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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의 산업별 경제 변화와 노동시장 및 농업 부문의 특수성 및 시사점 doc_id PCY_201509030118415711_4

주제 (main_topic)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의 산업별 경제 변화와 노동시장 및 농업 부문의 특수성 및 시사점
답변 불가 (is_impossible)
False
문맥 (context)
동독의 임금이 꾸준히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독의 임금이 생산성보다 높이 상승한 시기는 통일 초기의 몇 년에 지나지 않았다. 통일 되던해부터 1995년까지 임금은 생산성 증가율 이상으로 인상되었지만, 1996년부터 임금상승률은 생산성 증가율의 절반 정도의 수준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은 비록 동독지역만큼 가파른 속도는 아닐지라도 서독지역근로자의 임금상승률 또한 생산성 증가율보다 높은 속도로 올라갔음을볼 수 있었다. 서독의 경우에도 1995년부터 임금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낮아지지만 그 정도는 훨씬 낮았다. 또한 독일 정부는 동서독 소득격차 축소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재정지출을 하였다. 매년 구서독지역 GDP의 4% 이상의 자금을 동독지역으로이전지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당 규모의 공적지출은 주로 개인에게귀속되는 것으로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나타난다. 통일 이전 동독의 농업은 토지개혁, 집단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포디즘적 대량생산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농업 부문 종사자는1989년에 약 85만 명 정도로 취업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약간 상회했다. 통일 이후 농업 부문에서도 대량실업은 불가피했다. 실업을 막기위한 구동독 농민의 노력, 연방정부의 농업진흥정책에도 불구하고1989년에 85만 명이었던 농업 종사자는 1993년에 18만 5천 명으로급감했다. 통일 이후 약 3년 만에 약 66만 5천 개, 비중으로 보면78%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서독과 비교할 때 동독의 취업구조에서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농업의 대량실업은 현실적으로 막기 어려웠다. 대량실업은 경제적 차원에서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농촌 사회 자체의 분열을일으킬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실업이 가진 사회적 의미는 농촌 사회에서도 나타나 일자리를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사이에 균열구조를 형성시켰다. 대량실업에 대한 독일 정부의 대응은 이미 서독이 갖추고 있었던정책 프레임을 동독지역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소득보장,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농업에 적용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적인노동시장정책 프로그램이었다. 이 정책들은 동독지역 농업 노동시장이 연착륙되는 데 기여한 몫이 상당하다. 이는 통일 이전에 정책의내용과 구성을 촘촘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량실업사태를 연착륙시키는 데에는 노동시장정책의 단독작품이 아니라 다른 정책수단이 결합된 결과였다. 특별히 복지정책 영역에서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에서 농업진흥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농업 노동시장이 안정을 찾아 갔다. 독일통일의 전반적 특징은 ‘서독모델의 동독지역 이식’이지만 농업은 사정이 달랐다. 통일 당시 정부는 서독의 모델에 따라 가족농중심으로 농업을 재편하려고 했으나, 이는 실패하고 서독과는 다른영농조직이 유지되고 있다. 농업기업의 형태가 구동독 시절 영농형태를 반영하는 법인형태가 선호되었고 이것이 아직도 동서독 지역간의 영농형태에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농업 부문에서는 “동독 농업의 뒤늦은 승리”라는 표현처럼 구동독의 대량생산체계가 글로벌화를 맞이하면서 통일 이후 서독지역 농업을 앞서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듯 동독 농업의 역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동독 농업의 차별성은 국가가 토지의 소유권을 강제로 박탈하고이를 집단농장에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소유권은 유지한 채 집단농장에출자하였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통일 당시 전체농지의 약 2/3에 달하는 420만ha가 법적으로 개인소유였다. 집단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국영농장(Volkseigene Güter : VEG)과 협동농장(Landwirtschaftliche Produktionsgenossenschaften : LPG)이농업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89년 기준으로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은 경작면적의 90%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교회와 개인이 경작하는 소규모 농장이었다. 국영농장은 협동농장보다 규모가 훨씬 커 농장당 경작면적은 9배에 이르렀다. 동독 농업의 주요 작물과 소비 현황을 살펴보면, 1989년 기준으로 곡물과 설탕의 식량자급률이 각각 83%와 79%로 약간 떨어질 뿐 감자,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등 육류는 100%를 넘어 적어도 식량의 생산과 소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제조업 직업별로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정리해 놓은 국가기술표준을 정비해서 실업자들이 일정한 시험이나 훈련을 통해서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독일의 경우 농업 부문에서 법인 형태의 동독 농업을 가족농 형태의 서독 농업으로 개편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는데, 오늘날은 법인형태의 농업 형태가 더 생산적인 형태로 선호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에게 일정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북한의 체제전환 과정에서도 일정산업 부문은 전반적인 통합과정과는 달리 산업 부문별로 독자적인 논리가 작동하고, 오히려 더 우수한 성과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독일통일의 경우 그것이 농업 부문에서 나타났지만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산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물론 동독과 북한의 상황은 비교가불가능할 정도로 격차가 크지만, 북한의 산업생산 방식 중 통일 이후 경쟁력을 갖출 만한 영역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통일 직후 구동독지역의 서비스업은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무역, 금융, 보험, 정부서비스, 사적서비스, 기타 서비스의 고용규모를 살펴볼 때, 통일 전인 1989년 190만 정도였던 규모가 통일후 1995년 230만 수준으로 약 40만 명가량이 증가했다. 서비스업의 총 부가가치(Bruttowertschoepfung) 또한 1991년의 화폐가치를 기준으로 하여1991년과 1995년 사이 매해 10.4%씩 상승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통일 직후 구동독지역의 이러한 서비스업 성장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였는데, 다음의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통일 직후서비스업의 발전을 동독지역 일자리창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이는 통일 이전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동독지역의 서비스업이 발전하면서 향후 구동독지역의 실업자를 흡수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한편 반대의 시각도 있었는데, 통일 직후 서비스업의 발전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통일 후 1990년대 초반의 시기는 구동독지역 수발서비스의 위기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 배경으로 첫째, 통일 후 구동독지역수발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들 수 있다. 통일 후 전문 수발서비스 인력이더 좋은 직장을 찾아 서독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특히 이전 구동독의 의료능력을 갖춘 수발서비스 인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구동독지역의 노인서비스 시설이 비용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전문인력보다 서독 출신의 일반간호사를 선호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구동독지역 수발서비스 인력의 사회적 자질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수발서비스 인력은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서비스 이용자의 일상생활을 진단하고 여타 프로그램과 연계해 주는 사례관리 능력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 낯선 구동독의수발서비스 인력은 변화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의사소통의 문제와 시기적절한 대응을 놓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구동독의수발서비스 인력은 서독지역의 인력과 비교하여 ‘과도하게’ 전문성이 높은 반면, 자유시장경제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능력은 현저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지시문 (instruction)
다음 문맥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질문 (question)
통일 이후 동독 농업 부문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했을 때, 이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결합되어 시행된 정책 수단들은 무엇인가?
추론 과정 (compact_reasoning)
  1. 1과제 해석task_interpretation

