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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중국, 러시아 및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변화와 주요 협력 및 갈등 양상 doc_id CNTS-00119998055_22

주제 (main_topic)
북한의 중국, 러시아 및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변화와 주요 협력 및 갈등 양상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3년 5월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북·중 관계는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2015년 9월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과 10월 중국 공산당 류윈산 상무위원의 북한 노동당 70돌 경축행사 참석을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집권 초기 북한의 핵실험 위협에 대해 모든 당사국에게 역내 긴장을 강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거듭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긴장 고조에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신속하게 동참하면서, 동시에 독자제재를 강행하는 등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2016년 4월 5일 대북 수출입 금지품목 25종을 발표한데 이어 2016년 4월 28일 ‘제5차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CICA) 외교장관 회의’ 기조강연에서 대북제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2016년 6월 14일 대북 수출금지품목 확대 등은 핵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강경한 대북입장을 보여준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2000.5., 2001.1., 2004.4., 2006.1., 2010.5., 2010.8., 2011.5., 2011.8.)과 장쩌민(2001.9.), 후진타오(2005.10.) 등 중국 지도부의 방북으로 북·중 관계가 한층 강화되었으나, 시진핑 정권 출범(2012년)이후 중국의 국제사회 대북제재 동참으로 다소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가 중국을 방문(2013.5.)하고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북한 당 창건 70주년 행사 참석, 상호 간 경축행사 축하사절 파견(2015.9.~10.), 6자회담 수석대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 사무특별대표의 방북(2016.2.2.),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시진핑 주석 면담(2016.6.1.) 등에도 불구하고 북·중 관계는 예전의 혈맹관계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김정일 생존 당시 정상 간 상호 방문(푸틴 대통령 방북: 2000.7., 김정일 방러: 2001.7., 2002.8., 2011.8.)으로 전통적 친선관계가 일부 회복되었다. 김정은 등장 이후 나진-하산 도로개통 등 일부 경제협력이 이루어지고, 러시아 소치올림픽(2014.2.)과 전승절 행사(2015.5.)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푸틴 대통령 면담, 북·러 ‘친선의 해’ 선포 공동결의문 채택(2015.3.), ‘비법입국 및 비법체류자들의 인도와 접수에 관한 협정·의정서 조인’(2016.2.3.), 인민무력성 대표단 러시아 방문(2016.9.3.) 등은 북·러 관계가 우호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핵실험·장거리 로켓발사 등 북한의 잇따른 군사적 도발로 경협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등 전통적 친선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탈냉전 시기 이전까지 북한과 러시아는 전통적 우호동맹 관계를 유지하였다. 소련은 군사·이념적 관계에 기초하여 북한 정권의 수립을 지원하였고,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을 견제하면서 북한의 전후 복구 및 군사력 증강을 지원하였다. 탈냉전 이후에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균형 외교를 추진함으로써 북한은 새로운 북·러 관계 설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북한은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고 11개 공화국으로 이뤄진 독립국가연합(CIS)이 출범하자 곧바로 모든 공화국과 수교하는 등 관계를 재정립하였다. 1996년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개최 등 경제협력 관계가 본격화되면서 북·러 간의 정치관계도 차츰 회복되었다.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에 2000년 2월 9일 정식 서명하였다. 이로써 북·러 관계는 이념에 기초한 정치·군사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 체결에 이어 소련과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2000년 7월 북한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는 기본 틀을 마련하였다. 김정일은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2001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소 수교 이후 소원해 있던 북·러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고 러시아와 외교·경제 등 협력 체제를 구축하였다. 특히 양국 정상이 발표한 ‘북·러 모스크바 선언’(2001.8.4.)에는 양국 간의 협력관계 복원,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사업, 대미 공동보조,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한 합의가 담겨 있다. 한편, 러시아는 2007년 2월 13일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합의와 2007년 10월 3일 ‘9.19공동성명을 위한 2단계 조치’ 합의 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러시아가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북한을 지지하였고, 북한은 국제적 고립 탈피 및 체제유지를 위해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2008년 나진-하산철도 및 나진항 재건 착공식과 2012년 북한의 대러 채무 탕감협정 체결, 2014년~2016년 북·러 경제공동위원회 개최 등 북한과 러시아의 긴밀한 친선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러시아가 동참함으로써 북·러 관계는 소원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북측 고위인사들이 매년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유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러간 ‘비법입국 및 비법체류자들의 인도와 접수에 관한 협정 의정서’ 조인(2016.1.), 대북 식량기증(2016.2., 2016.7.) 등을 통해 북한과의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양면적 외교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유럽 국가들과의 교류 확대 차원에서 1999년 9월 제54차 유엔 총회를 앞두고 영국 등 대부분의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사상 처음으로 외무장관 회담을 제의하는 등 유럽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였다. 2000년 1월 4일 이탈리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해 서방 접근의 토대를 마련하고, 같은 해 9월 유럽연합 15개국 회원국 가운데 외교관계가 없는 7개국을 대상으로 수교를 제의하였다. 유럽연합도 북한의 제의에 호응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계기로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유럽연합 국가들이 대북 수교 방침을 표명하였다. 이어 2001년 5월 2일 당시 유럽연합 의장인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유럽연합 대표단이 방북하여 서방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김정일과 회담했다. 회담에서는 2003년까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확인받고 북한 인권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북한측 경제조사단의 유럽 파견 등에 합의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이념에 기초한 정치·군사 동맹관계에서 경제협력 파트너로서의 새로운 관계로 변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성격이 변화하게 된 원인과 그 계기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북·러 관계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된 조약 및 사건을 추출한다.

    • 탈냉전 이후에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균형 외교를 추진함으로써 북한은 새로운 북·러 관계 설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에 2000년 2월 9일 정식 서명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관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구를 선택한다.

    •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에 2000년 2월 9일 정식 서명하였다. 이로써 북·러 관계는 이념에 기초한 정치·군사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2000년 2월 9일에 체결된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이 기존의 동맹 관계를 경제협력 파트너 관계로 전환시킨 핵심 근거임을 연결한다.

    •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에 2000년 2월 9일 정식 서명하였다.
    • 이로써 북·러 관계는 이념에 기초한 정치·군사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조약 체결을 통해 관계의 성격이 변화했음을 결론짓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답으로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의 체결을 제시한다.

    •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에 2000년 2월 9일 정식 서명하였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2000년 2월 9일에 정식 서명한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이념에 기초한 정치·군사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계기는 2000년 2월 9일에 정식 서명한 ‘조·러 우호 선린 협조 조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