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2013년 2월 새로이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한국외교의 3대 중심축(pillars)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및 중견국 외교를 설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 세 개의 주안점들은 각각 한반도, 동북아 지역 및 전 세계를 그 활동 대상으로 하고 있어 지역적 차원에서 전 층위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내용의 차원에서도 각각 남북관계를 포함하는 안보 문제, 경제 문제를 비롯한 지역협력 문제 및 다양한 분야에 걸친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편 문제들을 다루어 나갈 수 있게 설정되어 있어 일단 매우 포괄적이고도 유의미하게 구성된 외교정책 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신 외교정책 구상은 총체적으로 ‘신뢰 외교(Trust Politik)’라고 불리고 있다. 협의의 신뢰 개념은 한반도 차원에서 전개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핵심 추동 개념이나, 광의의 신뢰 개념은 지역 차원에서는 전략적 협력을 유도해 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는 건설적 기여를 증대해 나감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를 전방위적으로 제고하여 한국외교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 긴요한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중견국으로서 ‘가교외교’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 핵국과 비핵국, 핵물질 보유국과 비보유국, 원전국과 비원전국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한 합의를 주도적으로 도출한다. 예를 들면,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개발’ 의제를 도출했고,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유럽과 아시아국가의 관심을 반영하여 ‘방사능안보’와 ‘원자력안전과 핵안보 인터페이스’를 새로이 의제로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핵안보 이슈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창출 과정에 있어 중견국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우리 중견국외교의 주요 대상으로 주목 받는다. 한국이 세계 핵 리더십 구상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고려사항과 장애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2016년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한 핵안보의 동북아 지역협력 ‘기프트 바스켓(공동공약)’을 개발한다. 한국은 2차 핵안보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핵안보체제의 강화를 위한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주도로 동북아 지역의 핵안보 협력, 또는 동북아 지역의 핵안보-원자력안전 연계 등에 대한 성과물을 2016년 4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기프트바스켓으로 제시토록 한다. 구체적으로 아래의 성과물을 제시하며, 이를 위해서 종래 개별 국가 중심적 핵안보 규제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므로 많은 사전 협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한·중·일이 신설한 핵안보교육훈련센터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를 위해 교재 공동개발, 강사진 공동교육 및 인적 교류, 센터별 특화 교육 분야 개발, IAEA 및 역외 교육훈련센터와 정보공유와 교류를 위한 정례회의 개최 등을 추진한다. 둘째, 동북아의 핵안보 기준을 조화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공동 기준을 채택하도록 한다. 셋째, 핵안보에 대한 지역적 상호점검 시스템을 구축한다.
1963년 4월 29일 다시 멕시코의 주도로 남미 국가수반들 모임에서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 에콰도르, 멕시코 등이 남미 비핵화를 위한 다자 간 협정에 서명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렸고, 동년 11월 27일 이 선언이 유엔총회에서 의결되었다. 이후 남미 국가들이 멕시코시티 회의에서 남미 비핵화 선언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초안 작성을 위한 지침이 마련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이 선언의 구역 설정, 지역 통과, 안전사찰 등에 관한 이견이 제시되었다. 1967년 이 조약은 멕시코시티의 뜰라텔롤코에서 열린 남미지역 회의에서 조인되었다. 유엔총회는 압도적으로 찬성하였고 당시 23개 남미 국가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초의 일반 거주 지역 내(거주 지역이 아닌 곳까지 포함하면 공식 조약으로는 남극비핵화조약이 먼저임) 비핵화 조약이 성립되었다. 이후 이 조약이 남미 대륙에 걸쳐 실질 지배력을 확보한 것은 1994년에 이르러서인데, 역내 두 강대국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핵무장 노력을 포기할 것과 국제적 핵 비확산 노력에 동참할 것을 선언한 것이 1994년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핵개발은 정권의 업적을 위하여 경제발전과 함께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국립 연구소나 위원회를 만들어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 군사정권을 거듭하면서도 국립핵에너지위원회(CNEN: National Nuclear Energy Commission)의 수장은 민간인으로 임명하여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 하였고, 브라질은 군부의 추진력에 더하여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소위 ‘경제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밑바탕으로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정책에 대한 반대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서 군부는 비교적 국민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단적인 핵 정책을 지속할 수 있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나라를 핵 보유 국가로 만들려는 꿈을 더욱 강하게 꿀 수 있었다.
