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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혁신적 유산과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러시아 디자인의 변천 및 쇠퇴 과정 doc_id PCY_201412100910262091_32

주제 (main_topic)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혁신적 유산과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러시아 디자인의 변천 및 쇠퇴 과정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친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 슈클로프스키(Viktor B. Šklovskij, 1893~1984)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이미지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을 해방시키는 주체로서의 말”이 러시아 시각예술의 본질을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의 내용이나 의미가 아닌 그것을 표현하는 질료 자체에 대한 지각을 강조하는 슈클로프스키의 ‘기법의 노출(obnazhenie priema)’과 ‘장치(priem)’의 개념은 ‘최초의 경험’, ‘진위성(authenticity)’에 대한 향수적 동경을 암시하는 러시아 문화 고유의 표현일 수 있으며, 이런 ‘새로움’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전통 회화와 재현의 종언을 선언한 러시아 절대주의(Suprematism)의 창시자 말레비치(Kazimir S. Malevič, 1879~1935)에게서도 목격된다. 러시아 디자인의 특징은 정치적 변화와 글로벌리즘에 대한 반응의 민감성이다. 사회의 개방과 폐쇄, 민주화와 통제는 오브제의 외형구성과 표현양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러시아 문화에서 상대적 자유화와 다양화가 허용되었던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예술의 자율성과 예외성 자체가 종교 이데올로기와 유사한 아우라 속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계몽적 선도적 위치를 예술에 보장해 줌으로써 디자인 개념의 다양한 모색(‘생산주의’ 이론가들의 사물에 대한 기능주의적 입장에서부터 독일 ‘바우하우스’ 학파의 ‘기술미학(tekhničeskaja èstetika)’의 추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의 공존)을 가능케 하였으나,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체제의 안정 및 정체(停滯)와 맞물려 강제적인 동시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예술의 현실 속에서의 용해는 오브제의 규격화 표준화의 수준을 넘어 디자인의 진부함(과표준화의 결과)과 시대착오적 퇴행성을 초래했으며, 궁극적으로는 1970년대 전까지 전문화된 디자인 문화의 존재론적 공백을 초래했다. 문화적 르네상스가 끝난 뒤인 1920년대 이후 러시아 디자인은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미학에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1925년 요시프 스탈린의 집권기 이후로는 권위주의, 관료주의 문화와 중앙집권적 경제 프로그램에 예속되었다. 특히 계획경제 구조는 생산자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생산과정 자체에 대한 관심과 자율성을 잃는 구도를 고착시켰다. 아울러 고비용, 고속성장에 기반한 소비에트식 산업화는 소비재의 부족을 초래함과 동시에, 국민의 실질적인 필요보다는 민주적 의견수렴이 결여된, 계획자 자신이 자의적으로 정한 할당량에 근거한 생산계획을 강요함으로써 혁명 전의 창의적인 디자인의 입지를 대거 축소시켰다. 특히 노동계급에게 유일하게 합당한 양식으로 지정된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 문화 생산의 장(場) 전반에 걸쳐 강제됨으로써, 디자인계 역시 그 영향력을 피해갈 수 없었으며, 나아가 중앙집권화의 비효율성과 관료주의적 부패, 경제적 침체는 특히 소비재의 품질 저하와 혁신성의 저하를 초래했다. 특히 1930년대에 스탈린 개인숭배로의 급작스런 정치적 환경변화는 자연스러운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여 러시아 디자인계에 의사고전주의(擬似古典主義)의 대두를 강제했고, “낡은 고전 예술을 지향하는 것은 현대의 국가가 낡은 국가의 경제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말레비치의 경고를 상기시키듯, 아방가르드 유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국제적 흐름과의 역동적 소통을 단절시켰다. 소비에트 초기에 국제 디자인계와의 연계 속에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기능주의적 인체공학(ergonomics)적 흐름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로 매도되고 19세기 러시아에 유행했던 고전주의 암피르(ampir) 양식의 부활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점은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선동성, 이데올로기성의 강한 표출은 예술적 기교에 의한 정치적 선전 효과의 극대화를 통해 정치와 예술의 동일성을 예술가 스스로가 인식한 결과였다. 아방가르드 예술이 주목했던 도시중심의 근대적 문화 개혁은 혁신성, 혁명성, 반부르주아 정서 등 일련의 급진적 가치를 전경화 시켰던바, 이는 신생 권력의 정치적 기획에도 정확히 부합하는 대목이었다. 특히 건축을 위시한 구시대의 물리적 유산에 대하여 ‘새로운’ 예술가는 그것과의 유기적 조화보다는 예술의 비판성에 근거한 과거와의 거리두기 및 충돌에 집중해야 함이 요구되었다. 구성주의와 절대주의 미술의 스타일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러시아 디자인에서 지속적으로 출현해 왔다. 일례로, 소연방 말기인 1985년에는 디자이너들이 동참한 전연방 차원의 ‘평화를 위한 문화의 장인들’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 디자인의 복고를 표현한 전시회(‘새로운 예술–새로운 삶의 방식’)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집단농장의 시행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축출을 결정했던 제15차 소비에트 공산당 대회가 개최될 무렵 레닌그라드에 소재했던 국립예술문화연구소(GINKhUK)가 폐쇄되었고, 모스크바에 소재한 고등예술기술종합학교는 “고등예술기술연구소”로 개칭되고 재편되었으며, 이후 이 기관은 내부적으로 목공예 학부와 금속공예 학부를 통합하고 그 후 다시 건축, 회화, 텍스타일 등의 하부 연구소로 나누었으며, 이 중 회화와 조각 학부는 레닌그라드로 이전하는 대폭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소비에트 ‘생산예술’의 특징은 그 이론적 배경이 그것이 실용화되기 훨씬 전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점, 그 구체적 실천이 기술문명과 사회적 요구를 예술의 실험성과 결합하려 했던 구성주의 이론가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높은 품질의 상품이 곧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에 다름 아니며, 예술가는 직접 생산에 투입되어 엔지니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적 임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브니테’의 중심적인 이론적 방향은 ‘가치형태론적 개념(aksiomorfologičeskaja koncepcija)’으로 요약될 수 있는 바,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의 전문가적 평가와 인체공학적 연구의 지침, 인문주의적 사회지향적 요소를 제품의 설계에 포함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브니테’의 주요 이론적 방향은 제품 디자인에서 기술적 측면과 기능주의의 과잉, 에르고노믹스의 형식적 이용으로 인한 감성적 예술적 측면의 훼손에 대한 보완이다. 체르넨코의 뒤를 이어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정신으로 폭넓은 사회적 경제적 개혁 프로그램의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던 1985년 소연방 전체 규모의 ‘과학적 진보 85’가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고, 잠시 후 제품의 구조와 형식적 측면, 역동적 운동학적인 형식의 측면에 집중한 실험적 디자인에 관한 ‘브니테’ 주관의 세미나가 열렸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1930년대 스탈린 개인숭배로 인한 정치적 환경 변화가 러시아 디자인계에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해 나타난 양식적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30년대 스탈린 개인숭배라는 정치적 변화가 러시아 디자인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로 나타난 구체적인 양식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1930년대 스탈린 개인숭배와 관련된 디자인계의 변화를 기술한 부분을 추출한다.

