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개발과 포기 역사의 몇 가지 특이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특이성들이 합쳐져서 뜰라텔롤코 조약의 역사를 현재와 같이 만들어 왔다는 사실도 함께 볼 수 있다. 우선 보이는 특성은 다른 핵개발의 역사와 달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외부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안보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핵을 개발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과 각을 세웠다고 하여도 미국에 의해 공격을 당할 위협에 처한 적은 없었고, 양국이 서로에게 라이벌이라 하여도 이미 상당 수준의 공조체제를 수립하던 중이라 위협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없었다. 오히려 두 국가의 핵개발은 국가 위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인식된 경향이 있고, 특히 2차 대전 후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싶은 열망이 핵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특정 안보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개발된 핵이었기에 국내 정치·경제적 고려에 의하여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둘째, 1970년에 들어서면서 핵 기술 보유국가들 사이에서 경제적 이익을 위한 핵 거래를 놓고 경쟁이 붙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이 기간을 통하여 군부가 집권하였으므로 본질적으로 친미 성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핵 기술을 공여받기 위해 미국 이외의 대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들었고 여기에 스위스나 독일, 소련 같은 나라들이 동원되었다. 브라질이 독일로부터 공여 받은 기술 및 시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계약으로 꼽힌다. 브라질이 1957년 미국으로부터 최초 연구용 원자로 IEAR-1을 증여받고 이후 좌파 정권으로 바뀌면서 미국과 잠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그리고 1964년 군사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되었고, 브라질이 뜰라텔롤코 조약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좌파정권과 연관되어 있음도 이미 기술하였다. 군사정부 들어서서 미국과의 관계가 진전되어 1971년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으로 첫 핵발전소인 ANGRA-1을 설립하였다.
② 군사정부시기의 핵 개발: 이후 두 나라는 완전한 핵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브라질의 경우 1978년 농축시설을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1984년에는 카심보(Cachimbo) 핵실험장소의 건립, 1987년에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비밀리에 핵을 무기화하려는 노력을 하게된다. 아르헨티나는 세이사(Ezeiza) 재처리 시설을 1977년 건축하기 시작하여 필카니유(Pilcaniyeu) 농축시설을 1978년에 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두 나라는 1990년 이과수 선언으로 중단할 때까지 핵개발을 지속하게 된다. 1967년 뜰라텔롤코 조약을 거부한 이후 약 15년에 걸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 개발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주요 사안으로는 군부의 집권, 미국과 독일의 기술 전수,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 양자 간의 경쟁과 공조의 반복이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남미에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지정학적 무게가 절대적인 만큼, 이들의 핵에 관한 정책결정은 남미를 비핵지대로 만들려는 노력의 운명을 지배하였다. 그중에서도 브라질이 이 조약의 최초 발의자였다는 사실과 향후 두 나라가 공히 이 조약을 거부하고 핵개발로 선회하게 된 과정, 개발하던 핵을 포기하고 다시 비핵화 노력으로 돌아온 사실 등은 뜰라텔롤코 조약의 역사와 더불어 주요 변곡점을 형성하였다. ① 뜰라텔롤코 조약의 제안과 거부: 브라질은 남미비핵지대화 구상을 최초로 제기한 국가이면서 동시에 이 조약을 조기에 무력화시킨 국가가 되었다. 1962년 유엔총회에서 브라질대표는 역내에서 핵무기의 제조, 반입 및 통과를 제한할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몇 차례의 후속 모임과 이견 조율을 걸쳐 이 제안에 기초한 프레임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1963년 유엔 총회를 거쳐 의결되고 1967년 조인되어 조약으로서의 형식적 절차를 갖추지만, 최초 이 제안이 역내 국가들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에서 브라질이 제안하고 힘을 실어주었다는 사실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브라질이 1964년 돌연 남미 비핵지대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고 급기야 1967년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뜰라텔롤코 조약을 거부하기로 약속하였다.
