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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내 러시아인 인구의 유입과 정착 과정, 그리고 독립 이후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른 급격한 이탈 및 인구 구조의 변화 doc_id CNTS-00118882785_73

주제 (main_topic)
중앙아시아 내 러시아인 인구의 유입과 정착 과정, 그리고 독립 이후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른 급격한 이탈 및 인구 구조의 변화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주요 도시에 집중된 인력들은 엔지니어, 의사, 교사, 기능인 등의 전문가들이었다. 소비에트 정권의 발전 프로그램이 젊고 교육받은 러시아인들을 중앙아시아로 불러들였고, 이주자들에게 정치, 행정, 경제적 결정권을 갖는 자리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3단계까지의 러시아인 이주는 밀물과 같이 중앙아시아로 향했고, 때에 따라서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들이 추동이 된 파도를 동반하였다. 1989년까지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중앙아시아 거주 러시아인의 수는 꾸준히 늘어남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정부 정책의 직접적 영향 아래 이주했고, 산업을 중심의 도시들에 주로 거주하면서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활용하여 사회․문화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의 안정된 정착과 생활은 중앙아시아 지역이 경제 및 산업 뿐만 아니라 언어나 교육, 문화적으로도 러시아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도 적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현지 토착 민족들에 비해 우월한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는 환경 속에 러시아인들은 생활해 갔던 것이다. 독립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의 러시아 디아스포라를 살피는 일은 먼저 공식적인 인구 통계를 기초로 러시아인 사회의 규모가 어떻게 변했는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생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러시아 귀환자의 수가 가장 많았던 나라는 카자흐스탄이다. 1989년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은 600만 명 이상이었으나 2000년에 약 450만 명으로 줄어들어 전체 인구 대비 비중이 30%로 급감했다. 이는 매년 15만 명이 카자흐스탄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특히 마치 썰물과 같았던 러시아인 이민의 흐름이 절정을 이룬 시점은 1990년대 초였다. 독립 선언 이후 불투명한 정세와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있던 1992년 4월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발표한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의 영향이 특히 심대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선언은 사실상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의 천명과 그 수단으로서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93년에 17만 129명의 러시아인이 카자흐스탄을 떠난 이래, 1999년까지 약 100만 명이 이주했다. 탈출하는 이민자의 수가 정점에 이른 해는 1994년이었는데 한 해 동안 짐을 싼 50만 명 중에서 러시아인이 약 3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20여 년간의 러시아인 관련 인구 통계에서 변하지 않는 점도 있다. 그 하나는 비록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키르기스탄에서 러시아인이 우즈벡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민족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츄주(Чуйская область)24)에 집중된 거주이다. 키르기스탄의 러시아인들은 나라의 7개 주(지역) 중에서도 카자흐스탄과의 경계이며 수도를 포함하고 있고 러시아인의 상대적으로 긴 이민사를 가진 지역인 츄주에 집중되어 살고 있었다. 즉 2000년까지 러시아인이 주 인구 구성의 14% 미만을 차지했던 다른 지역의 경우와 비교해 츄주에 32% 그리고 수도인 비쉬케크에 1/3이 집중되어 이들 두 거주 중심지역의 인구가 전체 러시아 디아스포라의 2/3에 육박했다. 이민으로 인해 비록 전체 인구에서 러시아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이러한 추세는 2011년에도 변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츄주의 전체 인구(814,870명) 중에서 러시아인(156,854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2%였고, 수도의 경우 859,795명의 인구 중 러시아인이 21.3%(182,847명)였다. 양자를 합하면 339,701명으로 키르기스탄 러시아 디아스포라의 86%가 수도 및 츄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지리학 협회 카프카즈 분소는 설립 될 당시 내무부 산하에 있었다. 따라서 카프카즈 분소는 당연히 카프카즈 총독부와 이러 저러한 법령제정과 개발에 상호 협력하였다. 러시아 지리학 협회에는 몇몇 지역의 무슬림 학자들과 교사들이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다게스탄의 아브두라흐만 카지쿠무흐스키(Abdurrakhman Kazikumukhsky)는 다게스탄 산악지방의 첫 번째 민속지를 작성했다. 그 민속지는 지역의 물질 문화를 간략히 설명하고, 지역의 풍습과 관습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산악 민족의 몽매와 도적 경향에 대한 신랄한 공격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카프카즈를 통치하던 군인 총독들이 황립 러시아 지리학 협회 카프카즈 분소의 회원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에게 카프카즈의 고대나 풍습을 공부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였다. 남 다게스탄의 지역 책임자였던 코마로프(A.V. Komarov)장군 같은 경우에는 고고학이나 지역학, 특히 민족적 풍습 같은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기도 했다. 동 카프카즈에서 오랜 동안 근무하면서 그는 지역의 민속지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그의 출판물 중 유명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인의 급격한 인구 감소는 현지 정부의 명목민족 우대 정책을 사회 각 방면으로 확대, 가속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인들이 차지했던 집과 일자리만이 아니라 잠재적 비용인 복지 혜택과 연금 지급 준비금에서도 그만큼 여유가 생기는 효과가 있고, 그 혜택은 주로 자국민에게 돌아가는 결과로 나타났다. 