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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 및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법적 문제와 대량 탈북민 발생에 따른 대응 방안 및 국제적 변수 검토 doc_id PCY_201504240920337881_21

주제 (main_topic)
북한의 급변사태 및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법적 문제와 대량 탈북민 발생에 따른 대응 방안 및 국제적 변수 검토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일각에서는 남북경협을 북한정권의 체제유지에 도움이 될 뿐 실질적인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삶의 질 개선에는 전혀 효과가 없으므로 그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삶의 질 개선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하여도 그것이 남북경협 중단 혹은 축소의 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남북경협의 확대가 북한정권의 체제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남북경협의 축소 혹은 전면적 중단이 북한정권의 붕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정권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이 재앙에 가까운 경제적 위험요소라는 최근 일관된 연구 결과들에 비추어 볼 때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경제공동체의 구축이 통일 준비 과정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주지의 사실인 이상, 북한의 경제발전 및 개방과 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남북경협은 분명 지속되어야만 하는 사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분단이후 오랜 기간 단절되어 있는 남·북한은 현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이질적이며 불균형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상당한 사회적 혼란이 있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약자의 위칭에 있는 자들에게 이른바 ‘통일의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통일을 준비함에 있어서는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적 제도적 보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통일과정에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각 구성원들이 통일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작은 부분 부분의 혼란과 실패를 최소화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단절되어 있는 북한의 젠더시스템과 북한여성의 정치적 지위 및 노동문제를 현행 여성권리보장법제인 “녀성권리보장법”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관련 법제와의 비교를 통하여 검토하고, 여성 북한이탈주민 및 독일통일 후 동독여성의 사회적 재구조화와 적응문제를 통하여 향후 통일과정에서 여성 정책 및 법제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함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통일이전 단계, 즉 북한 당국의 체제장악력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1990년대의 대량탈북사태와 같은 대량 탈북민 발생의 경우, 이에 대한 적극적 대처와 관련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일부에서는 북한급변사태와 관련하여 이에 수반되는 대량탈북민발생 사태를 단순한 관리의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고, 이들의 남한 영내로의 즉시 이주에 대하여 신중한 입장을 취해, 대량탈북민의 남한이주를 제한해야한다는 논의가 있다. 남한 사회와 정부의 대량탈북민 남한이주에 따른 충격을 감당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논의는 그 타당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으나, 이와 관련하여 법적으로는 상당한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북한급변사태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대량탈북민발생과 이들에 대한 남한으로의 이주제한이 과연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해결방안으로서 국제법상 난민지위부여와 국적법상 국적회복 등 법적인 관점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중국은 북한을 탈북하여 중국으로 온 탈북민을 북한주민으로 보고 불법체류자로 취급하여, 공안을 통하여 체포한 후 북한으로의 송환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약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하여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대량 탈북민이 중국으로 탈출해 오는 경우, 이들을 모두 체포하여 북한으로 송환하는 것은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진 북한의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곤란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은 1990년대와 같은 북한의 경제적 급변사태가 다시 오거나, 그보다 더욱 심각한 정변이나 군사적 분쟁 등에 의한 급변사태가 오는 경우에는 일단 대량 탈북민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하여 북한 정권이 체제불안정성이 가속화하여 중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량 탈북민을 북한급변 사태개입과 연계하여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탈북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경로로서, 중국 동북3성에는 북한 주민들의 친척들이 있는 경우가 많고, 기존에 탈북한 자들도 중국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거리상으로도 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다. 따라서, 대량 탈북민들이 발생하는 때에는 북한의 평안도․자강도에서 압록강 상류나, 함경도․양강도에서 두만강을 넘는 루트가 가장 빈번하게 이용될 것이다. 탈북하여 중국으로 이동한 경우에는,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추가적인 이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북한-중국-몽골루트가 가장 빈번하여 내몽골을 통과하여 몽골지역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으로 중국 공안등이 몽골루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 비록 수 천km를 이동하여야 하는 곤란함은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여 많이 이용되고 있다. 결국, 대량 탈북민사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1990년대이후와 마찬가지로 중국으로 일단 이동한 후 그곳에서 체류하거나, 다시 이동하여 몽골 또는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독일은 1945년부터 1990년 사이에 약 460만 명의 동독이탈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했고, 이 중 약 40-60만 명이 서독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동독으로 돌아갔다. 전체 동독이탈주민 중 약 300만 명은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장벽이 설치되기 전에 이미 서독으로 이주했던 자들이다. 1961년 베를린장벽 설치 이후, 내독 국경에 월경 차단장치 설치 및 지뢰 매설 등으로 인해 동독이탈주민은 급격히 감소하였으나, 그 수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약 60만 명에 이르렀다. 이 기간 중 전체 동독이탈주민 중 약 20만 명은 탈출자였고, 40만 명은 동독정부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이주한 경우이다. 이는 동독 정부가 은퇴연령층에게 주로 여행허가를 발급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89년 동독의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베를린장벽이 붕괴(1989.11.9.)되는 시기를 전후하여 독일이 통일되는 시기였던 1989-1990년 1년 동안 약 80만 명의 동독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하였다. 현재는 안정적으로 정권승계가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최근 장성택 숙청사건을 통해 보았듯이 김정은체제는 김정일체제보다는 그 권력이 더 불안정한 것으로 평가되고, 정권 승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시에는 권력 투쟁으로 인해서 북한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김정일이 추진해 온 선군정치와 그로 인해서 모든 자원이 군사 분야에 집중된 북한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북한에서 내부투쟁이 일어났을 경우 그 주체는 농민이나 일반 시민이 아니라 군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중국은 김정남을 통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은 김정남 암살 시도 사건 당시 불만의 표시로, 중국-북한 우호의 해를 맞아 추진 중이던 북한 내 자원 개발과 건설 등 북한과의 합작 사업을 전면 보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북한으로선 김정남 제거에 부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대중국통으로 알려진 장성택숙청사건 때에도 중국은 북한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는 중국은 북한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김정남을 지렛대로 사용하길 원한다고 하였고, 그는 특히 중국은 김정은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중국의 이익에 위배될 경우 김정남을 그 대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였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대량 탈북민이 발생하는 경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주로 이용되었던 이동 경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주요 탈북 경로를 비교하여 차이점을 도출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문맥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구체적인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를 추출한다.

    • 1990년대에는 북한-중국-몽골루트가 가장 빈번하여 내몽골을 통과하여 몽골지역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두 시기의 경로를 명확히 보여주는 문구를 선택한다.

    • 1990년대에는 북한-중국-몽골루트가 가장 빈번
    •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1990년대에는 몽골을 경유하는 경로가 주를 이루었으나, 중국 공안의 단속 강화 이후 2000년대에는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경로로 변화했음을 결합한다.

    • 다음으로 중국 공안등이 몽골루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자,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990년대는 몽골 루트가 빈번했고, 2000년대는 단속의 영향으로 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추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990년대에는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몽골 지역까지 이동하는 '북한-중국-몽골 루트'가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었으나, 중국 공안의 몽골 루트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이후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1990년대에는 북한-중국-몽골 루트가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었으나, 중국 공안의 몽골 루트 단속이 강화된 이후 2000년대에는 북한-중국-동남아시아 루트가 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