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1929년은 타지키스탄이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이탈하여 독립공화국이 된 해이다. 즉 두 국가 사이에 역사적 논쟁이 촉발되는 역사적 시간대라고 할 수 있다. 소연방에 의한 국경 획정 사건은 양 국가 모두에게 불공정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2개 국가로 나누어지기 이전, 우즈베크와 타지크라는 용어는 서로 분리된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동일한 민족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르트라고 명명되는 민족 명칭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르트는 타지크 민족을 지칭하거나 우즈베크 민족으로 지칭될 수 있는 아주 미묘한 용어였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 우즈베키스탄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타지키스탄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출범했던 당시에는 사르트 용어는 정치적으로 삭제될 필요성이 있었다. 타지크, 우즈베크로 민족을 한정할 필요성도 없었다. 그러나 종교적, 민족적, 문화적으로 얼기설기 이루어진 혼성체로는 새로운 행정 단위를 위한 명확한 국경 분류가 어려웠다.
독립 이후 국가건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민족주의적 논쟁을 가열화 시켰다. 그 배경은 1991년부터 시작된 타지키스탄 내전으로 촉발되었다. 내전에 우즈베키스탄이 친 타지키스탄 정부군의 대열에 동참하면서 다른 나라의 분쟁에 개입하였던 것이다. 타지키스탄 국내에서 벌어진 전쟁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군이 타지키스탄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타지크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민족주의 감정이 강하게 촉발하였다. 특이하게도 타지키스탄의 민족주의는 이웃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의 민족적 갈등이 더 심화함으로써 발전된 측면이 있었다.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타지크 민족들의 특별한 특성들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타지크인들이 평화애호주의 민족이었다고 강조한다. 타지크는 어떤 민족과도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폭력과 야만성으로 타민족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 민족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단지 차용하였을 뿐이며 타지크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원래의 거주 민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19세기에 등장한 타지크라는 용어는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규정할 때에 사용된 용어라는 관점을 피력하였다.
러시아의 지리적 중간자적 이중성은 민족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진다. “러시아는 무엇인가”라는 영원할 것 같은 러시아 문제에 직면한 러시아 지식인들은 표트르의 개혁이후 서구로의 지향성을 보인다. 러시아는 유럽의 일원이라는 그들만의 자의식과는 별개로 그들은 자신들 내부에 분명히 존재하는 아시아성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유럽과는 다른 자신들의 특별함으로 내세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유럽 지향성은 그들에게 동양의 존재를 요구하게 된다. 서는 대립되는 동의 존재로 대별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게 첫 번째 ‘동양’은 카프카즈였다. 러시아는 서구에서 학습한 대로 카프카즈 지역에 대한 무력을 이용한 정복과 함께 문화적으로는 야만성을 가진 이국적 공간으로 낭만화하면서 타자화한다. 카프카즈 수용의 첫 단계는 러시아 문학에 의한 낭만적 인식이었다. 푸쉬킨에서 시작된 “카프카즈 문학”은 카프카즈를 ‘약탈이 횡횡하는 거친 자유의 지역’이라는 바이런적 주제로 창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낭만적 인식은 곧 카프카즈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침략, 강탈, 야만 등의 단어로 수식되는 이런 부정적 인식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야만의 지역으로 카프카즈를 규정짓게 하고, 러시아 사회에서 이것은 어느 정도 정형화된다.
이렇게 러시아에 의해 동양으로 정의된 카프카즈는 서구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발전되고, 인간적이며, 민주적인 서구와 반대로 야만적이고, 잔혹하며,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 동양의 모습과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대비 속에서 러시아는 거칠고 무지한 카프카즈에 비해 문명화되고 발전한 나라, 즉 유럽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스스로에게 심어줄 수 있게 된다. 카프카즈에게 부여된 또 다른 이미지는 수동성이다. 동양과 그곳의 주민들은 동양학자들의 연구의 대상으로서 또 식민 정책을 위한 대상으로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된 형상으로 종종 제시되었고, 그 개념은 마치 객관적 진리인양 고착화되어 퍼져나갔다. 동양의 사람들은 의지와 역사가 없는 존재들이라는 개념도 그 중 하나이다. 레르몬토프의 시 『논쟁』의 몇 구절을 예로 들어보자.