동시에 그것은 같은 기간 동안 중앙아시아 각국의 여러 사회 개혁의 동인이 되었다. 신생 정부의 당국자들은 정치만이 아니라 지방 행정 체제 재편, 연금 개혁, 대도시를 중심의 산업과 경제활동 전반을 검토해야 했던 것이다. 가령 지방 행정 구역 개편은 러시아인의 인구 비중을 염두에 둔 조치로 촉발된 측면이 있음에 분명하다. 러시아인의 이탈로 인구 비중이 이미 상당히 감소하고 있었기에 급격한 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적인 사회 문제들에 대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 거점 도시들에 대체로 고령의 러시아인이 잔류하게 된 현실은 향후 지역의 러시아인 비중을 더욱 낮추는 효과로 나타날 것임이 분명했다. 명목민족에 비해 러시아인은 더 낮은 출산율과 더 높은 사망률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1960년대 이후 소비에트 정부가 조성한 중앙아시아 개발의 붐이 꺼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앙아시아는 그간 최고의 안전과 발전이 약속된 지역이었지만 처녀지 개척 운동이 포기된 이후로 발전의 기운은 꺾였다. 브레즈네프가 현지인 우선 채용정책을 채택한 시기도 이 때였다. 게다가 1975년부터 본격화된 바이칼-아무르 철도(БАМ)의 건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들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였는데, 인근인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이 이에 부응함으로써 러시아로의 인구 이동 요인이 발생했다. 둘째로 1970년대에 중앙아시아의 빠른 도시화로 현지 주민의 도시 거주가 가속화되었다는 점이다. 도시화는 이전 시기에 추진된 산업화의 영향을 일정 정도 받은 결과였다. 산업 시설들의 유지를 위한 도시 건설이 가속화되면서 시골에서 도시로 인력 이동이 활발해졌으며, 러시아인들 경우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주는 현지인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에 러시아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귀환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현지로 이주하는 이는 줄어든 반면 귀환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대 초에 중앙아시아를 떠난 러시아인 이민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특성이 실제로 확인된다. 가장 많은 수의 러시아인이 떠난 카자흐스탄을 예로 들면,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러시아인의 이주자 비율은 1994년에 39%를 차지하였으나, 1997년에 44%로 증가하였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1990년대 이주의 흐름을 한번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러시아인 이민자의 수가 정점에 이르렀던 1994년경까지의 이주는 자신들의 미래가 불확실한 지역 국가의 독립이라는 상황에서 많은 러시아인들이 이주를 고민하던 시점이었지만, 1995년 이후에는 이민이 가져다 줄 결실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짐으로써 전반적으로 러시아인 이주의 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고학력 러시아인의 이민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민자의 64%는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동연령(20-55세)이었고 유소년층은 22%였다. 양자를 합해 86%나 되는 러시아인이 이주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현직에 있던 전문 고등교육 이수자들이 자신과 2세들의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전망하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90년대 초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 이민이 급증한 배경이 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정책은 무엇이며, 그 정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카자흐스탄의 러시아인 이민 급증 원인이 된 대통령의 정책 명칭과 해당 정책의 해석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1992년 4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발표한 정책과 그에 대한 해석을 문맥에서 추출한다.

    • 1992년 4월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발표한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
    • 대통령의 선언은 사실상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의 천명과 그 수단으로서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정책 명칭과 해석 내용을 선택한다.

    •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
    •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의 천명과 그 수단으로서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발전 전략 발표가 카자흐화 정책의 공식화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러시아인 이민의 흐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정책 명칭은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이며, 이는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을 천명하고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구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발표한 정책은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이다. 이 정책은 사실상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을 천명하고, 그 수단으로서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90년대 초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인 이민이 급증한 배경에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발표한 '2005년까지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발전전략'이 있으며, 이는 '카자흐 국민의 나라' 건설과 카자흐화 정책을 공식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