것으로, 결과적으로 전체 평면이 丁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정사건축으로 현존하는 유구 중에서 이 옥천 이지당이나 상주 대산루처럼 중층의 누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이지당의 건축 형태가 가지는 희소성은 인정된다. 상주 대산루의 경우, 정경세가 단층 정사를 건립했고, 나중에 그의 7대손이 여기에 이층의 누를 붙여 짓는 일련의 건축 형성과정이 뚜렷하게 파악된다. 그리고 건물 사용면에서도 단층 정사 전면의 툇마루에서 바로 이층 누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두어, 실내에서 정사와 누 사이를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과 현존하는 대부분의 정사 건물이 단층인 것을 아울러 생각해 보면, 당초 조선시대 사림들이 경영했던 정사는 일반적으로 단층이었고, 나중에 필요에 따라 중층의 누각을 덧붙인 경우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보편적인 추세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옥천 이지당은 의병장이자 학자 중봉 조헌이 16세기 말 옥천에 머물면서 빼어난 경치를 벗삼아 유상하며 서당을 짓고 동네 이름을 따서 각신서당이라 명명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에서 비롯되며, 조선 중기 16세기 이후 지방 사림들이 산수가 빼어난 곳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건립했던 정사건축의 한 유구이다. 조헌이 건립한 각신서당은 그의 사후 약 80여 년 뒤인 1674년 무렵에 김만균이 주도하여 왼쪽 누를 첨건하는 등 면모를 일신하고 송시열이 명칭을 이지당으로 지었다. 김만균과 송시열, 조헌은 옥천이라는 지연과 기호학파라는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관계는 조헌 사후에 이지당이 정사로서 활용되고 유지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옥천 이지당의 입지는 금강 상류의 한 지류인 소옥천을 굽어보는 산비탈에 터를 잡아, 앞으로는 아래로 너럭바위와 유유하게 흐르는 강이 펼쳐지고, 뒤로는 기암에 기대고 있어 사철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이다. 조선시대 정사건축이 대체로 온돌방과 대청마루만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공간구성을 가진 반면, 지금의 옥천 이지당은 이러한 모양을 한 본채의 좌우 양측에 이층 누를 덧붙인 독특한 형태로 되어있다. 이상과 같이 옥천 이지당은, 조선 중기 이후 유행했던 정사건축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건축 형태면에서 좌우에 누를 달아 현존하는 사례 중에는 유례가 없는 뚜렷한 창의적 개성을 보이고 있는 점이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전체적인 건축 형태의 독창성에 비해 전체적인 건축구조와 세부 의장은 아주 간소하고 검박한 편이다. 왼쪽 누를 제외하면 건물 전체에 걸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고, 왼쪽 누에 베풀어진 초익공과 보아지 장식 또한 그 짜임새와 만듦새가 거칠다. 이러한 점들은 건물을 지을 당시에 동원되었던 경제력과 사용된 기술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16세기 이후 조선에는 사림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경관이 빼어난 곳에 정사를 건립하고 학문과 수양, 교육에 몰두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즉 정사건축은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에서 16세기 이후 건축계에서 큰 흐름을 형성해 간 한 유형이었다. 이지당 역시 당시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옥천 땅에 건립된 정사였고, 김만균이 주도해 증축한 이후로는 주로 송시열 집안의 후손이나 그의 학맥을 이은 학자들이 자주 찾아 강학, 강론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붕은 본채와 오른쪽 누가 이루는 ㄱ자 부분은 맞배지붕이고, 왼쪽 누에는 팔작지붕을 올려 왼쪽 누의 형태적 위계를 강조했다. 구조의장도 ㄱ자 부분은 모두 간소한 민도리집으로 되어 있는 반면, 왼쪽 누에는 초익공 구조를 사용하고 돌출된 보머리 끝에도 봉황머리를 조각해 꽂아 장식했다. 양측 누의 지붕 높이도 오른쪽 누는 단층은 본채와 지붕이 연속되어 있어 그 높이가 같은 반면, 왼쪽 누의 지붕은 처마가가 몸체 용마루를 덮을 정도로 더 높이 솟아있어 도드라져 보이며, 기둥 모양도 왼쪽 누에만 전체적으로 원형 단면의 두리기둥이 사용되어 의장적 차별화가 구사되어 있다. 전국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정사건축이 대체로 온돌방과 부엌, 대청마루와 같이 강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구성되고 건축형태 역시 단순한 것에 비해, 이지당은 건물 좌우에 이층 누가 돌출해 나온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독특하다. 양측의 누는 우선 건축적으로는 담장이 따로 없는 이지당의 영역을 한정하는 공간 구축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능면에서는 장수(藏修)와 유식(遊息), 즉 경치가 빼어난 자연 속에서 학문에 힘쓰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는 당시 성리학자들의 이상적인 수양방식에서, 유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광풍루의 기둥 구성과 관련하여 누상주와 누하주의 높이 및 굵기 차이는 어떠하며, 이러한 차이가 갖는 목적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광풍루 기둥의 누상주와 누하주의 물리적 특징(높이, 굵기)과 그 구조적/시각적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기둥의 높이, 굵기, 그리고 그 이유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누상주보다 조금 더 굵다.
    • 이는 구조적으로 취약한 중층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높이/굵기 비교 문구와 목적에 관한 문구를 선택한다.

    •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누상주보다 조금 더 굵다.
    • 구조적으로 취약한 중층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높이와 굵기의 관계를 정리하고, 이것이 안전과 시각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수행함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더 굵다는 사실과, 이것이 중층의 안전 도모 및 시각적 안정감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누상주보다 조금 더 굵다. 이러한 구성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중층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광풍루 기둥의 누상주가 누하주보다 높고, 누하주가 누상주보다 조금 더 굵다. 이러한 구성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중층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