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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유입과 함께 한국 건축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도입 과정 및 모더니즘 양식으로의 변화 양상 doc_id CNTS-00118877740_2

주제 (main_topic)
근대 건축의 유입과 함께 한국 건축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도입 과정 및 모더니즘 양식으로의 변화 양상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철근 콘크리트가 근대건축의 구현을 가능하게 했던 주 요소라고 불 수 있으므로, 근대건축의 유입과 전개에 있어 국내의 철근 콘크리트의 도입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건축재료로써 가장 오래된 것은 목재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든 움집은 목재를 주요 구조재로 나뭇잎 또는 갈대를 벽의 재료로 사용하여 지어졌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석재와 전돌이 일부 사용되었지만 미미한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정조(正祖)가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면서 전돌을 건축재료로 사용할 때까지는 목재는 독보적인 건축재료였다. 그러나,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서양인 기술자들에 의해 제재목과 못을 주재료로 하는 양풍의 날렵한 목조와 벽돌을 사용하는 조적건 축물이 소개되면서 그 위치를 위협받기 시작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이 양풍 건축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면서 전통목조구조는 대규모 건축물에서는 뒤로 밀려나게 된다. 이후 철근콘크리트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들뿐 만 아니라 건설자들도 관심을 갖게 되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 결과 1903 년에는 미국 신시내티의 건설업체인 페로콘크리트 건설사가 신시내티에 Ingalls Building 이라는 65m 높이의 16 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준공시킨다. 이 건물은 그 당시 가장 높은 철골건물의 반밖에 안 되는 높이이지만 가장 높은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이 된다. 그림 10 은 Ingalls Building 사진과 배근도이다. 철근콘크리트가 구조재료로써 고층건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사회적인 관심거리가 되자 영국건축회(RIBA)는 철근 콘크리트 위원회를 1905 년에 설치하고, 1907 년에 철근콘크리트구조설계에 관한 지침을 발표한다. 1908 년에는 콘크리트학회가 구성된다. 철근콘크리트는 그 이후 여러 연구와 시공경험 등을 축척하여 현재는 철골구조보다 높은 초고층 건축물을 만들어내고 있으나, 친환경이 대두되면서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15년을 전후로 미국식 공법이 유입되면서 철골보를 사용하는 내화바닥 구법은 점차 사라지고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 구조가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에 조적조보다는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의 내진성이 우수한 것에 주목하고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하게 된다. 구조기준에 있어서도 발달을 거듭해 1919년 시가지 건축물법이 공포되고 이듬해에 시행규칙이 제정되어 건축물의 설계에 대한 기본적 법령체제가 완성되었다. 1922년 내진설계 개념이 지진을 횡력으로 건축물에 적용함으로써 도입되었지만 설계현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1924년 개정된 법령에 의해 건축구조설계가 내진설계를 기본개념으로 하게 된다. 1920년대 초기에 착공된 국내의 주요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1924년 준공된 조흥은행 종로점 건축물(착공일 미상), 1921년 착공된 연세대 언더우드관(1925년 준공), 1922착공된 서울역사(22년 착공) 건축물 등이 조적 구조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12년 기공되어 1919년 3월에 완공된 조선 총독부 건물은 초기설계에는 벽돌 조적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설계과정 중 여러 논의를 거쳐 철근 콘크리트로 결정된 기록이 있으며 평면형 자체도 기본형은 조적조를 의식한 상태의 설계로 이후 구법이 철근 콘크리트 조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총독부 건물에 사용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당시 Kahn system이라고 불리는 배근법을 따른 것으로 독특한 배근 방식을 보인다. 1926년에 지어진 서울시청사는 내진설계 개념이 적용되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구조 규정의 주요 개정내용은 수평력에 저항하는 구조부재의 강도와 강성을 높이고, 주요 구조부재 상호 접합부의 접합법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개정규정은 철근의 배근상세가 내진저항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바뀐 것을 의미하고 설계단계에서 반영되어야 하는 내용이므로 시공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모더니즘에 대한 소개가 시작된 것은 1925년이다. 당시 경성공업고등학교 교수였던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郞)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朝鮮と建築>을 통해 1월부터 4월에 걸쳐 4회의 <近代建築 노트> 시리즈를 통해 모더니즘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기 모더니즘적 설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사 케이이치(笹慶一)와 후지시마 가이지로는 구미시찰 중 조선건축회로 사진과 엽서를 보내 서양의 건축을 소개하였다. 당시 경성공업고등학교 졸업생인 이와나가 류타로(岩水龍太郞)는 <The Architectural Record>의 기사를 번역하여 모더니즘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약 5년 ∼6년 동안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 : 1856∼1924)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 1867∼1959), 르꼬르뷔지에 (Le Corbusier : 1887∼1965) 그리고 모스크바의 현대건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기는 옛 서울역사인 경성역사(1925년 9월 준공), 그리고 지금은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1926년 9월 준공), 서울시청인 경성부청(1926년 10월 준공) 등이 준공되는 등 서양의 양식건축이 최고조의 절정기에 도달한 시기이다. 그러나 왠일인지 1926년 이후 서양 양식건축은 점차 축조되지 않는다. 양식적 요소가 과감하게 생략되어 절충적 성격을 지니다가 모더니즘 양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朝鮮と建築>에의 서양 모더니즘에 대한 소개는 한국건축에서 양식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단지 <朝鮮と建築>에의 소개 때문이라기 보다는 한국건축에 있어서 1920년대∼1930년대 시기가 건축물의 용도 변화로부터 건축물의 발주처와 건축가, 벽돌과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의 구조 및 외장재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넓은 변화의 폭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더니즘 건축의 구현에 있어서 한국인이 주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한국의 모더니즘으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라는 것이 누가 설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건축물이 지어진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그 건축물을 통해 행위가 이루어져 왔던 것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이러한 건축물들을 당시 한국의 식민지 상황이 수용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은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한국인 건축가 박길룡에게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32년 조선총독부를 나와 독자적인 사무실을 종로에 낸 이후 종로는 해방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 건축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박길룡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화신백화점(1937년)과 같이 양식주의와 모더니즘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 절충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간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보화각(1938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외관이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게 처리되어 기하학적 조형성을 잘 드러내어 모더니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 보화각 오른쪽 출입구 2층 부분의 곡면으로 돌출된 긴 수평 창은 전체적인 외관에 강한 변화를 줌과 동시에 출입구임을 표현하고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건축 구조의 활용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기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23년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이 일본의 건축 구조 활용 방식에 미친 영향과 변화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관동대지진과 관련된 건축 구조 및 내진성에 관한 문맥 정보를 추출한다.

    •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에 조적조보다는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의 내진성이 우수한 것에 주목하고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하게 된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지진 이후 조적조 대신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가 주목받게 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문구를 선택한다.

    •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에 조적조보다는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의 내진성이 우수한 것에 주목하고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하게 된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이 조적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내진성이 우수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를 주된 건축구조로 채택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지진 이후 내진성이 우수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가 주목받으며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완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조적조보다 내진성이 우수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를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하게 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건축 구조는 조적조보다 내진성이 우수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를 향후 주된 건축구조로 활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