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데이터 · 도서자료 기계독해

일본의 대륙 진출과 연계된 북방사 연구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그에 따른 역사 이론 및 몽골 지역의 민족 구성에 관한 고찰 doc_id PCY_201508120634372151_17

주제 (main_topic)
일본의 대륙 진출과 연계된 북방사 연구의 역사적 전개 과정과 그에 따른 역사 이론 및 몽골 지역의 민족 구성에 관한 고찰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일본의 북방연구사는 바로 일본의 대륙진출의 역사와 일치한다. 일본의 대륙 진출과정은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크게 2기로 구분되는데, 이 구분은 그대로 북방사 연구 성과의 현실적용과도 일치한다. 제 1기는 명치부터 1905년의 러일전쟁까지의 시기로 민간차원과 정부차원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실시되었다. 민간차원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개국진취(開國進取)로 대표되는 명치정신(明治情神)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대곡광서(大谷光瑞, 1876~1948)이다. 그는 “불교문화권”이란 아시아적 가치를 부르짖으며 1902년부터 1911년까지 몽골 및 중앙아시아, 티베트 등에 탐험대를 파견시켜 유적 연구조사 및 유물의 수집에 주력했다. 대곡광서(大谷光瑞)는 일본 귀족 출신으로 경도(京都) 서본원사(西本願寺)의 22대 문주(門主)이다. 그가 파견한 탐험대 가운데 2차 탐험대는 1908년 6월 북경을 출발하여 울란바타르를 거쳐 카라코롬, 오르홍하의 돌궐비문 등 유적을 방문한 뒤 그곳에서 서남으로 나가 알타이산맥을 넘어 신강에 들어갔다. 탐험대원은 당시 20세를 갓 넘은 야촌영삼랑(野村榮三郞)과 18세인 귤서초(橘瑞超)이다. 정부차원의 접근은 러일전쟁의 불가피성을 감지한 일본 육군성을 중심으로 정보 수집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카라친(Kharachin)-우익기의 14대 자사크(Jasag)인 공상-노르보(Gungsang-Norbu, 貢桑諾爾布)와 함께 육정여자학당(毓正女子學堂)을 설립하여 일본어 교육과 체육을 담당한 하원조자(河原操子) 및 그의 후임인 고고학자 조거용장(鳥居龍藏)이다. 제 2기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정부 주도하에 기관, 학술단체, 협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1905년부터 1930년까지는 주로 만철(滿鐵)을 중심으로 내몽골 위주의 북방사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일본은 이 연구를 내몽골뿐만 아니라 서아시아와 내몽골을 연계시키는 고리로 활용했다. 조사연구의 대상은 토지습속, 일반법제, 조역, 정치ㆍ외교, 문화, 산업일반, 농림, 목축, 수산, 공업, 광업, 노동, 상업, 무역, 세관 및 관세, 화폐ㆍ금융, 제정ㆍ조세, 철도, 러시아 관계, 식민과 이민, 도시와 주택, 지도 등이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는 각종 기관이나 연구소, 협회를 내세워 본격적인 현지조사를 시행했는데, 조사 활동은 정치적으로 1932년 3월 1일 만주국(滿洲國)의 성립, 1937년 9월 1일 내몽골 몽골연합자치정부(蒙古聯合自治政府: 首都는 張家口)의 성립과 관계가 깊다. 또 연구 성과는 시베리아, 외몽골, 신강, 소비에트령 중앙아시아의 진출과 연계되어 활용되었다. 연구단체는 기관(北滿經濟調査所, 張家口經濟調査所), 대학(京都帝國大, 京城帝國大), 학회(東亞考古學會), 몽골선린협회(蒙古善隣協會)의 부속연구소인 몽골연구소(蒙古硏究所) 와 서북연구소(西北硏究所)등이다. 이들의 연구 성과는 종전 후 소비에트와 미국이 다량으로 몰수하였다.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 이래 세계열강과 접촉하면서 대륙침략의 타당성을 부여하는 역사이론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일본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의 확장연구를 통해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및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몽골, 타브가치(Tabgachi, 北魏)의 역사연구를 통해 일본은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가 되었는데 당시 중세시대의 일본인인 원의경(源義經)이 몽골로 건너가 칭기스칸이 되었다는 믿음까지도 대유행했다. 하여튼 이 결과 일본은 민족의 기원지를 동몽골까지 확대하고 백조고길의 주도 하에 동양사를 남북대립론(유목민족과 정착민족)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논리에 따라 알타이민족이나 그들의 역사가 미친 조선,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 티베트 등을 종래의 중국사에서 분리시켰고, 또 몽골이 역사적으로 지배한 지역은 일본의 연고권이 있게 되었다. 즉 이 논리로 인해 일본의 대륙진출은 동족의 자주권회복을 위한 역사적 사명으로 대두되었다. 1918년 8월부터 1922년 10월까지의 일본의 시베리아출병은 이 논리에 입각한 것인데 당시 최대 3개 사단(7만 명)이 파견되었고 4600명이 전사했다. 연구 발굴 지역은 주로 빌케 카간과 쿨테긴 유적에 집중되며 유적의 조사 중 유적 근처의 이름 불명의 무덤들도 같이 조사되고 있다. 또 위구르 수도인 하라 발가순(카라코롬 일대)과 울란바타르 근교의 톤유쿠크 유적지도 포함되었다. 연구 활동기간은 보통 매년 6월말 ~ 8월초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유적 및 발굴물의 보호방법은 유적지 근처에 박물관을 세워 유물들을 이관하여 보호하며 원래의 유적지에는 발굴이 끝난 뒤 모조물을 세워 원형을 복원하도록 했다. 또 유적 및 발굴물 조사에 대한 연구물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돌궐-몽골과학위원회(Committee)는 허셔차이담 및 울란바타르 근교의 돌궐비문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를 터키문과 몽골문으로 작성하여 제출했다. 참고로 연도별 연구 활동상 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몽골국에 거주하는 민족은 크게 몽골족, 카자흐족, 기타민족으로 나누어진다. 몽골족은 몽골국의 총인구 중 80%를 차지하고 있다. 몽골족은 역사적으로 알랑고아(Alan-Go'a)로부터 시작되는 니론(Nirun)계 씨족 중에서도 보르지긴(Borjigin)씨족을 중핵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이후 역사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몽골족은 크게 몽골계, 오이라드계, 보리아드계로 나누어졌다. 몽골계는 몽골의 정통부족으로 할흐족을 주축으로 하는 수많은 씨족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오이라드계는 흔히 서부몽골족으로 칭해지는데 소속씨족은 초로스(Choros), 코이드(Khoyid), 바토드(Batud), 토르코드(Turkhud), 코소드(Khoshod)로 나누어진다. 오이라드계의 분포지역은 본거지였던 준가르지역과 천산남북로 일대, 청해지역, 러시아의 칼무크자치공화국, 카자흐스탄, 몽골국 서부지역이다. 몽골국의 서부지대인 홉드아이막과 옵스아이막에 거주하고 있는 오이라드계는 초로스부의 별파인 더르버드(Dörbed, Дөрвөд)족이다. 서방에서는 오이라드인들을 칼무크(Kalmuck)라 부르는데 이는 원래 이슬람교도들이 오이라트인들을 지칭하던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보리아드계는 몽골중세 때 부각된 부족으로 소속씨족은 둥깅스키, 징깅스키, 키징진, 자카민스키, 샤카민스키, 호민스키, 호린, 아긴, 셀렝게 보리아드로 나누어지며 바이칼호 주변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다얀칸의 영지획분 이래 할흐몽골의 투시에투칸국과 세첸칸국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러시아로 편입(보리아드 몽골 자치공화국)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편입에 반대한 일부 사람들은 외몽골의 북부지대로 이주하였다. 현재 몽골국의 북부지대인 셀렝게아이막과 헨티아이막 및 도르노드 아이막의 북부지대에 거주하는 보리아드인들은 모두 이들의 후예이다.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족은 1920~30년대에 신강에서 이주해 온 돌궐족계 민족이다. 이들은 몽골국의 서부지대인 바얀얼기아이막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언어나 종교, 풍속이 몽골족과는 상이하다. 바얀얼기아이막은 몽골국내에서 유일하게 카자흐어가 몽골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기타민족은 러시아와 한인(漢人)들로 이들은 주로 청말민국초에 농업이나 상업이민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일본의 북방사 연구가 대륙진출의 역사적 사명으로 대두될 수 있었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일본의 북방사 연구가 어떻게 대륙진출의 역사적 사명으로 연결되었는지 그 논리적 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일본 역사학계가 구축한 이론과 민족 기원에 대한 관점을 추출한다.

