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context)
이런 까닭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사신의 보고서에서는 몽골병사들이 신흥 명나라 주원장 군사적 공세에 밀려 초원으로 물러날 위기에 처하여 요동반도에서 전쟁을 치르면서도,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에 대하여서는 ‘동족’이니 살상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조선의 세종 때에도 몽골에서는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여 형제국이니 힘을 합쳐서 명나라를 공격하자는 국서를 전달해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이 일제의 침략을 당하여 한반도가 유린당하고 있던 시절에도, 일부 독립 운동가들은 몽골에 넘나들며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두 민족 간의 이해와 우정은 지금도 면면히 전해 와서, 근자에 몽골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을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지목하고 조약관계를 가장 공고히 해야 할 중요한 나라도 여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한ㆍ몽 국가연합론도 몽골 인민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보인다.
2007년 3월 16일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the Institute for East Asia Peace Studies) 주최로 “한ㆍ몽 국가연합론”에 대한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학술회의에서 이상면 서울대 법대 교수(국제법, 법학박사, SJD Harvard)가 “한국과 몽골 국가연합 개연성 관견(管見)”이란 논문을 발표하였다. 본보고서는 이상면 교수의 논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 3월 26일에 국교를 수립한 이래, 여러 방면에서 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몽골로이드 혈통을 같이 하는 탓으로 세계 어느 나라 국민 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힘든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방대한 국토에 자원이 풍부한 몽골은 인구밀도가 희박한 반면에, 한국은 국토가 좁고 높은 인구밀도에 자원이 부족한 산업국가로 대외무역에 의존도가 높아, 양국은 보완관계에 있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상부상조할 수 있다. 양국 국민 간에는 급속한 우호 관계가 어느새 무르익어 “우리가 남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우호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사이에 놓여 있는 국경의 벽을 낮추고 협력관계의 가속적 증진을 위하여 특단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과 몽골은 세계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가깝고 또 역사적 문화적으로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한국이나 몽골의 학계 및 정치권 일각에서 일시 국가연합이나 연방의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또 몽골은 한국이 필요한 지하자원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현 박근혜 대통령도 2009년 7월 1일 몽골을 방문하여 “몽골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남다른 관계에 있고, 세계적인 자원대국으로 우리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있는 대표적인 나라며, 지정학적으로도 남북관계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나라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은 이러한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양국관계는 물론 국제협력에서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양국의 현안문제를 분석한 보고서들이 간혹 출간되고 있는데, 양국의 원활한 교류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요건이 한국비자 획득의 까다로움과 비싼 비행기 값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다음은 한국과 몽골의 현황 설명과 함께 양국의 비자면제협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몽 협력관계는 1990년 3월 26일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90년 3월 26일 수교 이후 1991년 10월 P.오치르바트 몽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였으며 이후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몽골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는 한·몽의 협력관계를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구축하였으며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는 양국관계를 ‘선린우호 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또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몽을 기점으로 양국관계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였다. 한·몽 양국의 지방자치단체 교류 역시 1990년 3월 26일 외교관계 수립 이후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시와 울란바타르시 간의 자매결연(1995), 남양주시와 울란바타르시의 우호협력 체결(2001), 고양시와 돈드고비 아이막의 협력사례(2007) 등 21개 지자체 차원에서도 심도 있는 협력체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 3월 수교 이후 서로의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주변국 중의 하나로만 접근한 경향이 높았다. 즉 정치·경제 방면으로의 교류가 주종을 이루었다. 1990년 이후 2011년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교류는 수치로만 볼 경우 매년 증가하고 활성화되는 것처럼 나타났지만 실질적인 교류성과는 그다지 없었다. 이러한 양국의 교류관계와 그 문제점을 가장 잘 나타낸 지적이 페.우루쥔루훈데브(П.Үржинлхүндэв) 초대 주한몽골대사와 페.오치르바트(П.Очирбат) 몽골 초대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페.우루쥔루훈데브 대사와 페.오치르바트 초대 몽골 대통령의 말은 양국이 모두 미래를 보는 정책적 교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양국의 인민학적 인식에 대한 개선과 협력을 강조하는 말과도 같다. 현재까지의 양국교류는 미래를 위한 철학과 비전에 바탕을 둔 운용이 부족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양국의 교류는 경제력으로 우위에 서 있는 한국이 더 적극적인 전략을 세우고 몽골 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양국은 서로 간의 접근 철학과 비전을 다시 한 번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몽골의 역사ㆍ문화적 특수성을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한국과 몽골 간에는 미국이나 영국, 스페인과 남미, 브라질과 포르투갈처럼 양국 간에 문화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한국 학계에서도 언제부터인가 한ㆍ몽골 공동체의 구상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면 서울대 교수, 박원길 칭기스칸 연구센터 소장, 김태균 수원과학대 교수, 구양근 성신여대 총장 등이 이 같은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이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때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교수들 간에도 사막 녹화를 통한 한-몽 공동체 구축안(나아가 이를 전제로 한 중앙아시아 진출구상)이나 신북방 에너지협력구상을 개발, 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배경이 양국의 역사ㆍ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한국과 몽골은 1990년 공식수교 이후 20여 년 동안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증진시켜왔으며, 특히 경제 분야에서 교역의 확대 등 괄목할만한 관계 발전을 가져 온 것으로 평가된다. 양국의 교역은 꾸준히 증가하여 2008년에는 국교정상화를 이룬 1990년 대비 약 100배의 증가를 기록하였으며, 몽골에 대한 직접투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양국은 인종 및 문화적 유대관계와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경제통상과 투자 협력을 확대시켜 왔으며, 양국 정상외교의 강화를 통해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부터 ‘선린우호협력 동반자 관계’,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그 위상을 격상시켜 왔다. 한국은 같은 동북아 국가로서 몽골의 상징적 중요성 및 향후 몽골과의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중시, 몽골의 개혁 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유 무상 경제 원조를 매년 제공하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한국기업이 몽골에서 등록, 활동하고 있으며 KOICA 등 한국의 대외협력기구가 몽골에 상주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 국가이며 석유 소비에 있어서는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자원이 풍부한 몽골과의 경제협력은 상생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한국과 몽골의 외교 관계가 각 정부 시기별로 어떻게 격상되어 왔는지 순서대로 기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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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제 해석
task_interpretation한국과 몽골의 외교 관계 발전 단계를 정부별 명칭과 함께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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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보 추출
information_extraction문맥에서 각 정부의 명칭과 그 시기에 정의된 양국 관계의 명칭을 추출한다.
-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는 한·몽의 협력관계를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구축하였으며
-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는 양국관계를 ‘선린우호 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몽을 기점으로 양국관계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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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근거 선택
evidence_selection관계의 변화를 나타내는 핵심 문구들을 선택한다.
-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
- ‘선린우호협력 동반자 관계’
- ‘포괄적 동반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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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논리 통합
logical_integration추출된 정보를 시간적 흐름(김대중 정부 -> 노무현 정부 -> 이명박 정부)에 따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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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결론 도출
conclusion_formulation정부별 관계 명칭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여 답변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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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답변 생성
answer_generation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 김대중 '국민의 정부':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
2. 노무현 '참여정부': 선린우호 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
3. 이명박 정부: 포괄적 동반자 관계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21세기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로, 노무현 참여정부는 선린우호 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롤, 이명박 정부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