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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국에서 시행된 황폐산지 복구 및 사방사업의 역사와 추진 과정 doc_id CNTS-00118877822_2

주제 (main_topic)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국에서 시행된 황폐산지 복구 및 사방사업의 역사와 추진 과정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952년 5대강유역 요사방지의 규모를 조사한 결과 황폐산지의 면적은 약 68만ha에 달했다. 이러한 광대한 면적으로부터의 각종 재해가 발생되므로 이러한 긴박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1953년 산지사방사업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에 착수하였다. 산지사방사업은 황폐임야 추정면적 약 68만 ha 중에서 긴급을 요하는 지역을 책정하였으며, 이 때의 특징으로는 사방사업의 일부를 산림계로 하여금 시행토록 하였던 것이다. 산림계는 1949년 그 조직운동전개 중 6 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1년에 제정된 산림보호임시조치법에 의거 모든 산림사업은 산림계 중심으로 실행케 한다는 목표 하에 재정비 육성하던 중 1954년에는 ‘산림계사방사업 보조금교부규정’을 제정하여 사방사업도 산림계원의 공동 출역으로 실시하고 또 시공지의 보호관리임무도 맡게 하였던 것이다. 1956년 말 현재 황폐임야면적은 636,230ha로 추산되었고, 이 가운데 454,410ha는 5대강(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며, 야계사방공사를 요하는 황폐계천 5,644km와 더불어 매년 홍수의 근원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황폐지를 향후 10년간(1957-1966)에 복구하기로 목표를 세우고 우선 제1차 사방사업 5개년계획을 수립, 시행토록 하였는데 다행히 1955년부터 산림사업에 대한 ICA원조자금도 본격적으로 지원받게 되어 본 계획은 과거의 사방사업보다 더욱 활기차게 실행될 여건이 마련되었다. 산지사방의 시공은 황폐가 심하여 긴급복구를 요하는 황폐지에 매년 지속하여 집단적으로 시행토록 하고 가급적 산각과 인접한 요조림지에는 조림사업을 실시하며 야계사방도 병행하 는 등 입체적인 시공으로 황폐임야 복구에 조속한 안정을 기하도록 방침을 세웠다. 1954년에는 ‘산림계사방사업비보조금교부규칙'이 제정, 시행되어 사방사업은 주로 부락산림계원들의 노력부담 형식으로 수행되었는데, 이때에는 종래까지의 입지공을 대폭적으로 감소시켰으며, 그 대신 조공과 파종공을 대단히 많이 채택하였고, 또한 사방조림식재본수를 대폭 증가시키는 등 소 위 산림복구사업의 대혁신을 일으키는 집단시공법을 채택하였지만, 그 성과는 대단히 미흡하였다. 1955년에는 미국 국제협력처(ICA)의 원조에 의해 야계사방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제2차로 민유림조림사업10개년계획을 수립, 시행하였다. 1956년에는 외국의 원조자금에 의한 사방 및 민유림조림사업을 확대, 실행하였고, 사방시공법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또한 각 도의 사방관리소에서는 사방사업 단비 절감에 관한 시험의 실시결과를 전국 사방기술 자대회(10월 4일, 경주)에서 발표하였다. 상류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사업은 1958년부터 1967년까지 10년간 요사방조림지면적 670,837ha에 대하여 ICA자금을 사용하고 주로 도입초종의 파종방법을 사용하여 피복, 복구하 는 계획으로 수행되었다. 본 사업은 특히 미국의 전형적인 토양보전기술을 도입하여 산복기초공사를 생략하고 단지 초류파종을 위주로 하는 피복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최소의 경비로 단시일 내에 효과를 얻기 위하여 시도된 것이다. 그러나 본 사업은 한국의 전형적인 봄철가뭄과 우기의 강우특성 및 토양특성들을 감안한 적절한 수정이 없이 실시되어 그 성과를 기대만큼 얻지 못하여 다시 재래식공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 사업으로 인하여 미국의 사방용 초류가 한국 땅에 도입되었고 한편 근류균의 접종효과와 인산질비료의 시비효과에 관한 시험연구결과가 사방사업에 적용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많은 임업기술자들이 미국 등에서 토양보전훈련을 받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황폐임야의 복구는 산업개발상 가장 시급을 요하는 사업이었지만, 당시는 임야의 조사사업이 한창 실시되고 있는 중이었고, 국민유림의 경계가 불분명하였으며, 또한 임정의 기초단계이었으므로 경험이 부족한 시대였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소규모의 사업을 실시하여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었다. 1914년경부터 전라북도 남원의 독나지에 사방식재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1918년부터 충청북도 및 충청남도의 지방비에 보조금(당시 5만엔)을 교부하여 수원함양림조성 