    • 1930년대에 스탈린 개인숭배로의 급작스런 정치적 환경변화는 자연스러운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여 러시아 디자인계에 의사고전주의(擬似古典主義)의 대두를 강제했고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정치적 변화의 결과로 나타난 양식인 '의사고전주의'와 그로 인한 '국제적 흐름과의 단절'을 핵심 근거로 선택한다.

    • 의사고전주의(擬似古典主義)의 대두를 강제했고
    • 아방가르드 유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국제적 흐름과의 역동적 소통을 단절시켰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스탈린 개인숭배라는 정치적 요인이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의사고전주의의 등장을 강제했으며, 이로 인해 기존 아방가르드 유산과 이어지던 국제적 소통이 끊겼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정치적 환경 변화는 러시아 디자인계에 의사고전주의를 강제하였고, 이는 아방가르드 유산과 연결된 국제적 흐름과의 역동적 소통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30년대 스탈린 개인숭배로 인한 급작스러운 정치적 환경 변화는 러시아 디자인계에 의사고전주의(擬似古典主義)의 대두를 강제하였으며, 이로 인해 아방가르드 유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국제적 흐름과의 역동적인 소통이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스탈린 개인숭배라는 정치적 변동이 러시아 디자인에 의사고전주의를 강제하고 국제적 소통을 단절시켰다는 인과관계를 문맥에서 찾아 답변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