    동독 농업 부문의 대량실업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시행한 구체적인 정책 결합 사례를 찾아낸다.

  2. 2정보 추출information_extraction

    동독 농업의 대량실업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에 관한 내용을 추출한다.

    • 대량실업사태를 연착륙시키는 데에는 노동시장정책의 단독작품이 아니라 다른 정책수단이 결합된 결과였다.
    • 특별히 복지정책 영역에서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에서 농업진흥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농업 노동시장이 안정을 찾아 갔다.
  3. 3근거 선택evidence_selection

    연착륙에 기여한 구체적인 정책 영역과 세부 정책 항목을 선택한다.

    • 복지정책 영역에서 연금보험
    • 산업정책 영역에서 농업진흥정책
  4. 4논리 통합logical_integration

    노동시장정책 외에 연착륙을 가능하게 했던 복지정책과 산업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결합한다.

    • 복지정책 영역에서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에서 농업진흥정책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농업 노동시장이 안정을 찾아 갔다.
  5. 5결론 도출conclusion_formulation

    복지정책의 연금보험과 산업정책의 농업진흥정책이 결합되어 시행되었음을 결론짓는다.

  6. 6답변 생성answer_generation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복지정책 영역의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의 농업진흥정책을 제시한다.

최종 답변 (final_answer)
복지정책 영역의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의 농업진흥정책이 결합되어 시행되었다.
핵심 해석 (core_interpretation)
통일 이후 동독 농업 부문의 대량실업 사태를 연착륙시키는 데에는 노동시장정책뿐만 아니라 복지정책 영역의 연금보험과 산업정책 영역의 농업진흥정책이 동시에 결합되어 시행되었다.