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강릉 경포대는 고려 말 1326년(충숙왕 13) 강원도 안렴사 박숙정이 방해정 뒷산 인월사터에 세웠던 것을 1508년(중종 3)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1745년(영조 21) 강릉 부사 조하망에 의해 중건되었다. 약 69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경포대는 강릉지역 누정문화의 시원이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경포대는 지형·지질적 가치가 뛰어난 자연 석호인 경포호와 조화를 이룬 동해안의 빼어난 경승지이다. 신라화랑의 방문을 시작으로 역사시대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을 만큼 인기 있는 유람처였다. 특히 조선 후기 우리 산수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금강산을 비롯하여 관동팔경을 탐승하는 선비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았다. 역사시대 내내 경포대를 방문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시·서·화는 우리나라의 역사 인문학적 자산이 되고 있다. 경포대 정자 안에는 율곡 이이가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하여 숙종어제시,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시문현판이 전하고 있어 인문학적 가치 또한 높다.
경주 귀래정(歸來亭)은 경주시 강동면 다산 2리 1074번지 (천서길 7)에 있는 여주이씨 지헌공파 천서문중의 육각(六角) 정자로 원래 서숙(書塾, 글방)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경주 다산리는 경주의 최북단에 있는 마을로 행정구역상 경주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포항시 기계면에 오히려 가깝다. 원래 다산, 다질이라 하며, 단구리의 아래쪽에 해당한다고 하여서 하단구라고도 불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천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동면 다산리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명칭은 다산리지만 예전부터 다질촌 혹은 다즐촌으로 불렸으며 또 그 일대를 천서촌(川西村)이라 하여 지금도 촌로들은 천서, 또는 다실(질, 즐, 실은 모두 같은 음임)이라 부른다. 다산 2리는 포항 기계면에서 발원하여 경주 강동면에서 형산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기계천의 천변을 따라 양동마을 앞까지 넓게 뻗은 전답 평야의 북쪽 끝단에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 남측으로는 비교적 넓게 전답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마을의 북쪽 인근으로는 대구 포항 간 고속도로와 함께 청송과 영천을 거쳐 포항으로 이어지는 31번 자동차 전용국도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다.
귀래정과 관리사가 전후로 연접하여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귀래정 담장의 높이는 예전보다 한단 정도 높아지고 삭풍이 부는 북쪽 담장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4등분한 양단부에 각각 2개씩 있었던 낸 바람구멍이 없어졌다 한다. 바람구멍은 곽내의 공기 순환을 목적으로 낸 것으로 크기는 사람의 목이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의 방형이었다. 통풍구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바람 길을 이용하여 쾌적한 환경을 갖게 한 지혜로운 시설로 아주 귀한 예다. 귀래정의 출입은 전방의 담장 가운데에 낸 사주문과 뒤쪽 관리사와 통하는 일각문으로 드나든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형으로 감싼 연지가 조성되어 있고, 건너는 다리 너머에 귀래정이 남향으로 앉아 있다. 연지는 흔치 않은 형태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수명과 복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연지 물은 용천수로 채워지고, 출수는 남서쪽 모서리부에 있다. 연지가 건물을 감싸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한 경우는 흔치 않다. 다리는 현재 화강석 다리이나 옛 사진을 보면 원래 외나무 다리였음을 알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정자 앞쪽 좌 우에 각기 4개와 2개의 검은색 괴석 6개가 놓여 있다. 괴석은 계수나무를 상징하고 이들 중 맨 좌 우측 끝에 있는 두 개의 큰 괴석은 각각 어래산과 문중산을 바라보게 했다.
달성 하목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낙동강 변에 자리한 정자형 별당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전의이씨 낙포 이종문(1566∼1638)이 1604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종문이 만년을 보낸 하목정은 장자 수월당 이지영이 인조의 명으로 내탕금은 200냥을 받아 부연을 달아내었다고 하는데, 추녀부분의 처마 끝을 초가형태의 방구매기 수법으로 둥글게 만든 것과 T자형 평면형태 또한 독특하다. 하목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이 연접된 T자형 평면형식을 갖춘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대청은 정면부분만 열려있으며 나머지 2면은 둔테가 있는 띠장 널창이며 연접된 방과 연결되는 면은 분합문을 달았고, 일각대문쪽부터 누마루형식의 사랑윗방, 사랑아랫방, 마루방, 차인방의 순서로 각 1칸씩으로 구성된다. 3단의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 주초로 모양이 동일하지 않으나 대청쪽은 규모와 조형성에 맞게 높은 주초를 사용하였다. 우물마루에서부터 원기둥, 초익공의 공포, 대들보와 충량을 비롯하여 대공과 각 구성부재, 그리고 서까래 등이 노출된 연등천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재의 치목이 정교하게 가공된 직선재를 사용하여 질서정연한 조형성을 보인다.
