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얼굴무늬수막새의 제작기법은 통상의 다른 수막새와는 달리 막새 전체를 틀(와범)에 찍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와공이 와범을 이용하여 주연부를 만든 후 그 안에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숙련된 장인의 손으로 전체적인 얼굴 모습을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여 세부적인 작업을 거친 끝에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이목구비와 속눈썹까지 보일 듯한 미세한 손질,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위로 약간 삐뚤어진 오묘한 입술의 표현 등은 기술적으로 숙련된 와공이라 할지라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예술적인 경지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예술적 감각에 대하여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는 기록으로는 남아있지 않으나 삼국유사에 영묘사의 창건에 관여하였고, 사천왕사목탑의 사천왕상 둥 많은 예술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양지법사(良志法師)의 손길이 닿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소장자와 유물은 처음으로 소개한 오사카 긴타로의 글에는 구입 당시 경주 사정동의 흥륜사지 출토품으로 밝히고 있는데, 현재 경주시 사정동에는 “천경림 흥륜사” 라는 사찰이 운영되고 있다. 1972년도 경부고속도로 진입로 개설공사시 사역 서북쪽에서 서회랑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일부가 확인되었고,그 후 3차(1977~78년,1981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동서 목탑지와 동회랑지 유구 일부를 확인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이 사지는 신라시대의 초기 가람들과는 달리 동서에 목탑을 배치한 쌍탑가람으로 확인되었고,조사 과정에서 “영묘지사(靈廟之寺)” 명의 기와편이 다수 출토되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이는 영묘사지 (635년 창건)로 추정됨에 따라 이 얼굴무늬 수막새의 출토지가 흥륜사지가 아닌 영묘사지였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진위 문제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막새에서 관찰되는 고신라식의 제작기법과 사용흔으로 미루어 7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신라시대 수막새가 분명하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위작 주장은 전혀 설득력과 근거가 없다.
이 유물은 수증 받을 당시 유물대장에 인면문원와당(人面文圓瓦當)으로 기재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막새기와를 지칭하는 용어로 와당(瓦當)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며 일본 학계에서는 와당의 형태에 따라 원와당(圓瓦當)과 평와당(平瓦當)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이에 대응하는 한글 용어로 암막새와 수막새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존의 지정명칭에는 출토지나 소재지를 표기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으나 현재의 흥륜사지에 대한 조사는 아직까지 부분적인 조사에 그치고 있고,기존의 조사에 대한 정식보고서도 아직까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묘사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흥륜사지 일대는 사적 제1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흥륜사지가 소재하고 있는 행정동명을 부기하여 유물의 명칭을 「경주 사정동 얼굴무늬수막새(慶州 沙正洞 人面文圓瓦當)」로 제안하고자 하며,이와 함께 기존의 관례대로 「경주 사정동 인면문원와당(慶州 沙正洞 人面文圓瓦當)」, 또는 「신라 얼굴무늬 수막새」의 지정명칭도 함께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와당은 학문적 의의와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고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상대적으로 연구와 관심이 부족하여, 문화재 지정에 있어서 다른 유물에 비해서 다소 소홀이 취급된 감이 없지 않다. 현재 와당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단 한 점도 없다. 와당에 관하여는 종래 고고학적 관점에서 형태와 문양의 양식 비교를 통한 제작 시대의 추정이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최근 들어서 와당의 미술사적, 문화사적, 역사학적 의미가 새롭게 조명됨으로써 학문적 중요성이 높이 부각되고, 공예품으로서의 예술성에 대한 관심도 고양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와당문화의 전파와 발전 과정에서, 한국 와당이 보여준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은 외국의 전문가와 소장가들이 모두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정작 한국에서는 관심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인면문 원와당(얼굴무늬 수막새)의 문화재 지정 조사를 계기로 한국 와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국가문화재 지정이 증가하기를 기대한다.
조사대상의 장철 정사공신녹권(張哲 定社功臣錄券) 1축은 1398년(정종 즉위년) 11월 공신도감(功臣都鑑)에서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장철(張哲)에게 발급된 공신녹권으로, 집안에서 전하다가 안동 장씨 35세손 장충훈이 천안박물관에 기탁하여 소장·관리하고 있다. 형태는 권자본(두루마리)이고, 닥종이에 필사되어 있으며, 좌․우 변란에는 남색의 종이로 개장․장황되어 있다. 양쪽의 마지막 부분은 나무 권축(木卷軸)으로 앞부분이 반달형이며, 뒷부분이 둥근형이다. 조사대상의 녹권은 상․하란의 일부분이 손상되어 수리되어 있고, 4․5․9․17․57행 등의 일부 글자가 마모되어 있으며, 얼룩도 있으나, 교서 내용 및 관인(官印)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천안박물관에 위탁 소장된 조사대상의 장철 정사공신녹권 1축은 중추원부사 장철(張哲)이 1398년(태조 7) 8월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戊寅定社)을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11월 수급한 정사공신 책봉증서로, 조선초기 공신녹권의 형태적 특징, 서체와 제작방식, 국왕과 왕실에 대한 인식, 태종 이방원의 정치세력 실체 등을 진단하고, 누락된 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원천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여말선초의 이두연구와 함께 당시 녹권발급 업무를 분담한 관료들의 구결연구에도 소중한 원천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조사대상과 동일한 조선초기의 공신 녹권 가운데 정사공신녹권의 경우는 현재까지 1종만 확인되고 있으므로 자료적인 유일성․희소성도 확보하고 있다. 때문에 조사대상의 장철 정사공신녹권 1축을 보물로 지정하여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구하는 동시에 보존․관리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조사대상의 자치통감 4권 1책은 북송의 사마광(司馬光)이 영종의 명령을 받아 1065년부터 1084년까지 19년 동안 편찬한 중국 통사를 세종 때 경복궁(景福宮)의 사정전(思政殿)에서 교정․주석하여 1436년(세종 18)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한 294권 가운데 권129~132이다. 자치통감은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당나라 말기까지 1,362년 동안의 중국역사를 편년체로 편찬한 기록유산으로, 통치자에게 현실정치의 운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통치자의 정치교본이므로, 조선 사회에서도 국왕의 경연에 채택하는 등 왕조사회를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핵심텍스트로 활용되었다. 때문에 세종은 1434년 윤회(尹淮)·권도(權蹈)·설순(偰循) 등에게 명령을 내려 자치통감을 교정하고 해설 내용을 취사선택하게 하여 통감훈의(通鑑訓義)을 편찬하고, 김말(金末)․류의손(柳義孫) 등에게 참교(參校) 절차를 거치게 한 다음, 자신이 직접 검토하고 1436년 주자소(鑄字所)에서 간행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보급하였다.
