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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화개장터와 쌍계사의 역사 및 문화적 가치, 원북원부산 운동의 독서 문화, 그리고 팬덤 문화의 변천사에 관한 기록 doc_id PCY_201508280245404391_1

주제 (main_topic)
섬진강 화개장터와 쌍계사의 역사 및 문화적 가치, 원북원부산 운동의 독서 문화, 그리고 팬덤 문화의 변천사에 관한 기록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섬진강 변은 5월의 꽃 잔치가 한창이다. 따뜻한 산비탈에는 꽃 속에서 녹차 나무 손질하는 노부부의 손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섬진강 남도대교 부근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낚시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옛날에는 화개를 일러 일명 합포라고도 했다. 즉 좁은 포구라는 뜻으로 지금의 화개장터라는 말이다. 지금은 세월 따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선이 드나드는 선창이 있었다. 광양과 하동을 이어주는 남도대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굵은 줄에 매여 남도 땅을 이어주던 낡은 나룻배는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화개라고 하는 것은 “눈 속에 칡꽃이 피었다”라는 것으로 겨울에도 꽃이 피고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뜻이다. 화개장터는 영호남 사람들이 어울리는 무대가 되었고, 유행가 가사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옛 화개장터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되었고 비석만이 자취를 더듬게 하고 있었다. 화개장터에서 십리 길을 따라가면 삼신산 쌍계사 입구이다. 최치원이 글자를 썼다는 쌍계석문을 지나면 수제녹차 봉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화개녹차 시배지를 알리는 표지가 있고 산자락으로 넓은 차밭이 펼쳐진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 차 시배지가 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었다. 차는 이전부터 있었으나 대개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이었는데, 그가 차 종자를 가지고 온 이후부터 성하였다고 한다. 서기 830년 진감선사가 차를 널리 알렸으며 차의 일반적 보급은 이때부터 이루어졌다. 화개면 일대에는 화개에서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이 십리 산비탈에 야생의 차밭이 빼곡하게 화개동천을 따라 산수화처럼 이어진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사계절 진한 녹색으로 차가 자라고 있다. 아담하게 자리 잡은 전통찻집이 옛날부터 차나무를 심었고 차를 즐겨 마셨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화개는 매년 5월이면 화려하다. 화개일대에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초록 물결이 파도처럼 햇살에 빛나는 차밭을 따라 쌍계사로 향했다. 팔영루와 대웅전 사이에 신라 진성여왕1년(887)에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서 있다. 탑비는 진감선사 혜소(774∼850)에 대하여 기록한 비석이다. 진감선사 혜소는 신라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임금들이 우러러 보았다. 대공탑비는 대웅전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서있다. 이것은 쌍계사 전각들이 일직선축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경내 주축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금당영역과 축을 이루고 있음이다. 금당에는 육조 정상탑을 모신 탑전과 팔상전이 있다. 쌍계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터로 높이를 달리하여 서로 맞물리게 배치된 건물들이 상승감을 준다. 육조는 달마로부터 시작된 선불교 제6대 조사 혜능(638~713)을 가리킨다. 그는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던 어느 날 장터에서 금강경 독경소리를 듣고 제5대 홍인(601~674)대사를 찾아갔다. 9개월 동안 디딜방아 찧는 일만 하다가 일자무식이던 그가 시험을 자청, 돈오설을 설파하여 제6대 조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홍인대사가 조사로서의 징표를 주어 남방으로 내려 보냈다. 그가 주석한 곳이 중국 광동성 조계산 보림사이다. 매표소부터 계곡을 옆에 두고 물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삼신산 쌍계사 편액이 걸려있는 화려한 다포집 일주문이 반긴다. 삼신산은 지리산의 옛 이름이다.삼신산 쌍계사와 선종 대가람 현판 글씨는 근대 서예가 해강 김규진(海崗 金圭鎭, 1868~1933)의 힘찬 글씨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전각에 문수·보현 동자가 있는 금강문이다.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90년에 스리랑카에서 석가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했다는 9층 석탑이 있고 누문인 팔영루와 마주치게 된다. 쌍계사 전각의 배치는 일직선상에 가깝게 놓여있으나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되고 중간에 다른 전각들이 들어서 있어 문을 통과 할 때마다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팔영루는 진감선사 혜소(774~850)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를 만들어 냈던 곳이다. 팔영루는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 역할을 했으며 이름은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 범패를 작곡한 데서 붙였다. 2014년 원북도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는 외세에 약탈되어 145년의 유랑을 마치고 우리 곁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그 반환협상의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외교관이 십수년간 협상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은 글이다.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외교관으로서의 보람과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부산시민들에게 국외소재 문화재 반환 노력뿐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여러 유적이나 유물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동시에 막연한 동경이나 낯선 직업으로만 느껴졌던 외교관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공공도서관 및 독서단체는 지난 3월 28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2014년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선포식’을 시작으로 원북 독서릴레이 및 독서토론동아리 운영, 작가와의 만남, 독후감 공모, 심포지엄, 연합독서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를 운영할 예정이다. 원북원부산운동은 부산시민 모두를 책 읽는 즐거움 속으로 이끌어, 책을 통해 내 삶을 성찰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함께 성장하는 문화공동체’를 이루어내는 일에 노력할 것이다. 원북원부산운동은 부산시민이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함께 읽고 토론하며 다양한 독서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독서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범시민 독서생활화 운동이다. 이 운동은 2004년 시작되어 올해로 11년째 계속 되고 있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은 학생들의 독서습관 정착을 위해서 학부모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 전체가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그 출발점임을 인식하고, ‘부산북스타트(Busan Book Start) 범시민 독서생활’운동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원북원부산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올해 원북원부산운동은 도서선정의 공정성과 망라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원북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매월 85권의 도서를 읽고 축적한 후보도서와 각계각층에서 추천한 후보도서를 대상으로 4단계(100권⇒50권⇒30권⇒10권⇒5권)에 걸쳐 후보도서(5권)를 선정하고, 한 달간의 시민투표를 통해 최종 1권을 선정하였다. 어른들은 팬덤(fandom)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것이다. 광신자라는 패내틱(fanatic) 혹은 팬(fan)이라는 영어단어에 영토를 뜻하는 돔(dom)이 합쳐져서, 아이돌 스타 같은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을 팬덤, 그런 흐름을 팬덤현상 혹은 팬덤문화라 한다. 코미디언 안어벙 씨가 잘 쓰는 말대로라면 적당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특정 스타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70년대 남진과 나훈아가 가요열풍을 일으킬 때 열성적인 팬 때문에 시작되다가 70∼80년대 조용필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면서 본격화 되었고, 1990년대 서태지가 ‘난 알아요!’ 라는 노래를 불러서 ‘모차르트가 한국에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을 때 제대로 된 팬덤이 생겼다. 조용필의 오빠부대는 괴성(?)을 지르면서 손 플랜카드나 브로마이드를 흔드는 수준이었지만, 서태지의 팬들은 의상, 소품, 스타일, 정신적인 부분까지 따라하면서 스타의 생활양식을 자기 것으로 동일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인물은 누구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문맥에서 신라 흥덕왕 3년에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인물을 찾아야 한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차 시배지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을 추출한다.

    •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 차 시배지가 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었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질문에서 요구하는 인물과 시기, 행위가 명시된 문장을 선택한다.

    •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었다.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신라 흥덕왕 3년에 당나라 사신으로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심은 인물이 김대렴임을 확인한다.

    •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었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해당 인물의 이름은 김대렴이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을 생성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김대렴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신라 흥덕왕 3년(828)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