    • 일본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의 확장연구를 통해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및 만선사관(滿鮮史觀)을 만들었다.
    • 고구려와 몽골, 타브가치(Tabgachi, 北魏)의 역사연구를 통해 일본은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가 되었는데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일본이 알타이 민족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동양사를 규정한 핵심 문구를 선택한다.

    • 일본은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가 되었는데
    • 일본은 민족의 기원지를 동몽골까지 확대하고 백조고길의 주도 하에 동양사를 남북대립론(유목민족과 정착민족)으로 규정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일본이 스스로를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로 규정하고, 동양사를 유목민족과 정착민족의 대립으로 설정함으로써 특정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는 과정을 통합한다.

    • 이 논리에 따라 알타이민족이나 그들의 역사가 미친 조선, 만주, 몽골, 중앙아시아, 티베트 등을 종래의 중국사에서 분리시켰고, 또 몽골이 역사적으로 지배한 지역은 일본의 연고권이 있게 되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일본이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라는 논리를 통해 동양사를 남북대립론으로 규정하고, 몽골이 지배했던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함으로써 대륙진출을 동족의 자주권 회복을 위한 사명으로 정당화했음을 결론짓는다.

    • 즉 이 논리로 인해 일본의 대륙진출은 동족의 자주권회복을 위한 역사적 사명으로 대두되었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일본은 고구려, 몽골, 타브가치의 역사연구를 통해 스스로를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로 규정하였다. 또한 동양사를 유목민족과 정착민족의 남북대립론으로 규정하여, 알타이 민족의 역사가 미친 지역을 중국사에서 분리시키고 몽골이 지배했던 지역에 대한 일본의 연고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일본의 대륙진출을 동족의 자주권 회복을 위한 역사적 사명으로 정당화하였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일본이 스스로를 알타이 민족의 정통 후예로 설정하고 동양사를 남북대립론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몽골 지배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확보하고 대륙진출을 동족의 자주권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연결했음을 추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