권수제와 권미제는 ‘자치통감권제일백이십구(資治通鑑卷第一百二十九)’와 같이 책명+권+제+권차의 형식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판미제는 ‘통감권일백이십구 일(通鑑卷一百二十九 一)’처럼 약책명+권+권차+장차의 방식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의 2~4행에는 ‘사마광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편집하였다(司馬光奉 勅編集)’ 및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등의 편찬내용이 표시되어 있으며, 제5행부터 ‘송기십일( 紀十一)’/ ‘세조효무황제하(世祖孝武皇帝下)’라는 분류 내용을 이어 편년체로 본문이 표기되어 있다. 상란에는 ‘기해(己亥)’ 등 해당 연도의 간지가 두주 형식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좌변 밖에 있는 상단의 서이(書耳) 부분에는 ‘송효무제( 孝武帝)’와 같이 해당왕조명+해당황제묘호가 표기되어 있다. 본문 가운데는 문장을 구분할 수 있게 백권(白圈)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 유물은 17세기의 전형적인 원호[달항아리] 형태에 동체 전면에 철화안료로 빠른 필치와 대담한 생략과 변형으로 운룡문을 그려 넣었다. 구연부는 짧게 외반했는데 가장자리를 모나게 은행알 측면과 유사하게 깎았다. 동체는 원형에 가깝게 둥글게 팽만하고 구연부와 비슷한 크기의 굽을 만들었다. 굽은 바닥쪽으로 약간 사선으로 좁아든 다리굽으로 굽 안바닥을 얕게 깎았다. 굽 안바닥에도 시유했으나 덜 녹아 유층의 박락현상이 보인다. 노태된 부위의 태토는 어두운 회백색을 띠고 있어 태토에 철분과 잡물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면에 그려진 용은 매우 생략되어 몸체의 비늘과 여의주의 화염, 그리고 군데군데 구름무늬 정도만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구름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으로 용을 표현하기 어려웠던 지방요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얼굴무늬수막새의 제작 기법은 일반적인 수막새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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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얼굴무늬수막새의 제작 기법을 일반적인 수막새의 제작 방식과 비교하여 차이점을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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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얼굴무늬수막새의 제작 방식과 통상의 다른 수막새 제작 방식을 추출한다.
- 얼굴무늬수막새의 제작기법은 통상의 다른 수막새와는 달리 막새 전체를 틀(와범)에 찍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 와공이 와범을 이용하여 주연부를 만든 후 그 안에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숙련된 장인의 손으로 전체적인 얼굴 모습을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여 세부적인 작업을 거친 끝에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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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일반적인 방식인 '틀에 찍어 만드는 방식'과 얼굴무늬수막새의 '수작업 방식'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통상의 다른 수막새와는 달리 막새 전체를 틀(와범)에 찍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 와공이 와범을 이용하여 주연부를 만든 후 그 안에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숙련된 장인의 손으로 전체적인 얼굴 모습을 만들고 도구를 사용하여 세부적인 작업을 거친 끝에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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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일반 수막새는 틀(와범)에 전체를 찍어 만드는 방식인 반면, 얼굴무늬수막새는 와범으로 주연부만 만든 뒤 바탕흙을 채워 장인이 직접 손과 도구로 세부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임을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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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두 방식의 차이점을 명확히 대조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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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통상의 다른 수막새는 막새 전체를 틀(와범)에 찍어서 만드는 방식이지만, 얼굴무늬수막새는 와공이 와범을 이용해 주연부를 만든 후 그 안에 바탕흙을 채워 넣고, 숙련된 장인이 손과 도구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얼굴 모습과 세부적인 작업을 거쳐 만드는 방식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일반적인 수막새가 틀에 찍어내는 방식인 것과 달리, 얼굴무늬수막새는 주연부 제작 후 장인이 직접 손과 도구로 세부 형태를 만드는 수작업 과정을 거친다는 차이점을 비교하여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