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한편 유럽연합은 북한과의 정치대화로 인권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루었으며, 유엔인권위원회에 2003년부터 꾸준히 ‘북한인권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규탄하고 인권개선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의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2005년 이후에는 유엔 총회 차원으로 격상하여 매년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총회에서도 북한인권 결의안 제출을 주도해 왔다. 2005년 11월 유럽연합이 유엔에 상정한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이후 북한과 유럽연합 간 대화는 단절되었고, 2009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5월 2차 핵실험은 양자 관계를 냉각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후 2011년 3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영국, 2014년 9월 북한 강석주 노동당 비서가 독일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유럽연합 가입국 의원 및 유럽의회 대표단 등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교류는 지속되어 왔다. 2015년 6월 북한·유럽연합(EU) 간 제14차 국장급 정치대화가 평양에서 개최되어 핵과 미사일, 인권문제가 논의되었으나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인권문제 등으로 북한과 유럽연합과의 관계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유럽연합과 함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도 추진하여 왔다. 북한이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 북한은 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 중·소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중심의 외교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의 비동맹 국가들로 외교관계를 확대할 것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이후 북한은 1960년대를 거쳐 1970년대에 활발한 비동맹국 외교를 전개하였다. 1980년대 초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 제시를 계기로 북한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추진하였다. 특히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에 따른 냉전체제 해체와 세계질서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체제생존이 급선무이던 북한에 비동맹국들과의 외교관계는 더욱 중요하였다. 여기에 유엔에서의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후원 국가가 필요한 상황도 북한의 비동맹국 외교 강화의 주요 변수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동서 간 데탕트와 미·중 우호 협력관계 발전, 남북대화 추진 등을 배경으로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 개선도 다소 활발하게 추진되었으며, 북·일 수교 문제는 1990년대부터 본격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북한과 일본 간 수교회담은 1991년 1월 제1차 회담을 시작으로 2000년 11월까지 11차례 개최되었다. 북·일 관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2년 9월 17일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주요 현안들을 포괄 해결하기로 한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전기를 마련하였다. 양측은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2년 만에 제12차 수교회담을 개최(2002.10.29.~30, 쿠알라룸푸르)하였으나 일본의 핵개발 포기 요구 및 납치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 등으로 차기 회담 일정도 합의하지 못한 채 성과 없이 종료하였다.
2004년 5월 22일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는 1년 8개월 만에 제2차 정상회담을 갖고 2002년 10월 이후 중단된 수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회담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북·일 관계 개선은 쉽게 진전되지 않았다.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사망한 후 2004년 12월 일본으로 송환된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 진위 여부 논란이 증폭되면서 일본 국민의 대북 감정이 악화되었고, 북한은 납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와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한편 북·일 간 전세기 일본 착륙 금지, 북한 당국자 및 승무원 입국 금지, 모든 북한 상품 수입 금지 등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하였다. 북한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일본은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1874호(2009.6.12.)에 동참하면서 대북 수출 전면금지 등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강화를 통한 압박전략을 구사하였다.
북한에 의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됨으로써 일본의 대북 정책 기조는 더욱 강경해졌다. 한편 아베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후 2013년 5월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지마 내각 관방참여가 방북하고, 2014년 북·일 간 국장급회담이 수차례 개최되었다(2014.3., 2014.5., 2014.7.). 특히 5월 26~28일 스웨덴에서 진행된 북·일 국장급 회담(스톡홀름 합의)에서 북한 측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납북 일본인 전면 재조사, 재북 일본인 유골 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일본 측은 재조사 개시 시점에 민간인 왕래 규제, 송금·휴대금액 제재, 인도주의 목적 아래에서의 북한 국적 선박 일본 입항 금지 등을 해제하기로 하였다. 7월 4일에는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개시하였으며, 일본도 같은 날 합의한 세 가지 대북제재 조치를 해제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1991~1992년 북일 협상을 8차례 개최하는 등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1995년 3월 북한 노동당이 일본 연립 여당과 국교정상화 회담 재개에 합의하였고, 1995~1996년 50만 톤의 식량지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북·일 간 두 차례의 ‘일본인 처 고향방문사업’, 일본 자민당 대표단의 방북(1998.3.) 등 북·일 관계 정상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북·일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으며, 북한이 1999년 8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하면서 더욱 냉각되었다. 이후 북·미 간 ‘베를린 합의’(1999.9.)를 계기로 북한은 일본의 정당 대표단이 방북했을 때 공동보도문을 통해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 재개를 합의(1999.12.3.)하였다. 그 결과 북·일 적십자회담이 개최(1999.12.19.)되어 재북 일본인 여성 고향방문 재개 등 4개 조항이 합의되었다.
북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북한은 스스로가 ‘노래로 고난을 극복하는 나라’라고 선전하듯이 북한에서 음악은 인민의 계급의식과 공산 혁명 의식을 고양시키는 교양 및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음악을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발간한 노래집의 절반 정도는 소련 민요와 중국풍의 국민 가요식 민요조 선율을 띠고 있고, 화음과 리듬보다는 가사와 멜로디에 치중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일반 주민들이 쉽게 따라 배울 수 있는 단조로운 화성과 창법에서 비성(鼻聲)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찬양하는 송가(頌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우리 고유의 전통 악기를 개조하여 서구의 현대악기와 합주하는 등 전통음악의 양악화 역시 특징이 된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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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북한이 1980년대 초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을 제시한 이후 외교 관계의 범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설명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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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80년대 초 북한의 대외정책 원칙 변화가 외교 관계의 범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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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80년대 초 북한이 제시한 대외정책 원칙과 그에 따른 외교 대상의 변화를 추출한다.
- 1980년대 초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 제시를 계기로 북한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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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정책 원칙의 명칭과 그로 인해 확장된 외교 대상인 '서방 자본주의 국가'를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
-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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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자주·친선·평화'라는 원칙이 계기가 되어 기존의 비동맹국 중심에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까지 외교 범위가 확대되었음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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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북한은 새로운 대외정책 원칙을 바탕으로 서방 자본주의 국가를 포함한 더 넓은 범위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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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질문에 대해 서술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북한은 1980년대 초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추진하며 외교 범위를 확대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북한은 1980년대 초 '자주·친선·평화'의 대외정책 기본원칙 제시를 계기로 서방 자본주의 국가를 포함한 기타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