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저탄소경제는 기후변화 주제와 가깝지만 그 뿌리는 지속가능 발전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지속가능 발전 개념이 주창되었을 때 핵심 의제가 환경, 자원의 지속적인 사용과 경제발전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 발전은 흔히 경제, 사회, 환경의 세 가지 축으로 표현되는데(Elkington, 1998), 초기 기후변화는 환경 차원의 한 가지 환경 이슈로 좁게 이해되었다. 이후 교토협약을 기점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기후변화는 환경 영역을 벗어나 독자적이고 개별적 의제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 온실가스 감축에 논의를 집중한 반면 저감 과정에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에너지, 경제, 산업, 사회 구조 전환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실제 해결방안에 대한 합의에는 별 진전이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저탄소경제 의제를 다시 경제, 사회 이슈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가 경제위기 해법이자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저탄소형 녹색 기술과 산업에 주목하면서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의 긍정적 양립가능성이 주목 받았다.
저탄소경제에 대한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나 개념은 없다. 전반적으로 탈탄소화(decarbonization) 또는 탄소제약(carbon-constrained) 상황에서 경제구조, 경제체제, 경제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개념으로 지칭된다. 저탄소경제는 녹색 경제, 녹색 에너지 경제, 녹색 성장과 같은 유사한 용어와 개념들과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 유사 개념은 상황에 따라 강조해서 설명하려는 의제가 조금 다른 경우가 있어 저탄소경제와 보완이자 경쟁개념으로 개념의 체계화에 서로 도움을 준다. 녹색 경제(green economy)는 환경 및 자원 경제학에서 발전한 학술개념이다. 환경을 사용 가능한 청정자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국 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에 대한 개념, 방법론, 정책 수단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둔다 ("Blueprint for a Green Economy", Pearce et al., 1989; Barbier & Markandya, 2013). 녹색 경제는 기술혁신, 자원효율성, 환경자본, 생태위험과 인간개발을 주요 핵심어로 한다. 유엔환경계획 (UNEP)은 녹색 경제를 저탄소, 자원효율성, 사회적 포용성을 지향하는 경제로 설명한다.
세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저탄소경제로 전환해야 하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탄소경제 개념을 정리하고 해외 각 국의 저탄소경제 비전과 전략을 분석한 후 우리나라 저탄소경제 비전 설정을 위한 개념적 틀을 도출하였다. 첫째, 저탄소경제는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맥락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주된 목표로 시작되었으나 기후변화가 미치는 사회, 경제적 영향력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융합개념으로 확대·발전하였다. 그 결과, 기후변화, 청정에너지, 혁신, 일자리 창출, 회복성(resilience) 등 여러 주제가 통합된 개념이 되었다. 저탄소경제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포괄적 개념과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 대응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둘째,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대전환을 전제로 한 저탄소 경제 국가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과제를 준비 중에 있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80% 이상 감축을 토대로 한 2050년 목표 半세기 탈탄소전략(mid-century decarbonization strategies)을 수립 또는 공표한 바 있다.
녹색 에너지 경제(green energy economy)도 혼용되어 사용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제 체제로 빠른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과 전략이 주요 초점이다. 에너지와 과학 기술을 강조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지속가능 발전 개념도 포용한다. 경제, 환경, 사회, 안보 측면의 동시 향상이 가능한 저탄소 기술 체제, 시장, 서비스, 자원 효율성의 확장을 촉진하는 과학적, 정책적 주제 영역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Editorial, 2016). 녹색 성장(green growth)은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 때 빠르게 확산된 개념이다. 저탄소 기술, 녹색 일자리 창출이 경제위기 주요 대책으로 받아들여지면서다. 경기부양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이 녹색 관련 기술, 산업에 투입되면서 녹색 분야가 신규 일자리 창출과 단기 성장 가능자(enablers)로 각광받았다. 세계은행은 정부의 녹색 정책이 투입 증가, 효율성 향상, 혁신 강화, 경제 자극을 높여 경제성장에 공헌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World Bank, 2012). 녹색성장은 녹색 분야 투자를 경제성장의 새로운 원천이자 도구로 강조하며 정부 주도의 녹색정책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2050년까지 최소 50~80%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후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정착되어온 지금 경제체제의 대대적인 저탄소화 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이다. 저탄소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다. 녹색경제, 녹색 에너지경제, 녹색성장, 그리고 저탄소경제 등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성장은 양립가능하고 두 부문 성과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화석연료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탈동조화(decoupling) 개념이다. 그러나 온실가스의 극적 저감에 소요되는 잠재 비용에 대한 논쟁은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저탄소경제 전환의 잠재비용, 환경과 경제의 탈동조화, 저탄소화의 긍정 경제효과에 대한 주요 논증은 (1) 비용 중립 논거, (2) 녹색 일자리창출 논거, (3) 저탄소 신성장 동력 논거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저탄소전환에 실제 소요되는 비용은 크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저감과 저탄소화가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논거는 경제의 긍정 효과(예를 들어 경제성장 등)를 주장하는 대신 부정 효과의 최소화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전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저탄소경제 타당성이 있다는 견해다. 선결조건은 외부성(externalities)이 존재하는 온실가스 배출 행위를 내부화하는 것이다. 탄소 가격이 책정되면 이 과정에서 조성된 내부화 자산이 축적되고 이를 저탄소화 재원으로 사용하게 되면 저탄소경제의 비용중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비용 중립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문헌인 스턴 보고서(The Stern Report, 1997)는 온실가스 저감이 세계 경제(GDP)에 미치는 영향은 -3.7%~3.4% 정도로 추정한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탄소배출권 가격설정만으로도 온실가스 저감이 세계 경제(GDP)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비용 중립 논리를 지지하는 다른 주장으로 왜곡된 에너지 산업 정상화 논리가 있다. 기득권인 화석연료 에너지가 경제 저탄소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직접, 간접적으로 화석연료 에너지를 지원하기 위해 지출되는 기존 보조금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줄이기만 해도 저탄소화에 필요한 투자재원이 충당 가능하다고 본다. IEA(2009) 보고서는 화석연료 보조금 삭감만으로 온실가스 6.9% 감축이 가능한 동시에 에너지 수요를 5.8%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보조금 삭감으로 왜곡된 에너지 비용구조를 바꾸면 세제 효율성이 높아지고 저탄소 분야의 신규 투자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논리이다. 에너지 저탄소화의 효과로 에너지 안보를 언급하는 주장도 있다. 저탄소경제는 외부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 화석연료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을 낮춰준다. 에너지 취약성을 줄여 절감되는 위험 관리 비용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소용되는 비용을 충분히 상쇄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