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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내 투르크계 민족과 타지크계 민족 간의 역사적 기원, 문화적 정체성 및 국경 획정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 doc_id CNTS-00118882785_34

주제 (main_topic)
중앙아시아 내 투르크계 민족과 타지크계 민족 간의 역사적 기원, 문화적 정체성 및 국경 획정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문화적 연관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한 예로 시아파 무슬림들인 아제르바이잔 투르크인은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슬람이라는 종교에서가 아니라 투르크족이라는 종족에서 찾고 있다(Kaplan, 1997:377). 그리고 투르크족 무슬림들인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메카 그리고 은밀하게는 앙카라를 바라보지 그들의 국가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절대 바라 보지 않는다. 메카를 거부한 뒤 브뤼셀로 부터도 거부당한 터키인들은 소련의 몰락으로 생긴 기회를 포착하여 타쉬켄트로 접근하였다. 외잘 대통령을 비롯한 터키 지도자들은 투르크계 민족의 공동체라는 야심만만한 구상을 내놓고 아르디아해에서 중국 국경선까지의 ‘가까운’ 외국에 있는 재외 투르크 민족을 결속하고자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터키는 그 중에서도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어를 쓰는 중앙아시아의 4개 공화국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다. 이러한 문화적 동질성 회복 노력은 경제 관계를 순탄하게 만든다. 한 터키 기업인은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일이다. 터키인에게는 이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마소프는 자기 자신이 언제나 역사적 비판의 책임자임을 자부했고 특히 타지키스탄의 역사에서 치욕적인 1924-1929년의 국경 획정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다. 소비에트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국경 획정으로 타지키스탄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라는 역사적 도시를 상실했다. 그는 현재의 국경선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하였다. 그는 타지크계와 투르크계는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화(융화)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아리안 민족의 서유럽적 특성을 지닌 타지크 민족은 투르크-몽골 유목민들을 계몽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소비에트 학자들이 주장해 온 우즈베크 민족과 타지크 민족이 공동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인종적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마소프는 두 민족은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으로 어떠한 종류의 민족 공동체와 공동의 역사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전적으로 다른 민족 그룹에서 유래했다고 강조했다. 마소프의 역사적 관점의 첫 번째 목표는 단호하였다. 그것은 투르크문화와의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 확장하면 타지크와 우즈베크 사이의 어떠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투르크 민족의 역사는 (AD 1000~1991년 독립 때까지) 복종과 굴욕, 타지크 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이 전부라고 보았다. 그는 우즈베크 인들이 문화적으로 타지크 인들보다 열등하며, 역사도 매우 짧으며, 우즈베크 인들은 타지크 인들이 장구한 세월 동안 이루어 온 고결한 문화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보았다. 마소프는 19세기 서구과학이 동양을 응시해 온 오래된 고정관념들은 중앙아시아 민족 간에 일어나고 있는 경쟁적 관계 속에서 재평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우즈베크인이 문화적으로 타지키스탄에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우즈베크 민족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우즈베크 인들은 타지크 인들이 이룩한 문화 가치를 전혀 만들어낼 수 없다는 국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마소프의 주장을 지지하는 학자는 ‘이브라임 우마르조다’인데, 그는 “아리안 문명의 역사”라는 저서에서 현대 타지크인은 아리안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주장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했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영토에 관한 논쟁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소비에트 연방 안에서 자신들 고유의 공화국을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타지키스탄은 강제적인 국경 획정 설정이후 인구가 밀집되어있고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등의 역사적 도시를 우즈베키스탄에 넘겨줌으로써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왔다. 수십 년 동안 우즈베키스탄 내의 타지크 인들은 투르크화 되었다. 오늘날 타지크 엘리트들은 타지키스탄의 땅과 타지크 민족의 문화유산을 비난하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타지크 민족은 20세기에 들어와 기본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자신들의 역사적 고향이라는 기본적인 역사 인식을 이들은 가지고 있다. 타지키스탄의 통치자들은 국가 방어선을 타지키스탄 국경선 바깥 경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까지 연장하여 보호선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도 타지크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소프는 우즈베크 인들이 타지크 인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식하고 야만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범투르크주의자들의 공격적 성향을 대변하는 태도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범-투르크주의자들은 타지크 민족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타지크 민족을 “이란화된 투르크의 분파”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소프와 동료 학자들은 타지크 인이면서 자신의 여권에 ‘우즈베크’로 민족명을 기입한 사람들을 민족의 배신자로 비난하였다. 