레르몬토프의 시에 일견 보이는 동양의 이미지는 역동과 변화에서 떨어진 낡고 고루한 전통을 고수한 채 흐름에서 뒤쳐서 있는 고루한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의 카프카즈는 러시아의 ‘문화미션’을 정당화시켜 준다. 러시아는 영토 확장 과정에서 무슬림들과 조우하게 된다. 러시아는 이슬람을 종교적,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미개한 소수민족들의 역사의 열림으로 제국주의자들은 이해했다. 러시아는 비잔틴으로부터 정교를 수용했다. 그 역사적 산물의 혜택을 무슬림 민족도 얻어야 한다는 제국적 관점이 제기되었다. 소수민족들의 역사라는 것은 교육받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제국의 관리들과 선교사들이 변방 민족의 부흥자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동양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동양은 단지 서구에 반대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서구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식민지 시기의 동양에 대한 숱한 혐오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동양은 정복되어야 하고, 서구의 지배하에 놓여있어야 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양의 야만이 서구의 문명과 문화를 집어 삼킬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병합기에 만들어진 카프카즈 산악 민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은 그 지역을 정복하는 방법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통지하는 방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거칠고 야만적인 민족에 대한 통치방법은 그에 상응할 수 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부정적 이미지는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프카즈에 대한 전쟁은 그 지역에 대한 연구와 함께 진행되었다. 황립 러시아 지리학 협회 카프카즈 분소는 내무부 소속으로 풍부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카프카즈 총독부와 협조관계 속에 무슬림 산악 민족을 위한 여러 법령제정에 관여하게 된다. 이 지리학 협회에는 카프카즈 지역 통치를 담당하던 러시아의 군인계급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전향한 지역의 엘리트들도 참가하게 된다. 지역 엘리트의 통치구조 참가는 식민지 체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제국주의에 필수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은 러시아인의 적극적인 진출 지역으로서 전체 인구에서 러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농촌 지역 정착자 비율도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었다. 이런 면에서 양국은 제정러시아 시기 이래 러시아인 이주의 흐름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럼에도 한 서방측 연구 조사를 보면 이미 2000년대 초에 이르면 잔류 러시아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확실히 소수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들은 59.3%가 스스로를 소수민족으로 본다고 대답하여 그렇지 않다고 한 이의 비율(32.3%)을 크게 상회했고, 키르기스탄의 경우에도 그렇다가 67%였던 반면, 아니다는 답은 28.5%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미 1989년에 소수민족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가져다 준 민족 갈등 및 그 결과로서 1차적인 대규모 이민을 경험한 바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타지크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타지크 민족의 특성과 우즈베크 민족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
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타지크 역사학자들이 정의하는 타지크 민족의 성격과 우즈베크 민족과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추출해야 한다.
-
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타지크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관련된 문장을 문맥에서 찾는다.
-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타지크 민족들의 특별한 특성들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 그들은 타지크인들이 평화애호주의 민족이었다고 강조한다.
- 타지크는 어떤 민족과도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폭력과 야만성으로 타민족을 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 민족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단지 차용하였을 뿐이며 타지크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원래의 거주 민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
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타지크 민족의 특성에 대한 근거와 우즈베크 민족에 대한 설명 근거를 선택한다.
- 평화애호주의 민족
- 어떤 민족과도 전쟁을 하지 않았으며, 폭력과 야만성으로 타민족을 대하지 않았다
-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 민족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단지 차용하였을 뿐
- 타지크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원래의 거주 민족
-
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결합하여 타지크 민족은 평화적이고 원주민적 성격을 지니며,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의 문화를 차용한 존재로 본다는 논리를 구성한다.
-
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타지크 민족은 평화애호주의적이며 타민족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이고,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의 문화를 차용한 민족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
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적합한 서술형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타지크 민족이 어떤 민족과도 전쟁을 하지 않고 폭력과 야만성으로 타민족을 대하지 않은 평화애호주의 민족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타지크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원래 거주 민족이며, 우즈베크 민족은 단지 타지크 민족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차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타지크 민족을 평화애호주의 민족이자 중앙아시아의 원래 거주 민족으로 강조하고, 우즈베크 민족은 타지크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단지 차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