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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아드인의 역사적 이동과 러시아 및 소비에트의 통치 과정,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과 변화 doc_id PCY_201508120634372151_18

주제 (main_topic)
보리아드인의 역사적 이동과 러시아 및 소비에트의 통치 과정,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과 변화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16세기 말 오이라드인들은 서부 시베리아로 세력을 확장했으며, 그 중 일부인 토르코드(Torkhud)부는 카스피해 서북지역으로 이동해 갔다. 오이라드인들이 서부 시베리아로 진출할 때 그 지역에 텔레스(Телес), 텔레우트(телеут), 키르키즈인들이 살고 있었다. 텔레스나 텔레우트는 알타이인들과 가까운 민족들이다. 당시 키르키즈인들은 텡게리산의 키르키즈(Тэнгэр уулын киргиз)와 시베리아의 키르키즈(Сибирийн киргиз)라는 2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모두 오이라드와 이후의 준가르제국에 예속되었다. 보리아드인들은 16세기 중반 이후 명목상으로 할흐몽골의 통치를 받았을 뿐 실제는 독립된 상태였다. 16~17세기 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군대를 지니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보리아드인들이었다. 보리아드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주변지역의 소수민족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의 보리아드 지역에 들어와 각 곳에 견고한 요새를 세우기 시작하자 사태가 일변하였다. 러시아인들은 금, 모피 등이 풍부한 보리아드 지역을 탐냈다. 러시아는 할흐몽골과 준가르 몽골의 북쪽에 위치한 보리아드 지역으로 침략해 들어와 1648년에 우드 요새(Үдийн цайз), 1652년에 바르가진 요새(Баргажаны цайз), 1666년 상-우드 요새(Дээд Үд цайз, Ru. Верхне-Удинск: 오늘날의 울란우데), 1654년에 이르쿠츠크 요새(Эрхүүгийн цайз), 1689년 네르친스크[Nerchinsk, Mo.Нэршүү] 요새를 세우면서 보리아드인들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 러시아의 보리아드 통치는 바이칼 서쪽지역과 이르쿠츠크 주의 남쪽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17세기 초 바이칼 주변 보리아드인들에 관한 기록도 동쪽보다는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보리아드인들은 17세기 초에 바이칼의 남동쪽의 아기 보리아드(Агийн буриад) 주변이나 몽골북부지역으로 이동해 갔다. 일부는 바이칼에서 아주 먼 북쪽에 있는 지역까지 이주해 갔다. 러시아의 진출이 노골화되자 보리아드의 지도자 및 귀족들은 회의를 개최하여 어떠한 나라를 지지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당시 보리아드의 지도자들은 할흐(Халх), 만주(Манж), 러시아(Орос)를 지지하는 3개의 파로 갈라졌다. 보리아드는 1620년대부터 러시아와 벌인 일련의 전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본래부터 숫자가 적은 보리아드인들에게 이것은 심대한 타격이었다. 17세기 초에 보리아드의 인구는 대략 7만 7천명이었다. 러시아는 1656년부터 보리아드인들에게 러시아국적을 부여했다. 그리고 1689년 만주의 대청제국과 제정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네르친스크 조약(Нерчинскийн гэрээ)에 의해 보리아드 지역은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이후 많은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이 러시아황제의 칙령으로 이주해와 토지가 비옥한 지역을 서서히 점령해 나갔다. 1727년의 캬흐타 조약으로 할흐몽골과 러시아국경에 경계오보가 세워져 보리아드 지역은 공식적으로 제정러시아의 관할로 들어갔다. 그리고 1767년에 오카(Ока)강 보리아드인들의 유혈투쟁과 유혈진압을 마지막으로 합병에 대한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1900년대 초 보리아드인들은 제정러시아 군대의 폭압이 강화되자 몽골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보리아드는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일시 백군과 일본에게 점거 되었다가 1920년 데에드-우드(Дээд Үд: 현재의 울란우데)에 수도를 두고 극동공화국(Алс Дорнодын Бүгд Найрамдах Улс)을 세워 독립했다. 일본은 1918년 8월부터 1922년 10월까지 러시아백군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출병하여 바이칼과 연해주 일대를 점거하고 있었다. 소위 시베리아출병(シベリア出兵)이라는 이 전쟁기간 중 일본군은 7만 3천 명이 참가하여 5천 명이 전사했다. 이 전쟁에 이동휘(李東輝)가 이끄는 1000명의 조선인 적군 등 한반도나 시베리아의 조선인들도 소비에트 러시아 측에 적극 가담해 싸웠다. 일본군이 패퇴한 뒤 1922년 보리아드는 소비에트 연방(Зөвлөлт Холбоот Ул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다가, 1923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보리아드 몽골 공화국(Зөвлөлт Социалист Бүгд Найрамдах Буриад Монгол Улс)이란 소비에트연방의 한 국가가 되었다. 1920년대에는 엘베그도르지(Элбэгдорж, Ринчино, 1888~1938) 등 보리아드의 주요 지도자들이 몽골로 갔기 때문에 일반국민들도 그들을 추종하여 몽골인민공화국(БНМАУ)에 들어왔다. 