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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의 경제 성장과 인구 변천의 상관관계 및 국가별 인구 정책의 변화 양상 비교 doc_id CNTS-00118877977_2

주제 (main_topic)
한·중·일 3국의 경제 성장과 인구 변천의 상관관계 및 국가별 인구 정책의 변화 양상 비교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한·중·일 3국의 출산과 사망 간의 역학관계를 비교하여 보면, 인구변천이 먼저 진행된 일본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의 기간 중에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았으나, 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의 영향으로 출생율이 갑자기 상승하였다. 사망률은 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1920년대부터 점차적으로 감소해 왔다. 즉,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4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출생률은 높고 사망률은 낮은 인구 성장의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1950년대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조출생률과 조사망률간의 차이는 20세기 중반까지 비교적 크게 나타났으나, 20세기 후반기부터 급격하게 줄어들어 21세기 초에는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급기야 2007년부터는 조사망률이 조출생률을 상회하기 시작하여 인구의 자연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하였다. 지금까지 한·중·일 3국의 인구 변동과 사회경제적 변화 및 인구정책을 비교분석 하였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산업화, 현대화 및 도시화와 더불어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인구변천과 사회경제적 발전이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인구통제와 경제발전이 함께 맞물리면서 진행되어 왔다(Sodei, 1996). 즉,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인구통제가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서구의 경험과 다르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3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경제성장과 인구고령화가 동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서구에서는 산업화가 도시화와 핵가족화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어서 경제발전이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다주었고 이로 인해 영양의 증진, 공중위생과 의료기술의 발전 등이 이루어지면서 평균수명이 연장되게 된 것이다. 서구에서는 경제발전과 함께 좀 더 유복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구통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보다도 늦게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중·일 3국에서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인구 및 산아조절을 하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관한 통계를 보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먼저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그 다음으로 한국과 중국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가장 먼저 선진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총소득의 규모도 2005년까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었다. 그러나 국민총소득의 규모에 있어서는 2010년부터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는 일본이 여전히 다른 두 나라보다도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도 중국보다 매우 높은 소득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지난 20여 년간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일본은 오랫동안 정체된 상태에 있었으나 한국은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은 연평균 10%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현재까지 중국의 인구정책은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단계는 1949~1970년대 초반으로 인구 증가 억제에 대한 초기 논의가 진행되는 시기이며, 2단계는 1970~1990년대 초반으로 계획생육(计划生育)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한 시기이고, 3단계는 1990년대 초반~2010년대 초반으로 계획생육(计划生育)정책이 안정된 시기이다. 최근에는 한자녀 정책을 완화하여 단독이태 정책을 추진하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 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고 분위기였으며, 이로 인해 인구증가 억제에 대한 논의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1958~1960년의 대약진운동과 1959~1960년의 자연재해로 일시적으로 사망률이 급증하여 인구의 자연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이후 베이비붐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1960년대에 들어 산아제한에 대한 논의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1962년 말 정부 문서에 등정한 ‘계획생육(计划生育)’의 목표는 출산 및 인구의 자연증가율을 억제하는 것이며, 이는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농촌지역이 주된 대상이었다(伊藤正一, 2013). 일본의 인구정책은 정책의 내용이나 강도를 기준으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인구 억제에 대한 소극적 접근(1945~1950년대 초반), 가족계획정책 및 인구자질향상정책(1950년대 중반~1980년대), 소자화대책(1980년대 후반~최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은 심각한 인구문제에 직면하였다. 전쟁 후 국외로부터의 귀환자, 복귀병사, 전후 결혼 붐 등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상승하여 베이비붐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망률까지 감소하게 됨에 따라 일본의 인구는 급증하였다. 전후 사회시스템이 완벽히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경기침체, 주택난, 식량부족, 전염병 만연 등의 사회문제를 가져왔다. 이에 연합군최고사령부(Allied Forces General Headquarters, GHQ)에서는 일본의 인구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으로 산아제한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荻野 美穂, 2008).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당시 인구 규모가 국가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과 피임방법 보급으로 인한 성적 문란 등의 사회적 문제를 우려하여 산아제한정책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온 출산율은 1989년 1.57명까지 감소(‘1.57쇼크’)하였고, 이로 인해 소자화(少子化)경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소자화 극복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특이한 점은 당시 저출산 “문제”라 칭하지 않았는데 이는 저출산현상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또한 출산이라는 사적인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간접적인 출산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김범송, 2010). 소자화에 대응한 첫 번째 정책은 1994년 12월 수립된 엔젤플랜(1995~1999)이다. 엔젤플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 거품경제(bubble economy)가 붕괴됨에 따라 일본은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은 고용 불안정 심화, 교육연장, 만혼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출산율 저하에도 영향을 미쳤다(이삼식 외, 2009b).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인구정책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한자녀정책”에서 1995년을 전후로 “훌륭한 아이를 적게 낳자”라는 인구자질 측면의 정책도 추가된 것이다. 2002년에 실시한 「중국 인구 및 가족계획법(中华人民共和国人口与计划生育法)」을 근간으로 각 시(市), 성(省), 자치구(自治區)는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산아제한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이처럼 정책 추진 과정에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을 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측면도 고려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중국의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선진국의 평균보다 낮은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한자녀정책의 조정 및 “단독이태(單獨二胎)”의 두자녀정책 시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국가인구발전 제12차 5개년 계획」과 제18차 전당대회의 보고서 내에서도 한자 녀정책에 대한 수정이 언급되었다. 2013년에는 국가위생및가족계획위원회(国家卫生计生委)에서 한자녀정책에 대한 조정 방안을 발표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서구와 동아시아(한·중·일 3국)의 인구변천 및 경제발전과 인구통제 간의 관계는 어떻게 다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서구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는 경제발전과 인구변천, 인구통제 사이의 상관관계 차이를 비교 분석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서구의 인구변천 특징과 동아시아의 인구변천 특징을 각각 추출한다.

    • 서구에서는 대체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산업화, 현대화 및 도시화와 더불어 진행되어 왔다.
    • 인구변천과 사회경제적 발전이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다.
    • 동아시아에서는 인구통제와 경제발전이 함께 맞물리면서 진행되어 왔다
    •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인구통제가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서구의 경험과 다르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서구는 경제발전과 함께 유복한 생활을 위해 인구통제를 한 반면, 동아시아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인구 및 산아조절을 했다는 핵심 근거를 선택한다.

    • 서구에서는 경제발전과 함께 좀 더 유복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구통제를 하게 되었다.
    • 서구보다도 늦게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중·일 3국에서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인구 및 산아조절을 하게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서구는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생활 수준 향상과 유복한 생활을 위한 인구통제가 이루어진 반면, 동아시아는 경제성장 자체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구통제가 맞물려 진행되었다는 차이점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서구는 경제발전과 인구변천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유복한 생활을 위해 인구통제를 선택했으나, 동아시아는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구통제와 경제발전이 맞물려 진행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서구에서는 인구변천과 사회경제적 발전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며, 경제발전과 함께 더 유복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인구통제를 하였다. 반면, 동아시아(한·중·일 3국)에서는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구통제와 경제발전이 함께 맞물리며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서구는 경제발전 이후 유복한 생활을 위해 인구통제를 선택한 반면, 동아시아는 경제발전 자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인구통제를 병행했다는 차이점을 비교하여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