사업으로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유역의 6개 군(충청북도 청주, 음성, 괴산, 진천, 충청남도 연기, 천안)에서 사방사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19년부터 다시 보조금(당시 10만엔)을 경상북도 및 섬진강 유역에 속하는 전라북도 남원군의 지역에서도 동일한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3대강유역수원함양조림사업’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민유림에 실시한 사방사업의 효시였다. 1933년과 1934년에 낙동강유역에서 발생한 대수해는 임지황폐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치산치수를 통한 수해피해의 근원적 방지를 위하여 본 사업이 시행되었다. 본 사업은 낙동강유역의 황폐임야 중 국비사업분을 제외하고 잔여 58,680ha에 대하여 1935년부터 1944년까지 10개년간 완료할 예정으로 계획하였으며 경비의 80%는 도에서 부채를 내어 시행하고 잔여 20%는 지원읍면(地元邑面)에서 부역(賦役) 으로 부담키로 하였다. 본 계획은 10년간 총사업비 2,728만원을 투입토록 하였으나 부역부과의 관계로 1937년 이후의 사업을 위해서는 계획수정이 불가피하여 ha당 사업비를 삭감하여 계획하였다. 1935년부터 5년간 시행된 사업실적을 보면 총사업비가 1,302만원이 투입되어 31,587ha 면적의 시공에 사용되었으며 8,842만 본의 묘목이 식재되었다. 노임살포액은 559만원으로서 총사업비의 43%로 타 사업들에 비하여 노임비율이 낮았으나 본 사업에 고용된 연사(延使)투 입원은 모두 1,066만명에 이르고 있다. 동해안 철도연변에 걸쳐있는 황폐산지는 약 21,600ha에 달하며 그 중 강원도에 위치한 황폐지는 호우시마다 토사유출로 하상을 높일 뿐 아니라 철도선로와 교량을 위협하여 교 통안전을 위하여 속히 복구할 필요가 있었다. 1937년부터 10년간 약 5,000ha의 독나지를 복구할 계획으로 사업비의 60%를 국고에서 보 조하기로 하고 도비와 지원읍면에서 각각 20%씩 부담키로 하는 계획하에 사업에 착수하였다. 본 사업계획은 4,976ha에 대하여 184만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착수하였으며 1939년까지 3개년간 실행된 실적을 보면 총사업비 52만원으로 1,207ha의 면적이 복구되었으며 3,715,000 본의 묘목이 식재되었고, 노임살포액은 총사업비의 36%에 불과한 20만원으로서 연인원 317,085명이 본 사업을 위하여 고용되었다. 노임살포액의 비율이 적은 것은 총사업비의 20%가 지원읍면의 부역으로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58년부터 1967년까지 수행된 상류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사업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상류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사업의 성과가 미흡했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해당 사업의 기간, 내용, 방법론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상류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사업은 1958년부터 1967년까지 10년간
    • 주로 도입초종의 파종방법을 사용하여 피복, 복구하 는 계획으로 수행되었다.
    • 미국의 전형적인 토양보전기술을 도입하여 산복기초공사를 생략하고 단지 초류파종을 위주로 하는 피복방법을 사용하였는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사업의 실패 원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구를 선택한다.

    • 그러나 본 사업은 한국의 전형적인 봄철가뭄과 우기의 강우특성 및 토양특성들을 감안한 적절한 수정이 없이 실시되어 그 성과를 기대만큼 얻지 못하여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미국식 기술 도입 방식과 한국의 자연 환경적 특성 사이의 불일치를 연결하여 인과관계를 도출한다.

    • 미국의 전형적인 토양보전기술을 도입하여
    • 한국의 전형적인 봄철가뭄과 우기의 강우특성 및 토양특성들을 감안한 적절한 수정이 없이 실시되어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한국의 기후 및 토양 특성을 고려한 수정 없이 미국의 기술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성과가 미흡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미국의 전형적인 토양보전기술을 도입하여 산복기초공사를 생략하고 초류파종 위주의 피복방법을 사용하였으나, 한국의 전형적인 봄철 가뭄과 우기의 강우 특성 및 토양 특성들을 고려한 적절한 수정 없이 사업을 실시하였기 때문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상류수원지 토양 및 용수보전사업은 미국의 토양보전기술을 도입하여 초류파종 위주로 실시하였으나, 한국의 봄철 가뭄과 우기 강우 특성 및 토양 특성을 감안한 적절한 수정 없이 진행되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