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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분단 및 전쟁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 국가 안보 개념의 변천과 한국적 안보 의식 형성의 중요성 doc_id PCY_201504090906351331_6

주제 (main_topic)
일제 강점기와 분단 및 전쟁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 국가 안보 개념의 변천과 한국적 안보 의식 형성의 중요성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일본은 일찌기 서구 열강들과의 문화, 경제, 군사적 교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과감하게 흡수하면서 재빨리 일본화 시켜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 후쿠자와 유치키였으며, 현재 일본의 최고액 화폐인 1만원권에 그의 초상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추앙하고 있는 자이다. 후쿠자와 유치키는 조선의 김옥균 등 친일파와도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후쿠자와 유치키는 서양의 문물에 심취되어 일본이 서구화를 동양 최초로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본이‘아시아를 개화시킬 사명’이 있다고 주장하면서,‘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근거’로 정당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 개화가 아니라 재화를 약탈하기 위한 침략전쟁 그 이상이었다. 지금까지도 그가 주장하였듯이, 침략이 아닌 개화에 중점을 두고 이해하여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려는 일본 극우파의 생각에 우리 일부 국민들도 동조하는 현상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또한 오늘날의 안보는“모든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이 시대의 아시아 역사에 대한 한국민들의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한 일제의 조선통치는 유구왕국의 침탈과 동일한 순서, 동일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외교권 박탈-군대해산-전통종교의 탄압, 신도(神道)강요-고유언어 사용금지-자국인화의 단계는 조선의 경우에도 자국인화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적용되었다. 대신에 내선일치 정책으로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수단에 불과하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은 기독교 동학 등 종교를 탄압하고, 신도를 강요하였으며, 한글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하는 등 조선의 인력과 자원을 그들의 아시아로의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다.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동원하고 동원의 질과 양을 늘리기 위하여 근대화를 강요하였다. 조선인들은 지금까지 하대하였던 일본에 지배를 받는다는 민족적 굴욕감과 함께 발전된 서양의 문물을 일본을 통해 접하면서 다시금 우리를 반성해보는 회한과 비통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안보의 구심점으로서의‘나라의 역할’과 안보를 지탱하고 구축하는 각종 제도와 제도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안보의식의 형성’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랜 왕정의 실패와 무능으로 이렇다 할 경제적 풍요를 누리지 못했던 평민과 계급사회의 폐해를 이제는 근대적 생각으로 관조하는 지식인들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앞길을 풀어나갈 방법에는 근원적 갈등의 격차가 이 시기에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국가는 영토·국민·주권의 3요소에 의해 형성된다’는 새로운 개념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 하는 분열된 생각들은 주권과 영토없이 식민생활을 하고 있었던 우리들은 자주적일 수 없고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본의 패망을 기다는 무력한 처지의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영국 측에 서서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게 되어 아시아 지배의 속도를 더해 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는 독일 측에 서서 아시아 지배에 있어 방해가 되는 미국 등을 밀어내는 시도 끝에 주축국이 연합국 측에 패배하자 지배하였던 식민지에서 철수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대립’, 소련과 미국으로 대표되는‘국제질서의 재편’이라는 상황 하에서 해방된 식민지들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남과 북이 사상전의 최첨단에 위치한 미국과 소련에 의하여 점령된 상태에서는 이들이 통일을 선택할 리가 없었다. 아무튼 북한은 공산주의, 남한은 자본주의를 채택하였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기에는 황폐한 생산시설과 미약한 자본형성에도‘자유’를 택한 남한은 추스르기에는 버거운 사회통합의 현실과 마주치면서 진정한 자유와 자본의 형성을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반면 북한은 토지를 전면 국유화한 다음 이를 무상 재분배하면서 농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계급갈등에 중점을 두어 공산주의를 적용함으로써‘빵’을 선택하였다. 피폐한 현실에서 일단 빵과 계급투쟁을 강조한 북한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빠른 안정과 성장을 이뤄가는 듯하였으나, 일당독제로 대표되는 공산국가들의 지도부의 부패와 패쇠된 경제체제가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창의성과 생산성을 결코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최근에 와서야 밝혀지게 된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통하여 남과 북은 첨예한 사상전의 첨단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땅은 또 한번의 초토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아픈 상처는 동족상잔으로 인하여 민족이 다시 양분된 것이다. 