② 군사정부시기의 핵 개발: 이후 두 나라는 완전한 핵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 브라질의 경우 1978년 농축시설을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1984년에는 카심보(Cachimbo) 핵실험 장소의 건립, 1987년에 우라늄 농축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비밀리에 핵을 무기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세이사(Ezeiza) 재처리 시설을 1977년 건축하기 시작하여 필카니유(Pilcaniyeu) 농축시설을 1978년에 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두 나라는 1990년 이과수 선언으로 중단할 때까지 핵개발을 지속하게 된다. 1967년 뜰라텔롤코 조약을 거부한 이후 약 15년에 걸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 개발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주요 사안으로는 군부의 집권, 미국과 독일의 기술 전수,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 양자 간의 경쟁과 공조의 반복이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뜰라텔롤코 조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핵 기술 개발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다. 1940년대 최초 핵이 개발될 때부터 핵에 관심을 가졌던 두 나라는 이미 1950년대 핵 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각각 핵에너지연구소(IPEN: Institute for Energy and Nuclear Research)와 국립원자력에너지위원회(CNEA: National Atomic Energy Commission)를 설립하여 핵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1962년 브라질이 뜰라텔롤코 조약을 제안할 때 자국의 핵기술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어떤 선언도 없었다. 아울러 1964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뜰라텔롤코 조약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평화적 핵개발권을 포기할 수 없음을 동시에 천명하였다. 여기에는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실험(PNE: Peaceful Nuclear Explosion)을 위한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심어져 있다.
지시문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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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question)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1967년 뜰라텔롤코 조약을 추진하면서도 핵 기술 개발에 대한 열망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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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뜰라텔롤코 조약 추진과 핵 기술 개발 열망을 동시에 유지한 배경 및 개발 과정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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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두 국가가 조약 추진과 별개로 핵 기술 개발을 위해 설립한 기관과 조약에 대한 입장을 추출한다.
- 1950년대 핵 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각각 핵에너지연구소(IPEN: Institute for Energy and Nuclear Research)와 국립원자력에너지위원회(CNEA: National Atomic Energy Commission)를 설립하여 핵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 1964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뜰라텔롤코 조약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평화적 핵개발권을 포기할 수 없음을 동시에 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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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조약 추진 중에도 핵 개발을 지속한 구체적인 근거와 개발 과정의 주요 요소를 선택한다.
-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뜰라텔롤코 조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핵 기술 개발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다.
- 1967년 뜰라텔롤코 조약을 거부한 이후 약 15년에 걸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핵 개발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주요 사안으로는 군부의 집권, 미국과 독일의 기술 전수,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 양자 간의 경쟁과 공조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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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두 국가는 이미 1950년대부터 전담 기관을 설립하여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었으며, 조약 과정에서도 평화적 핵개발권과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실험(PNE)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개발 과정은 군부 집권, 기술 전수, 양국 간의 경쟁과 공조가 반복되는 특징을 보였다.
- 1950년대 핵 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각각 핵에너지연구소(IPEN: Institute for Energy and Nuclear Research)와 국립원자력에너지위원회(CNEA: National Atomic Energy Commission)를 설립
-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실험(PNE: Peaceful Nuclear Explosion)을 위한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심어져 있다.
- 군부의 집권, 미국과 독일의 기술 전수,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 양자 간의 경쟁과 공조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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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부터 설립된 전담 기관을 통해 핵 기술 개발을 지속해 왔으며, 조약 과정에서도 평화적 핵개발권과 평화적 핵실험(PNE) 권한을 유지하려 했다. 이들의 개발 과정은 군부 집권, 외국의 기술 전수, 그리고 양국 간의 경쟁과 공조가 반복되는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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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추론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부터 각각 핵에너지연구소(IPEN)와 국립원자력에너지위원회(CNEA)를 설립하여 핵 기술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었으며, 조약 추진 과정에서도 평화적 핵개발권과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실험(PNE) 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들의 핵 개발 과정은 군부의 집권, 미국과 독일의 기술 전수,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자 간의 경쟁과 공조가 반복되는 특징을 나타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부터 핵에너지연구소(IPEN)와 국립원자력에너지위원회(CNEA)를 설립하여 핵 기술 개발 기반을 다졌으며, 조약 추진 과정에서도 평화적 핵개발권을 포기하지 않고 군부 집권, 외국 기술 전수, 양국 간 경쟁과 공조를 반복하며 핵 개발을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