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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관료주의적 비인간화를 극복하고, 독립적 사고와 대화를 통해 책임감을 갖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doc_id CNTS-00118873102_2

주제 (main_topic)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관료주의적 비인간화를 극복하고, 독립적 사고와 대화를 통해 책임감을 갖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우리가 다루려는 공공리더십의 경우 리더는 공공성을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당위를 갖는다. 우리가 다루는 리더십은 공공영역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사적 영역에서의 리더십은 이윤의 창출, 효율성의 극대화 등에 오히려 초점이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적 영역의 리더십의 경우에도 거기서 다루어지는 사안에는 늘 정치적 차원이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고 공공성에 유의하지 않는 리더십은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공공성의 구현이라는 당위는 사회적인 차원과 정치적 차원 모두에 해당한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공공성은 올바른 계산과 공정한 기회, 정의로운 분배 등이 원칙으로 작용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공공성은 그와는 성격적으로 다르게 작용한다. 공공성은 인간다움, 가치, 그리고 때로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공공선(公共善, the public good)은 공동선(共同善)과 다르다. 물론 일부에서는 공동선을 공공선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을 구별하여 사용할 때 그 준거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유의해야 한다. 공동선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되는 것이라면, 공공선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에 기반을 두어 추구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의 확장이 가치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에는 공동선과 공공선을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익 중심의 사고가 가치문제로 확장되기 위해서 사고의 질적 비약이 필요 하다고 볼 경우에는 양자를 구분하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어술라 러퀸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오멜라스는 왕이나 노예, 광고나 주식거래, 원자폭탄이 없는, 행복하고 축복받은 도시이다. 그러나 그곳의 한 공공건물의 지하에는 굳게 잠긴, 창문도 없는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에는 정신박약에다 영양실조 상태에 놓인 아이 하나가 비참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왜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의 행복과 도시의 아름다움은 그 아이의 비참함에 달려있는 것이다. 관료제는 근대와 더불어 행정조직에 있어 합리화를 구현한 효율적 제도이다. 하지만 막스 베버가 지적했던 것처럼 관료제는 비인간화라는 폐단을 낳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정치문화가 빠져있는 관료주의를 한마디로 ‘rule by nobody’라고 표현한다. 즉 거기에는 사람이 빠져있고 책임이 소멸해 있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에 빠진 관료의 특성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묻지 않으며, 자신이 행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일이 옳은지의 여부를 판단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관료는 자신이 하는 일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점에 만족하고 생각을 거기에서 멈추며, 자신이 따르는 법과 명령 자체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지 않고,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 없이 성실한 자는 성실한 악행자를 만들 수 있다. 아렌트는 성실한 악행자의 사례를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 보았다. 그는 600백만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만행에 대해 실무영역의 최고 책임자로 ‘성실한’ 기여를 했던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었고 생각도 매우 긍정적으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는 생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때 ‘생각’이란, 자기가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무엇이 인간적으로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다만 기계적으로 효율성만이 극대화된 행정을 수행했고, 그 결과는 홀로코스트였다. 이처럼 (인간은) 사유와 판단이 없이도 조직사회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아니, 조직사회에서는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이 없어야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관료주의의 핵심이다. 인간사(human affairs)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일인데, 이 사람들이 새로운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 영향력과 여파가 인간의 관계만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가면서 서로 얽히는 가운데 세상사가 형성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의도를 가지어 어떤 말을 하거나 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까지 그 사람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가 없다. 일단 내게서 벗어나는 순간, 말과 일은 다른 사람들의 손과 입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말로 표현되는 가운데 다른 모습을 입게 된다. 그래서 아렌트는, 인간사는 예측불가능한 일로 충만하며, 예측가능한 유일한 한 가지는 인간사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사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면, 모든 일들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예측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고 믿고 있더라도, 리더만큼은 그 일이 예측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될 수 있을 가능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리더가 독단에 빠져있을 때 조직은 관료주의에 빠지기 쉽다. 독단에 빠진 사람과는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하다. 독단 앞에는 말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말은 의사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말은 우리의 생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이다. 말이 없이는 생각이 가능하지 않다. 이미지 연상과 같은 것이 우리 머릿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도, 논리를 세우고 가치를 따지는 사고는 언어가 없이 불가능하다. ‘내가 독단에 빠져 있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독단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말을 거부한다. 타인의 말이 내 사유에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나의 언어는 확장되지 않고, 내 입에서는 하던 말만 반복되어 나오게 된다. 내 언어는 다른 사람의 언어와 섞이지 않고 분리되며, 말을 통해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내 말은 오직 나의 생각을 관철하는 데만 사용될 뿐인데, 항상 내 생각만을 관철하려고 하는 태도가 바로 독단이다. 그래서 독단의 언어는 항상 지시적이거나 독백적이고 때로는 투쟁적이 된다. 대화는 두 개의 언어가 섞이는 과정이다. 우리가 세상의 일들을 파악할 때 언어를 활용한다. 모든 일은 항상 언어를 통해 내 생각으로 들어온다. 다른 사람이 파악한 세상은 그의 언어를 통해 형성된다. 대화는 내가 파악한 세상과 다른 사람이 파악한 세상이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대화의 과정은 다른 어휘, 표현, 논법 등이 어우러진다. 대화의 상황에서는 상대가 쓴 단어를 상대가 의도한 그 의미대로 내가 사용하면서 서로 말이 섞이는 과정이 연출되어야 한다. 리더가 이끄는 대화는 바로 이런 성격의 대화여야 한다. 우리는 말을 통해 현실의 변화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말의 힘이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불가능하게 되고 사실과 허구(fake-news)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말의 힘을 회복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적 독서이다. 정치는 사람의 일이다. 좋은 변화를 리더는 일으킬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생각(thinking)이다. 생각을 꾸준히 하고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가면서 리더는 공공성의 역량을 갖출 수 있다. 생각이 남에게 의존적이어서는 안 된다.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렌트는 이를 “난간 없는 사고”라고 부른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는 난간이 없다. 자신의 길을 올바로 잘 걸어간 사람은 난간이 없는 계단을 올라 천국으로 간다. 이처럼 힘든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 결국 의존할 난간이 없이 생각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전례가 없는 일이 많고, 답을 알지 못해 답답한 채 한걸음씩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독립적 사고, 난간 없는 생각의 토대 위에 공공성의 리더십이 서 있 는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공동선과 공공선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 두 개념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공동선과 공공선의 개념적 차이와 이를 구분하는 기준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공동선과 공공선의 정의를 추출한다.

    • 공동선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되는 것이라면
    • 공공선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에 기반을 두어 추구되는 것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개념을 구분하는 구체적인 사고의 전환 지점을 선택한다.

    • 이익 중심의 사고가 가치문제로 확장되기 위해서 사고의 질적 비약이 필요 하다고 볼 경우에는 양자를 구분하게 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공동선은 '이익' 중심이고, 공공선은 '가치' 중심이라는 점을 결합하여 구분 기준을 도출한다.

    • 공동선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되는 것이라면
    • 공공선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에 기반을 두어 추구되는 것이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구분 기준은 사고의 초점이 '이익'에 있느냐 아니면 '가치'로 질적 비약을 이루었느냐에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공동선과 공공선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고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공동선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공공선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치에 기반을 두어 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 중심의 사고가 가치의 문제로 확장되기 위해 사고의 질적 비약이 필요하다고 볼 때 양자를 구분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공동선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 공공선은 모두가 동의하는 가치에 기반하므로, 두 개념의 구분 기준은 이익에서 가치로의 사고 전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