양분된 민족은 각기 이념을 내세우고 이념으로 무장하여 대립을 지속하게 되었다. 북한은 6·25의 전쟁의 패배를 분석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라는 4대 군사노선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것을 기초로 중·소와의 안보동맹의 안보 우산 속에 위치하게 된다. 결국 무력통일의 길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국가의 부를 우선 군사력 건설에 투자하여, 남침의 기회를 호시탐탐 기다렸다. 특히 월남의 공산화과정을 사상전의 승리와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소국이 이겨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북한이 자신들의 노선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반면 남한은 갈등과 혼란의 시기를 경제화의 성공과 민주화의 성공이라는 헌정사를 통하여 잘 극복해 나갔고, 한편으로 군사외교의 성공으로 미국과의 안보동맹으로 북한의 군사력을 성공적으로 견제해 나갔다. 남한은 초기의 난관을 극복하고 기적적인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경제화 과정에서 무시되었던‘인간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민주화 과정을 통하여 달성하였다. 안보도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기초로 성공적으로 달성하여, 북한의‘무력도발의 한계점’을 극복하여 북한에게 군사력 유지가 북한의 발전에 큰 부담으로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남한은 미국의 힘을 빌리는 대가로 생긴 여유와 국민들의 피땀 어린 근로의 대가를 보태어 경제의 기반을 다졌으며, 민주화로 인식된 소중한 가치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하여, 남한은 공산주의 이념에 대처하는‘사상전의 강화’에 이어 경제력이 어느 정도 완성된 때에는‘체제 우월성’에 기초한 안보의식 고취의 단계를 거쳐 안보의식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려왔다. 먼저 우리 역사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안보의 변천을 집중하여 살펴볼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왜냐하면 현재 통용되는 국가안보를 보면, 부족의 시대에는 ‘부족민의 전부’가, 그리고 왕권시대에는 왕과 왕의 측근 및 일부 호족들에 의해 왕권이 강화되면서 ‘군사(왕과 지배층)’가 국가의 안위를 결정하였던 협의의 안보시대를 거쳤고, 근대 국가에 이르러서는‘시민군이 편성됨에 따라 군사력과 외교’가 주축이 되는 광의의 국가안보가, 그리고 현대국가가 성립됨에 따라 ‘전 국민이 주축’이 되는 최광의의 국가안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개념은 서양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 현대의 사회학적·군사학적인 정의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다소의 간극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보의 외연이 확장되는 과정은 근대화의 과정과도 일치하는데, 이러한 면에서 역사적·문화적 특성이 다른 한국의 안보는 서양과는 대비되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그렇기에‘전 시민(국민)을 안보라는 목표에 한국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구성해 나가느냐’(안보거리; 국가와 국민간의 안보 관련 인식 공유정도, 令民與上 同意也)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안보의 새로운 구상을 위한 핵심적인 과업이 될 것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추진한 '내선일치' 정책의 실질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일제의 내선일치 정책이 표면적인 목적 외에 실제로 지향했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내선일치 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추출한다.

    • 대신에 내선일치 정책으로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추진하였는데
    • 이는 결과적으로‘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수단에 불과하였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내선일치 정책의 결과와 목적을 명시한 문구를 선택한다.

    • ‘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조선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수단에 불과하였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추진한 내선일치 정책이 결국 일본의 산업 및 군사 발전을 위해 조선의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였음을 연결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내선일치 정책은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위해 조선의 인력을 이용하려는 수단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내선일치 정책은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추진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이루기 위해 조선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수단이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일제 강점기 당시 추진된 내선일치 정책은 조선과 일본의 동일화를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 일본의 산업화와 군사 대국화를 위해 조선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