ㅜ자형의 특이한 평면형식을 가진 하목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은 평면구성을 보인다. 기단은 자연석 기단으로 정면과 좌측면은 바른층으로 3단을 쌓았고, 배면은 경사에 따라 1∼3단, 우측면은 1단만 쌓았으며 상부는 강회다짐을 하였다. 초석은 모두 자연석 덤벙주초로 모양이 동일하지 않고 정면 대청부분과 사랑윗방 좌측 초석은 하부는 넓고 상부는 기둥의 크기에 맞춘 항아리 형태, 사랑윗방 우측 초석은 2중으로 깎은 형태, 그리고 나머지 초석은 대부분 크고 평평한 형태로 모두 원기둥을 받고 있다. 대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물마루로 정면은 열려있으며 외부로 향한 나머지 2면은 둔테가 있는 띠장 널창이며 연접된 방과 연결되는 면은 분합문을 달았는데 서고로 활용하는 마루방은 2분합 들문, 사랑아랫방은 3분합 들문으로 구성하였다. 대청과 연접한 방의 구성은 정면에서부터 누마루형식의 사랑윗방, 사랑아랫방, 마루방, 차인방의 순서로 각 1칸씩으로 구성된다. 대청에서 사랑윗방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쪽마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없다.
실제로 하목정은 수차례에 걸쳐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신청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탁월한 가치를 지닌 정자임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너무 탁월하여 창건년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어 거부되거나 하목정 이외에 사당의 가치도 탁월하므로 이를 통합하여 전체로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로 승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조사는 당해 건축만을 대상으로 정자로서 보물 승격 가치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창건년대의 검증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하목정은 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1604년에 이 집을 건립한 이종문의 장자인 수월당 이지영이 인조의 명으로 하사받은 내탕금 은 200냥으로 부연을 단 사실을 기록한 것에 따르는 인조가 친히 “정자는 사실(私室)과 다르니 마땅히 지붕을 수리하여 부연을 다는 것이 옳다.”고 하고 은을 하사한 내용, 그리고 직접 하목정이란 당호를 내려준 내용은 사가의 기록이더라도 충분한 역사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하목정 뒤에 자리한 사당의 불천위 당사자인 전양군 이익필장군은 수월당 이지영의 증손이므로 기록의 역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둘째 영조척의 분석 연구에 따르면 하목정의 건축에는 1자 길이가 309.6mm인 창덕궁 소장 영조척과 동일한 영조척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17세기 초에 창건된 하목정의 건축년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목정과 동일한 구성형식을 갖춘 인근 고령군 다사면에 있는 장육당이 하목정을 건립한 이종문과 같은 전의이씨 문중인 장육당 이윤이며 건립년대가 1671년(조선 현종 12)인 것이다. 장육당의 건축주인 이윤이 궁척이었던 관계로 부연을 덧단 겹처마집이었고 후손이 사가로 거처하지 못하고 종당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있다. 대청의 크기가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규모가 작다는 외에는 동일한 평면구성과 조형성을 갖고 있다. 이는 하목정의 건립년대를 17세기 초로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 중 하나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경주 귀래정의 연지는 어떤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경주 귀래정의 연지에 관한 형태적 특징과 상징적 의미를 추출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경주 귀래정 관련 문단에서 연지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
- 연지는 흔치 않은 형태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수명과 복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연지의 형태와 형상화 대상에 관한 핵심 문구를 선택한다.
-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연지가 건물을 감싸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북두칠성을 본뜬 것임을 결합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연지는 건물을 감싸는 흔치 않은 형태이며,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형상화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경주 귀래정의 연지는 건물을 감싸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수명과 복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경주 귀래정의 연지는 건물을 감싸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을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