몽골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한 엘베그도르지의 부인은 고려인 남마리아로 여운형의 몽골여행기에도 등장한다. 남마리아는 레닌과 같이 혁명활동을 한 남만철의 여동생으로 뛰어난 미인이다. 오늘날 바이칼호 동북쪽 바르구진 지역의 힐가나(Хилгана)에 그녀와 남편을 기리는 박물관이 있다. 1925년 9월의 신문에 의하면 당시 보리아드인들은 할힌골 호쇼오(Халхын голын хошуун)에 450세대(өрх), 올즈골 호쇼오(Улз голын хошуун)에 1700세대, 오농골 호쇼오(Онон голын хошуун)에 1,250세대, 헤를렌골 호쇼오(Хэрлэн голын хошуунд)에 400세대, 여러골 호쇼오(Ерөө голын хошуунд)에 500세대, 울란바타르에 2,000여명 등 총 15,800여 명이 몽골에 거주하고 있다. 몽골에 이주한 보리아드인들 가운데에는 이전 백군통치 때에 관리를 한 사람들이나 부자들, 범죄자들을 조사할 목적으로 정보국에서 파견된 첩자들도 있었다. 1930년에 러시아 보리아드인들의 몽골이주는 금지되었다. 1927년에 보리아드인들이 소비에트 정부의 가축 강제수용과 집단농장화 정책에 반발하여 유혈폭동을 일으켰다. 이 유혈폭동에서 3만 5천명의 보리아드인들이 소비에트 러시아군에게 살해되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보리아드의 민족사상이 매우 강한 것에 주목했으며, 이를 탄압하고자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1만 명의 보리아드인들이 총살되었다. 소비에트는 이름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몽골인들이 보리아드에서 생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자 소비에트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일부 학자들은 “보리아드, 할리막 사람들은 몽골인이 아니다”라는 정치적인 논문들을 제출하면서 분리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이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벌이는 동북공정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에트의 노력은 오늘날 러시아 연방에도 계승되어 “보리아드, 할리막 사람들은 몽골이 아니다”라는 논저들이 계속 출판되고 있는 실정이다. 보리아드는 1980년대에 이를 때까지 외국인의 방문이 금지되어 있었다. 1991년 초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자 보리아드와 몽골국 사이에 통합 움직임이 크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하고 투표로 향방을 결정하기를 원했다. 보리아드는 1991년 5월 27일 보리아드공화국(Бүгд Найрамдах Буриад Улс)으로 개칭하고 투표를 통해 그해 12월 25일 러시아가 주도하는 연방의 한 국가로 남았다. 그리고 1994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선거가 치러져 레오니드 뽀타뽀프(Леонид Потапов)가 대통령으 로 선출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보리아드 지역이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가지 조약의 명칭과 시기를 서술하시오.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보리아드 지역이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 과정과 관련된 두 가지 조약의 이름과 체결 연도를 찾는 것이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텍스트에서 보리아드 지역의 편입 및 관할권과 관련된 조약 정보를 추출한다.

    • 네르친스크 조약(Нерчинскийн гэрээ)
    • 1727년의 캬흐타 조약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보리아드 지역의 공식 편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조약 문구를 선택한다.

    • 1727년의 캬흐타 조약으로 할흐몽골과 러시아국경에 경계오보가 세워져 보리아드 지역은 공식적으로 제정러시아의 관할로 들어갔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첫 번째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1689년)이 공식 편입의 시작임을 확인하고, 두 번째 조약인 캬흐타 조약(1727년)이 관할권을 확정했음을 결합한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과 1727년 캬흐타 조약이 보리아드 지역의 러시아 편입 및 관할권 확립에 핵심적이었음을 정리한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조약 명칭과 시기를 포함하여 답변을 작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1.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2. 1727년 캬흐타 조약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보리아드 지역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편입되었고, 1727년 캬흐타 조약으로 제정러시아의 관할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