1963년 4월 29일 다시 멕시코의 주도로 남미 국가수반들 모임에서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에콰도르, 멕시코 등이 남미 비핵화를 위한 다자간 협정에 서명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렸고, 동년 11월 27일 이 선언이 유엔 총회에서 의결되었다. 이후 남미 국가들이 멕시코시티에서의 회의에서 남미 비핵화 선언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초안 작성을 위한 지침이 마련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이 선언의 구역 설정, 지역 통과, 안전사찰 등에 관한 이견이 제시되었다. 1967년 이 조약은 멕시코시티의 뜰라텔롤코에서 열린 남미지역 회의에서 조인되었다. 유엔총회는 압도적으로 찬성하였고 당시 23개 남미 국가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초의 일반 거주 지역 내(거주 지역이 아닌 곳까지 포함하면 공식 조약으로는 남극비핵화조약이 먼저임) 비핵화 조약이 성립되었다. 이후 이 조약이 남미 대륙에 걸쳐 실질 지배력을 확보한 것은 1994년에 이르러서인데, 역내 두 강대국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핵무장 노력을 포기할 것과 국제적 핵 비확산 노력에 동참할 것을 선언한 것이 1994년이기 때문이다. 이때 두 나라는 NPT와 뜰라텔롤코 조약에 대한 비준을 마쳐 실질적인 회원국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실제로 핵무기를 제조한 것은 아니다. 두 나라는 똑같이 충분한 핵기술의 보유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던 중 1990년 들어 갑자기 중단하였다. 브라질 같은 경우 암암리에 군을 통하여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을 추진하였지만, 현실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핵 포기를 선언하였다. 따라서 양국은 공히 핵 공정의 완성(Nuclear Fuel Cycle), 즉 원자력 에너지의 생산에 필요한 전체 공정 기술을 갖추는 것을 지향하였다. 여기에는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시설을 갖추는 것이 주요 목표였으며,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하여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이 두 시설을 갖추고 핵 사이클을 거의 완성한 단계까지 핵 개발을 지속하였다. 1990년 들어 이런 태도에 급변을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대통령과 브라질의 멜로 대통령은 이과수 선언을 통하여 핵 포기를 선언하였다. 이후 이 선언은 남미를 비핵지도로 만드는 뜰라텔롤코 조약에의 가입과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한 완전한 핵 사찰 수용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세계적 핵 비확산 노력에 동참하는 것(NPT 가입 포함)을 목표로 상호 협력하기로 하였다. 곧이어 주무 장관들이 회동하여 구체적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상호 사찰 등 실무 정책을 주관할 기구를 수립할 것도 아울러 약속하였다.
③ 핵 포기: 1990년 11월 28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과수(Foz de Iguazu) 선언을 발표하였다. 두 나라가 공히 핵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어 1991년 7월 두 나라는 상호 핵사찰 절차를 제도화(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할 것을 조약(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하여 성사시켰다. 단순한 구두 선언을 넘어서 상호 핵개발의 의심을 없애기 위한 제도까지 만듦으로써 완전한 핵 포기를 상호간에 합의한 것이다. 이후 두 나라가 이룩한 비핵화를 위한 상호간의 노력은 획기적이라 할만큼 급속히 진행되었다. 각각 1993년과 1994년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뜰라텔롤코 조약을 비준하였다. 무려 25년이란 세월을 지나고 나서야 두 나라는 마침내 뜰라텔롤코 조약을 비준하였다. 더 나아가 두 나라는 1994년과 1998년에 각각 핵 비확산조약에 가입, 비준을 마쳤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1990년 이과수 선언을 통해 핵개발을 중단한 이후, 상호 간의 핵개발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구축한 장치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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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1990년 이과수 선언 이후 상호 핵개발 의심을 없애기 위해 만든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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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1990년 이과수 선언 이후 양국이 체결한 조약과 그에 따른 기구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90년 11월 28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과수(Foz de Iguazu) 선언을 발표하였다.
- 이어 1991년 7월 두 나라는 상호 핵사찰 절차를 제도화(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할 것을 조약(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하여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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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상호 핵사찰 절차를 제도화한 기구의 명칭이 포함된 문장을 선택한다.
- 두 나라는 상호 핵사찰 절차를 제도화(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할 것을 조약(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하여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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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이과수 선언 이후 1991년 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해 상호 핵사찰을 제도화한 기구인 ABACC가 설립되었음을 연결한다.
- 단순한 구두 선언을 넘어서 상호 핵개발의 의심을 없애기 위한 제도까지 만듦으로써 완전한 핵 포기를 상호간에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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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질문에서 요구하는 제도적 장치는 ABACC(브라질-아르헨티나 핵물질 계량 및 통제 기구)이다.
- 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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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기구의 명칭을 명확히 기술하여 답변을 생성한다.
- 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ABACC
최종 답변 (final_answer)
ABACC(Brazilian-Argentine Agency for Accounting and Control of Nuclear Materials, 브라질-아르헨티나 핵물질 계량 및 통제 기구)이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90년 이과수 선언 이후 양국이 상호 핵개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1991년 과달라하라 조약을 통해 제도화한 상호 핵사찰 기구인 ABACC를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