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근대 이후에 태동하여 다양한 의미적 굴곡을 겪어 온 러시아 시각예술의 변곡점에 대두되었던 창조적 변화의 양상을 요약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지속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세계 디자인 역사의 보편적 흐름과도 공명하는 바가 큼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반플라톤주의(anti-Platonism)로서 형식(form)을 격하하고 질료(material)의 위상을 격상하여, 브리콜라주(bricolage) 원칙에 입각한 질료 중심적 창작을 꾀했던 흐름이다. 둘째는 전통의 변형과 혼종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정전의 지속적 해체를 지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서유럽 모던 디자인의 가치적 측면(즉 기능위주의 ‘정직성’ 추구,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 즉 기능(function))의 일치, 형식과 개념(concept)의 우위, 자칫 진부함(banality)으로 흐를 수 있는 기의중심의 예측 가능적인 공정)은 오히려 현대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특징(장식성 강조, 기의와 기능에 대한 기표의 우위, 질료의 중시, 기표중심의 비예측적 공정)과 공명하는 바가 큰 러시아 문화의 혁신적 흐름에 대해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스탈린식 의사고전주의(stalinskij ampir)’의 지속, 소비 가전재의 부족,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두된 사치품, 비생필품에 대한 강한 욕망은 1950, 1960년대까지 소비에트 사회의 물질문화를 규정하는 키워드였으나 공동주택 대신 ‘흐루쇼프카’가 보급되고 주거공간이 점차 개인화, 내밀화되면서 대중의 소비적 욕망(유럽, 미국, 중남미의 실내 장식재와 가구, 오디오, 슬라이드 영사기 등 가전, 가제트에 대한 높은 선호 등)이 동반 상승하고, 아울러 TV, 라디오, 영화 등 매스미디어를 통한 국제사회와의 간접적 교류가 잦아진 1970년대 이후로는 삶의 질적 측면과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려와 함께 디자인의 위상이 꾸준히 상승해 왔다. 1960년대 초 소위 해빙기에 디자이너들의 자율성이 다소 확장되었으나, 디자인계 내부의 변화가 가시화된 것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도입 이후 훨씬 뒤의 일이었다.
1980년대 이후 2000년까지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의 러시아 디자인의 실상을 조명한 Nazarov(2002)에 의하면, 소연방 붕괴 후 현대 러시아 디자인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끼친 것은 바로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의 창설과 이 단체의 활동이었다.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의 창설을 기점으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설계영역의 외연이 넓어졌다. 이런 와중에 소련 디자이너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던 것은 1987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디자인’ 전시회였으며, 특히 미국의 산업디자인에 비해 러시아에 결여되어 있는 것이 디자인업의 다양성과 전문화임을 각성시켰다. 또한 기술력, 질료, 보완재, 생산기술의 낙후 및 창조적인 디자인 발상의 부재로 인해 미국의 합리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권력 엘리트는 권력 관계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위치하며, 국가의 전략적 정책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들 또는 그 집단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전적 엘리트 이론을 대표하는 모스카(Gaetano Mosca), 미켈스(Robert Michels), 파레토(Vilfredo Pareto)에서부터 바크라크(Peter Bachrach), 바라츠(Morton S. Baratz) 등의 현대적 엘리트 이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엘리트 연구는 한 사회 내의 강한 영향력을 보유한 엘리트 집단의 실재와 이들 엘리트의 중심적 역할을 전제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서, 엘리트 이론의 중심에는 정치의 역사가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즉 엘리트 지배의 역사라는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엘리트 이론에 따르면,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도 국민의 정치참여에 있어서의 평등과 보편성의 완전한 구현은 하나의 이념형(ideal model)으로만 존재하며, 실제로는 대의민주주의 형태로 정치권력이 제한된 소수 엘리트에게 위임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달(Robert A. Dahl)은 이념적 헌신과 조작 기술을 보유한 극소수의 엘리트 집단(the elites)에 의해 공동체의 핵심적 결정이 이루어짐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다수 시민(citizens at large)은 정치에 무관심하며 공적 문제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수동적 대중이라고 주장했다. 사르토리(Giovanni Sartori) 역시 민주주의 체제를 “국민들이 자신을 스스로 지배할 정도의 권력이 아닌 지배자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로 규정했다.
러시아는 자국 가스의 안정적인 판매량을 확보하기 위해 공급을 위한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전략을 전통적으로 추진하였다. 러시아는 기존의 블루 스트림과 함께 흑해를 경유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사우스 스트림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스 스트림이 완공되면 러시아 가스의 공급망이 다양화되고 우크라이나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다. 러시아의 대흑해 정책은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가스관을 통해 흑해경제를 통합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EU 가입을 저지하고 터키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BSCE 국가 중 일원으로서 이 다자기구 참여를 통한 경제권 통합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BSCE 통합과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러시아의 흑해 지배력은 공고화되고 EU의 영향력은 축소될 가능성이 많다.
EU가 2003년 채택한 ‘유럽안보전략(European Security Strategy)’에 따르면, EU는 흑해 지역에서 안보 정치 경제 이익을 갖고 있다. EU의 에너지 수입 중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석유 수입량의 33%,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의 40%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시장에서는 러시아의 시장독점으로 인한 가격상승, 공급물량 감소 등 경제적 위험성이 증감함에 따라 EU는 중앙아시아 가스를 흑해를 통해 공급받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흑해 지역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였다. EU는 가스공급 다변화를 위한 나부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추진하고 있다. 나부코의 전략적 목표는 러시아 가스가 아닌 중앙아시아 가스를 흑해를 통해 수입함으로써 EU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데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80년대 이후 2000년까지의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디자인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단체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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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디자인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특정 단체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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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80년대 이후 2000년까지의 러시아 디자인 실상과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1980년대 이후 2000년까지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의 러시아 디자인의 실상을 조명한 Nazarov(2002)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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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디자인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명시된 단체명을 확인한다.
- 소연방 붕괴 후 현대 러시아 디자인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끼친 것은 바로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의 창설과 이 단체의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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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Nazarov의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디자인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주체가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임을 연결한다.
-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의 창설을 기점으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설계영역의 외연이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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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단체는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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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출된 단체명을 바탕으로 최종 답안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80년대 이후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 디자인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소연방 디자이너 연합’의 창설과 이 단체의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