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그러나 2006년 미사일 발사, 1차 핵실험으로 한동안 북한의 비동맹국 외교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2009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북한의 비동맹 국가와의 대외관계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은 비동맹국들의 지지로 대북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활발히 외교활동을 벌였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같은 해 6월 북한 김격식 총참모장이 쿠바를 방문하였으며, 박의춘 외무상이 제20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여 수교국들과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였다. 2013년 8월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김영남 최고인 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2014년 10월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하고, 이어 2015년 4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 60주년)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였으며, 2016년 9월에 개최된 비동맹국 회의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리수용 국제부장이 참여하였다. 또한 강석주 노동당 비서의 쿠바 방문(2015.6.), 쿠바 대 표단의 북한 방문(2015.9., 2016.6.) 시에는 김정은 면담 등을 실시하고 친선관계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도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2017년 8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우려를 표명하고 비가역적인 핵 폐기를 촉구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 정부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북한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대표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장관들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의‘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자격 문제에 대해선 제기하지 않았다.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과의 외교는 김정은 정권이 체제 생존을 위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강행될수록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 국제 환경이 변화되자 자주노선 견지와 경제적 실리 추구를 외교 목표로 설정하였다. 1971년 9월 중국의 유엔 가입과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중 관계가 정상화되고, 일본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국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북한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추진하였던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개선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들어 대남 도발과 외채 상환 문제, 위폐 및 외교관 밀수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한의 국제적 입지는 약화되었다. 북한은 이 시기에도 비동맹국 외교를 적극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북한은 노동 당 제5차 대회(1970년) 이후 제6차 대회(1980년)까지 66개 국가와 수교하였다. 1970년대 비동맹국 외교의 강화를 통한 수교국가수의 증가는 북한으로 하여금 사회주의 진영외교 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북한이 향후 제3세계 지역에서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1980년대 들어 사회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 침체에 빠지거나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된 소련과 동유럽의 경제 침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경제가 붕괴된 중국은 1978년 11기 3중 전회를 기점으로 시장경제의 도입과 대외개방을 시작하였다. 북한 역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 누적으로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직면하였으며,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 중공업 우선주의,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 등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북한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친선에 중점을 둔 외교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기존의 사회주의 국가, 비동맹 국가, 제3세계 개발도상국과의 외교관계도 지속하였다. 북한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친선 및 경제협력 관계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나, 대남테러와 납치사건으로 국제적 입지가 축소되고, 서방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었다. 결국 선진 자본주의 기술 도입과 자본 유치를 목적으로 한 북한의 대서방 실리외교는 큰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셋째, 북한의 대외무역 대상국이 다변화되어 있지 못하고 압도적으로 중국에 편중되어 가는 구조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0년 24.4%에서 2016년 92.7%로 증가해 사실상 대외무역 자체가 대중국 교역으로 고착되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유엔 대북제재 강화와 북일 교역·남북 경협이 중단된 풍선효과, 중국 동북3성 지역 경제와 북한 경제 사정의 상호 수요 접근, 중국의 대북 전략 등등 요인이 총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국과 경제특구 공동 개발, 투자 협력, 접경지대 인프라 연결 협력, 노동력 수출 협력, 관광 협력 등 다방면의 경제관계도 맺고 있다. 북한의 대중국 노동력 송출 규모는 정식 체류 인력과 ‘국경통행증’을 소지한 무허가 인력을 모두 포함하는 경우 최소 5〜6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 기능을 부분 제도화한 7.1 조치 이후 계획경제와 비공식경제 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종합시장 바깥의 장사활동(메뚜기 장사, 주택가·골목장사, 방문 판매) 및 개인 경제 활동을 확산시켜 나갔다. 특히 다양한 서비스 업종(노래방·PC방, 숙박업, 운송, 목욕탕, 식당, 개인 수리업, 자전거·오토바이 배달 등) 및 자영업이 발전되어 나갔다. 공장·기업소들은 기존 업종과 생산활동을 아예 변경해 국가기업이익금을 납부하거나, ‘돈주’의 투자를 유도해 ‘돈주’로부터 수익금의 일정 몫을 받아 국가기업이익금을 내기도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7.1 조치는 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공식경제와 비공식경제가 상호 공생하는 시 스템을 자연스럽게 구축시켰다. 이에 위기의식을 갖게 된 북한 당국은 2005년 하반기 7.1 조치 시행을 중단하고, 점진적으로 시장을 통제해 나갔다. 김정일이 “시장은 비사회주의의 서식장이요, 자본주의의 본거지”라고 언급한 이후, 결국 2009년 11월 30일 전격 화폐개혁을 시행함으로써 종합시장조차 철폐하려 했었다.
한편,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1990년대 이후 더 이상 과거처럼 엄격한 중앙집중적·계획적 관리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 재정의 위기로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원리’에 따른 중앙집중적인 계획화 체계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전략적으로 의의가 있고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중요 경제지표들(국방공업, 기간산업, 선행 경제부문들의 경제지표)만 중앙의 국가계획위원회에서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외의 경제지표들은 해당 기관이나 공장·기 업소에서 자체 계획을 세워 해결하도록 하고, 계획지표도 물량지표에서 금액(액상) 지표로 변화시켜 운용해 왔다. 이에 김정은 정권은 2014년 이른바 ‘5.30 조치’를 통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하고, 「사회주의기업법」도 2014·2015년 두 차례로 개정해 사실상 시장을 활용해 이루어졌던 계획지표 달성 활동을 제도적으로 부분 공식화하고 있다. 즉 지배인의 자율적 경영지표를 확대해주고 시장을 활용한 기업 자체의 계획도 부분 인정하는 분권적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70년대 북한이 비동맹국 외교를 적극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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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1970년대 북한의 비동맹국 외교 확대가 가져온 구체적인 결과와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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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70년대 북한의 외교 활동 및 수교 현황에 관한 정보를 추출한다.
- 북한은 이 시기에도 비동맹국 외교를 적극 확대해 나갔다.
- 북한은 노동 당 제5차 대회(1970년) 이후 제6차 대회(1980년)까지 66개 국가와 수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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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외교 확대의 결과로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1970년대 비동맹국 외교의 강화를 통한 수교국가수의 증가는 북한으로 하여금 사회주의 진영외교 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 그리고 북한이 향후 제3세계 지역에서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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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비동맹국과의 수교 증가가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 외교의 토대가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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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수교국 수의 증가가 사회주의 진영 외교 의존도를 낮추고 제3세계에서의 독자적 외교 토대를 마련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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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비동맹국 외교 강화를 통해 수교 국가 수가 증가함으로써 사회주의 진영 외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향후 제3세계 지역에서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70년대 북한은 비동맹국 외교를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수교 국가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진영 외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제3세계 지역에서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