1924년 이후 우즈베크화된 타지크인들, 범투르크주의 지지자들, 범-우즈베크주의자들 때문에 타지키스탄이 과거의 땅과 문화의 중심지를 상실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마소프는 동시에 타지크화된 우즈베크인들은 타지크 언어의 유용성에 해를 끼치는 이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 광대한 역사적 기원으로 설명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아리아니’(Ariani) 라고 일컫는 지역에서 창출되는 아리안 문명이다. 이것은 약 8천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유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의 기간은 중앙아시아의 모든 문명 중에서도 가장 긴 고대로 일컬어질 수 있다. 투르크멘 민족들도 자신들의 과거의 역사를 최장 6천년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 이 8천 년의 시기가 우즈베크와 타지크 역사가들에 의해 역사적 쟁점으로 남아있다. 역사적으로도 타지키스탄은 과거 6세기에서 4세기까지 존속한 페르시아의 아카메니드 왕조에 속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대해 우즈베크 역사가들은 타지크 사회는 대부분 파미르 산악지역과 힌두 쿠쉬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즈베크 학자들도 기본적으로는 타지크 민족이 중세 페르 시아 제국인 사산조 페르시아로부터 기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세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타지크 인들의 공헌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부인한다. 키도이아토프(Khidoiatov) 교수는 저서 ‘사산조의 멸망’ (The Downfall of Samanid) 에서 현대 쿠쉬 지역에 자신들을 아리안 인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논증하고 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에 들어와 촉발된 아리안 문화 논쟁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타지크 역사학자들은 큰 범주로 본다면, 아리안 인종을 자신의 선조로 생각하고 있으며, 아리안계를 자신들의 민족 기원의 핵심 전략으로 도출하고 있다. 아리안을 민족의 선조로 주장하고 이를 자국 민족의 유산으로 광범위하게 수용하는 경향이다. 즉 이 경우 아리안은 민족정체성의 중요한 문화적 요소가 된다. 아리안민족은 정복자가 아니다. 순수한 민족의 선조일 뿐이다. 타지크 민족에게 아리안은 일종의 헤게모니이다. 아리안의 역사적 모델은 민중의 삶에 스며들어간다. 타지크 지식인들은 ‘타지크’ 라는 용어를 고대 언어인 ‘Aryan’의 동의어로 정의하고 있다. 퍈코프(И.В. Пянков)는 아리안의 영토를 의미하는 아리아나(Ariana)는 중세기 시작 무렵 타지크 민족이 형성한 영토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의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아리아나’는 타지크 인들의 선사시대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봤을 때 매우 발달한 고대 아리아 민족들은 이미 예수 이전 몇 세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리안 문화는 타지키스탄 정치체제의 역사적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마소프가 타지크 민족과 우즈베크 민족의 관계에 대해 주장한 핵심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마소프가 타지크 민족과 우즈베크 민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마소프의 민족관과 관련된 구체적인 진술을 추출한다.

    • 그는 타지크계와 투르크계는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화(융화)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 마소프는 두 민족은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으로 어떠한 종류의 민족 공동체와 공동의 역사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전적으로 다른 민족 그룹에서 유래했다고 강조했다.
    • 그것은 투르크문화와의 연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 확장하면 타지크와 우즈베크 사이의 어떠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민족이 서로 다른 그룹이며 역사적/문화적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을 명시한 문구들을 선택한다.

    • 타지크계와 투르크계는 혈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화(융화)되지 않는다
    • 두 민족은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으로 어떠한 종류의 민족 공동체와 공동의 역사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 타지크와 우즈베크 사이의 어떠한 역사적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추출된 근거들을 종합하여 마소프가 두 민족의 분리성과 이질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도출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마소프는 타지크와 우즈베크가 혈연적,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이며, 어떠한 역사적 연결고리나 공동의 기원도 공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마소프는 타지크계와 투르크계(우즈베크)가 혈연적,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두 민족 사이에 어떠한 종류의 민족 공동체나 공동의 역사적 기원도 존재하지 않으며, 두 민족 사이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마소프는 타지크 민족과 우즈베크 민족이 혈연적,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민족 그룹이며 어떠한 역사적 연결고리도 없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